캘거리, 눈 내리던 봄날의 추억

주마간산 여행기 (19)

by vankorwriter

캘거리, 눈 내리던 봄날의 추억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가야지? 조박사님 얼굴이라도 한 번 뵈어야지. 아무도 자신의 노하우를 나눠주지 않으려드는데 그분은 예외였지 않은가. 우리가 마음 돌립시다. 갑시다. 캘거리. 그래서 아내와 나는 한국의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에어캐나다 캘거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밴쿠버 탑승시간은 오후 12시 40분, 캘거리 도착시간은 오후 1시 10분. 그러면 캐나다를 모르는 사람들은 에게게? 겨우 30분 비행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10여년 동안 캐나다에서 다닌 여행 중 제일 짧은 비행시간이다. 당연히 기내식은 없고, 음료수와 간식이 전부다. 장거리 비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무슨 기내식이 나올까 하는 기대인데, 내가 좋아하는 선홍빛 크렌베리 쥬스 한 잔과 아삭느끼한 프리첼 두 서너 조각 음미하면 비행 끝. 괜히 승무원들만 부산하다. 음료수 컵과 간식포장지 수거하랴, 착륙준비 하랴.


캘거리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몇년 전 아내와 록키산맥 관광을 갔을 때 귀가 길에 들린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문을 닫은 밴쿠버 라디오 방송국에서 독자사연을 모집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내는 밴쿠버로 이주한 후 서울에서 온 이삿짐을 풀며, 20여년을 살아 온 강남시절의 추억을 정리하여 투고하였는데 당선되었다. 부상으로 록키관광여행권이 주어졌고, 아내 덕에 '록키 한 번 갔다오지 않고서 캐나다의 자연을 논하지 말라'는 불문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과연 록키여행을 하고 나니 밴쿠버의 자연은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처음 밴쿠버로 왔을 때 온통 숲으로 둘러 쌓인 듯한 도시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는데 몇년 살다 보니 눈에 익은 광경들이 시들해 지기도 했지만 웅장하고 수려한 록키를 생각하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눈은 그토록 간사한 것이다.


그러니 록키여행 끝에 본 캘거리는 차라리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밴프 구경을 마치고 캘거리로 진입할때 본 목초지들은 끝없이 이어 질 듯 했고, 누비이불을 둘둘 말아올린 듯 여기저기 놓여있는 건초더미들과 방목된 소들은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여겨졌다. 넓은 평원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연사료들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육질좋은 앨버타 소고기가 생산된다는 관광안내원의 설명만이 지루한 평원 광경을 보는 무료함을 달래 주었다.


캘거리는 별로 볼 것이 없으니 10시간여 이상 걸리는 내일의 귀가를 위해 숙소에서 푹 쉬시라는 관광안내원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버릇처럼 캘거리 전철(C-train)을 타고 종점에서 종점으로 두어바퀴 돌았다. 어디가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형화 된 관광지보다 방문한 지역의 사람 사는 모습들이 내게는 또다른 관광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운타운에 내려서 캘거리 타워 주변을 걸었다. 밴쿠버에 비해 동양인들이 눈에 별로 띄지 않았다. 밤의 다운타운이 어디든 그러하듯 불량스럽게 생긴 젊은이들이 몰려 다니면서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곁눈질만 하면 거지들이 금새 달려와 '루니(1달러 동전), 투니(2달러 동전)'하면서 맏겨놓은 돈 달라는 듯 당당하게 구걸을 하였다.


하룻저녁의 짧은 체류가 아쉬었지만 세상에 갈 곳, 볼 곳은 허다하니 관광지라고 딱히 이름할 수 없는 도시에 일부러 더 갈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캐나다 한인 노인회 연합회 결성과 관련된 회의가 5월 8일, 9일 이틀간 캘거리에서 개최된다기에 록키관광도 한 번 더 할 겸 님도 보고 뽕도 따보자는 마음으로 무르익은 봄날, 아내와 동반하여 캘거리로 오게 된 것이다.


연합회 결성을 주관한 조현주 박사가 공항에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밴쿠버에서 함께 온 일행과 기다리는 동안 공항 내부를 둘러 보았다. 밴쿠버 공항에 비해 작고 아담하지만 좀 독특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부피나 용량 초과로 기내반입이 허용되지 않아 화물칸으로 들어간 위탁 수하물을 찾는 곳, 그 상단 부분에 캘거리의 명소를 홍보하는 설치물들이 놓여 있었다.


1. 수하물 찾는 곳캘거리 주.JPG

수하물 찾는 곳의 동물원 홍보전시물


2. 캘거리 시내버스.JPG

캘거리 시내 버스


대충 눈에 띄는 것은 캘거리에서 차로 1시간 30분걸리는 드럼헬러 시의 공룡박물관(Royal Tyrrell Museum), 캘거리 시내에 있는 동물원(Calgary Zoo), 군사박물관(The Military Museum), 그리고 캐나다의 산하와 북미 극지방 원주민들의 이정표인 이눅슈크(Inukshuk)가 전시된 캐나다 국립공원관리청(Parks Canada)의 조형물 등이었다.


이중 이번 일정에서 가 본 곳은 동물원 뿐이었다. 수만년전의 공룡 뼈와 화석이 전시되었다는 드림헬러 공룡박물관과 오타와 전쟁박물관에 이어 캐나다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군사박물관은 도리없이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캘거리가 속한 알버타(Alberta) 주는 내가 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와는 이웃이니 이번 기약은 쉽게 지켜질 수 있을 것 같다.


공항에서 시내로 드니 낮익은 것은 멀리 보이는 다운타운의 캘거리타워(Calgary Tower). 산이 없는 평원에 지어진 도시이니 만큼 시야가 넓어서 타워의 위용이 캘거리 외곽도로 에서도 한눈에 들어 왔다. 시내버스의 외형 디자인도 세련되고 깔끔해 보였다. 버스 상단부는 붉은 색으로 도장되어 있는데 밴쿠버의 청색 도장보다 쉽게 눈에 뛰었다. 출퇴근시간이 지나서 인지 여유로운 좌석은 보는 이의 마음조차 여유롭게 했다.


캘거리 한인회관에서 개최된 캐나다 한인 노인회 연합회의는 '차세대를 위해 우리세대가 무엇을 할 것인가?', '고립되기(isolated) 쉬운 한인 노인층의 권익 증진과 사회참여를 위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노인회가 움직여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진지하고 다양한 토론이 오고 갔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노인이 되어버린 내게 앞으로의 여생을 어떻게 알차고 보람있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결론은 하나.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되 나보다 남에게 더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봉사활동에 힘쓰자는 것. 뻔히 아는 일이지만 실행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캐나다 전역에서 온 노인회 자원봉사자들의 사례발표는 참석한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손수 운전을 하면서 외지의 참가자들을 회의장소로 실어 나르고, 모든 회의를 주관한 조 박사의 희생적인 봉사정신은 감동적이었다. 후두암 수술로 목소리로 잘 나오지 않는 분이 캐나다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동참하자며 호소하던 일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회의가 끝난 9일 오후 부터 10일 늦은 오후까지 1박 2일 간의 록키산맥 밴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캘거리 도심에 들었다. 늦은 일요일 오후였다. 아내와 나는 하루 더 체류하면서 캘거리 이모저모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해서 다운타운 중심부 전철역(CTrain) 부근에 호텔방을 잡았다. 14층 숙소에서 캘거리 도심이 눈에 훤히 들어 왔다. 인구 약 120만 명으로 약 21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밴쿠버 다음으로 서부 캐나다에서 큰 도시지만 석유를 비롯한 자원산업과 농업 및 목축업을 포함한 1차 산업, 관광업,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캐나다에서 두번 째의 고밀도 상업지역이다. 그래서 세련되고 웅장한 고층건물이 밴쿠버보다 더 많다. 겨울철 최저 평균온도가 영하 14도 정도이며 평원에서 가끔 칼바람이 몰아쳐서인지 고층건물 사이에 지붕과 벽으로 덮힌 구름다리들이 많다. 그러니 겨울에 추운 거리를 오가지 않더라도 구름다리를 통해 도심의 여러 건물을 다닐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니 내려다보이는 건물 지붕에 눈이 내렸다. 5월의 눈. 예상밖이었다. 밴쿠버는 이상기온인지 늦봄을 건너 뛰고 여름인듯 하였는 데 캘거리는 눈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부산함도 눈속에 묻힌 듯 조용하고 차분했다. 옷 두텁게 입어야겠는데. 바깥은 겨울이야. 그냥 호텔 안에서 시간 보낼까? 아내에게 한마디 던졌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는 살짝 내린 눈에도 밖에 나가기가 주저되었다. 그러나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아내와 나는 한 곳이라도 더 보기 위해 용감하게(?) 서둘렀다.


높이 190.8m의 캘거리 타워에 올라 360도 회전하는 레스트랑의 맛있는 순 앨버타 산 소고기에 와인을 곁들인 정찬을 즐기며 도심 주변의 대평원과 멀리 록키산맥을 바라다볼 수 있는 정경을 기대했지만 보통 2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종업원의 말에 포기. 캘거리 타워 바로 건너편에 있으며, 1966년 건립된 글렌보우 박물관(Glenbow Museum)에서 그 유명한 캐나다 기마경찰대(RCMP)와 대평원 원주민들에 관한 무기 및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전시물을 통해 초기 서부캐나다의 역사를 가늠해 보고 싶었지만 월요일은 휴무라서 포기. 이래저래 포기하다 보니 갈 곳은 헤리티지 공원(Heritage Park)과 동물원(Calgary Zoo) 밖에 없었다.


그러나 헤리티지 공원도 1주 후에 개장한다고 해서 또 포기. 별 수 없이 공원 입구의 개솔린골목 박물관(Gasoline Alley Museum)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 일이 어디 내 뜻대로 되는가. 밴쿠버 출발까지 10시간 남짓으로 캘거리 이곳저곳을 다 둘러 보겠다는 욕심이 문제지. 청춘의 꽃시절 다 보내고 60대 중반의 나에에 이제서야 이것 저것 하고싶은 것 잔뜩 벌려 놓고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 탓하는 지금 내 심정이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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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5월의 캘거리 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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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솔린 박물관 내부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고 기왕 가는 곳이나 차분히 둘러 보기로 했다. 그제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추구하던 돈과, 지위와, 명예를 포기하고 다만 문학에만 전념하려는 내 노년길 처럼.


지난 수세기동안 자동차 산업은 캐나다인들의 삶의 질과 형태를 변모시켰다. 자동차 시대는 사람들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광활한 북미대륙을 옮겨 다니게 함으로 무한한 자유와 새로운 약속의 장을 열었다.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자동차는 모두 개솔린, 즉 휘발유로 움직였고, 이와 관련된 정유소, 내연기관, 비행기, 트럭, 승용차, 석유 및 가스산업체 등에 대한 전시물이 종류별,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인류사의 수많은 업적이 그러 하듯이 개솔린골목 박물관도 한 사람의 열정으로 비롯되었다. 석유시추관련 용도품 제조회사인 제이앤엘 물산(J&L Supply)의 창시자인 론 카레이(Ron Carey)도 그랬다. 기술발전에 따라 사라져 가는 구형 차량, 개솔린 펌프, 정유소의 간판, 농기구 등을 때로는 경매를 통해, 때로는 농장에 버려진 것들을 사들여 때 빼고 광 내어 보관하던 것을 2009년 헤리티지 공원 안에 개솔린 박물관이 문을 열 때 모두 기증했다. 사실은 론의 수집품 때문에 개솔린 박물관이 개장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낡고 고장난 수집품들을 수리하고 개조하여 지금은 약 5백만불 상당의 가치가 나가는 전시물로 75,000스퀘어피트(약 2,700평)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석유관련 사업으로 모은 재산을 항공기를 이용한 긴급구호단체(Air Ambulance), 앨버타 어린이 병원, 그리고 해마다 7월에 열리는 로데오 축제인 캘거리 스탬페드(Calgary Stampede)에도 많은 후원금을 기부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고 있는 그에게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배우게 된다.


전시물 중에 재미있는 것은 1930년대의 말이 끄는 자동차다. 그 당시 도심에서의 교통사고는 마차보다 자동차에 의한 것이 더 많았다고 한다. 자동차를 생전 본 적이 없던 옛사람들이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단다. 그래서 도심을 통과할 때는 시동을 끄고 말이 차를 몰았다나? 운전수가 마공(馬公)이 된 셈이다.


차량의 발전은 가족구성원들이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하여 더욱 단란하고 친밀한 가정을 꾸미는 데 일조했다. 크라이슬러사에서 제조한 1956년대의 플리머스 서버번(Plymouth Sport Suburban), 현 캠핑용차량(RV Car)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1959년대 챔피언 할러데이 트레일러(Champion Holiday Trailer)의 모습을 보니 오랫만의 가족여행에 부풀어 종달새처럼 즐거운 노래 불렀을 그 시절 사람들이 상상되었다. 우리 가족이 1980년대 후반 처음 승용차를 사고 주말마다 의무처럼 드라이브를 나가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인가.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개솔린 골목 박물관에서 한시간 반을 소요했다. 서둘러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헤리티지 공원 처럼 CTrain이 닿는 곳을 택했기 때문에 북쪽으로 일곱 정거장 위의 동물원역까지는 10여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레드라인과 블루라인 딱 두 노선밖에 없는 캘거리 전철은 바깥에서 출입문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탈 수 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밴쿠버처럼 문이 열릴 때 까지 멀뚱히 서 있다가 전철을 놓친 적이 있다. 사소한 일도 경험이 중요하다.


동물원. 내 첫 기억은 창경원이었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멋모르고 창경원에 가서 벗꽃놀이도 즐기고 동물 구경도 하였는데 성장하면서 사리판단이 생기다보니 남의 궁궐에 동물원을 만든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소행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1983년 동물원은 서울 대공원으로 옮겼지만 다시는 우리 민족이 우리에 갇힌 동물들처럼 자유를 상실하고 그저 주는 밥이나 먹으며 사육당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는 통념을 가슴에 담아 본다. 남의 나라 동물원 앞에서.


캘거리 동물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운영하지도, 정부기관에서 관리하지도 않는다. 비영리 자선단체인 캘거리 동물관련 협회(Calgary Zoological Society)에서 운영한다. 주정부에서도 많은 지원금을 받겠지만 입장수입과 독지가들의 기부금으로 살림을 꾸려 나간다. 그런데도 그 규모가 캐나다에서 두번째로 크다. 자연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캘거리에 석유산업 관련 기업체들이 많아서인지 기부금 규모도 대단하다. 전력, 천연가스를 캐나다 전역에 공급하는 앤맥스(ENMAX)를 비롯, 쉐브론 및 허스키에너지 같은 석유회사, 트랜스앨터같은 전력생산 및 공급사는 1백만불에서 5백불까지 기부를 했단다. 돈 벌어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기업체들이 그래서 사랑받는 이유다.


92에이커(약 112,600평)의 동물원은 팽귄수조(Penguin Plunge), 캐나다 야생동물구역(Canadian Wilds), 선사시대 공원(Prehistoric Park), 아프리카본향(Destination Africa), 유럽과 아시아 동물구역(Eurasia), 그리고 앤맥스사에서 조성한 도로시하비 정원(Dorothy Harvie Garden)등으로 나눠져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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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구역의 하마와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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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공원의 공룡모형


캘거리 공항에서 본 하품하던 하마모형의 실물은 정작 그 큰 엉덩이만 보여 주면서 오수에 빠져 있었다. 파수를 보듯 기린 한 마리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린이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슬픈 눈을 하고 우리 안을 서성인다. 갇혔어도 목을 길게 빼고 그리운 고향, 자유롭게 뛰놀던 아프리카를 생각하는 동물이 있는 가 하면, 먹고 자고 배설하며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물도 있다. 나는 기린에게 더 애정이 간다. 무언가를 항상 갈망하며 살고 싶다.


선사시대 공원에 드니 마치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에 온 듯 하다. 실제 크기의 공룡과 주변 환경을 조성해 두어 실감이 더했다. 4-5분마다 잠에서 깬 듯 움찔거리면서 표호하는데 무심코 걷다가 그 소리에 놀랄 수 있다. 2억4천만년 전 부터 6천6백만년 전까지 약 1억 8천만년간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 자연재해, 운석충돌 등 가지가지 멸종설이 있으나 원시인류가 이 엄청난 덩치의 공룡을 사냥했다는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인간이 못하는 일이 없지 않은가.


밴쿠버로 귀가하는 비행기에서 나도 마음을 고쳐 먹는다. 사실, 수년간 교민 노인층을 위해 봉사했으나 우두머리가 되려는 욕심을 가졌다는 오해를 받고는 마냥 흔드는 사람들이 싫어져 다시는 남을 위해 내 재주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캘거리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노령에도 캐나다 교민사회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헌신하는 조박사의 식지않은 정열과, 사재를 털어 오늘의 개솔린 박물관이 있게 한 론 카레이, 캘거리 동물원을 위해 기부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 능력이 필요한 곳이라면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고 달려가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섬')


오해와 시련은 캘거리 봄눈처럼 잠시이다. 세월 가면 사라질 것에 마음을 쓰지 말자. 유한한 재능이나마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영원히 그 섬은 미지로 남는다. 다가가자. 그 속에 무엇이 있던 인간은 섬처럼 외롭다. 마음만 열면 사람과 사람 사이 그깟 시기와 질투와 의심과 증오는 봄눈 녹듯 사라지리라. 봄은 항상 겨울 뒤에 오는 것이니. 대문을 활짝 열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만 봄은 봄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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