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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a Dec 01. 2023

무고한 공범

-다카하시 히로키 <배웅불>

때로 학교에서의 아이들 모습은 어른들의 잘못된 가치관, 왜곡된 역학의 미니버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폭력성은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청소년기 특성과 맞물려 있죠.  청소년기는 계산하지 않는 순수성과  열정, 다듬어지지 않은 원초적 지배욕, 위계에 대한 집착 및 복종, 만용 등의 모습도 한데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시기이기도 합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유명인들의 학교 폭력 과거, 언론에 회자되는 피해 학생들의 아픈 사연들은 인간에 대한 기본 신뢰의 근간을 흔듭니다. 왜 가장 순수하고 예쁠 시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대신 약한 누군가를 괴롭히고 짓밟는 폭력성이 나오는 걸까요?


이 폭력의 악덕은 비단 그 폭력을 행사하는 자만의 것일까요? 그 폭력을 방관, 방조한 나머지 대다수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도 될까요? 아니, 그 시스템 자체를 슬며시 용인해 버리는 경우는요?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 홀로 용기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어른도 어려운 걸요. 어떤 친구나 동료가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는데 나한테는 친절하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약자를 괴롭히지 않았으니 그 폭력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런 상황을 경험하게 될 때 대체 어떻게 해야한다고 가르쳐야 할까요? 이 질문은 참으로 민감한 사안입니다. 폭력은 전염성이 있고 무엇보다 위압적입니다. 어떤 시스템 안에서 그 폭력을 목도하게 될 때 나도 모르게 그 폭력이 퍼져 있는 시스템에 협조하게 되어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바깥에서 그 폭력을 성토하는 것은 쉽지만 그 안에서 그 폭력의 공기를 호흡하는 존재가 될 때 우리는 몹시 괴롭고 힘든 결단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다카하시 히로키의 <배웅불>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입니다. 백오십 페이지 남짓된 이야기는 이런 폭력의 민감하고 미묘한 지점을 기가 막히게 정묘하고 생생하게 형상화합니다. 우리는 이 열다섯 살 소년들의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그 무거운 폭력의 시간에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주인공인 아유무라는 소년은 소위 엄친아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어른들한테 칭찬 받는 누구나 좋아할 법한 소년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도쿄에서 신생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키라라는 묘한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언뜻 보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아이들은 이 소년에게 복종합니다. 얼핏 약은 것 같기도 하지만 전학생 아유무에게는 비교적 친절하게 굴며 그의 호감을 삽니다. 아유무는 아키라가 중심이 된 무리에 포섭됩니다. 그 무리에 들어가는 일은 결국 아키라가 만든 질서가 불합리하더라도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키라는 무리 중 한 명인 미노루라는 친구를 교묘하게 괴롭힙니다. 반면 주인공 아유무는 미노루에게 비교적 의식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합니다.


소년들은 역시나 무리 지어 무모한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신체적 폭력도 따릅니다. 여기에서 시종일관 아유무의 대처는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줍니다. 폭력을 쓰지도 않고 친구를 의도적으로 괴롭히지 않지만 폭력의 주동자가 만든 시스템에 복종하는 삶은 결론적으로 어떤 의미와 책임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우리 대다수가 속하게 되는 그 보편성 속에 잠재된 악의 씨앗은 얼마나 거대하게 발아할 수 있는지 작가는 참 영리하게도 잘 솎아내어 보여주네요.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속에 담긴 무책임과 방관, 악의가 얼마나 거대한지 자각하게 하는 순간이 이 이야기의 마침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으로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불편한 순간은 꼭 필요한 각성의 순간이 아닐까요.


오늘도 나는 무의식 중에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에 일조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그 순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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