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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a Dec 08. 2023

마들렌의 순간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한 시간의 이야기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힘을 행사하는 게 뭘까요? 외모, 돈, 권력, 명예일까요? 저도 이십대에는 그렇게 생각한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절대 권능이 주어진 단 하나가 있더라고요.


바로 '시간'입니다. 아무리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이 눈부셔도 이 '시간의 힘'을 역행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수명 자체를 조금 늘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살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빛나던 것도 힘이 세던 것도 시간의 힘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오죽하면 신이 결국 '시간'의 다른 말이라는 얘기까지 있겠습니까. 몇 년 전 간절하던 것이 지금은 전혀 욕망의 대상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 죽을 만큼 밉거나 슬펐던 감정도 시간의 힘에 의해 희석되어 견딜 만하게 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양날의 검이네요. 늙고 약해지는 필연성이 우리를 힘빠지게도 하지만 반대로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게 마련이니까요.


시간 자체를 문학적으로 가장 빛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꼽고 싶습니다. 완독했냐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2012년 1권을 시작으로 2022년 마지막으로 13권을 읽었으니 꼬박 10년에 걸쳐 완독한 셈입니다. 둘째를 낳기 전에 시작해서 둘째가 10살이 되었으니 말 그대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이 되었네요. 프루스트는 사실 이 효과를 어느 정도 노리기도 한 것 같아요. 이 방대한 양의 자신의 저작을 읽으며 독자가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향유하기를요. 즉, 우리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체험 그 자체가 시간을 본질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시간임을 마지막 권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이 결국 존재의 빛나던 순간을 파괴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아닙니다. 그가 사랑했던 소녀들이 늙어서 그 빛이 저물고, 그가 그렇게나 선망했던 사교계 인사들이 늙어 바스라지는 와중에도 프루스트는 어떤 영원성의 관조를 체험합니다. 그것은 시간의 힘을 넘어섭니다. 바로 어느 순간을 가두는 예술적 형상화의 힘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결국에 남고야 마는 그 실재에 대한 천착이 바로 프루스트가 이 방대한 저작을 밀고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공이 우연히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어린 시절 콩브레의 시간으로 회귀하듯 누구나 한번쯤, 하나쯤 그런 순간과 계기가 있을 겁니다. 가장 아름답고 빛났던 시간으로의 영원회귀요. 그 한 순간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우리는 시간의 거대한 힘 정도야 일거에 박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런 지난한 시도에 관한 아름다운 예술의 이야기입니다. 기억은 완고하고 순간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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