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소송>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즉 내 자유의지가 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기죠.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 이건 사실 학창시절에 학교나 가정에서 주입된 메시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십대가 "제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요."라고 이야기하며 공부도 하지 않고 학원에도 가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주변에서 엄청나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게 될 겁니다. 결국 최선을 다하는 과정 자체를 경험한 후에라야 '시지포스의 신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사는 일 자체가 저마다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을 반복해 보지만 그 노력에 합당한 결실을 항상 맺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요. 이건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겁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 자체가 가진 근원적 부조리의 상황일 수 있죠. 인간의 욕망은 다 충족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합니다. 설사 그 욕망이 충족될지라도 또 다른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이 결핍이자 불만족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생겨먹었을까요? 절망적입니다.
카프카는 이런 상황을 <소송>이라는 작품으로 형상화해닙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회사원 요제프 K는 어느 날(카프카는 이런 설정을 참 좋아합니다, 갑작스런 일상의 균열이 일어나는 어느 날의 설정 말이죠), 출근 전 아침 하숙집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체포되어 길고 긴 소송전에 휘말리게 됩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럴 수 있죠. 살다보면 누군가가 나를 중상모략하는 일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소송이 어떤 것인지 나를 고소, 고발한 이가 누구인지, 이 소송이 대체 어디쯤에 와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는 겁니다. 다만 불쾌한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만 인지할 뿐입니다. 나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 모두에게 매달려 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소송의 실무를 담당하는 모두가 그 거대한 실체의 말단에 있어 전체나 실재 자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냥 그들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의 무죄를 확신하지만, 글쎄요, 그런 나를 진실로 믿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쯤 되면 정말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과연 아무도 모르는 진실이 있을까요? "허위가 세계질서가 되는 것"에 대해 신부는 요제프 K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우리의 끝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고 사는 건 아닙니다. 우리도 큰 윤곽에서는 모두 요제프 K 같은 상황일지 모릅니다. 모두가 뭔가에 매달려 분투하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 우리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던져집니다. 우리가 원한 형태가 아니라 주어진 형태로. 그 숙명적 무기력을 우리는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 톱니바퀴가 되어 망각합니다. 기능을 수행하는 동안, 적어도 우리 모두는 공범자가 되어 무서운 진실 따위 고민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언젠가 고독하게 그 무기력을, 그 부조리를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카프카는 이 순간을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제프 K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소송의 실체를 알아냈냐고요? 그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과격하더라도 이해를...
"개 같군!"
우리의 마지막도 이럴까요? 부디 아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