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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CindyKim Jan 13. 2022

사랑, 예술을 입다 2

샤갈과 벨라의 사랑

니스에 가면 볼 수 있는 반가운 이정표.

마티스 뮤지엄을 먼저 갈지, 샤갈 뮤지엄을 먼저 갈지 갈 때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마티스 뮤지엄과 샤갈 뮤지엄의 이정표>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1887-1985)이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진 샤갈 뮤지엄.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이었을 때 샤갈의 그림을 모아서 그가 살던 니스에 미술관을 세웠습니다. 원래 샤갈은 니스가 아닌 생 폴 드 방스(St. Paul de Vence)에 미술관이 지어지길 바랐지만 당국과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결국은 니스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샤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모차르트와 성경 그리고 그의 아내 벨라에 대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 예술을 입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https://brunch.co.kr/@hkcindy/28


마르크 샤갈은 1887년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청어 상인 밑에서 일을 했고 어머니는 집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고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가정. 이후 샤갈은 ‘존경받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를 생선 모티브를 통해 표현하기도 합니다.

1906년에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예술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간 후 그곳의 예술 학교에서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시작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자연주의적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렸고 실험극장과 폴 고갱의 작품을 접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이야기하라면 단연코 그의 연인이었던 벨라 로젠벨트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샤갈이 쓴 <나의 삶>이라는 글에서 그녀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벨라는 당시 러시아 최고의 인재 4명에 뽑혀 게리에르 여자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던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습니다. 


<산책 1917~18>

사랑하는 여인 벨라와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샤갈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나요?

천하를 얻은 듯한 자신만만함..
무중력 상태의 그녀를 안정감 있게 받쳐줄 수 있는 그녀의 남자, 샤갈의 오른손을 보면 행복의 의미의 파랑새를 잡고 있고, 왼손은 벨라를 꽉 잡고 표정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세상은 풍요로운 녹색이고 멀리 보이는 그리스 정교회의 돔은 흐릿합니다.
그들의 사랑에 비하면 작고 단순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들만이 이 세상 위에서 내려다보며 환희를 만끽합니다.
붉은 드레스는 행복을 상징하고 핑크색과 어우러진 색감으로 사랑받는 여인임을 드러냅니다. 벨라는 행복감의 수줍은 미소 꿈꾸는 눈망울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오직 사랑으로만 연결된 한 손만 잡고도 균형을 잡고 공중에 떠있지요.
입체파처럼 절제된 배경들에 대비해, 샤갈과 벨라, 그들의 소풍 상차림만이 디테일이 살아있고 생생합니다. 꿈이 실제로 이루어진 샤갈에겐, 환상이 현실이 되었을 것입니다. 
산책은 두뇌를 숨 쉬게 하고 회복시켜 주고, 현실과 환상의 균형의 회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림에서 보여주는 듯합니다. 

현실 속에서도 그들만의 파랑새를 잡고, 동화의 세계를 산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사랑법이고, 삶의 무게 없이 환상의 세계에서 날게 하는 것이 그들의 사랑의 힘입니다.

벨라가 살아 있을 때 그린 작품과, 벨라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린 아라비안나이트를 보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천일야화'의 삽화를 그려달라는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의뢰를 받고도 처음에는 거절했던 샤갈은 목숨처럼 아꼈던 아내 벨라의 사후에야 다시 이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셰헤라자드의 이야기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샤리야르 왕처럼 화가 마르크 샤갈도 똑같이 사랑하는 아내 벨라의 죽음 앞에 혼자 남겨진 슬픔과 고통을 위무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샤갈이 직접 고른 셰헤라자드의 네 가지 사랑 이야기에 얽힌 그림들..



그 덕분에 우리는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를 통해 귀한 석판화 13점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관용구처럼 샤갈을 수식해 주는 ‘색채의 마술사’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꿈결을 걷게 해주는 샤갈의 그림들은 300여 편에 이르는 셰헤라자드의 이야기들 중에서 그가 직접 고르고 고른 네 가지 사랑 이야기를 황홀하게 어루만집니다.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평생의 사랑이었던 아내 벨라를 애도하고 아직 살아 숨 쉬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호흡 하나하나를 얼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석판화를 제작하는 동안 샤갈이 빠져들었던 셰헤라자드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도 시간을 초월하여 감동을 주기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파멸을 숨긴 남자의 가슴은 괴롭지만

그 숨긴 재앙을 말하는 가슴은 더 괴로워라. 

세상의 이마에 한 문서가 있는데 그대가 그것을 본다면

그대의 눈에 피눈물을 비처럼 흐르게 하리. 

세상은 사람에게 왼쪽으로 파멸의 잔을

강제로 들이키도록 하지 않고서

오른쪽으로 잔을 건네준 적이 없으므로. 

아름다운 여인, 넌 죄를 지어 내 진실한 사랑을 내던졌지. 

옳은 것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았어. 

얼마나 오래 좋아하며 네게 붙어 있었던가.

그러나 이제 내 사랑은 미움이 되었고 나는 네 모습을 증오한다. 


우리에게는 ‘아라비안나이트 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라고 알려진 '천일야화千一夜話'는 아랍어로 적힌 방대한 설화 모음집입니다. 세기를 거듭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현명한 여인 셰헤라자드는 잔혹한 샤리야르 왕에게 천 일하고도 하루 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중국과 인도까지 광활한 영토를 통치한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샤리야르 왕은 왕비의 부정을 목격하고 더없이 잔혹하게 돌변하고,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일 여인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처녀를 하룻밤에 한 명씩 불러들여 다음 날 동틀 녘이면 무참히 살해합니다. 샤리야르 왕의 피의 잔치를 멈추게 하는 것은 권력도, 무기도, 돈도, 천상의 미모도 아닙니다. 바로 셰헤라자드의 서사, 즉 이야기입니다.


천 밤 하고도 하룻밤을 더 이야기를 하면서 셰헤라자드는 생명을 얻고 샤리야르 왕은 광폭해진 마음을 잠재우고 피비린내를 씻고 위안과 평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다른 생명을 해칠 수 있는 권력과 무기와 돈의 정점에서 살아 있어도 죽은 것만 못했던 왕도 마침내 새 생명과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삶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셰헤라자드의 이야기 자체가 ‘삶’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을 빼놓으면 이야기도 남지 않습니다. 셰헤라자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샤리야르 왕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이야기들을 생명수 혹은 정화수처럼 한 방울씩 천 하룻밤 동안 나누어 마신 것입니다. 

벨라를 잃은 슬픔을 천일야화를 통해 위로받았을 샤갈의 사랑은 영원히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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