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와 싱가포르에 살게 될까?

때론 물 흐르는 대로

by 한 번 더 안아주기

"우리 중 누군가가 해외 발령이 나게 되면 어떨까?"

글로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우리 부부는 종종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아이들이 커가고 우리가 함께 논의해야 하는 주제들이 다양해지면서 그리고 당장 닥친 일이 아니기에 아주 구체적인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나의 마지막 기억은 '좋은 기회일 테니 기회를 잡는다. 그 기간이 3개월 미만이면 혼자 가볍게 다녀오고, 그 보다 긴 6개월이나 1년 이상이면 가족들과 함께 간다.' 정도의 아주 rough 한 결론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미리 계획하는 편이고,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하는 여행이나 미팅이 아직 익숙하지가 않는 사람이다. 다르게 말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임기응변으로 대처를 하거나 이를 즐기기보다는 당황하고 불편함을 느낄 확률이 더 높은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이 본래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가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를 따라 계획 없이 간 여행도 꽤 괜찮다는 경험을 한 이후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상황도 즐겨보려고 노력 중이긴 하지만 아직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마주한 해외 발령.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온 기회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인생 예측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때론 물 흐르듯이 그렇게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의 정리는 어느 정도 했으나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 사실 그 두 가지가 그 당시 FAQ (Frequently Asked Question)였다.

"아이들은 너무 좋겠어요? 아이들한테 이야기하셨어요? 뭐래요?"
"남편분은 같이 가세요? 회사는 어떻게 하신대요?"

어느 송별회 자리에서 반대로 내가 지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 남편 또래 혹은 나이가 살짝 더 많은 분들이었는데

"만약에 제 상황이면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놀랍게도 하나같이

"아빠는 한국에서 돈 벌어야죠. 애들은 엄마랑 같이 가고요."

였다. 만약, 주변에서 누군가의 아빠이자 남편이 해외 발령을 받았다면, 우리들은 과연 그에게 "아내분은 당연히 한국에서 돈 벌어야죠. 애들은 아빠랑 같이 가고요."라고 할까?


아이들에 대한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명확했기에 '이 소식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걱정보다는 설렘의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D-day를 준비했다. (여기서 tip! 평소 알고 있던 소아심리상담사 선생님과 이 소식을 아이에게 어떻게 전할지, 사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핵심은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tone으로 이 소식을 전하느냐에 따라 이를 '모험이 가득한 설레는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 익숙한 환경을 떠나야 하는 걱정스러운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한다. 즉, 부모가 아이들에게 처음 해외 이주의 소식을 전하는 날에는 아~~주 밝고 신나는 표정을 장착할 것! 그래야 아이들도 이를 반갑고 신나는 소식으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남편. '가족은 어떤 경우에도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가족이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떨어져 지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평소 생각이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민을 시작한 첫날부터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오랜 기간 평행선을 달렸다. 맞벌이 부부가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도 매 순간이 고비였지만, 그 와중에 두 사람의 커리어를 동시에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뼈저리게 느낀 시기였다. 결국 나는, 물음표를 남긴 채 가족들보다 조금 먼저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과연 나는 누구와 싱가포르에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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