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에 나오는 인어공주는 왕자를 죽이지 않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나는 어릴 적 이 동화를 읽고 결말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왕자인데 왜 차마 죽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을까? 영화 〈운디네〉에서 나는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인어공주는 물의 세계에 속하고, 왕자는 육지의 세계에 속한다. 물고기는 육지에서 살 수 없고, 육지생물은 물속에서 살 수 없다. 그런데 사랑은 반드시 접촉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운디네의 딜레마가 생긴다. 다른 세계에 속한 탓에 닿을 수 없고 그래서 사랑하지 않으면 운디네가 그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세계에 뛰어들려 하면, 그들은 본래 그 세계에 속하지 않기에 죽는다. 전자는 요한네스, 후자는 크리스토프의 이야기이다.
요한네스는 운디네에게 단 한 번도, 빈 말로도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운디네는 자신의 말대로 요한네스를 죽였다. 요한네스의 마지막은 그의 사랑처럼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수영장에서였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운디네를 사랑해서 그녀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의 직업은 산업 잠수부로, 그는 계속해서 물속으로, 운디네의 세계로 들어갔다.
운디네와 크리스토프 세계의 이질성은 기차역에서 두드러진다. 그들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대고 있다. 그들은 접촉할 수 없는, 기차 안과 밖으로 철저히 구분된 세계에 산다. 임대 단기 주택에 살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그녀는 고여 있는 호숫물이라기보다는 베를린을 따라 흐르는 강물을 닮았다. 물은 운디네의 고향이자 운디네 본인이다. 운디네의 사랑은 수조 안의 물처럼, 베를린을 따라 흐르는 강물처럼 흐른다. 베를린의 기차 또한 물처럼 흐른다.
그들이 한 침대에 있을 때 운디네가 이불로 크리스토프를 덮는 장면은 마치 물이 그를 삼킨 듯하다. 이 장면에서, 그리고 그가 잠수하는 동안 들려오는 숨소리는 인간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운디네가 잠시 잠수용품을 잃었을 때 메기가 나타나 그녀를 돕고 무사히 살아난 것과 달리, 크리스토프는 전문 장비를 갖추고도 산소가 부족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운디네는 물에 속하고, 크리스토프는 육지에 속한다.
의식불명의 크리스토프를 보고 운디네는 자신이 처한 저주를 이해한 듯하다. 크리스토프는 이제 사랑을 계속하든지 사랑을 멈추든지 죽을 운명이다. 운디네는 이 지독한 저주의 반복을 끊어내기 위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사실 이는 첫 만남에 예견된 일이었다. 수조 안의 물이 크리스토프를 향해 흘러 그가 다칠 뻔하였을 때 운디네는 그를 구했고, 둘은 물에 흠뻑 젖었고, 그녀만 유리조각에 다쳤다. 한편, 물속에 들어있던 모형 잠수부는 뭍으로 꺼내졌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크리스토프처럼.
운디네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것은 그녀가 크리스토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따라 흐르는 물은 운디네이자, 운디네의 세계이자, 운디네의 사랑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과 같은 운디네이며, 핵심 주제는 운디네의 사랑이다. 결말 부분에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물속에 들어가고도 무사히 살아 나온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의 사랑이 그녀의 저주를 끊어냈음을 보여준다.
마치 역사가 멈춰있는 듯한, 사랑이 멈춘 듯한 세상에서 운디네는 유리창을 뚫고 뭍으로, 다시 물로 유유히 흐른다. 반복되는 사랑, 반복되는 저주, 같은 모양의 궁을 재건하는 사람들, 견고한 베를린 장벽. 그러나 역사학자인 그녀가 설명하는 동독의 체제와 베를린 장벽은 이제 무너진 유물이다.
사랑은 흐른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멈춘 것 같아도, 약해 보여도, 수조와 벽을 산산히 부수고 닿고야 마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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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네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39155#photoId=1358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