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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 Dec 07. 2022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사람을 믿었다가 속았을 때처럼 억울한 적은 없고, 억울한 것처럼 고약한 느낌은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떡하든지 그 억울한 느낌만은 되풀이해서 당하지 않으려 든다. 다시 속기 싫어서 다시 속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만나는 모든 것을 일단 불신부터 하고 보는 방법은 매우 약은 삶의 방법 같지만 실은 가장 미련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믿었다가 속은 것도 배신당한 것에 해당하지만 못 믿었던 것이 실상은 믿을만한 거였다는 것 역시 배신당한 것일 수밖에 없겠고 배신의 확률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높을 것이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세계사(2021), 24면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눈꽃이 춤을 추네요

어둔 바람 연주에 맞추어

같이 춤을 추어요

한 박동을 지닌 듯


나도 따라 흔들리네요

선율의 장난에 맞추어

우리 함께 춤을 추어요

한 호흡을 나눈 듯


아침이 무섭다면

이제 나의 손을 놓아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

그대

그리운 노래 귓불을 스칠 때




사랑이 영원하기를 원한다. 독점적이기를 원한다. 배신하지 않기를 원한다. 이번이 마지막 사랑이기를 원한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기를, 나 자신이 그대가 사랑하는 나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바람을 배신한다. 시간과-공간과-상대방과-자기 자신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는 사랑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음악과 함께라면 춤은 그 자체로 즐거운 법이다.


Venus and Adonis - Peter Paul Rubens



사진 출처


Venus and Adonis - Peter Paul Rubens ― Google Arts & Culture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venus-and-adonis/eQE7UCvjBwtwkw?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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