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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운 Sep 17. 2024

18.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인의 향기를 찾아서

  길상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러브스토리가 있어 적어본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고 하는 고급 요정이었던 자리이다. 김영한이라는 주인이 법정스님에게 그 장소를 보시하여 세운 절이다. 그러한 대형 불사를 일으킨 김영한씨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적어보는 게 순서라고 생각된다.


 그는 함경도에서 출생하여 금광업을 하던 부친의 사업실패로 가문이 기울었고, 첫 결혼마저 실패하자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기생의 신분으로 백석 시인과 만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만든다. 백석 시인은 잘 알다시피 일제강점기 주옥같은 서정시를 남긴 훌륭한 시인이 아닌가. 그는 함경도에서 ‘자야’라고 하는 기생을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자야’라고 일컫는 그 기생의 이름은 김영한이다. 그는 자야와 결혼하려고 하나 부모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히자 만주로 떠나가지고 ‘자야’를 설득하나 그녀는 백석의 앞길을 막기 싫어 끝내 거절하고 말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그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러한 백석과 ‘자야’에 대한 이야기가 백석의 시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나타샤’는 ‘자야’에 대한 시속에서의 이름이며 흰 당나귀는 사랑이라는 상징적인 용어이다. ‘나타샤’는 이국적 정취가 풍기는 이름이며 흰 당나귀는 순결한 사랑의 시어라고 여겨진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시구이다. 세속을 떠나서 산으로 가는 것이며, 세상에서 중히 여기는 명성과 재물은 부질없는 것이니 버리고 가도 좋다는 의미라고 여겨진다. 후일 백석과 ‘자야’는 분단된 조국에서 남과 북에서 분리되어 살아가게 된다. ‘자야’ 즉 김영한씨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지난 삶을 반추하면서 백석의 시에서 등장하는 위의 시구로부터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된다. 시인의 뜻이라고 여기며 전재산을 바치는 무소유행을 하게 되었다고 나름 생각해 본다.

 다음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과 김영한은 분단으로 서로 오갈 수 없기에 마음으로 나마 소통하였다. 백석은 북쪽의 집단농장에서 일하며 1992년도에 사망할 때까지 그런대로 수를 누리며 살다 갔다. 김영한은 백석의 생사를 몰라 그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고 매년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면 밥 한 그릇을 떠놓고 자신은 식음을 전폐하였다고 한다. 며칠 지나면 칠월칠석날로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설화의 날이니, 김영한의 백석에 대한 연모의 정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서로는 분단된 조국에서 남북으로 갈려 살아갔지만 서로의 안부를 모르고 상상과 마음속으로 못다 한 사랑의 꽃을 피웠다. 비록 만남이 뜨거운 애정의 불꽃을 피어오르게 하나 언젠가는 사그라 들지만, 헤어짐 속의 그리움은 잔잔한 애조 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예열시켜 나가는 장점도 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백석은 고향인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나타샤를 그리고, 김영한은 타향에서 북쪽을 향하여 고향의 자취를 더듬어며 백석을 그렸으니 남과 북을 끌어당기는 지남철처럼 항상 영혼은 함께 하였으리라.


 가까이에서 만남 속의 사랑은 설레고 감미롭지만, 시간은 권태와 타성에 젖게 하여 그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소유라는 이기심에 의해 서서히 숭고한 빛을 잃어간다. 반면에 떨어져서 그리는 사랑은 망각 속에서 서서히 식어갈 수도 있으나 그 사랑이 진정한 것이라면 변치 않고 식지 않은 영원한 사랑으로 보존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사랑은 나이를 먹지 않고 언제나 푸르고 맑은 향기를 내뿜으며 서로의 영혼 속에 깊이 잠들며 매일매일 서로를 일깨울 것이라고 믿는다. 한 편의 시가 끼치는 영향은 이와 같이 강렬하여 인생의 좌표를 뒤흔들어 새로운 길을 가게 만드니 시인은 교사이면서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다.


 김영한씨는 백석에 대한 사랑을 승화시키고 그의 시에서 표방하는 정신을 받들어 자비라는 덕목을 실천하였으니 서로는 세속적 사랑을 떠난 숭고한 인간애의 모범을 만든다. 기녀라는 대우받지 못하는 직업의 틀을 벗어나 화류에서 모은 재산을 정화하여 불전에 바치는 청신녀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이다. 백석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한갓 흔해 빠진 순애보가 아니라 서로를 구원하는 천생연분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독립운동을 위해 몸 바친 인물들을 최부자, 이회영, 이상룡, 유일한 선생 등 상위계층의 선각자들에 대해 적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파생된 인물들로서는 독립운동기업가, 의열단을 중심으로 한 젊은 의사들, 의병장, 승려 등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필봉으로 민족혼을 불러일으킨 시인들을 빼놓을 수 없기에 적어본다. 대표적으로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 권태응 시인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육사 시인은 민족시인이자 의열단원으로 활약한 독립투사이다. 그의 시인 ‘광야’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지막 연에서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다. 초인은 빼앗긴 나라를 구하려 온 전능한 힘을 가진 선구자로서 당당히 백마를 타고 올 것이다라고 예언하는 장면이다. 그 스스로가 나서서 구국의 전장에 피를 뿌리는 전사가 되어 조국의 광복을 기필코 이루리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마침내 광야에서 광복의 태극기를 휘날리며 함께 부둥켜안고 만세를 목이 터져라 부르리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용운 시인은 ‘님의 침묵’으로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애국시인이다. 만해 선생은 출가하여 중생을 구제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불살랐다. <님의 침묵>이라는 시가 법문처럼 깊고 연서처럼 감미롭다. 님은 진리이기도, 조국이기도 하며, 연인이기도 하다. 득도를 향한 정진의 등불이며, 빼앗긴 들에 백마 타고 올 선구자이며, 속세에서 꽃 피우지 못한 사랑이기도 하다.


 그는 백용성 조사와 함께 독립선언문 33인의 일원이 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성북동 심우장에서 살았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시신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러 주기도 하였다. 그는 평소 존경하던 일송의 시신 앞에서 일제의 잔인함에 치를 떨며 통곡하였다고 한다. 그는 구도의 길을 가는 승려이며, 민생의 아픔을 달래주는 시인이며, 조국 광복을 위해 일제와 싸운 애국지사였다.  


 다음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 시이다. 충주 탄금대 공원에 세워진 그 시비는 간결하면서도 리듬이 있어 동요 같기도 하다. 내가 충주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아침저녁으로 KBS충주방송국에서 낭송되던 시로서 간결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시로서 들을수록 정겹고 의미심장함을 느꼈었다. 민족의 동질성을 내세워 창씨개명의 부당성을 고발하고 있는 함축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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