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그해 겨울은 무던히도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다. 원해스님은 내년 봄 눈이 녹을 때까지 절 사람이 걱정이 되었다. 비축해 둔 곡식도 동이 나고 백담골에서도 시주객도 올라올 형편도 못되었으니 난감하기만 하였다. 비록 아래에 백담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쪽도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으니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이 있는 절 식구라고 해봐야 누가 맡겨놓고 갓난애와 고양이 몇 마리가 전부이었으니 식구는 적지마는 어렵게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비상용으로 캐어놓은 칡뿌리도 있었지만 그 가루에 곡기라도 섞어야 끼니 노릇을 할 텐데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는 눈이 더 내리기 전에 얼른 백담골에 탁발을 다녀오기로 했다. 갓난애가 걱정이 되지마는 한나절은 잘 견딜 거라고 믿고 바랑을 걸치고 탁발길로 나섰다.
몇 년 전 어느 할머니가 어린 젖먹이를 업고 와서 신신 당부하던 말이 떠오른다.
“스님, 이 젖먹이를 부탁할 곳이 없어 이곳으로 데려왔네요. 온 고을이 몇 년간 지독한 가뭄으로 사람은커녕 가축들도 먹이가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 아니던가요. 이 아이 엄마가 애비없는 자식을 낳았다고 집에서 쫓겨났기에 절에 보내면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구, 할머니께서 먼 길을 아이를 업고 오셨구만요. 어디 절이라고 해서 먹을 것이 있다던가요. 모두 다 마을에서 탁발해 오는데 기근이 들어서 어찌 쌀은 언감생심이고 조나 수수도 제대로 얻어먹을 수가 있겠는가요. 다 부처님의 가피로 살아가는지라 소승이 어렵지만 거두어 들이겠습니다.”
원해스님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처녀가 아이를 배어 낳았기에 누구의 씨앗인지도 알 수도 없었고, 애비없이 키워본들 어찌 사람행세를 할 것인지 난감하였기게 절에 보내면 굶어 죽지 않고 생명은 부지할 것이라고 부처님 전에 맡긴 것으로 보았다. 그는 할머니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도 사정을 짐작하였기에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애기 엄마는 분명히 그 씨앗을 뿌린 자를 알 것이지만 실토를 못할 또 말 못 할 감추어진 사연도 있을 것이기에 모든 게 인연 따라간다고 군소리 없이 따랐다. 그랬던 젖먹이 아이를 몇 년간 키워 지금껏 함께 지내오지 않았던가. 그 애는 이제 걸어도 다니고 말도 할 수가 있을 정도이니 그간 모든 게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머리를 깎여 키워왔다.
그는 아이에게 마을로 내려가서 먹을 쌀을 구해온다고 달래고 절을 나섰다. 수렴동을 내려와 큰길로 들어서니 저 멀리 백담사가 몇 채의 요사채를 거느리고 눈 안에 들어왔다. 항상 하던 대로 백담사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경내에 흐르는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다시 백담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길이 미끄러워 짚새기에다가 칡넝쿨을 감았지만 몇 번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지체할 수가 없어 아픔을 참고 바쁘게 걸어갔다. 그의 마음에는 얼른 탁발을 하여서 그날 중으로 절로 돌아와 아이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만 있었을 뿐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온 산을 하얗게 장식하고 온 계곡을 이불솜처럼 뒤덮고 있는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씩 저 하얀 눈더미가 쌀가루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 정도는 일어났다. 그 쌀가루를 쪄 절구에 넣고 떡메로 쳐서 가래떡을 만들어 동자에게 주는 생각을 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는 동자하고 무슨 인연이 있는지 분명히 자식처럼 끌리는 게 있었다. 그가 생각해 보았을 적에 그 동자를 맡아서 기르지 않을 수가 없었고 오히려 자신의 피붙이인양 잘 키워보고도 싶었다.
원해는 이윽고 망상에서 벗어나니 아득히 백담골의 용대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자주 가고 인심이 후한 김참봉 집에 들어서니 안주인이 나와서 맞이하였다. 그 집은 마을에서도 잘 사는 집안으로 부부내외가 모두 사람이 좋았고, 갈 때마다 푸짐하게 보시를 하기에 제일 먼저 들러는 곳이었다. 그 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저 멀리 설악산 봉우리를 쳐다보니 시커먼 눈구름이 몰려와 어두워지는 게 아니었던가. 여주인인 보살분과 나눈 대화였다.
“아이구, 스님. 이런 눈 오는 날에 탁발을 나오셨구만요. 작년에는 엄청 가물어서 기근을 못 견디고 죽어나간 사람들이 많았는데 절 살림도 오죽 하겠는가요. 우리 집안에 축원기도도 해주고 하시니 쌀을 한두 말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오우, 보살님께서 어찌 우리 절 살림을 아시고 쌀을 두어말 보시를 하신단 말씀이신가요. 인심도 좋고 자비스럽다는 것은 알지만 이 흉년에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눈이 그쳐야 안 미끄러지고 가져갈 텐데 점점 눈발이 굵어지네요.”
“아이구, 스님. 오늘 하룻밤을 주무시고 가면 되시지 무얼 걱정하고 계십니까.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저가 밥하고 국을 데워 올 테니 공양을 하고 가시지요.”
“아이구, 밥을 먹고는 가야 하지만 이 눈이 좀 그쳐야 할 텐데 걱정이 되네요. 아무튼 공양은 하고 가겠습니다.”하고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치기를 기다리던 눈은 그치지 않고 더욱 맹렬하게 퍼부었다. 그간 못 내린 비를 대신하듯이 가뭄에 대해 미안해하듯이 펑펑 내렸다. 참으로 어려운 것은 보통 하루 이틀이 지나면 눈이 그치었지만 이번 눈은 무슨 한이 맺혔는지 끊임없이 내렸다. 내일에 출발하여만 동자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데 쌀은 있는데 갈 수가 없었다. 그는 남겨 두고 온 동자를 생각할 때에 밥 한술도 목을 넘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시주한 쌀 두말을 짊어지고 가려는데 몇 걸음도 걷지 못한고 눈에 파묻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또 하루가 지나도 눈은 그치지를 않고 무슨 한이 졌는지 끊임없이 내렸다. 그는 동자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걱정하였고 어서 빨리 눈이 그치기를 바랐다. 다음 날에도 눈은 더 내렸고 더욱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그는 시주한 쌀을 남겨놓고 혼자의 몸으로 떠나려고 했는데 중간에 가다가 눈 속에 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그런 장면을 보고 김첨지의 아내인 보살이 이야기를 하였다.
“스님, 지금 보니 쌀을 지고 가는 것은 아예 안되고 혼자서 가는 것도 죽기 살기인데 좀 더 기다려 보입시다. 동자가 굶어 죽기야 하겠습니까.”
“아이구, 보살님. 눈이 와도 이렇게 그침 없이 내리니 내 혼자도 가기가 힘들겠네요. 실컷 가물었는데 농사철에라도 비가 아닌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았으련만 가로 늦게 폭설이 내리니 시도 때도 모르는 날씨이기도 하군요.”
눈은 기이하게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원해는 동자가 걱정이 되어 시주한 쌀을 몇 되만 지고 움직였는데 가슴팍까지 빠지는 눈 길을 걸어갈 수가 없었다. 아니 다람쥐처럼 빈손으로 가려고 해도 몇 발짝도 옮길 수가 없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고 가려고 하였지만 갈 수가 없었고 목숨을 걸고 가려고 하였지만 그것 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벌써 사흘이 지났기에 동자가 어떻게 배고픔을 이겨내고 있는지가 걱정이 되었지만 보나 마나 뻔한 일이었다. 그는 인력으로는 안 되는 것임을 알고 모든 것을 하늘에다가 맡겼다. 그는 두고 온 식량도 없었지만 있다고 한들 어린 동자가 어떻게 챙겨 먹을 수 있을 것이던가. 그나마 겨울을 대비하여 저장해 두었던 칡가루와 산나물들이 있었지만 동자가 그것을 요리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몇십 년을 설악산에서 살았지만 이런 폭설은 처음이었고 가슴팍까지 차오른 경우도 처음이었다. 백담사로 오가는 스님들도 신도들도 볼 수가 없었고 모두 다 눈이 그쳐 녹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야말로 눈천지가 되어버려 자연의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윽고 눈은 그치고 하늘은 개었다. 원해는 쌀 두말을 빌린 지게에 얹어서 마을을 출발하였으나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무릎까지 빠지는 게 아닌가. 몇 발짝을 못 나가고 그만 주저앉고 말았으니 또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짐이 없이 홑몸이라고 끌고 가려고 해도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떠난 지 여흘이 꼬박 지나서야 무거운 쌀짐을 지고 절에 도착하였다. 그는 마당에 지게를 풀어놓고 요사채 겸 법당으로 달려가서 동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문을 아주 조심 스러이 살며시 여니 밝은 광명이 그의 눈을 비추었고 잠시 동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조금 지나서 눈을 떠보니 동자가 불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너무 반갑기도 가슴이 벅차기도 하여 동자를 끌어안았다. 아직도 살아 있었던 게 아닌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되어 그의 살을 꼬집어 보았는데 생시가 맞았다. 그는 동자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야, 동자야. 어찌 열흘간을 무엇을 먹고 견디내었나. 얼굴을 보니 생생한 얼굴 그대로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스님, 저가 매일 안 굶고 밥을 먹었답니다. 어느 보살분인지 비구니 스님인지 모르지만 아침마다 밥을 챙겨주어 잘 먹었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와서 똑같이 차려주고 가셨고 일체의 말은 하지 않더라구요.”
“그 무슨 신기한 일이 있었단 말이고. 어떻게 눈길을 뚫고 여기까지 와서 매일 밥을 챙겨주었단 말이고. 이 근방에 사람 사는 동네가 없고 백담사에서도 가파른 이곳을 오기가 힘든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예, 스님, 저도 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분명히 아주머니나 비구니스님의 모습이었고 아무 말도 없이 방안에다가 하루 먹을 밥을 차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더구만요.”하고 스님과 동자가 나눈 이야기였다.
참으로 신묘한 일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았지만 엄연히 동자는 눈앞에서 살아 있는 게 아니던가. 만약 보살이나 비구니스님이 그렇게 하였다면 백담사에서 왔거나 저 소청봉 아래에 있는 봉정암에서 왔을 텐데 무슨 수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서 왔다는 말이던가. 그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이 나타나서 동자를 살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 신묘한 일이 있다는 것은 전설로는 들었지만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더욱더 궁금하였다. 또 하나 보살이나 비구니스님이 도왔다고도 생각해보았다. 아무튼 동자는 살아있었기에 부처님 전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동자도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그간 원해는 자기의 상좌를 대하듯이 또 자식을 대하듯이 동자를 잘 길렀다. 그는 동자에게 오세라는 법명을 지어주었다. 그 이름은 여러 가지 뜻이 이었고 다섯 살 때 다시 한번 생명을 얻었기도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린 인연처럼 영원하기를 바라는 뜻도 들어 있었다. 원해도 나이를 먹어 이제 예순을 바라보게 되었고 노승이라는 소리를 듣기에도 충분하였다. 어느 날 원해는 오세를 불러 앉혀서 당부의 말을 하였다.
“오세야, 너는 이곳을 앞으로 지켜야 하고 이 절에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리고 많은 것을 배워야니 잠시 만행을 하도록 하고 또 유명한 사찰에서 안거도 좀 하다가 오느라. 이곳은 너의 사형인 만세가 당분간 나와 함께 지킬 것이니 그리 알거라.”
“예, 큰스님. 그러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한번 추천해 주시지요. 저는 세상으로 한번 나가서 중생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수행에 참고할까 합니다. 저가 가고 싶은 곳은 어쩐지 태백산 쪽이 끌리는데요.”
“허허, 태백이라. 그 무슨 인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끌리는 데로 가거라. 그곳은 적멸보궁인 있기도 하단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거라. 많은 것을 배워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느니라.”하고 둘이서 헤어지기 전에 나눈 이야기였다.
이제는 동자승으로 키웠던 오세도 수행을 한다고 떠났고 원해는 만세와 함께 그 절에 남았다. 그는 동자가 태백으로 만행이면서도 수행을 위해서 떠나보냈던지 무엇인가의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는 탁발을 나간다는 빌미로 백담골을 둘러 오기로 하였다. 그는 동자인 오세를 만행을 하라는 명분으로 떠나보내고 난 뒤에 많은 상념에 잠겼다. 그 오세가 어찌 그의 마음을 뒤 흔드는지 영원한 이별인지 잠시 동안의 떠남인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번씩 마음이 울적할 때면 다녀오던 백담골로 내려가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도 할 겸 내려왔다. 그날은 오세가 그의 품을 떠나 기약 없는 길도 떠나버린 날이기도 하여 그의 내심의 부름이기도 괜스런 핑계이기도 하여 백담골로 허이허이 내려간 것이었다. 그가 자주 들러는 보살댁에서 나눈 이야기였다.
“어찌 오늘따라 스님이 백담골로 내려오셨다는 말씀인가요. 보아하니 얼굴이 수심에 싸여있는 듯 밝지가 못하군요. 어서 올라오셔서 공양이라도 드시지요.”
“박보살님, 오늘따라 내가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기에 여기로 욌습니다. 오늘 동자인 오세를 만행하라고 멀리로 떠나 보냈습니다.”
“아이구, 그러시군요. 지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동자를 보냈으니 마음이 편치가 않겠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동자에게 집착을 하시는지요.”
“내가 그 애의 모습을 보니 문득 내일처럼 마음이 울렁거리데요. 내같이 냉정한 사람도 없는데, 어찌 그리 마음이 흔들리던지 견디기가 힘들어 그냥 내려왔지요.”
“스님, 그러면 집에 담가놓은 막걸리가 있는데 한 주전자를 가져 올께요. 그냥 감주다 생각하시고 드십시요. 어찌 사람의 마음이 항상 편안할 수가 있겠는가요.”하고 보살이 스님하고 나눈 이야기였다.
원해는 보살이 가져다준 막걸리를 한두 잔을 들이 마시니 그 옛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들과 같은 오세를 다른 절로 떠나보내고 마음이 울적하여 눈에 보이는 술잔에 눈이 갔고 그 잔을 서서히 숨을 고르면서 비웠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그 출가 사연은 오직 백담사의 주지스님과 자기 자신 밖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백담사로 찾아와 주지스님이 그에게 남긴 말은 세속에서 사음이라는 중죄를 지었으니 중창불사를 하여 죄업을 씻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래서 있는지 없는지 초목에 묻혀있던 폐사지를 개척하여 지금의 암자를 만들지 않았던가.
그는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수십 년 전의 과거로 휘말려 들어갔다.
“이일을 어쩌면 좋겠소. 내가 가정이 어렵고 천민 중의 천민인 고지기의 아들이 아니던가요. 내가 설령 결혼을 한다고 한들 그대의 집안에서 받아들이기는 할까요. 아마 청천벽력이 나서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그렇다고 생명을 함부로 지울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다오.”
“내가 그날 저녁 뜨거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또 앞길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저질렀으니 큰 죄를 지은 셈이오. 부디 뱃속의 생명만큼은 잘 지켜주시기 바라오. 내가 그 애를 나중에 힘이 닿는 대로 지켜줄 요량이오.”하고 그가 묘령의 여인하고 나눈 대화였다. 그는 출가 전에 같은 이웃 마을에 사는 예쁜 소녀를 서로 사랑하여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말았던 것이었다. 젊은 기분에는 신분이 무슨 걸림돌이 되겠느냐고 서로 사랑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높은 벽을 넘기는 불가능하였다. 그 여인의 집은 뼈대 있는 양반집으로서 도저히 족보도 없는 천민을 사위로 받아줄 수도 없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자 그네의 어머니는 누구의 씨앗이냐고 다그쳤으나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자기 아버지는 이미 실성을 한 상태로 이런 집안 망신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딸은 물론이고 딸 간수를 잘못한 아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딸은 입을 열지 않았는데 고지기의 아들의 씨앗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소문은 퍼져서 이미 사실처럼 되어버렸기에 그는 그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되었는도 알지 못하고 설악산 깊숙한 곳에 있는 폐사지에 숨어들어 부처님에게 귀의하였던 것이었다.
만행을 떠난 오세는 태백으로 들어와 먼저 정암사를 찾았다. 그가 태백으로 온 이유는 없었고 그냥 태백산 자락이 그리웠기에 거기로 왔다. 정암사를 찾아서 주지스님으로부터 당분간 그곳에서 안거를 허락받았다. 오세는 원해스님으로 부터 불교의 기초를 배웠으나 그렇게 와닿지를 못했고 스스로 그 길를 찾아 나섰던 것이었다. 정암사의 주지스님은 그에게 인연 따라 떠다니며 인연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 인연이라는 것이 장소로는 왜 태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고 그냥 태백산이 명산이었기에 그곳에서 잠시동안 머무르고 싶었다. 그는 정암사에서 두 해를 머무르고 다시 만행을 떠났다. 그 주지스님이 추천한 선방은 오대산 밑에 있는 상원사이었다. 그가 또 하나의 적멸보궁의 한 곳인 상원사에서 주지스님과 나눈 이야기였다.
“그대는 어이하여 이곳으로 왔는가. 법명이 오세라고 하니 깊은 뜻이 있는 것 같기도 하구만.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시던가.”
“스님, 저는 지나서 알고 보니 버려진 사람이었답니다. 그 사연은 알 수가 없고 어느 할머니가 업고 왔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저의 큰스님은 원해스님이신데 속가에서 때를 묻히고 출가를 하였다고 소문을 들었답니다.”
“허허, 속가에 때를 안 묻히고 출가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말 못 할 사연 때문에 절로 찾아 들어온 것일 테지. 큰스님이 그대를 키워왔다는데 어찌 보면 속가의 아버지 같은 분이기도 한 것 같네.”
“예, 스님. 저의 큰 스님은 저를 구해준 문수보살 같은 분이시고, 또 보이지 않는 관세음보살의 은혜를 입어 저가 지금껏 살아 있다고 여깁니다.”하고 오세는 주지스님에게 지난 과거를 말하고 상원사에서 정진하기로 하였다.
오세는 주지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정진하며 몇 년간 안거를 하였다. 지금 그는 설악산 암자를 떠나온 지도 오래되었기에 큰 스님의 근황을 알고 싶었지만 섶불리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큰 스님과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버려졌는지를 깨닫지 못하면 돌아와서는 안된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견성은 힘들지만 어떻게 버려졌는지 하는 사연은 알고 싶었다. 그는 상원사의 주지스님을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인상을 받았다. 어느 날 주지스님이 오세를 불러놓고 나눈 이야기이었다.
“오세는 설악산 자락의 백담사 근방의 절에서 왔다고 하는데 법명이 특이하기도 하구나. 오세신동은 들었어도 오세스님은 처음 들어 보는데 큰스님이 지은 뜻이 있을 것으로 보이네.”
“스님, 저의 큰스님이 저를 자식 같다고 여기며 애들 가르치듯이 하였고 불가에서는 참아야 하는 사사로운 정을 나누어주기도 하였답니다. 또 큰스님은 소문을 들으니 태백산자락에서 태어나서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설악산으로 출가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속세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단지 인연 따라 살아간다고만 말씀하셨답니다.”
“허허, 태백산 자락이면 태백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내가 출가한 곳이 태백산 아래 백단사가 아니던가. 나하고 같은 고향이기도 하네 그려.”하고 주지스님과 오세가 나눈 이야기이었다.
오세는 상원사의 주지인 해오스님을 보는 순간 자기의 큰 스님을 닮은 것 같다는 강열한 인상을 받았다. 키가 크고 갸름한 얼굴에다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어둠 속이라면 바로 큰 스님으로 착각할 만큼 닮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느낌을 주지스님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만 느꼈다. 어느 여름철 계곡에서 주지스님이 목욕을 하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이왕 자기도 더위를 식힐 겸 주지스님의 부름도 있고 해서 같이 몸을 씻었다. 그가 스님의 등을 좀 밀어주려고 하는 순간 목덜미 아래에 큰 사마귀가 있는 것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젊은 시절의 큰 스님의 등을 밀어드리려다가 발견한 것과 같은 검은 사마귀를 보고 지금 그가 그 시절로 돌아간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주지스님과 함께 나눈 이야기였다.
“오세가 설악산에서 모셨던 큰스님이 어떠한지 좀 궁금하구나. 태백에서 출가하였다고 하니 나하고 동향이고 해서 좀 물어볼 게 있네. 출가 사연은 어떠하다고 하던가.”
“저가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어느 처녀에게 애를 베개 하여 갈 데가 없어 절로 왔다고 하던데요. 그것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그것 참, 참으로 궁금하구만. 무슨 인연이 닿는 분인 것 같기도 하는데 알 수가 없네 그려.”하고 주지스님이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말을 하였다.
그리고 상원사에서 또 몇 안거를 보내고 나자 오세 는 해오스님과 부쩍 가까워졌고 상원사의 동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동종은 세조가 불교에 귀의하고 참회하기 위해 안동문루에 있는 것을 죽령을 넘어서 대관령을 또 넘어서 이곳 상원사로 옮겼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찬탈과 같은 인륜을 위배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음욕이나 폭력으로 생긴 결과도 해당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오스님은 지나온 과거가 한 번씩 물밀듯이 밀려오지 않았던가. 그는 태백에서 태어나 부모도 모른 체 여기저기를 방황하다가 오욕에 물들어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항상 머무르는 죄책감에 시달려 괴로워하다가 출가를 하지 않았던가. 사실상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로 살아왔으며 피붙이도 없었기에 오직 살길은 출가뿐이었다.
그는 어느 날 오세를 불러 앉혀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 오세야. 네가 한 번씩 머뭇거리면서 나하고 이야기를 하려다 말곤 하였는데 무슨 일이더냐. 이곳에서 수행이 어렵던지 아니면 설악산의 큰 스님이 그립다던지 말이다.”
“아이구, 주지스님. 저가 무슨 큰 고민이야 있겠습니까마는 한 번씩 나의 뿌리가 무엇인지가 궁금하기도 하답니다. 큰 스님에게 젖먹이 때 맡겨져 지금껏 커왔는데 부모가 누군인지도 몰라서요.”
“허허, 너의 큰 스님도 잘 모르시는데 내가 어찌 알겠느냐. 인연이라고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나도 그런 문제로 오랜 기간 헤매었단다.”
“그러고 보니 너의 큰 스님이 어떤 분인지가 다시 궁금해지구나. 너를 그토록 자식처럼 손자처럼 잘 키웠고 그 눈 오던 날 탁발을 갔다가 오던 장면이 마음속에 떠오르는구나. 또 너에게 열흘간 밥을 챙겨준 그 여자분도 궁금하구나.”
“다음에 때가 되면 설악산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구나. 나를 받아준 스님이 지금 정암사의 큰 스님이었듯이 너의 모습이 나의 모습 같기도 하구나.”하고 해오와 오세가 반쯤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해오는 오세를 처음 보는 순간 그 얼굴에 흐르는 무슨 그리움을 찾아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또 사람을 유심히 보고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치열함도 보았다. 그 자신도 다른 스님들과는 달리 오세에게 연민의 정을 강하게 느꼈고 동생 같기도 자식 같기도 한 이상한 느낌도 받았다. 또 한 번씩 정암사의 큰 스님이 그에게 오세를 보낸 이유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의 과거와 연관 지어 본 망상이라고 애써 넘겨 버렸다. 오세가 자신의 곁에서 계속 머무르기를 바랐고 왠지 모르게 떠날 것 같아 불안해하기도 했다.
이제 오세는 만행과 수행도 어느 정도 하였기에 설악산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원사에서 주지인 해오스님과도 정이 듬뿍 들었기에 헤어지기가 망설여졌다. 설악산에는 늙은 노스님이 그를 기다릴 테고 그 또한 아버지처럼 그립기도 하여 설악산으로 찾아들었다. 며칠을 걸어서 설악산 암자에 도착하니 사형인 만세가 입구에서 알아보고 달려왔으나 큰 스님은 눈에 안 들어왔다. 왠지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고 만세의 눈치를 살폈다. 만세와 오세가 나눈 이야기였다.
“이보게 오세. 만행과 수행을 잘하고 왔는가. 그간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곳의 사정도 많이 변했네. 큰 스님이 노환으로 몸져 누었기에 내가 수발을 든다고 많이 힘들었는데 마침 잘 왔구만.”
“사형,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요. 큰 스님이 연로하다는 것은 알지만 좀 위독한 모양이군요. 내가 어서 빨리 와서 시봉을 들어야 했는데 잘못이 크군요.”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병석에 누운 큰스님 방에 들어갔다.
큰 스님은 오세를 보자 눈을 크게 뜨고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고, 그의 손을 꼭 잡는 게 아닌가. 눈에는 어느덧 물방울이 맺히고 무언가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을 꿈적거렸다. 그는 이제 삶의 마지막으로 달려가고 있는 듯 보였고 마음을 정리하려는 듯 눈치를 보였다. 그가 희미한 목소리로 남긴 말이었다.
“오세야, 만행도 하고 수행도 하면서 세상 구경도 하고 많이 배우고 왔느냐. 너에게 들려줄 말이 있으니 잘 듣거라. 그렇다고 그 인연을 원망해서도 안되고 또 집착해서도 안되느니라.”
“너를 맡겨두고 간 할머니는 너의 친할머니는 아니었고, 젖동냥을 하여 겨우 목숨을 살린 어느 시골의 할머니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기에 만날 수도 없단다. 너의 생모는 내가 추측건대 봉정암에 있던 비구니스님이던지 아니면 백담사에 있던 공양주보살 중 한 분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만 알고 찾아가서 만나지는 말고 그렇게만 알고 있거라. 너의 생모가 설악산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돌봐주었다고 여기면 되느니라. 허허, 내 또한 너처럼 세속에 남겨놓은 자식이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이제 막 떠나려고 하니 보고 싶기도 하구나.”하고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남기고 열반하였다.
오세는 만세와 함께 큰스님을 다비하고 부도탑을 만들어 흔적을 남겼다. 그 한 노승이 살아온 과정을 지켜본 그로서는 친아버지처럼 또 할아버지처럼 다정다감하였고 키운 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쉽게 그치지를 않았다. 그는 생모가 누군지는 알아야 했기에 소청봉 아래에 있는 봉정암을 먼저 찾았다. 왜 하필 큰 스님은 두 곳을 지칭하여 그곳에 생모가 있다고 말하였을까가 궁금하였다. 그것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한 말이 분명하였다. 그는 시간을 내어서 먼저 봉정암에 들러서 대웅전에서 참배를 한 후 사찰 내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요사채가 보이는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는 나이 든 비구님 스님을 보았다. 그는 유심히 얼굴과 자태를 살펴보았지만 자신과의 연관성이 있는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다. 단 하나 어디서 몇 번 보았던 것 같은 기억은 떠올랐다. 그는 다시 백담사로 가서 공양간 주변을 살펴보니 나이가 든 아주머니가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네 역시 닮은 점은 찾을 수는 없었지만 몇 번 본 기억은 들었다.
어찌하여 큰 스님이 오세의 어머님을 찾으라고 하였으며, 그 두 여인 중에 한 명이 맞을 것이다고 짐작하였을까. 아니면 두 명 모두가 어머니가 되는 것인지 한 명이 두 사람의 역할을 하였다는 뜻이 되는지 정말로 어려운 예언이었다. 그는 그 의문에 깊이 빨려 들어가 그 의미를 찾는데 집중하였다. 그가 어릴 적의 아련한 기억으로서는 그분의 얼굴이 와닿지를 않았다. 폭설로 열흘간 밥을 해주고 간 아주머니는 정면으로 얼굴을 대해 본 적은 없었으며 말 한마디도 나누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밥상을 차려다 놓고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않았던가. 그는 생모가 누군지를 찾을 수가 없었고 하늘만이 알고 있다고 보았다. 큰 스님이 생모를 찾으라고 한 것은 자기를 낳은 생모도 있겠지만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도 해당이 될 것이기에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또 하나 유언이기도 당연한 길이기도 한 너를 찾아라고 한 말은 깊이 새겨 치열하게 정진키로 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어느 봄날 오세는 만세에게 절을 맡기고 오대산의 상원사를 찾아갔다. 주지이면서도 자기에게 동생처럼 자식처럼 잘 대해준 해오스님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지스님도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고 전번에 떠날 때 본모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게 수척해 보였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큰 스님을 떠나보내고 나니 자신의 피붙이와 같다고 느낀 해오스님 마저 떠나보내야 한다는 예감이 들어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스님의 마지막까지 상원사에서 시봉을 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 해오스님이 그를 불러서 한 말이었다.
“오세야, 너의 큰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너를 키워주고 가르친 그 스님을 한번 찾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를 못했구나. 대부분은 자기의 의지로 출가를 하지만 너는 운명적으로 맡겨져서 절에 살게 되었지 않았느냐.”
“나는 무슨 운명인지 인연인지 모르지만 출가를 하였고 이제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마당에 나의 뿌리에 대해 궁금해지는구나. 그렇다고 찾으러 간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기에 견성을 못한 중생으로 그런 망상이 드는구나.”하고 지나간 세월을 헤아리면서 몇 마디 말을 하였다.
오세는 해오스님을 가까이에서 마지막까지 모시기로 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같은 원해스님의 노후를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도 같이 하였기에 마음을 굳혔다. 어쩐 일인지 인연이라는 게 무슨 실타래처럼 얽혀있기도 보일 듯 말 듯 하기도 하였다. 그는 산으로 다니면서 약초를 캐어 달여 드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과 참회와 염원을 쏱아부어 약을 달이고 공양을 올리고 마음을 다 바치면서 해오스님을 모셨다. 원 없이 한없이 보내드려야 하기에 그 자신을 지금껏 보살피고 일깨워온 인연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의 간절한 바람도 정성도 힘이 다했는지 해오스님도 열반을 하였다. 어느 산자락에 핀 할미꽃의 씨앗이 바람에 날려 산골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자라서 또 저물며 그 씨앗을 흩날리듯이 인연 따라 흘러가고 말았다.
그는 다시 설악산으로 들어와서 만세와 함께 절을 중창하고 인연들의 뜻을 담아 수행하고 정진하였다. 이제 생모를 찾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큰 스님이 누구를 콕 집어 생모라고 말하지 않고 출가 비구니와 공양주보살 두 사람을 거론한 것은 어느 하나를 단정하지 말고 유연하게 살아가라는 깊은 뜻이 있었다고만 믿었다. 한편으로 그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한들 기쁨보다는 고뇌를 더 보탤 수 있겠기에, 모르고 넘어가 모든 보살들이 자기의 어머니라고 여기기로 하였다. 원해스님은 오세의 생모를 이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었고 긴 세월 동안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설악산 곳곳을 뒤졌을는지는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절은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니 그러한 전설이 만든 이름인지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