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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12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어느 젊은 교도관과 출소자의 이야기

by 벽운 Mar 24. 2025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봄이 오는 길목에는 서낙동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강가의 버들가지에는 눈망울이 빼꼼히 텄다. 남쪽으로 펼쳐진 김해평야에는 농부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였다. 선암다리를 지나가는 차량들의 물결은 바쁜 일상의 분주함을 보여주었고, 강 위를 나르는 철새들은 먹이를 찾아 자유를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자연과 사람들은 이미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어디로 갈지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어느 날 출소를 하는 만기수가 가족이 없는지 연락을 안 했는지 데리려 오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 출옥수를 정문까지 데려다주려고 하니 그에게 사연을 털어놓았다. 자기를 데리려 올 가족이 없다는 것이고 영치금도 없어 연고지로 갈 차비도 없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는 지갑을 탈탈 털어 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건네었더니 민망해하면서 받더라는 것이다. 그는 출옥수에게 사회에 나가서 직장 아닌 직장에서 배운 기술로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해주었었다. 그 사람은 치열한 사회에 나가서 차별을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기에, 한마디 조언을 하였다.


 “선생님, 마땅한 직업이 안 구해지면 시골로 내려가십시요. 우리 고향에는 농사철에 일손이 부족하여 도시에서 봉고차를 타고 인력을 모셔오곤 합디다. 신원조회도 안 하고 하루 세끼 식사도 제공하고 며칠간 일하면 숙소도 마련해 주고 합디다.”

 “안 그래도 고향에는 눈이 무서워서 못 가겠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산골로 가서 농사일도 배울 겸 일당도 받으면서 노후를 설계할까 합니다. 내 나이 이제 육십이 다되어 가지만 한 십여 년은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는 죄를 짓고 이곳으로 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도시는 인정이 메말라 살기 힘들지만 시골은 아직도 인심이 있으니,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시면 배는 굶지 않을 것입니다. 차근차근 모은 돈으로 촌집이나 하나 사고 밭뙈기도 사서 살아가면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 생각하고 똑같아 힘이 납니다. 술도 끊었으니 도벽도 없어질 것이고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출소하는 중년을 넘긴 남자의 전과기록을 보니 상습절도로 벌써 몇 번이나 이곳을 드나들어 어찌 보면 도피처로 삼은 것 같기도 하였다. 그가 대학시절에 읽은 오 헨리의 어느 소설에 나오는 소피라는 등장인물이 연상되었다. 그 추운 겨울을 보내기에는 바깥세상이 너무 춥고 어려워 경범죄를 짓고 몇 개월간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나오는 내용이다. 술에 찌들고 기술이 없는 소피에게 그 섬이라는 곳은 하늘이 준 도피처이기도 안식처였다. 매년 반복적으로 죄를 지어 기어코 그곳으로 가는 유랑인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한 끼 밥을 얻어먹기 힘든 도시에서 걸인 노릇은 하기 싫기에 당당히 국민으로 대접받는 권리도 있기에 부끄럼없이 그 길을 선택한다.


 그 출옥수는 앞으로도 소설 속 소피처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이 값을 해야 하기에 또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 젊은 교도관의 간곡한 요청도 있고 해서 마음을 굳게 잡았을 것이던가. 마약처럼 자신을 지배해 왔던 도벽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지금껏 수많은 도둑들이 교도소를 안방 드나들듯이 하며 자기 집처럼 당연시하지 않았던가. 비록 자신이 바른 길로 가고자 하더라도 전과자를 차별하는 사회는 그를 다시 어두운 길로 끌어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고 미래가 아니겠는가. 그 교도관은 다시는 그곳에서 그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그는 그곳을 오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였다. 겉으로는 순한 양처럼 보이는데 어찌하여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곳에서의 사람들은 교도관들에게 순종하고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하였다. 교정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 겉으로 잘 보여 좋은 평가를 받아 가석방의 혜택을 받으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둘 다 해당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그야말로 어린양을 순한 양으로 기르는 목자 같은 존재이었다. 흉악범을 순화시키고 절도범을 교화시키고 사기범을 교육시키는 법의 채찍을 든 교사이기도 하였으니, 사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와는 달리 오직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존중과 부러움을 사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그는 사람은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그에 맞는 천직이 있다고 여겼다. 그 자신은 남한테 싫은 소리를 하기도 듣기도 꺼려하고, 남의 재산을 증식시켜 주고 관리해 주는 집사 같은 것은 체질에 안 맞았다. 그것은 집안의 가훈과 전통에 영향을 받기도 자신의 고유한 기질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 살살거리거나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경멸하는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배타도 아니고 또 칭송도 하지 않는 중립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사람의 기질은 어느 중심점을 두고 변한다고 하는 게 맞는 것일까.


 그 역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대단한 개구쟁이이었지만 군대를 갔다 오고 난 이후에는 기질이 많이 꺾였다. 아마 군대에서 자제와 원칙만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모양이었다. 말을 잘 지어낼 줄도 모르니 그의 입은 움직이는 법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성격의 장점도 있겠지만 그 못지않게 단점도 있었다. 직업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고 청춘사업을 하는 데는 점수를 잃을 수도 있었다.


 지금 사회는 자기 PR시대이기에 능력을 마케팅하여 입신출세의 길로 가게 설계되어 있지 않던가. 그에게 맞는 직업은 적성대로 자제와 원칙을 덕목으로 여기는 분야가 맞을 것이다. 그런 길을 가는 데는 자기만족은 있겠지만 청춘사업에서는 감점요인이 분명히 있을 수 있겠다. 그것을 알면서도 일단 자신의 천직을 확보해 놓고 부수적인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니 자제와 원칙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일탈과 융통성도 뒷받침되어야 하겠다. 주변의 친구들이 연애를 잘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하는데 타고난 성격은 좀처럼 바꾸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앞으로 그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직업에 충실하고 청춘사업을 잘 펼쳐나갈지가 궁금해진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본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인 것 같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그를 불러내는 게 아닌가. 화면에는 외국 영화배우가 나오고 장소는 교도소이었다. 교도소에 갇힌 은행원 출신인 주인공 앤디가 치밀한 준비 끝에 그 엄중한 경비선을 뚫고 탈출하는 과정이었다. 독방 안에서 조그만 유리조각으로 벽을 파내어 뚫고 나가 오수관로를 타고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은 스릴 있고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자유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내용이었다.


 그 한 편의 영화가 그의 장래를 바꾸었으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재까지는 일수는 없다. 다행히 그 영화를 보게 한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었으니 그 길을 가게 한 단초를 제공한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길을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인지 알 수는 없다.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은 50년간 복역하면서 도서관에서 일을 하던 앤디의 다정한 친구인 늙은 브룩스 영감의 죽음이었다. 모두가 가석방으로 나가고 싶어 하였지만 그는 감옥이 자기의 집처럼 익숙하고 편안하여 그곳을 떠나는 게 두려웠다.


 브룩스 영감은 교도소를 떠나면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에 나가지 않으려고 속마음과 다른 연기를 해왔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지만 정기 가석방 심사 때 승인을 받게 되어 크게 상심한다. 나가기 전에 자신이 새장 안에 기르던 새를 바깥으로 날려 보내는 장면은 자유를 상징함인지 불안을 안은 체념이었던가.


 브룩스는 출감하여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적응 훈련을 받는 슈퍼마켓 보조원으로 일하다가 어느 날 자신의 숙소에서 목을 매달고 만다. 그가 머문 숙소의 벽에는 앞서 간 사람들의 자취가 적여 있었고, 그는 “브룩스는 여기 이곳에서 잠깐 머물다가 다녀간다.”는 글을 호주머니 칼로 벽에 새기고 살길을 찾아 떠난 게 아니라 목을 매달고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이 그의 직업을 바꾸고 천직처럼 살아가게 만든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불러내어 그 영화를 보게 한건 우연인지 다른 깊은 뜻이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전공과 맞는 해운회사를 선택하였지만, 그의 적성에 맞지가 않아 고민을 하였다. 서울에 생활하다 보니 얼마 안 되는 월급은 집세와 밥값으로 다 나가고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하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는 도시라는 새장에 갇힌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되어 자유도 낭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선 자신이 하는 일이 돈벌이하는 사장을 돈 벌게 해준다는 역할에 자존심이 상했기에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지가 않아 하루하루가 무기력한 일상이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에게 작정하고 한 말이 있었다.


 “아버지, 저에게 한 2년 정도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직장이 저의 적성과 맞지 않아 공무원시험을 볼까 합니다.

 “허허, 그래. 어렵게 잡은 직장인데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 어쩌겠나. 고생이 되더라도 네가 가고 싶은 길로 가보거라.”하고 아버지가 담담하게 대답하셨다. 아마 그의 아버지가 고민하였던 문제를 그가 다시 안게 되었다면 유전적인 기질이던가. 그의 아버지도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을 부모님의 만류에도 버리고 적성에 맞는 공직으로 나가지 않았던가.


 이렇게 하여 그는 몇 년 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도서관에 나가 기약 없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였다. 이윽고 2년간에 걸친 공무원 시험준비 끝에 합격하였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는 축하를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직업이 무어냐고 물으면

망설여졌다. 스스로는 만족하는데 남들이 걱정하니 자신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직업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하소연하지도 말고 그냥 주어진 편의와 혜택을 누리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로 하였다. 어느 날 친구들인 명석이와 인호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이다.     


 “맞네. 옛날 덕수 네가 무슨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너의 인생길을 틀었나 보네. 다 하늘의 뜻이 아니겠나.”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 너의 천직이라고 본다. 요새 세상에 선비 같은 사람이 설 자리가 어디 있겠더나.”

 “나도 너처럼 외국영화를 자주 보았더라면 소설가나 배우의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결국 남들처럼 돈벌이나 하는 길로 갔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지.”

 “나는 선박회사에 다니면서 매일 저녁 술접대를 한다고 속이 많이 상했다. 그것도 갑이 아닌 을이다 보니 술맛도 안 나고 기분도 안 좋고 말이야.”하고 친구들이 덕담을 해주어 그는 기분이

그런대로 좋았다.


 덕수는 늦게나마 전직한 직장을 잘 다녔지만, 여전히 직업을 물으면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벽을 의식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남들이 하는 잔업도 없고 사사로운 회식도 없이 오직 칼출근 칼퇴근만이 있었기에 예측가능한 시간의 자유를 구가할 수가 있었다. 스스로에게는 신의 직장인 셈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트라우마로 남았기에 마음이 편한 게 연봉이나 지위보다도 우선이었고, 그런 삶이 자신에게 내린 운명이라고 느꼈다. 어느 날 친구인 윤경이와 나눈 말이다.


 “그래, 네가 친구이니까 말하는데 좀 특이한 직장이라고 봐야제. 퇴근 시간에 무조건 정확하게 교대를 하고, 휴가는 무조건 다 써야 하니 말이다.”

 “또 하나는 야간근무 중에는 책을 보라고 권장한다. 스마트폰은 근무 중에는 일체 사용을 못하게 하니, 졸음을 쫓으려면 책을 읽던가 해야 덴데. 그래서 교양서적을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는다.”

 “뭣이라고, 근무시간 중에 책을 읽어도 된단 말이가. 그 참 그러면 근무태만이지 않나. 나는 잘 이해가 안 간다.”

 “졸음을 이겨내려면 집중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고, 그게 독서가 아니겠나. 진짜 근무태만은 조는 것이니까 말이야.”

 “나는 덕수 네가 독서량이 많다는 게 정말 부럽다야. 그 지식과 교양이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지 않겠나. 그러니 너는 인생을 아는 길로 간 것 같기도 하다.”하고 윤경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수가 다니는 직장은 특수직이었기에 특이한 점이 많았다. 상사의 지시는 오직 매뉴얼에 따른 것이지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았다. 아마 국가를 위한 길이 그의 적성에도 맞고 보람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직장을 통해서 탈출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 탈출은 육체적인 도피가 아닌 정신적인 것으로 그를 자유의 길로 안내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 길은 그의 아버지가 간길이며 또 탈출한 길이기도 하였다.      


 그는 공무원 연수를 받으면서 사람의 성격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말이다. 그들도 자기처럼 말 못 할 트라우마에 사로 잡혀 살았던 게 아닌가 여겨졌었다. 은행에서 돈을 만지다 보니 돈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고, 죽자 살자 성과를 내어 승진을 하려는 행태도 싫었고, 정시 퇴근이 없이 환경보호니 봉사활동이니 하는 잡무에 시달리는 행정공무원이 싫어서 온 사람도 있었다. 다른 방에 있는 어느 사람은 나이가 50대로 자영업을 하다가 들어왔다. 그는 사기를 당하여 재산을 다 털어먹고 억울하여 상심만 하다가 사기꾼들이 교도소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었다. 덕수는 그 사람들의 전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지만, 그 자신도 비슷한 경우이니 공감을 하였다.      


 그는 죄수를 지키고 교화하는 교도관이지만 지금의 감옥에도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 그런 억울한 사람의 탈출을 눈감아 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누가 결백한지는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안다고 해도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 맞다. 만약 잔인무도한 흉악범이 탈옥하면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이며 사회는 불안에 떨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탈옥이 아닌 탈출은 도와주는 게 맞다고 여겼다.


 “야, 덕수야, 너그 직장은 점심시간에 음악을 틀어주나. 수감자들이 정서도 메말라 성격이 더 거칠어 질까 염려가 된다. 음악이 사치는 아니지 않나.”

 “그냥 음악은 없고 중요한 뉴스가 있을 때 틀어준다. 아직도 교도소가 엄격하니 어쩔 수가 없지. 그런데 무슨 노래가 좋을까.”

 “아마 출감 후 미래의 희망을 심어주는 노래가 좋지 않겠나. 나는 팝송 중에서 ‘참나무 가지에 노랑 리본을 달아라’를 추천하고 싶다. 만기 출소를 하는 어느 수감자가 고향 앞을 지나갈 때 자기를 반겨줄 연인에게 바라는 노래이지.”

 “안 그래도 앤디가 점심을 마친 휴게시간에 운동장에 모여있는 수감자들이 들으라고 ‘피가로의 결혼’을 갑자기 틀어 주데. 그 노래가 울려 퍼지자 모두 다 싸움도 멈추고 조용히 눈들을 감데.”

 “내가 기회가 되면 법무부에 청원을 올릴까 한다. 누구나 음악을 들을 자유는 있다고 말이야.”하고 친구인 윤경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경이가 말한 그 팝송은 덕수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라는 게 나중에 알려졌다.     


 덕수는 친구인 동훈이로부터 사람은 본래 착한데 환경에 의해 나쁘게 변한다는 지론을 들었다. 그가 보아도 교도소 안의 수감자들은 한결같이 순하고 성실하게 보였다. 무슨 희망을 품고 있는지 한 번씩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혼자 끄덕이는 것을 보니 과연 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곤 하였다. 일시적인 분노가 제일 크게 보였고 다음으로는 돈욕심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배고픔이었다고 추측해 보았다. 그러니 동훈이가 말한 탐욕과 분노가 맞았고 그것은 스스로 자제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고픔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에 자제할 도리가 없으니 연민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발쟌이 어디 사람이 나빠서 감옥에 갔겠는가. 배고픔은 진실한 것이며 생명의 신호이며 해결해주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회는 타인의 배고픔을 알지 못하고 그 진실한 욕망을 외면하고 응징하지 않았던가. 나누면은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데 독식과 편식을 하니 비만과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고생하면서도 말이다. 중국의 방거사가 ‘돈은 독이다’하면서 황금을 전부 실어다가 강물에 다 던져버리지 않았던가.


 강도는 폭력적인 기술이요, 절도는 숨어서 하는 예술이던가. 교도소에는 어찌 보면 순수하고 솔직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불의를 보고 넘어갈 수가 없어 상해를 한 사람은 과도하게 대응하였기에 범죄가 되어버렸고, 거짓말로 능청스레 항변하였다면 무죄가 될 것을 순순히 자백하였기에 죄가 되어버리기도, 그냥 동냥 좀 합시다 하면 될 것을 그 얄팍한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 훔쳐버린 죄도 있지 않겠는가.      


 덕수가 교도소에 있으면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교회에서 빵을 싸들고 전도활동을 오고, 목요일이면 절에서 떡을 싸들고 와서 법회를 연다. 또 금요일이면 성당에서 과자를 싸들고 와서 포교를 한다. 수감자들이 하는 소리가 재미가 있었다. 왜 수요일에 교회에서 나오며 목요일에 절에서 나오는가에 대한 정답이 있다. 예수님의 수자를 들어 수요일이고 절의 목탁이니 목요일이라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맞는 것 같았다.


 그러면 교회나 절이나 성당에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미리 베풀어 주었다면 절도범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이상한 게 아니던가. 그런데 배고픈 사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누가 배고픈지를 찾을 수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또 하루하루 얻어먹기가 귀찮으니 한꺼번에 먹으려고 음식이 아닌 돈을 훔치는 것일 게다. 그렇지만 교회나 절이나 성당은 수감자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다고 느끼게 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감자들에게 진정한 교화는 죄를 뉘우치라는 말대신에 그냥 조건 없이 베풀고 품어주는 게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덕수는 매일같이 자신의 인생이 다행스럽다고 느끼면서 살아갔다. 또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도 알고 권태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도 알았다. 스스로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고서 격리당한 사람들을 보니 다행으로 느꼈다. 이동의 자유도 있고 발언의 자유도 있었다. 교도소 안에서 감시와 탈출이라는 추상적인 상황이 적당한 긴장감을 가져다 주니 권태는 있을 수가 없었다. 또 희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숭고하고 귀중한 것인지도 알았다. 수감자들에게 항상 미소를 보내고 마음속으로 격려해 주었으며 감옥이 엄숙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한편으로는 감옥이 바깥세상보다는 안전하고 공평하며 따뜻하다는 것을 은근히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고 브룩스 영감처럼 출소를 포기하려는 무한한 안주를 경계하기도 하였다.      


 다시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덕수도 이제는 준고참 교도관이 되었고 많은 수감자들을 바깥세상으로 내보었다. 또 많은 새로운 수감자들이 죄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들어왔다. 그는 친구들에게는 죄수라는 말 대신 수감자라고 호칭하였다.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덕수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군림하려고 하는 오만심을 누르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주어야만 자신을 간수라고 하지 않고 교도관이라고 호명해 달라는 요구조건과도 맞지가 않겠는가. 이제 죄수도 사라지고 간수도 사라지고 오직 수감자와 교도관이 형무소가 아닌 교도소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덕수가 교도관으로 근무한 지 어느덧 5년이 다되었다. 따스한 봄날에 예나 다름없이 정시에 교대하여 퇴근하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정류장 승강장에 낯익은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서성이고 있지 않은가. 유심히 살펴보니 안면이 있는 것 같았고, 그 사람이 덕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비로소 바로 그 사람인 것을 확인하였다. 3년 전 만기 출소하여 정문까지 바래다준 바로 그 중년남성이 맞았다. 그 사람이 덕수에게 다가와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선생님, 그간 잘 근무하고 별고 없어셨지요. 요 며칠 전부터 혹시나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여기서 퇴근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 그래요.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보네요. 요새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가요. 옷차림도 깨끗하고 얼굴도 환한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저가 작정하고 기다렸는데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 하시지요. 그때 저에게 보태준 차비도 돌려 드릴 겸 대접을 하겠습니다.”

 “하하, 저는 내일도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니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고 술은 안되니 그냥 여기서 간단하게 말씀을 나누시지요. 우리는 출감한 분들과는 일체 접촉을 하면 안 되는 규율이 있으니까요.”


 “아따, 선생님은 예나 제나 융통성이 별로입니다. 저는 이제 술을 끊었으니 가까운 커피솦에서 차 한잔은 괜찮겠지요.”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인근의 커피숖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람은 아마 이 근방에 직장을 가진 모양이었고 그간의 일이 궁금하였다. 모습과 표정을 보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가족도 데리려 오지 않고 갈 곳도 없다고 해서 난감해하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제법 당당하게 보였다. 무슨 좋은 직장이야 있을 게 있으리마는 밥을 먹고사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선생님, 저가 출소하던 그날 갈 곳이 없어 난감하던 차에 이곳 김해 벌판을 한번 걸어보자고 강둑으로 나갔었지요. 날은 저물었는데 잘 곳도 없고 가진 돈은 선생님이 주신 것이 전부라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때 마침 고속도로의 다리밑에 적당한 장소가 있었고,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지요.”

 “아, 그랬었군요. 그때도 갈 곳이 없다고 하시길래 걱정을 하였는데 어떻게 살아가셨는지요. 그때는 아마 초여름이라 날씨는 춥지는 않았을 테고 먹고 자는 게 큰 문제일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첫날은 다리밑에서 주변에 흩어진 판자를 모아 바람을 막고 라면을 사다가 어느 노숙인이 남겨놓고 간 냄비가 있어 끓여 먹었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또 라면을 끓여 먹고 강둑을 걸어면서 온갖 생각을 다했지요. 그러다가 근 한 달간을 그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였었지요.”

 “그런데 희한한 게 다리밑에서 자지만 김해평야가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게 품어주고, 흘러가는 낙동강물이 메말랐던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더라는 것이지요. 구포다리 쪽으로 안 가고 선암다리를 넘어 김해평야로 온 게 살길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이구, 큰 고생을 하셨네요. 숙식을 생각하면 교도소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나을 뻔하였네요. 참 세상은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다더니 정말 그렇군요.”


 “그런데 어느 날 강둑을 거닐고 돌아와 보니 판자로 가려진 이부자리 옆에 라면 한 박스가 놓여 있더라구요. 그 며칠 뒤에는 봉투가 하나 놓여 있는 게 아니던가요. 열어보니 만 원짜리 몇 장이 들어있더러구요. 아마 불쌍하다고 마음씨 좋은 분이 두고 간 것이 맞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착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는 세상을 보고 큰 마음을 먹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었지요. 아니니 다를까 어느 날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다가 멈추어 서서 어느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요. 그분은 김해에 사는데 농촌에 일손이 달리니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아이구, 고마운 분을 만나셨네요. 혹시 그분이 라면박스와 돈 봉투를 두고 간 사람이 아닐까요.”


 “그건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런 짐작이 가더구만요. 그분은 나를 김해시청 복지과로 데리고 가서 상담을 하여 주민등록을 자기 집에 올려주더라구요. 시청에서는 기초연금 수급대상자로 올려주어 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었지요. 잠자리는 그분의 집 작은방에 마련해 주더라구요.”

 “참말로 하늘이 도운 것 같습니다.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려고 하면 길이 보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은인이구만요.”

 “그다음 날에 그분은 김해 벌판에 있는 토마토 재배 농장으로 일자리를 마련해 주데요. 그곳 농막에 임시 숙소를 정하고 낮에는 토마토를 수확하고 밤에는 갖다 준 밥으로 식사를 하니 숙식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어 버린 셈이었지요.”

 “재미있는 것은 내가 밤에 경비를 선다는 것입니다. 내야 겁이 없는 기질이라 도둑이 들어오면 쫓아 버릴 수 있기에, 옛날에 도둑이었던 사람이 도둑을 잡는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린 게지요.”하고 그 사람하고 제법 긴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는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기에 아쉽지만 일어서려고 하니 그의 손을 붙잡는 게 아닌가. 아마 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분명히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 출소자는 어쩌면 김해평야에서 자신이 복역했던 기간만큼이나 유상노동으로 돈을 벌었던 모양이었다. 가급적이면 그에게 자랑삼아 재기하였음을 당당히 보여주고 싶은 충동도 일어났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어느 인정 많고 사려 깊은 교도관에 대한 보은이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또 다음 인생의 행로에 대한 설계를 말하고 조언도 구하고자 하는 의중도 있었다고 보였다. 쓰러질 듯한 사람에게는 우선은 입에 사탕을 물려야 하며 일어난 사람에게는 오만을 경계토록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때로는 손뼉을 쳐주고 때로는 침묵으로서 대해주어야 할 것이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출소자가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그 3년간 일을 하여 제법 큰돈을 만들었답니다. 어디 돈을 쓸데가 있어야지요. 기초연금에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노임을 받고 하니 목돈이 되더라구요. 그동안 자립할 수 있는 밑천을 여기 김해벌판에서 만들었지요. 한 일 년이나 더 있다가 이곳을 떠나 고향 근방으로 가려고 합니다.”

 “아이구 세상에 이런 성공을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돈이 없어 은행에서 빌리고 하던데 저축을 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그게 다 교도관님이 농촌에서 일손을 돕는 일로 살아가라고 한 조언이 결정적이었지요. 나의 고향은 지리산 자락에 있답니다. 이제는 고향 근방에 가서 촌집을 사서 꾸미고 밭을 몇 떼기 사서 특용작물을 재배할까 합니다. 간간이 지리산 자락을 돌며 약초도 캐고 말입니다. 부모님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하고 사람답게 살아가야겠지요.”하고 그 사람은 자신 있게 앞날의 포부를 펼쳐 보였다. 사실 그는 그 사람이 출감할 때 어떻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고, ‘쇼 생크 탈출’에서의 브룩스 영감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도하였었다. 아마 또 인연이 되면 지리산 자락에서 산삼을 캐고 있는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있겠는가.    

  

 그 출소자는 구포다리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선암다리를 넘어간 게 살길이었던 셈이었다. 그가 구포다리를 넘어 도시로 들어갔더라면 옛날의 범죄충동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차별과 편견의 울타리에 갇혀 자제를 못하고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었는데 하늘은 그를 공평하게 대해주는 농촌이라는 그린라인으로 이끌었으니 말이다. 그의 발끝을 김해벌판 방향으로 이끈 것은 어느 교도관의 조언과 어머니의 품과 같은 김해평야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느 날 점심시간 중 수감자들이 휴식하는 운동장에 달린 확성기에서 잔잔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 노래는 명곡이었고, 노래 제목은 ‘백조의 호수’이었다. 수감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감고 노래를 경청하였다. 그 순간은 감시도 감독도 없는 자율의 시간이었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자유의 희열을 느끼게 하였다.

 그즈음 석양이 저무는 서낙동강에는 북쪽에서 날아온 하얀 고니 떼가 살포시 호수에 내려앉아 새로운 일터를 일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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