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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11화. 다시 불러보는 밀양 아리랑

어느 의열단원이 조국과 사랑사이에서 조국을 선택하여 사랑에 보답한 이야기

by 벽운 Mar 17. 2025

            다시 러보밀양아리랑     


12월 27일 아침 10시 다 되어가는 시간에 밀양경찰서에서 귀를 찢는 듯한 요란한 폭음이 들려왔다. 주민들은 놀래서 꼭꼭 숨어있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 하나둘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확실하고 그 요란한 폭음으로 볼 때 분명 경찰서에 있던 알본 순사들이 많이 다친 걸로 보아졌다. 그런데 화약냄새는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사색이 된 밀양경찰서장과 순사들이 혼이 다 빠져 있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부산경찰서처럼 폭탄을 던진 게 맞다고 주민들은 웅성거린다. 그리고 길가에는 삐라가 이리저리 흩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는데 바로 의열단 창단선언문이었다.


 그간 조용하던 밀양에도 폭풍이 불어 닥쳤고 잠자던 민심이 폭음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누가 폭탄을 던졌는지 화약냄새가 가라앉고 분위기가 진정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분노에 찬 젊은 피가 일을 벌였을 것이라는 게 길거리에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날리는 의열단 창단선언문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간을 뒤로 돌려 그 전개과정을 한번 알아보자.


 “이종암선생, 올 9월에 박재혁의사가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왜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지요. 그때도 폭탄을 불발이 안되게 완벽하게 제조하여 성공한 노고가 큽니다. 이번에는 어느 곳에 거사를 하면 좋을까요.”

 “단장님, 폭탄제조는 의열단 내에서는 저가 책임져야 하기에 당연하지요. 다음 차례 거사는 대구나 마산으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만. 왜넘들이 많이 놀랬을 테고 경비도 삼엄은 할 것입니다.”

 “대구나 마산이 일의 수순상 맞다고 보입니다만, 여우 같은 일본경찰과 조선인 앞잡이들이 함정을 미리 파놓았을지 모르니까 조심해야겠지요. 폭탄투척 거사는 계속되어야 하니 다음 번은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내 고향 밀양경찰서를 폭파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밀양은 대도시도 아니고 사건의 파장이 크지 않을 것 같기에 나는 내 고향 대구경찰서를 추천합니다. 어서 빨리 왜넘들의 혼을 빼놓고 싶습니다. 단장께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주십시요.”

 “이선생의 마음을 왜 저가 모르겠습니까마는 이미 우리 의열단 창단멤버들에 대한 정보는 왜경들 손에 다 들어가 있기에 이종암선생이 나서기에는 너무 위험하니 다른 방법을 구상해 봅시다.”하고 약산과 이종암과 오랜 시간 숙고를 하였다. 약산의 고향은 밀양이요 이종암은 대구이니 서로 자기 고향에서 거사를 하고 싶었던 것은 정서상으로 맞는다. 하지만 서로 자기의 의사를 고집하고 감정만 앞세우면 앞으로의 남은 수많은 거사에 불협화음이 생길지 모르니 서로의 의견을 일단 물렸다. 그런데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부산 다음으로는 대구가 거사의 타겟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였고, 실제로 경찰서 주변은 철저하게 경비하고, 정보계 순사들도 바쁘게 움직이기에 일단 대구는 뒤로 미루기로 하였다. 얼마 후 저녁을 먹고 난 후 이종암과 김원봉은 다시 만나 상의를 하였다.


 “약산 의백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구는 다음번으로 하고 밀양으로 정하시지요. 내 마음이 급한 것 보니 잘못하면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 객관적인 눈으로 냉정히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종암선생, 정말 고맙소. 나도 내 고향 밀양에 폭탄을 터뜨려 잠자고 있는 민심을 일깨우고 싶었지만 혹시 충동적이어서 실패를 할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거사를 맡을 인물에 대해 생각을 해보셨소.”

 “내가 부산경찰서 거사를 계획할 때 만난 사람인데, 좀 특이한 인물입니다. 의열단원으로는 아직 가입은 안 했지만 믿어도 될 사람입니다.”

 “특이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요. 성격과 외모는 어떻고 장기가 있는가요. 어느 곳 출신인가요.”

 “김해 명호에 사는 젊은이인데 타협을 모르는 얼굴이 우락부락한 아주 강직한 성격입니다. 씨름을 하여 송아지도 타고 하여 샅바 쥐는 힘이 강해서 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성격이 강직하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융통성이 없이 외골수라면 좀 곤란하겠는데요. 조직으로 움직이는데 고집이 강하다면 불협화음도 있을 수 있고 말입니다.”

 “저도 그런 점이 좀 걸리기는 한데 한번 목표를 정하면 꼭 끝을 봐야 하고 회유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폭탄을 투척하여 체포되면 모진 고문으로 배후 가담자를 실토하게 만드는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깜짝 안 한다는 게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된 것입니다.”


 “오우, 대단한 기질의 젊은이 이군요. 그 자질을 아껴두어 좀 더 의미 있는 거사에 활용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내가 기어코 처단해야 할 일제의 개 같은 넘인 그 작자를 처단하는데 쓰면 적임일 것 같습니다.”

 “그 넘이 어떤 넘인가요. 혹시 노덕술이가 아닌가요. 아니면 하판락인지, 김덕기인지 모두 다 쥑일 악질적인 친일경찰이 아닌가요.”

 “이종암선생의 말이 정확하게 맞소이다. 나는 그 넘들 중에 일 순위로 노덕술이를 삼고 있소. 그 넘은 총알도 아깝고, 칼로 찔러 그 더러운 피를 조국강토를 더럽힐 수도 없기에, 맨손으로 목을 눌러 숨통을 단박에 끊어야 속이 후련하겠소.”

 “약산 의백께서 그런 깊은 생각을 하셨구만요. 명호에 사는 김동지는 손아귀 힘이 강해 그 넘의 숨통을 비명 한마디 없이 끊어버릴 수가 있기에 적격입니다. 그러면 김동지는 다음번 거사에 기용을 합시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종암은 부산에 가있는 동안 김해 명호에 사는 김동지를 구포에서 만났었다.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은 자연스레 그의 귀에 들어왔고 유심히 그의 성향을 파악하였었다. 그를 소개해 준 사람은 부산제일상고 출신으로 함께 대구은행에 근무한 명호 출신이었다. 구포에서 옛 직장동료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소문을 하니 화제의 그 사람이 구포장에 왔다는 전갈을 받고 찾아내어 같이 합석하게 된 것이다. 그를 처음 보는 순간에 일본넘들을 지독하게 저주하고 친일파들을 욕하는 꾸밈없는 말을 듣고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이 구나고 생각했다. 의열단 소속이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름도 가명으로 하였으며, 중국에서 의열단이 국내의 뜨거운 피를 지닌 젊은이들을 기다린다고 우회적으로 말했었다. 그랬더니 그 김동지는 다음번에는 박재혁의사처럼 조국광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으니 의열단과 연결해 달라고 하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를 하였었다.  


 “이종암선생, 밀양경찰서 거사는 꼭 성공해야 하고 그래야 뜨거운 피를 모을 수도 있고, 국제사회에 우리의 실상을 알리고, 잠자고 있는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겠지요.”

 “단장님, 그 말씀이 맞습니다. 모든 일에는 사기가 높아야 성공할 확률이 높지요. 계획은 치밀하게 행동은 과감하게 하여야 하며, 그 거사의 파급효과가 커야 하겠지요.”

 “이선생이 저번에 추천한 김동지는 다음번에 기용하기로 하고, 내가 잘 아는 고향 동지가 있소이다. 밀양보통학교에서 같이 다니다가 일본 천황을 욕되게 하였다고 퇴학당한 민족의식이 강한 동지입니다.”

 “무슨 말을 했길래 천황 모욕죄로 퇴학을 당했는가요. 불령선인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요시찰 대상이 되는데 말입니다.”

 “일본넘 선생이 단군할아버지를 자기들 천황의 후손이라고 하였기에 허허 웃으면서 거꾸로 일본 천황이 단군의 후손이라고 말했다가 보통학교에서 쫓겨났지요.”

 “그러면 그 사람의 가정은 어떤가요. 혹시 결혼은 하였는지요. 성격 또한 궁금합니다.”


 “허허, 이선생은 역시 치밀하십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검증해 보는 게 성공을 위해서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는 집안이 빈한하여 결혼은 정혼이라고 하여 후일에 하기로 했답니다. 성격은 전번에 말한 김해 명호 출신 김동지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치밀하다고 보면 됩니다.”

 “단장님, 한 가지 염려가 되는 게 있습니다. 아직 정혼 단계로 예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미래의 부부지간인데 혹시 결의가 흐트러질까 봐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남녀관계의 정은 참으로 절제하기가 힘드니까 말입니다.”

 “이선생, 나도 그런 점이 마음이 걸리지만 현재로서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최선의 인물입니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결혼을 미루는 것은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는 결의로 보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였는데 자기가 죽으면 부인한테 죄를 짓는 게 되니까 그런 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결의와 의지는 존경스럽고 감동적인 것이 되겠네요. 그러면 내가 밀양 현지로 내려가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적격이라고 판단되면 폭탄을 던지는 연습을 시키면서 만반의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종암은 김원봉의 지시를 받고 밀양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최수봉의 집을 찾아가 은밀히 접촉하여 그의 성격을 파악하고 의지를 확인하여 적격이다 판단되면 거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만약 이종암의 눈에 부적합한 인물로 보이면 무리하게 거사를 진행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기로 하였었다. 하나의 폭탄투척 거사를 성공리에 완수하기 위해서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기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의열단은 이런 방식으로 토론을 통하여 중지를 모아 거사를 결행하는 것이다. 아까운 젊은 피가 헛되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거사에 참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추진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종암은 최수봉과 희미한 호롱불 아래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다. 서로는 초면이지만 수봉은 이미 이종암에 대해 소문을 들었고, 의열단창단선언문도 읽어보았었다. 먼저 이종암이 말을 걸어 본다.


 “최선생은 어떤 각오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거사에 참여하려고 마음먹었는가요. 일본넘들에 대한 원한은 조선백성들이 다 갖고 있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요.”

 “어디 말로 다 하겠습니까. 저의 가문은 의를 숭상하는 가문이지요. 또 밀양이 역사적으로 사명대사도 태어난 충절의 고장이 아닙니까.”

 “유학을 숭상하여 선비정신을 실천한다고 하셨는데 저의 가문도 그렇습니다. 저의 부친은 김종직 선생과 그의 제자들을 존경하였지요.”

 “이선생님도 선비집안 출신이구만요.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선비집안이라고 하지만 올바른 집안이 그리 많지는 않지요.”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흉중을 털어놓으니 금방 친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종암은 정말 묻기가 힘든 것을 묻지 않을 수가 없어 잠시 숨을 고르며 망설였다. 바로 최수봉의 아픈 곳이기도 어찌 보면 언젠가는 물어보아야 할 내용이었다.


 “최선생,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혼례를 치르지 않은 걸로 아는데 늦은 이유가 있는가요. 연세도 혼기를 훌쩍 넘어섰는데 말입니다.”

 “아이구,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셨네요. 삼랑진에 있는 여인과 정혼을 하였지요. 집안 사정도 그렇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늦어졌는데, 오랫동안 밀양을 떠나 평안도로 만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보니 혼례를 치르지 못했답니다.”

 “그러면 혼례를 먼저 올리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나이 든 여인이 많이 서운했을 것 같은데 이해를 시켜주었는지요.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요.”

 “그런 것은 아니고, 내가 좀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어서 그냥 돈을 좀 만들어야 잘 살아가지 않겠느냐고 핑계를 대긴 했지요. 평안도에서 금광에서 채굴도 하여 봤고, 우편배달부도 해보았었지요. 그것은 형식이고 실제는 광복을 위해 몸을 던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럼, 그 처자도 대충 눈치를 챘겠는데요. 그 여인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돈 보다도 사랑이 먼저가 아닐까요. 좀 실례되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런 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부모님께도 정혼을 파기하자고 하고 싶은데, 어디 동방예의지국에서 가능한 일이긴 하나요. 평안도로 떠나기 전에 삼랑진 강가에서 마주 앉아 은근히 내가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비장하게 말한 적은 있었지요.”


 “최선생의 말을 듣고 보니 마음이 짠하게 울립니다. 누가 독립투사의 아내가 되려고 할 것이며 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요. 나도 그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독립투사는 내일을 알 수 없는 운명이기에 결혼을 않아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다가올 슬픔을 그녀에게 안겨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선생님의 생각이 저하고 딱 들어맞군요. 독립투사의 아내의 길은 어려운 길이니 함께 가기를 권유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런 점이 그녀에 말로는 할 수 없는 괴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하고 이종암과 최수봉은 허심탄회하게 심중에 있는 말을 털어놓았다. 사실 이종암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이 결혼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결혼이 독립운동의 과업을 이루는 데는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체포당해서 겪는 모진 고문으로 고통을 겪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가 꺼려졌고, 죽음 후의 가정을 지탱할 수도 없으니 마음에 사랑은 있으되 결혼은 없었던 것이다.


 다시 이종암과 최수봉의 대화는 이어진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었으며 그 계기가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최선생, 언제부터 독립투사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퇴학을 당했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일제에 대한 원한이 있었나 보네요.”

 “전홍표 교장님의 말씀 중에 잊을 수 없는 것은 ‘분노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노예의 길만 있다.’이었지요. 그 말이 나를 이길로 가게 하였었지요.”

 “오우, 그런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독립투쟁에 대한 정신적인 영향을 받으셨구만요. 저도 의병활동을 한 왕산 허위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었지요. 우리 의열단에는 대한광복회 출신인 황상규선생이 단원들에게 의병활동에서 배워야 한다는 투쟁정신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백민 황상규 선생은 이곳 밀양출신으로 의혈에 넘치는 젊은이들을 독립전선으로 가게 만든 행동파이시지요. 아마 약산의 고모부가 되실 겁니다.”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종암은 최수봉이 정신적으로 강인하고 자신을 바칠 각오가 확고하다고 느껴 밀양거사를 맡기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다음날 자신이 몰래 파묻어 두었던 폭탄이 있는 산으로 가서 최수봉에게 폭탄을 던지는 법과 던지고 난 후의 행동요령에 대해 세세히 가르쳤다. 그가 만든 폭탄은 충격방식에 의해 폭발하는 원리로 강하게 던져서 바닥에 떨어져야 성공하기에 그 점을 이해시켰다. 만약 겁에 질려 그냥 힘없이 던진다던가 바닥에 굴러가면 실패할 수 있기에 모형 폭탄을 만들어 던지는 연습을 수없이 하였다. 그러고 나서 결행일을 정하고 세부적인 행동요령을 전하고, 성공하거나 실패 시에 현장을 벗어나는 요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선생, 이제 며칠 후에는 거사일이니 마음을 정리하고 동요를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많은 의열단원을 사지로 보내면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거사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해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현상이지만 의열단원은 냉혹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해야 하니까요. 먼저 미련이 있는 일이 있으면 며칠 내 정리하십시요.”

 “허허, 이선생님은 참으로 신중하십니다. 내가 거사를 할 자질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파악하시더니, 이제 마음의 동요까지 점검을 하시는군요. 저도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왜 동요가 없겠습니까마는 매일 조석으로 예불을 드리면서 진정시키는 훈련을 하였기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끝을 흐리시는데 그 한 가지가 무엇인가요. 혹시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으신가요. 저의 말에 대답을 안 하셔도 됩니다. 대충 짐작이 가기는 합니다만......”

 “역시 동지는 동지의 마음을 알아본다고 바로 그 문제입니다. 내가 정혼을 한 삼랑진 연인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흔들기도 합니다. 안 만나고 가면 영원한 이별일 테고 만나지니 그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최선생, 그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늘이라도 찾아가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십시요. 그냥 광복을 위한 외롭고 험난한 길을 간다고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요. 그녀를 만나는 일은 꼭 하셔야 할 일입니다.”


 “이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에 삼랑진을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맴돕니다.”하고 서로는 비장한 대화를 나누었다. 최수봉은 날이 어두워지자 안가를 나서서 삼랑진 그녀의 집을 찾아서 그 옛날 하던 데로 휘파람을 세 번 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정혼자인 김문기 여인이 대문밖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둘이는 감동 어린 눈인사만 하고 조용히 낙동강물이 흘러가는 강변으로 나가서 자갈밭 옆에 놓인 편편한 바위 위에 앉았다. 그 장소는 둘이 말을 안 해도 알아서 찾아가는 곳이라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먼저 최수봉이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연다.

 “문기씨, 내가 그간 너무 무심했소. 혼례를 자꾸만 미루고 지금까지 왔으니 면목이 없소. 좀 잘 살아 보자고 하여 평안도로 만주로 떠돌아다녔는데 무슨 운명인지 모를 길을 가게 되는군요.”

 “수봉씨가 밀양을 떠날 때에 금광에서 돈 벌어 편안하게 살지고 한 말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때 수봉씨의 표정을 보고 돈보다도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을 갖기도 했었지요.”


 “참으로 문기씨는 생각이 있고 속이 깊은 사람입니다. 대부분은 별생각 없이 그냥 그 말을 믿기만 하는데 나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헤아렸다니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오늘 내 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여기를 왔소.”

 “무슨 털어놓을 게 있나요.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되니 수봉씨의 길을 가십시요. 나야 일개 여인으로서 도와줄 게 없고 앞길을 막지 않는 게 도리일 것 같습니다.”

 “잘 알겠소. 나의 소식은 내가 직접 전하거나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전할 것이요. 문기씨 정말 고맙고 미안합니다. 이 못나고 불쌍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하고 최수봉은 겨울 찬바람에 차가워진 연인 김문기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가며 비교적 긴 대화를 나누었다. 강바람이 불어오는 엄동의 강변은 추웠지만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뜨거웠고 가슴은 끊임없이 고동쳤다. 좋은 세상을 만났으면 강바람에 펄럭이는 치맛자락과 함께 아리따운 몸을 부둥켜안고 빙빙 돌며 한바탕 춤을 추었을 텐데 시절을 그것을 허락하지 못했다.


 드디어 거사날 아침이 밝아왔다. 이제 이종암과 서로 무운을 빈다는 인사를 나누고 예림리 밀양다리에서 헤어졌다. 이종암은 밀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떠났고 성공소식은 신문에서 듣기로 하였다. 정말로 의열단원 다운 치밀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지금 지명수배자가 아니던가. 전직인 대구은행에서 거금을 빼돌려 상해를 거쳐 의열단에 합류하여 독립자금으로 보태고 또 제일 중요한 폭탄제조기술을 배워 만든 폭탄으로 많은 거사를 성공시키지 않았던가. 며칠간 최수봉과 지내면서 보여주었던 그의 치밀한 거사를 위한 준비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하였던 것이다. 또 밀양경찰서 투탄 후 예상되는 검거를 피해 미리 잠적한 것은 숱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수봉은 거사당일 아침에 우편배달부로 가장하여 경찰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평안도에서 우편배달부로 한동안 일을 하였기에 그 동작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경찰서 정문에는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순사가 경비를 서고 있는 게 아닌가. 정문 말고는 출입구가 없고 대낮에 높다른 담장을 뛰어넘을 수가 없으니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사전 답사를 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게 바로 우편배달부로 가장하여 출입하는 것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폭탄 두 개 중 크고 무거운 것은 우편행랑 밑에 종이로 살짝 가리고 그위에는 몇 개의 편지 봉투에 위조한 소인을 찍어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나머지 가벼운 폭탄 한 개는 만일을 대비하여 외투 호주머니에 넣었다. 정문에 들어서니 일본 순사가 막는다.


 “우편배달을 왔소까. 그런데 앞면이 없는 사람이네. 앞서 오던 배달부는 오늘 왜 안오넵까.”

 “하하, 그분은 집안에 초상이 나서 오늘 휴근이라, 보조원인 제가 왔습니다. 삼일장을 마치는 날에 다시 출근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어시요.”

 “요새 철저하게 검문검색을 하라고 하여 한번 행낭을 열어보시오.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서장의 특별지시사항이니까요. 안 그러면 안에 들어가지 말고 경비실에 두고 가셔도 됩니다.”

 “우편물에는 등기우편이 있어 수령자의 도장을 받아야 하니 들어가야 합니다. 문서 수발계가 어디에 있지요.”

 “허허, 일단 행낭을 열어보라니까요. 당신을 믿지만 규정이니까 이해를 하시오.”

 “그럼 열어 보여 드리리라. 자 보시오. 우편물이지 않소. 참 나으리도 너무 철두철미합니다.”

 “그런데 행낭이 묵직해 보이는데 소포도 있소까. 그것도 한번 보여주시오.”하고 일본 순사가 말하니 정말 위기일발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급하게 헛기침을 크게 세 번을 하니, 맞은편 골목에서 돌멩이가 여러 개 날아온다. 그러자 순사들은 돌을 던진 사람을 잡기 위해 정문 밖으로 나가면서, 최수봉이 보고 그냥 들어가라고 하여 첫 관문을 통과하였다.


 경찰서로 들어와서 사무실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서장 주재로 간부들과 순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었다.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막힌 상황이기에 그의 마음은 벌써부터 고동쳤다. 그는 제일 가까운 유리창가로 다가가서 창문을 열기 전에 우편행낭 밑에 들어있는 폭탄을 슬그머니 꺼내어 손에 쥐는 순간, 뒤에서 순사 한 명이 골마루를 지나가는 게 아닌가. 그에게 급히 다가오기에 그는 미처 창문을 열 겨를이 없어 힘껏 유리창을 향하여 손에 들고 있던 폭탄을 안으로 던졌다. 그 폭탄은 유리창을 깨고 날아가 경찰 간부의 어깨에 맞고 바닥에 나뒹굴었으나 불발탄이 되었다. 안에서는 놀라서 우왕좌왕하고 바깥으로 순사들이 뛰쳐 나왔다. 수봉은 다시 남은 한 발을 꺼내어 쫓아오는 왜놈들에게 던졌다. 그 폭탄은 다행히 폭발하였고 요란한 폭음을 내며 사방을 진동하였다.


 다음 날 밀양경찰서 투탄거사에 대한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여 부산경찰서폭탄사건 이후 3개월 만에 일어났다고 대서특필되었다. 상해에서 김원봉은 그 소식을 다음날 늦게 전신으로 들었다.

 “석정, 밀양경찰서가 폭탄을 맞은 모양이네. 내 고향 밀양에서 밀양사람에 의해서 폭탄을 터뜨렸으니 감개가 무량하네. 최수봉의사가 신변이 걱정이 되네, 곧 소식이 오겠지.”

 “약산, 이번 거사는 왜넘들의 허를 찌른 기막힌 타이밍이었네. 이제는 도시의 경찰서 말고 읍내 지서에서도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으니 왜넘들이 발을 뻗고 잠을 자기가 힘들 것이네.”하고 석정 윤세주가 말을 한다.

 “이것은 이종암의사의 치밀한 계획이 이루어낸 쾌거가 아니겠는가. 밀양으로 내려갈 때 의열단창단선언문도 갖고 가서 거사 당일날 시내 중심가에 뿌리라고 하였으니 우리들이 주도한 거사라고 알게 되겠지. 안 그런가.”

 “석정, 밀양경찰서라면 우리들이 어릴 적에 놀던 남천강가에 있지 않던가. 그 폭탄의 웅장한 울림이 밀양주민들에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신호가 아닐까 싶네.”

 거사는 요인 살상이라는 점에서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웅장한 폭음으로 잠자는 민중을 깨어나게 한 점에서는 성공이었다. 그 폭음은 산사의 범종소리 나 교회의 종소리 보다 더 거룩하고 장엄하였으니 최수봉은 억울해할 게 없었다.


 이윽고 부산지방법원에서 1심이 열렸고, 수의를 걸친 최수봉은 당당히 걸어 나와 피고석에 앉았다. 검사의 심문이 진행되고 방청석에는 많은 참관인 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먼저 검사가 심문을 하니 최수봉은 당당하게 응답한다.

 “피고인은 무슨 이유로 경찰서를 폭파하려고 하였는가. 인명 살상을 기도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것은 죄상이 무겁다고 여기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요. 나는 강도를 몰아내기 위해 정당방위를 하였소. 잘못은 그대들 침략자인 일본이 아니겠소.”

 “이런 무례한 자를 보았나. 우리 일본을 강도라고 하다니, 조선을 품어 안아 내선일체로 함께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무례하기 그지 없군. 진짜 불령선인이로고.”

 “나는 의열단원으로 의열단창단선언문을 지금도 가슴에 품고 있소. 그 선언문은 단재 신채호선생이 지은 것으로 모두 다 사실이며 글귀 하나하나 마다 우리 조선인의 정당한 항변이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하기사 조선어를 모르니 읽지를 못하는 모양이오.”

 “칙쇼, 이 무례한 자가 있나. 재판장님 더 이상 피고인이 늘어놓는 궤변을 들을 수가 없으니 최고형으로 언도해 주십시요. 이자는 보통학교 때 천황폐하를 모욕한 죄로 퇴학을 당한 아주 불순한 죄인입니다.”이렇게 심문은 끝나고 1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


 삼랑진의 연인인 김문기는 최수봉이 1심 판결을 받고 난 후 식음을 전폐하는 단식에 들어갔다. 주변에서 아직은 목숨이 살아있으니 광복이 오면 풀려날 수 있으니 단식을 중단하라고 권유하였다. 김문기는 그 말에 희망을 가지고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부부일심동체라더니 아직 혼례를 안 올린 그 두 사람 간에는 부부의 연이 이미 형성되었던 모양이었다.

 최수봉의 대구복심법원에서의 심문장면이다. 검사는 무기징역이 가볍다며 심문을 벌인다.

 “재판장님, 죄인 최수봉은 폭탄을 사용하여 경찰서를 폭파하였으니 최고형으로 언도해 주길 바랍니다. 죄인은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내가 강도에게 빼앗긴 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게 죄가 되겠는가. 나는 거사가 성공하면은 그 자리에서 한발 남은 폭탄으로 자폭하려고 하였는데 불운하게도 성공하지 못해 너무나 억울하다. 나는 생명을 구걸할 생각이 없으니 알아서 해라.”

 “바가야로, 죄인이 갈수록 하는 말이 가관이구나. 1심에서는 천황폐하를 모욕하더니 이제는 반성하기는커녕 실패한 것이 억울하다고. 재기불능인 불령선인이로고.”하고 검사의 심문이 끝나자 재판장은 사형을 언도하였다.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요, 자신들이 만든 제멋대로의 법으로 사형을 내렸으니 진리를 말한들 들어줄 위인들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여 최수봉은 속전속결로 사형이 집형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원봉은 침통하게 흐느끼면서 말을 한다.


 “석정, 최수봉의사가 자랑스러운 밀양의 아들로서 거사를 펼쳐 왜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의열의 투혼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자랑스럽네. 하지만 내 마음은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서 말을 잇지 못하겠네. 내가 앞장서서 그를 사지로 내몰았으니 어찌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약산, 수봉이는 내하고도 친한 사이이었는데 그 자신이 원했던 길이고, 언젠가는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보네. 다행히 고향 밀양에서 거사를 일으켜 밀양사람들의 호국정신을 만방에 알린 셈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하나 있네.”

 “그 안타까운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삼랑진의 연인에 관한 일인가. 의사는 사랑을 하여서는 안된다지만 어찌 그것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약산, 그것 보다도 그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아닌가. 아직 혼례를 안 올린 정혼관계이지만 부부의 연이 맺어졌다고 느꼈는가 봐. 정말 슬픈 이야기이네.”하고 김원봉과 윤세주는 최수봉과 그 연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자책하였다.


 최수봉의 사행집행 소식을 전해 들은 연인 김문기는 희망이 물거품이 되자 어두운 밤을 틈타 최수봉과 자주 만나던 강가로 나갔다. 그녀는 같이 앉아 손을 잡고 이야기하던 바위 위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강물에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그녀가 죽고 난 후 얼마되지 않아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날이 흐리고 안개 낀 날에 삼랑진 뒷기미나루 뒷산에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아리랑이 구슬프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님께서 가신 길은 장대한 길이었네요~

이 몸도 그대 따라 강물 따라 흘러가겠소~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이렇게 애절한 가락의 아리랑이 소문으로 퍼져나가니, 밀양주민들이 삼랑진 뒷기미나루에서 매년 최수봉의사의 기일에 합동추모제를 올리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칠월칠석날에는 뱃사람들이 용왕제를 올리게 되었다. 그 후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이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뒷기미나루에 이르면 뱃사공들이 그 구슬픈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이 슬픈 아리랑의 소문은 머나먼 중국땅으로 퍼져나가 밀양아리랑을 본떠서 <광복군아리랑>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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