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발생한 산불에 얽힌 뒷 이야기
분노의 산불
여수마을은 아름다운 곳이다. 이름 그대로 물길이 아름답고 산들의 이름도 아름답다. 맞은편 산이름이 옥산이라고 하여 옥을 갈아놓은 듯하고 위쪽은 화악산이 있어 꽃바위 같다고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여수마을이라기도 하고 옥산마을이라고 하는데 물과 산이 다 아름다운 마을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강가에는 빈지소라는 아름다운 소(沼)가 있고, 저 위쪽 화악산 자락에는 반딧불마을이 있어 산과 강에서 보내주는 아름다운 풍경은 이 마을의 자랑거리이기도 기쁨이기도 하였다. 이 마을 이름처럼 자연을 닮아 사람들의 마음도 아름답고 행실 또한 아름다워 외지에서도 한번 살아보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근심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가, 항상 평화만 있는 게 아니던가.
어느 날 여수마을에 한 노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 공양을 나왔다. 탁탁탁 딱딱딱하면서 목탁을 계속 두드리니 집안일을 하던 고정댁이 대문간으로 급히 나와서 여쭙는다.
“스님은 어느 절에서 나왔는가요. 요새 탁발을 나오는 스님이 찾아보기가 힘든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가요. 요새 우리 동네가 지금 많이 어지럽습니다.”
“저는 표충사에서 나온 노승입니다. 시주를 바라고 나온 것보다는, 지금 많은 농민들이 화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일부러 이곳을 찾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이 무너지는 농민들을 보고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고자 나왔지요.”
“그러시군요. 저희 농민들은 지금 화가 많이 나있습니다. 아무리 외치고 싸워도 이길 수도 없고, 오히려 마음만 상하고 가슴에 부글거리는 분노로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무슨 전생에 죄를 지었기에 우리 동네가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참담하기만 합니다.”
“개인이 전생에 죄가 없더라도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지요. 그것은 공동체가 지은 공업(共業)이라고 하는데,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일부 섞여 있어서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참다운 사람은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것을 인과응보라고 하지요.”하고 탁발을 하고 골목을 벗어 나갔다. 여수마을 주민들은 지금 화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크게 화나게 하였을까?
고정댁은 여수마을에서 좀 떨어진 고정마을에서 시집을 왔다. 사실상 같은 면에서 왔기에 여수마을은 고향이나 다름이 없었고 이웃들도 옛날 장에 오가다가 만나서 그런지 친근하게 지냈다. 친정집은 그런대로 집안사정이 괜찮아 큰 고생은 하지 않고 성장하였다. 여수마을에서 대대로 반시감나무 농사를 짓는 집안으로 시집오고 난 뒤부터 고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산중턱을 개간하여 윗대로부터 심어놓은 감나무가 큰 수입원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봄이 오기 전에 경운기에 비료부대를 실어서 감나무에 뿌려야 하고 감꽃이 피고 나면 약제를 분무기로 몇 번이나 쳐야 했다. 부부간에 의논이 맞아 그 감밭을 서로의 이름 앞뒤 글자를 따서 농장이름을 지어 불러 서로의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그 농장은 열심히 노력한 땀의 보답으로 풍성한 수입을 올려주었다. 영농수입을 꼬박꼬박 저축하여 땅을 늘리고 또 자녀들의 공부도 잘 시켰다.
그 마을에는 고정댁과 친하게 지내는 여인들이 몇 명이 있었다. 소위 58개띠라고 하는 동갑내기로 서로 좋은 일에 축하해 주고, 굿은 일에는 애환을 나누기도 하였다. 안인댁도 인근 마을에서 시집왔고, 유천댁도 그러했다. 안인댁의 남편은 아삭이 고추재배 장인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하며 고추를 키우고 출하하여 고생한 만큼 수입을 올려 잘 살아갔다. 안인댁은 걸쭉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잘 잡아나가 약방감초 같은 역할을 하였다. 유천댁은 억척스러운 여인으로 시어머니를 잘 모시는 효부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단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어 서러운 입장이지만 또 일찍 홑몸이 된 시어머니를 눈치도 안 주고 친정어머니 대하듯 하였다. 또 연장자인 가실댁도 홑몸이지만 아들이 자주 와서 농사를 도와주니 편안하게 살아갔고, 연하인 아낙네들의 행실을 바로 잡아주는 맏언니 같은 역할을 다하였다. 그들은 여수마을을 사랑하고 지키며 고생을 행복으로 만들어 가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크게 웃을 일도 울 일도 없지만 한 번씩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어 나갔다. 그 네 명의 여인들 중에서도 고정댁은 세상 돌아가는 정보도 알아와서 전해주고 부당한 일에는 언제나 앞장을 설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조금 떨어진 외딴곳에는 도시에서 귀농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여수마을에 정착하려 인심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마을 일을 도왔다. 그의 아내 되는 성산댁은 고정댁과 뜻이 맞아 부녀회 활동을 열심히 하였고 밀양시내에 시민단체 모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한 대가로 반시 감농사와 아삭이 고추 재배농법을 배워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여수마을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자기 친인척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고 무난히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주었다.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면 달집을 태우고 잔치를 벌이며 삶의 즐거움을 함께 구가하였다.
최근 밀양에는 이상한 분열과 반목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소문이 무성하여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보이지 않은 소문은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와 생존의 터전을 황폐화시킬지도 모른다. 산업화로 상대적으로 풍족해진 삶과 이기심이라는 내부의 적이, 어려운 시기에 단합하던 그들의 공동체를 붕괴시킬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소문이기도 언젠가는 다가올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그 소문은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고, 주민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서서히 뱀처럼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에 아비규환의 원성과 폭력을 수반한 무서운 흉기가 될지도 모른다. 누구는 아는 듯, 나머지는 모르는 듯, 소문은 조금씩 그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설마 그랄라꼬, 그러면 가만 안있을끼다. 저그들도 민심이 무서운 줄 알낀데.”
“양보해 주는 대신 무슨 지역사업을 넘가준다 카기도하고, 주민들 의견도 안 듣고 저그 맘대로 갖고 놀고 있네.”하고 여수마을 아낙들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무슨 큰일이 벌어지기 직전인 모양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항상 불행은 소문 없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손을 쓸 겨를을 주지 않고, 그 후폭풍이 지나간 뒤에야 아차 하면서 후회를 하지 않았던가. 산업화시대는 다수의 편의를 위하여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하였고, 한쪽의 눈물을 먹으면서 성장하지 않았던가. 약한 이웃을 희생시켜 공생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합리화하지 않았던가. 또 이익이 되는 사업은 힘 있는 정치가나 유지들이 정보를 먼저 알아내어 사익을 챙기지 않았던가. 앞에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변절을 하여 이익을 챙기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참으로 믿음이라는 게 끝까지 가봐야 믿을 수가 있으니 믿는다는 것은 속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월요일 아침에 밀양시청 회의실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밀양시장과 밀양경찰서장, 경남경찰청기동대장과 휘하 간부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밀양경찰서장님과 경남기동경찰대장님을 모시고 특별대책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하고 밀양시장이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아시다시피 우리 밀양주민들은 다른 지역과 달리 자존심이 세고 투쟁정신이 강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런 특성을 참작하여 대응을 해주기 바랍니다.”
“사실 여기가 독립투쟁의 본향이 아닙니까. 일제와의 무장투쟁을 주도한 의열단의 핵심인물들이 밀양 출신이고, 지금 도로명도 백민로, 약산로, 석정로라고 붙여져 있으니 이점 참작하시기 바랍니다.”하고 시장이 간단하게 말을 마치고 밀양경찰서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밀양시청 회의실에서 대책회의가 끝나고 그것을 시행하는 세부 대응지침이 은밀히 하달되었다.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말하기 곤란한 내용은 문서로 남김없이 구두로 지시를 내리려는 참이었다. 경찰서장과 기동대장이 참석한 것과 시장이 의열단이 어떠니 하는 것을 보니 특별한 대책회의가 맞는 것 같았다. 밀양시장이 침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인 모양이었다. 경찰서장이야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에 밀양시장처럼 민심을 살필 필요는 없었다. 그러기에 시장이 밀양이 기질이 센 고장이니까 참고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 특별한 시책은 쉽게 처리하기가 힘든 무거운 내용이 들어있지 않으면 그렇게 침울하고 엄중한 분위기가 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아이구, 참으로 안 됐네. 보라마을에서 한 노인이 분신자살을 했다꼬 소문이 자자하네.”
“나이가 칠십을 넘은 노인네가 자기 논에서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카네. 참 끔찍하게 시리.”
“노인이 하는 말이 그럼 내가 죽으면 해결될라나 하길래, 그 넘들이 또 빈정거린 모양이야.”하고 아낙네들이 나눈 이야기였다.
분신자살한 이씨 노인의 죽음은 입으로 퍼져나갔지만, 지역신문에만 조그맣게 나오고 말았다. 사건의 파장을 우려하여 언론통제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그 사실은 차츰 퍼져나갔다. 어찌하였기에 노인이 울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단 말인가. 죽음으로써 잘못을 바로 잡아보겠다는 그 정신은 애절하기도 비장하기도 성스럽기도 하였다. 목숨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으며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키려는 그 가치는 귀중한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자신은 떠나가지만 남은 사람들은 피해를 보지 않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는 희생정신이라고 할 것이던가. 조국 광복을 위하여 폭탄을 던졌던 의열단의 의기를 닮은 것인가. 밀양시장이 대책회의에서 언급했던 그 기질이 분신이라는 수단으로 증명된 것이던가.
“이씨 할배의 죽음으로 중단될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한다카이 우찌 된기고.”
“이제는 고정마을을 넘어 우리 여수마을도 곧 시작된다 카이, 농사일도 있고 한데 정말로 난감하데이.”
“우짜건노. 단합하여 싸워야제. 이씨 할배의 죽음을 봐서라도 가만히 있으면 되것나.”하고 아낙네들이 마을 어귀에서 나눈 이야기였다.
이제 산외면을 넘어서서 고정마을까지 작업에 들어갔다. 헬기가 무서운 굉음을 울리고 날아간다. 그 무섭기도 한 작업이 커다란 뱀이 허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뱀이 나아가는 길은 엄청나게 나무가 사라져 버렸고, 뱀이 지나간 흔적은 숲을 생채기를 내어 살점을 아프게 도려내고 그 몸통에 어마무시한 쇠말뚝을 박았다. 땅의 신음소리는 헬기의 굉음에 묻혀버리고 벗겨진 피부는 붉은 살점을 망연자실하게 드러내놓았다.
산속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산새들과 바위틈에 단란한 신방을 마련했던 다람쥐와 수많은 개미들과 풀벌레들은 주소지를 이전해야 했다. 어디서 받아줄는지 알 수 없는 방랑길을 하염없는 눈물로 재촉해야 했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부둥켜안고 해가 저물기 전에 안식처를 만들어야 했다. 농민들이 맞은 날벼락을 산새들과 산짐승도 대책 없이 떠안아야 했으니 자연은 서러워서 울고 있었다.
“아이구, 이번에는 고정마을에서 또 한 노인이 농약을 묵고 죽었다카네. 와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질꼬.”
“누구라던가. 혹시 고정댁 집안은 아닌지 모르것네. 참말로 힘없는 노인들이 견디기가 힘든 모양이네.”
“우리 집안은 아니고 산 밑에서 돼지를 키우는 어른이 맞데. 그분은 어릴 적부터 잘 아는데 군대도 해병대에 갔다 오고, 항상 나라에 애국해야 한다고 말하던 착실한 분이신데.”하고 고정댁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한다.
“아마 돼지 축사가 보상도 없고, 농협에서 땅값이 하락하였으니 대출금을 일부 갚아라 하고, 돼지가 임신을 못하게 되니 어쩌니 하는 풍문으로 큰 걱정을 하셨다 카데.”하고 아낙네들이 일터로 나가면서 나눈 이야기였다.
또 밀양이 발칵 뒤집혔다. 불과 1년 사이에 또 한 명의 노인이 세상을 등진 것이다. 이번에도 밀양은 뒤집혔지만 뉴스는 별로 없고, 죽음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사망원인은 가정불화와 최근 돼지값 하락으로 세상을 비관하여 음독했다는 자작소설이 경찰조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 약해지는 게 사람이던가. 참을 수 없는 울분을 삭일 길이 없기에 술 대신 농약을 마셨으니 인간은 생명보다도 의로움을 먼저 찾는 존재인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후대를 위해 미래를 설계했지만 나라는 그를 존대해 주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진실을 왜곡하여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죽은 자는 말이 없더라도 자식들은 불효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아! 이것들이 저그 부모도 없나 무지막지하네. 경찰은 순진하여 다소 덜한데 용역이란 것들이 악질이네.”
“할매들이 크게 변을 당한 모양이더라. 웃옷을 벗어버리모 경찰이나 용역들이 민망하여 물러설 줄 알았는데 웬걸 그냥 팔과 두 다리를 들어 짐부리듯이 내던졌다 카데.”하고 아낙네들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이제 농성투쟁은 이제 할매들에게로 바통이 넘어갔다. 그간 두 명의 할배들이 분신하거나 음독자살하였는지라 그 한을 할매들이 나서서 씻어주려고 하였다. 생계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기도, 누구도 풀어주지 못한 두 할배들에 대한 추모의 항쟁이기도 하였다. 그에 비례하여 경찰과 용역들의 대응도 강력하였다. 용역들이 공사장에서 철야 농성하는 주민들을 들어내기 시작하였다. 집달리가 가재도구를 강제로 차압하여 집행하는 것처럼 여인들을 무슨 물건 취급하였다. 그것에 대한 실상이 매스컴을 통하여 번져나가자, 시민단체들의 참여가 급격히 늘어나갔다. 그에 비례하여 경찰버스의 숫자와 병력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중립이 아니고 한쪽 편을 들어준 공권력 앞에서는 지고 마는 투쟁이었다. 정부에서 하는 말이 ‘애국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드린다’는 괴이한 말을 만들어 가면서 농민들의 속을 뒤집었다.
“평밭마을 한씨 할매가 크게 다쳤다 카데. 그라고 우리 마을 고정댁도 반병신이 됐다 카데이.”
“고정댁은 다리가 뿔라 지고 허리가 삐끌어져 병원에 입원하여 서방이 시어머이 밥을 대신 챙겨준다 카더라.”
“그런데 병원에는 함께 열심히 투쟁활동하던 성산댁 내외가 안 다녀가고, 요새 농성장에도 안 나타나는 게 좀 이상하다 카더라.”
“아마 겁을 먹었는지, 땅을 후하게 보상해 줘서 그랬는지 아무도 모르제.”하고 평소 말이 없던 가실댁이 말을 한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열성적이던 투쟁동지인 성산댁 내외가 농성장소에서 안 보이고 자기 농사관리에만 열심이다. 많은 주민들이 갈라 치기 전술에 걸려 찬성으로 돌아섰고, 어느 집은 후한 보상금을 받았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었다. 돈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은 돈이 주어지면 끝내고, 마을을 사랑하고 선산을 지키려는 사람은 외압과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는 법이다. 그들은 변절은 돌이킬 수 없게 후대에서 받게 될 후환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친넘의 자석들이 허튼짓을 하고 있구마이. 주민들과 잘 합의하여 국책사업에 협조해 주기로 결의했다고, 대형 현수막을 걸고 기자들을 불러와 사진을 찍고 갔다 카네”
“저그 멋대로 마을 사람들과 합의도 안 하고, 왜 그렇게 바쁘게 퍼뜩 사진 찍고 현수막을 걷어 버렸을꼬.”
“이제 우리 마을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깨져 버린 것 같애. 그리 쌍욕을 하고 피를 흘렸는데 우찌 다시 볼끼고. 세월이 흘러도 화해가 안될끼다이.”
“무슨 마을발전기금에 눈이 팽 돌아버린 게 큰 문제지. 전체 주민 동의도 없이 함부로 자매결연을 한단 말이고. 경우에 안맞지.”하고 아낙네들이 나눈 이야기였다.
송전탑은 수많은 진통과 갈등을 거쳐 많은 통과마을 주민들의 원성과 희생을 먹이로 하여 탄생하였다. 진압을 주도한 경찰간부들은 영전하고 또 승진하였다. 그러나 처절하게 자빠진 농민들은 육체적인 상처는 물론 분노와 허탈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는 장애를 안고 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거꾸로 허탈감과 자책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도 새로 생겨났다.
“어이구, 밀양이 떨어졌다 카네. 다 된기나 다름없다 카더마는 허무하게 되었구마이.”
“가덕도도 떨어졌고, 김해공항을 확장하여 신공항으로 한다카데이.”
“그라모 큰일 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것네. 하남 쪽에 줄을 서서 땅을 산 사람들은 망하게 생겼구마이.”
“들리는 소문으로는 밀양의 유지들과 한전 앞잽이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되어버렸다카데.”
“정말 꼬시네. 우리사 송전탑으로 농지가격이 떨어진 것으로 재산피해가 있지만, 지돈 사돈팔촌 돈 다 끌어모으고 빚까지 내서 투기한 사람들은, 우리 송전탑 투쟁한 할배들이 농약을 마셨듯이 그렇게 안될란가 모르것다이.”
“저 웃마을에 사는 김씨도 밀양이 확실 하다카면서 투자했다고 떠벌이던데, 아마 지금 피똥을 싸고 있것제.”하고 입담 좋은 안인댁이 깔깔거리며 말한다.
“내가 그때 자빠져서 아직 다리가 안 성하고, 허리를 다쳐 척추가 뒤틀려 뒷모습이 보기가 영 안 좋은데, 그넘들 낭패본거 생각하면 속히 다 후련하네.”하고 고정댁이 아픈 허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크나큰 태풍이 휘몰아치고 갔지만 마을은 가을걷이를 하는 등 일상으로 돌아갔다. 세월은 태풍에 찢어진 감나무가 새순을 올라오게 하듯 상처를 치유하여 나갔다. 그러나 가슴속에 파묻은 실망과 배신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잠복해 있었다. 고정댁과 열심히 투쟁에 참여했던 성산댁을 보고 한 이야기들이었다.
“어이구, 저 외딴집 신자가 우짠일이고, 이리 멀리까지 다 나오고. 너희 아부지와 엄마는 잘 지내나.”
“강아지 보고 신자가 무슨 말이고. 신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
“같이 반대투쟁 열심히 하다가 한전 편에 붙었으니 배신자가 아니것나. 그래서 그 집의 아들 같은 개라고 신자라고 불렀지.”
“그 사람 성은 안 붙이나 잘못하다간 엉뚱한 사람 성을 붙여 오해받을 수도 있것네.”
“배신자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피해 볼까 봐 그냥 성은 빼고 신자라고 부른다 아니가.”하고 한때 동지로 지내다가 갈라서서 앙금이 많은 고정댁이 말한다.
"참, 그 사람은 우리 동네에 이사 와서 고추농사와 감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주고 서로 참 친하게 지냈는데 우찌 그렇게 변해버렸는지 이해가 안 가네. “하고 조용하던 유천댁이 안타까운 듯 말한다.
뜻을 함께하며 긴 시간 투쟁했던 동지는 돌아서 버리고, 주민들은 찬반으로 갈려 마을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국가가 깨뜨려버린 마을 공동체는 다시는 봉합하기 어렵도록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래도 회유와 매수를 견뎌낸 소수의 연약한 여인들을 중심으로 한, 여수마을의 정기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희망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돌이켜 본다.
“정말로 그리 큰 산불은 처음 보네. 5월 말인데도 닷새 간을 쉴 새 없이 그 넓은 산을 태워버렸제. 저 밀양시내하고 안인리 쪽 하고 시청 뒷산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카데.”하고 안인댁이 난리가 난 듯이 말을 한다.
“나도 지켜봤는데 바람이 너무 씨게 불어 헬기가 뜨기도 힘들고, 생나무가 타는 바람에 연기도 자욱하여 불을 끄기가 힘들었다고 카데. 소방서, 시청직원, 주민들이 달겨 붙어도 어림도 없이 계속 우리 마을 쪽으로 넘어오기에 많이 불안하더라구.”
“우리 시어머무이가 소방헬기 소리를 듣고 깜짝깜짝 놀래면서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시데. 아마 송전탑 공사 때가 생각서 그런가 모르제. 그때는 매일 우황청심환을 자셔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했었제.”
“말도 말아. 나도 몇 년 전 철탑공사투쟁하던 때가 생각나더라구. 참말로 그때는 울어도 소용없고 발버둥 쳐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게 정말 눈물 나더라구.”하고 서로 간에 오간 이야기였다.
이제 소방헬기의 굉음은 소름 끼쳤고 온 정신을 흔들어 놓았고 그 쓰라진 과거를 생각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예전에 땅에는 경찰이 하늘에는 헬기가 연약한 농민들을 압도하며 진로를 개척해 나갔었지. 연약한 여인들의 울부짖음도 굉음에 묻혀버리고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았었지. 신문과 방송은 어쩔 수 없는 큰 힘에 눌렸는지 침묵을 지켰었지. 수많은 할매들이 놀라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불면의 밤을 보냈었지. 애국시민이라는 훈장을 들이밀고 눈을 감으라고 다그쳤었지. 매일 해는 떴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울분으로 항상 어두웠었지. 그래도 살아가야 하기에 힘없이 호미를 쥐고 일터로 나갔었지. 그 호미채로 거대한 벽을 깨뜨릴 수가 없었었지. 오직 산들바람만이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었었지.
“올해 초에 강원도 산불 때 마을까지 휩쓸어 가는 것을 보고,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실감이 나더라 카이.”
“그런데 한전에서는 송전탑이 녹아내릴까 봐 비상이 걸리고 다른 지역의 소방차를 많이 불렀다 카더만. 송전탑 하나 세우는데 웬만한 대도시의 아파트 몇 채 값이 드니 그럴 만도 하것제.”
“해서는 안될 말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 넘의 송전탑에 불이 붙어 싹 녹아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만. 그때 당한 것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리네.”하고 그때 투쟁하다가 크게 다쳤던 고정댁이 말한다.
“그런데 희한한 게 그때 강풍이 불어 산불이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갔는데 우리 마을 하고, 산 너머 평밭마을은 아무 피해도 없었던 게 정말 신기하더라구. 한전에서 송전탑을 보호하려고 필사적으로 산불을 진화하려는 것도 있었지만서도.”
“한전에서는 당연히 그랬을 테지만, 무슨 알 수 없는 조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데. 송전탑이 지나가는 마을 말고 다른 데는 선산도 불타고 과수원도 불타고 산소도 불타고 낭패를 보았다고 카더구만. 그게 하늘의 뜻인가 생각도 해보고 했는데 말이제.”하고 열심히 투쟁한 고정댁이 열을 올리면서 말을 한다.
“송전탑 설치 여론조사 할 때 찬성표를 던져 우리들의 투쟁농성을 강 건너 불구경하던 동네들이 오히려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카더라.”하고 유천댁이 말한다.
“아, 그래. 정말 꼬시다. 그 나쁜 밀양유지하고 찬성표를 던져 우리들 마음에 상처를 준 마을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카니 하늘이 벌을 내린 게지. 우리가 오히려 강 건너 불구경한 셈이네.”하고 안인댁이 침을 탁 뱉으면서 말을 한다.
“그래 말이제. 우리 동네 송전탑앞 코앞에서 진화가 되었는데, 만약 거센 불길이 송전탑을 덮쳤다면 분명히 녹아내리고, 밧줄보다 더 굵은 전선으로 다른 송전탑도 연달아 넘어졌다면 엄청 피해가 컸을 낀데, 송전탑은 밉지마는 나라를 위해 다행이라고 봐야제.” 매사에 신중하고 말수가 적은 유천댁이 말을 한다.
“그라고 보이, 그 미운 송전탑이 우리 마을을 지켜준 셈이네. 한전 지들이 지은 송전탑을 보호하려다 보니 덤으로 덕을 보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제.”하고 안인댁의 말을 끝으로 자신들의 일터로 발길을 옮긴다.
밀양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특이한 경우였다. 그것도 건조기인 겨울과 초봄이 아닌 5월 말에 불이 났기 때문이다. 역대 산불은 5월 중에 발생한 경우는 눈을 닦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산불은 습기 속에서 쉽게 꺼져야 하는데 오히려 생나무가 타서 발생하는 연기와 수증기로 인해 진화작업을 어렵게 하였다. 꺼질듯하다가 다시 붙어 나가고 요리조리 방향을 틀며 무슨 뱀이 기어가듯이 기이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밀양은 물론 경남과 경북에서 지원 나온 소방대원과 공무원들을 대거 투입하였지만 자욱한 연기 때문에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보통 한나절이면 끝나야 하는 진화작업이 근 닷새나 걸렸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 불길은 무슨 이유인지 가다가 서다가 웃다가 울다가 무슨 굿판을 벌이듯이 희한했다. 소방헬기 수십대가 물을 뿌리고 뿌렸지만 오히려 물을 머금고 불붙은 나무들은 무슨 숯가마불처럼 끈질기고 맹렬했다. 밤이 되어 진화가 뜸해지니 수십 마리의 뱀들이 새끼를 쳐서 고개를 쳐들고 돌진해 왔다.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뱀들은 입에 불을 물고 휘황찬란하게 그림을 그리며 밤새도록 혀를 날름거렸다. 어쩔 수가 없었고 오직 하늘만이 그 불을 끌 수가 있었다. 그런 현상을 보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억측도 나왔다. 그것도 아랑이의 한이 맺혔느니 사명대사가 노했느니 하곤 말이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한번 들어보기로 하자.
산불이 난지 사흘 뒤에 밀양시청 문화관광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의 성명은 밝히지 않았고 발신지는 표충사 근방이라고만 하였다. 그 내용은 지금 즉시 아랑각에다가 다시 고유제를 올리고 무안 사명대사 비석에도 똑 같이 하라는 것이었다. 담당자는 내용이 다소 황당하였지만 민원내용이니까 과장에게 즉시 보고하였다. 그 내용을 보고 받은 시장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아마 비가 안 오고 가물 때에 기우제를 지내듯이 지금도 산불을 끄기 위해 기우제가 필요하니 타당성이 있다고 본 모양이었다. 그다음 날 밀양시청은 아랑각과 사명대사비에 조촐하게나마 고유제를 올리고 산불을 빨리 꺼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마 저 산불은 영남루 근방 산에서 불이 붙어 나갔으니 아랑이의 혼이 깃든 게 아닐까. 며칠 전에는 아랑의 제향이 있었제. 수많은 여인들의 눈물을 안고 송전탑이 세워졌으니까 말이제.”
“맞아, 우리 밀양은 여인들의 고장이 아니것나. 그런데 여인들을 무지막지하게 대했으니 아랑이가 눈물을 흘릴 만도 하것지.”
“나는 사명대사가 노해서 벌을 내린 거라고 보이데. 지금까지 밀양은 단합하고 화합하며 나라를 지키는데 먼저 일어서고 하지 않았등가. 그런데 저그들 이익을 위해서 송전탑에 눈을 감는 걸 보고 노하신 것인지 모르제.”
“그나저나 참으로 이상한 게 우찌 5월달에 산불이 난단 말인고. 분명히 길조는 아니고 무슨 불길한 조짐이라고 보이는데 앞으로가 문제이제. 송전탑으로 밀양이 분열되어 버렸으니까 말이제.”
지나고 보면 여인들 간에 오간 말들이 일리가 있었다. 수많은 경찰에 맞서서 싸운 여인들이 내팽개쳐져 울고불고 눈물을 흘렸으니 어찌 아랑이 가만히 있겠는가. 또 5월이 아랑제가 있는 때이고 6월이 현충일이 있는 달이니 아랑의 분노로 불붙은 산불은 다시 아랑의 눈물로 현충일 직전에 꺼져버렸으니 희생을 통한 미덕을 가르쳐 준 것이었던가. 아름다운 산야를 무서운 송전탑이 들어서 환경이 파괴되었으니 아랑이 어찌 가만히 있었겠는가.
그토록 단합이 잘되고 불의에 항거한 역사가 있는 고장이 이해관계에 갈려서 분열되었단 말이던가. 송전탑이 들어설 즈음에 무안에 있는 사명대사 땀바위가 흥건히 젖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무슨 뱀처럼 머리를 쳐들고 이리저리 번져나가는 산불은 정말로 기이하기도 하였었지. 뱀을 잡으려면 머리를 내려쳐야 하는데 그 머리가 한 개가 되었다가 몇 개가 되었다가 둔갑을 해버리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사명대사가 나서서 나라에 경종을 울리고 난 뒤에 또 나라를 위하여 감태나무 주장자로 뱀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둔갑한 뱀들은 근 닷새나 지나서야 사라졌고, 이미 산은 피로 물들고 다시 재가 되어버렸으니 언제 소생할 것이던가. 산불이 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비가 내렸기 때문이었다. 아마 아랑의 한이 도화선이 되어 붙어버린 산불은 탈만큼 타다가 한풀이를 다하고 난 후에 다시 아랑의 눈물로 꺼져버렸다던가.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울고 눈물을 흘리며 투쟁하였던가. 그것을 외면한 사람들과 그 와중에 잇속을 챙긴 사람들은 결국은 큰 낭패를 보았으니 사명대사의 주장자가 사정없이 후려갈겨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송전탑은 아름다운 산에 송곳처럼 이프게 박혀있고 그 송전선은 밀양여인들의 눈물을 타고 흐르고 있다
하늘을 쳐다보면 여섯 갈래 송전선이 무서운 765를 싣고 나른다. 밤이면 군데군데 박힌 송전탑 꼭대기에 설치된 항공표지등이 깜박거려 시선을 괴롭힌다. 옛날 가을밤에 하늘을 쳐다보며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도 볼 수가 없다. 하늘을 보고 빌며 꿈을 꿀 수 없는 삭막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낭만과 꿈이 사라져 버리고 가을밤 날아다니는 반딧불 대신 인공의 점멸등만이 깜박거리고 있다.
봄이 오니 진달래가 활짝 피고 개나리가 노랗게 물든 옥산은 아픈 상처를 동여매고 생명력을 서서히 되찾아 갔다. 먼저 풀이 돋아났고 다시 작은 나무가 생겨났으며 어디로 피해 가서 찾아왔는지 다람쥐와 산토끼들도 다시 돌아와서 신방을 꾸미고 있었다. 모두들 예전 같지 않은 풍경에 고개를 한 번씩 갸우뚱 거리며 자신들의 고향으로 다시 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때 산아래 있는 여수마을 강둑길로 탁발을 나가는 노스님이 강 건너 위대한(?) 철탑을 바라보며 허허허 웃으면서 허허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