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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15화. 회상의 벤치

어느 두 월남참전용사들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눈 이야기

by 벽운

회상의 벤치

중앙도서관 가는 길옆에는 사각진 벤치가 널려있고, 노인들이 그늘 밑에 놓인 그곳에 앉아 소담을 나누면서 온종일을 보낸다. 싸가지고 온 도시락과 함께 추억의 보따리도 풀어서 옛날을 반추한다. 그 사각벤치는 동서로 또 남북으로 등을 맞대고 이야기하기도 하니 중간에서 보면 좌우로도 그런 셈이다. 그들은 어깨를 맞대기도 하지만 등을 돌리고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군중의 흐름에 휩쓸려 가고 간혹 몇몇이 흐름을 거부하고 반항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리적 실향민이거나 마음의 실향민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그 모습을 취재하듯 훔쳐보듯 하는 관찰자들이다.


어느 날 서면에 있는 병원에 구부정한 자세로 문을 들어서는 노인이 있었다. 그 병원은 정신신경과였고 젊은 아가씨와 가정주부와 무기력하게 보이는 청년 한명이 쇼파에서 고개를 푹숙이고 서로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선 노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주변의 분위기를 살핀다. 그 노인은 나이는 들었지만 기골은 보통 이상으로 장대했다. 그런데 표정은 푹 파인 눈시울 속에 근심이 서린듯 불안이 도사린 듯 불안정했다. 조용히 주변을 살피더니 구석 외진곳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먼저 온 가정주부가 문진을 마치고 약을 타가지고 갔고 다음 번으로는 아가씨가 창백한 얼굴을 옷깃으로 가리면서 원장실로 들어가서 한참 있다가 나왔다. 나머지 맥이 빠진듯 빨래처럼 축쳐진 청년이 연이어 들어가서 제법 시간이 지나 나와서 약을 처방받아 갔다. 이제는 그 노인의 차례가 되었고 간호사의 호명에 깜짝 놀래며 원장실로 들어갔다.


“어르신은 어쩌다가 불면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계신가요. 연세도 드셨는데 좀 의외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흔한 증상인데 말입니다.”

“허허, 내가 요근래에 왕따를 당하여 친구가 없습니다. 왜그런지 나도 이해가 안갑니다.”

“노인들간에도 왕따가 있는 모양이시지요. 혹시 정치이야기 때문에 그런가요.”

“내가 요새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나 하다가 봉변을 당했지요. 틀린말은 아닌데 많이 억울하고 해서 맥이 탁 풀려 아무일도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 노인은 힘없는 얼굴로 하소연 하듯이 원장을 쳐다보았다. 약을 처방 받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목적이 전부 인듯이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었다. 아마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말하기가 어려운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노인은 우울증과 홧병에 시달리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느 날 남천성당 고해성사실에 어느 노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체구는 좀 자그마하지만 얼굴은 이지적이고 자애롭게 보였으나 약간 그늘진 면이 있었다. 대기실에는 서로의 비밀을 유지하여 주기 위해 칸막이가 있었고 한명이 끝나면 다음 순번이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무슨 공개적으로 말 못할 일이 있는지 서로간에 노출되면 안되는 일이 있는지 비밀스런 장소였다. 어찌 나이가 지긋이 든 노인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던가. 병원에 가서도 해결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이라도 있다는 말이던가. 그 노인은 지팡이에 의지한채 조용히 성모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어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한다.


“자매분이시여, 어찌 연세도 드신데 빨갱이 소리를 듣고 사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월남전에도 참전하였다면서도요.”

“신부님, 저가 나이가 들고 나서 변심을 한것은 사실입니다. 얼마전 까지는 누구 못지 않은 반공주의자였거던요.”

“왜 변심을 하신건가요. 빨갱이 보다는 반공주의자가 안전하지 않은가요.”

“그게 다 나중에 물든 것인지 깨달은 것인지 알수는 없습니다. 단지 내 마음이 그길로 가기에 어쩔수가 없었지요.”


그 노인은 성당안에서는 자유를 느끼고 안심을 얻었지만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렇지를 못했다. 다수의 편에 서서 살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으련만 그는 그렇지를 못했던 모양이었다. 군중속의 고독인지 다수로 부터의 소외인지 스스로 자초한 구설수인지 묵언을 하지 않은 댓가인지 모두다 해당되는 것 같았다. 그 노인은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아직 그 고뇌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지어주는 약도 성당에서 들려주는 복음도 아직은 그에게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벤치 저벤치에서 엿듣다가 자리를 옮겨 해병전우회 모자를 쓰고 왁작지껄하면서 무용담을 나누는 칠십 대의 중노인들이 모여 있는 벤치로 다가갔다. 그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몇 개의 벤치를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좀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벤치로 살그머니 다가가 옆쪽의 빈자리에 앉았다. 내 나이가 그들보다는 좀 어리지만 모자를 벗어버리니 비슷하게 보였는지 눈치를 받지를 않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주변 분위기 맞지 않게 위험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병장, 우리가 월남전에 참전한지도 근 오십 년이 넘어버렸네. 그때는 팔팔하여 그 용맹으로 세상을 다 차지할 것처럼 하였는데 지금은 나이 탓인지 모르지만 의욕도 힘도 서서히 없어지네. 우리가 함께 싸운 그 전투를 생각하면 요새도 밤잠 자기가 어렵다네.”

“어허, 천하의 문병장이 어찌 그리 소심해졌는가. 그때 우리가 M16소총으로 갈겨버리니까 도망가서 땅굴로 숨어버리고, 다시 수류탄을 까서 던져버리니 잠잠하데. 그 베트콩들은 몸집은 작은데 신출귀몰하여 고전하였었제.”

“나는 그 어린 베트콩을 그냥 도망가게 놓아두어야 했는데 쫓아가서 사살한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리네. 그 공으로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지금은 집안에서 치워버렸다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대 전체가 파병되었고, 해병대이니까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생명이 아니었나. 또 머릿속에는 6.25를 겪어서 그런지 공산주의에 대한 분노도 있었고 말일세.”하고 문병장과 정병장이 월남참전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둘은 청룡부대로 파병되어 같은 소대에서 생사를 같이한 전우였다. 그 스무 살 갓 넘은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해병대에 입대하였고, 그의 부대 전체가 파병을 하였으니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다시 둘의 대화는 이어진다.

“어느 미국영화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었제. 참전 후 귀향한 한 미군 병사가 사슴사냥을 나갔는데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쳐다보는 사슴의 눈을 보고 총을 발사하지 않고 내려놓데.”

“문병장도 많이 센티멘탈하네 그려. 나도 그 영화를 보았는데 친구이자 전우가 귀국하지 않고 사이공에서 번돈을 자기에게 부쳐오는 것을 보고 그를 찾으러 가데.”

“오우, 정병장도 그 영화를 보았구만. 그들은 고향의 제철소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들인데 그중 한 명이 무슨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귀국하지 않고 도박판에 주져 앉았다는 것이제.”

“그를 구하려고 그의 친구가 사이공으로 가서 그를 설득하여 귀국시키려니 거절하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룰렛게임에 마주 앉았고 친구는 머리에 총알을 맞고 죽었고 그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데.”

“아이구, 정병장이 오히려 나보다 영화도 많이 보고 마음도 여리구만. 겉으로는 당당하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쓸쓸한 그림자가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는 것 같네 그려.”

“아이구, 문병장. 우리가 자발적으로 월남전에 가고 싶어 갔겠나. 처음 들어보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이며 베트콩이며 사이공이니 나트랑이니 다낭인지, 참으로 꿈속의 일 같더라구.”


문병장은 다낭 인근에 있는 호이안 기지에서 동트기 전에 UH-1H 헬기를 탔다. 먼동이 밝아오는 정글 위를 날며 엔진소리는 잠자는 산새들과 짐승들을 깨우면 어디론가 날아갔다. 어떤 목적지의 목표인지도 모르며 그냥 운명처럼 몸을 맡기고 M16 총부리에 턱을 고이면서 눈을 감고 착륙을 기다렸다. 안개가 낮게 깔린 정글은 위에서 보니 평화스럽게 보였으며 어머니의 품처럼 밀림을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고국에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잠깐 비치다가 눈앞을 스쳐가는 안개에 가려 금방 지워졌다. 몇 번이나 헬기를 타고 출전하였지만 그날따라 유달리 어머니가 그립고 동생들이 보고 싶었다. 또 어린 시절 마굿간에 키우는 어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이 그날따라 강하게 일어난 적은 없었고 가슴속에 오래 머물렀다. 소총을 쥔 두 손은 조금씩 떨렸고 왼쪽 가슴은 헬기의 엔진소리와 공명하여 잔잔하게 고동친다. 그는 과거로 잠깐 빨려 들어갔다.


부산항 3부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전송하던 수많은 여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맹세를 하였었다. 거대한 수송선에서 쳐다보는 천마산과 구덕산이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지며 부산항을 벗어나서 진로를 남쪽으로 돌렸다. 거대한 물보라를 남기며 푸른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선수를 바라보고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수많은 포말을 남기며 나아가는 선미를 바라보니 수송선은 말없이 엄숙하였다. 대한해협을 통과한 수송선은 이제 고국에게 부웅부웅 하며 뱃고동을 서너 번 크게 울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는 고국땅은 벌써부터 그리움을 잉태하기 시작하고 멀어질수록 어머니 손을 놓친 것처럼 불안해진다. 무사히 귀국선을 타고 다시 부산항에 입항할 수 있을런지 뱃머리에서 춤추듯이 날아가는 갈매기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름만 들어본 십자성이 밤마다 빛나는 월남땅! 가본 적도 없는 이름만 들은 그 북회귀선이 지나는 고구마처럼 길쭉한 지도 속의 땅! 자유를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참전하는가! 우방의 깃발아래 저 머나먼 이국땅으로! 가난한 조국을 위하여 뜨거운 피를 요구하는 자유의 십자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하고 독백은 이어진다.


문병장과 정병장은 같은 부대로 같은 수송선을 탔다.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정신무장을 하고 M16으로 몸을 무장하고 뜨거운 애국심으로 마음을 무장하며 조국의 부름에 대답하였다. 해병대에 입대하여 그의 부대 전체가 파병하게 되었으니 영광인지 불행인지 알 수는 없지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여야 했다. 그 파병소식을 편지로 받은 그날 어머니는 식음을 끊고 밤잠을 못 잤다고 하였었지. 어린 동생들만 어디서 배웠는지 자랑스런 청룡부대 용사라고 자랑을 하였었지. 모두들 귀신 잡는 해병으로 베트콩을 때려잡기를 응원하였었지. 그 자신도 젊은 피가 들끓어 불안감보다는 애국심으로 불탔었지.


나는 그 두 명의 월남전참전 용사의 대화에 끌려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옆에서 관찰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구애받지 않고 비교적 소신껏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참전용사들과 사뭇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기에 유심히 엿들었다. 다수로부터의 탈출인지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이단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다. 한 번씩 참전전우회원들과도 충돌하여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고착화된 이념으로부터의 탈출은 쉽지가 않고 알더라도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키거나 거짓 동조를 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다시 그 병장들의 대화는 이어진다.


“정병장, 내가 요즈음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있다네. 우리 고등학교 동기회에서 공산당을 성토하는 행사에서 앞장서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였거든. 그러니 나보고 좌빨이라고 하데. 그래서 동기회에는 안 나가기로 했다네.”

“문병장이 어찌 빨갱이라는 말이고. 월남참전에다가 무공훈장까지 받았는데 참말로 형편없는 동기회로군. 요새 자기와 뜻이 안 맞으면 보수꼴통이니 좌빨이라고 하니 소신을 내보이며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네. 똑 해방 후 사회현상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군.”

“그래 말일세. 나는 공산당을 무지 싫어하기도 하지만 죽으나 사나 반공을 외치는 극우도 그 못지않게 싫어하네. 정치하는 놈들은 죽으나 사나 좌니 우니 하면서 싸우니 어디로 숨어 버리고 싶다네.”

“그러면 혼자서 살지 말고 우리 둘이서 한번 자연인으로 살아볼까. 같은 집은 그렇고 조금 떨어진 곳에다가 초막을 짓고 왕래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이제 마누라도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삼시 세끼 차려주기도 꺼려하니 내가 산으로 간다면 대찬성일 것이라고 보이네.”


그둘은 이제 사회에서 설자리가 없었고 다수의 흐름에 거스른 대가가 도피처를 찾게 만들었으니 그것은 자연이지만 그 자연도 그들을 안겨줄지 장담할수가 없다. 만약 그들이 어긴 것이 사회법이라면 용납이 될수도 있지만 자연법이면 어디에도 머무럴수가 없는 것이다. 제일 편한게 즉각적인 자기 감정의 표출이지만, 사회는 때로는 침묵과 맹종을 미덕으로 삼고 있으니 원만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안주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험준한 자연에서 홀홀단신으로 정글의 법칙을 지키면서 생존한다는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진정으로 고독을 사랑하고 세속에 아무 미련도 없이 고죽처럼 고송처럼 살아갈 각오가 된 사람만이 가능할 것이다. 자연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큰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 작은 것이 큰것 보다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가능한 것이다.


“나도 베트콩을 제법 쏴죽였었제. 마을 전체를 불 지르고 남자들을 막 쏴 죽이지 않았었나. 그러니 한국군을 제일 두려워했고, 우리는 스스로 무적군대라고 자평하기도 하였었제.”

“다낭 사창가에서 하룻밤을 지낸 베트남 아가씨가 생각이 나고 혹시 내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르는 죄책감에 쌓여있네. 방송에서 ‘라이 따이한’이라고 나오던데 꼭 내 아이가 그중에 한 명 인지도 모르겠고 정말로 마음이 안 편하네.”하고 서로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두 사람은 이제 어느 사회에서 소외된 모양이었다. 왜 늘그막에 왕따를 당한단 말인가. 그것은 내재된 반항심리와 자신을 옥죄는 죄책감을 견딜수가 없어 하늘에 구원요청을 하였는데 돌아온 것은 다수로 부터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그들의 공동체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전체의 방향에 적극적으로 따르거나 아니면 침묵을 지키며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 그 둘은 그렇지를 못했다. 참전용사 답지 않게 연약한 인간성을 내보이고 자신들의 과거행적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은 조직으로 묶기를 좋아하는지 각자의 개성은 아랑곳없이 애국이니 충성이니 단결이라는 구호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문병장은 월남참전용사들에게서 전혀 들을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였다. 무슨 잘못된 정보나 책에서 찾은 내용인지 또 들은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는 그런 이야기가 일체 없었고 전우회에도 적극 협조하고 반공궐기대회에도 참가를 하지 않았던가. 그간 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난게 맞는것 같았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한번 지닌 이념이나 색깔은 잘 지우지를 않는데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문병장은 스스로 고난의 길을 찾아 가고 있었다. 왜 지지않아도 되는 십자가를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른단 말인가.


문병장이 탄 헬기는 몇 개의 낮은 산을 넘고 열대우림 속을 비집고 떠오른 태양을 마주 보며 낮게 날아가고 있었다. 헬기들이 일렬로 대형을 유지하며 날아갔고 또 산을 넘으면서부터는 속도를 늦추고 착륙을 준비한다. 그의 분대는 소대장으로부터 간단한 훈시를 듣는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위를 경계하며, 낮은 포복으로 엄폐물에 의지하여 명령을 기다릴 것.”이었다. 이윽고 헬기는 밀림의 조그만 마을 옆에 착륙하였다. 헬기의 프로펠러 굉음으로 마을의 닭과 염소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풀잎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여러 대의 헬기에서 소대원이 전부 내렸고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낮은 포복으로 마을로 서서히 접근하였다. 헬기들은 떠났고 그들은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며 위험물을 제거해야 한다. 자신이 살려면 어느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또 그들을 찾아서 죽음의 땅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때 산발적으로 베트콩의 AK소총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응사하여 M16이 요란하게 불을 뿜었다. 조금 후 공중에서는 미군의 팬텀기 편대가 나타났고 마을 뒤쪽의 동굴 부근으로 네이팜탄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 그 불길과 열기가 마을 쪽으로 확 밀려들어왔고 사람들과 가축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그때 어린 소녀가 손에 바나나를 쥐고 울면서 달려 나왔다. 문병장은 어린 여동생이 손에 고구마를 쥐고 울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이릴적 고향에서 키우던 어미소가 눈에 스쳐지나 가기도 닭들이 놀래서 지붕 위로 날아오르던 것이 환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마을은 조용해졌고 모든 것은 불길에 다 타버렸고 망연자실 퍼져 앉아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얼굴에 묻은 검댕이를 닦을 생각도 않고 울고 있었다. 남자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여자들만 보였다. 조금 있으니 UH헬기들이 그들을 실으려 날아와 착륙하였다. 그의 분대원들 중에 한 명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남겨두고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문병장을 비롯한 분대원들은 말을 하지를 못했고 양 무릎사이에 고개를 박고 흐느끼고 있었다.

부대로 돌아오고 나서 보니 그의 소대원 중에 몇 명이 보이지를 않았다. 작전을 나가면 자주 있는 일이지만 문병장은 그날따라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귀국선을 타야 하는데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제대말년에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또 무사히 귀국선을 탄다고 하더라도 그 끔찍한 장면을 지워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문병장은 마지막 작전에서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헬기에 동승한 전우가 실종되어 충격을 받았고, 네이팜탄의 불길에 울면서 뛰쳐나오는 소녀의 모습에 마음 아파했다. 또 자신이 무사히 귀국하여 부모형제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도망가는 어린 베트콩을 조준사격으로 사살한 것이 용감한 것인지 비겁한 것인지 양심에 고통도 받았다. 다시 과거에서 깨어나 문병장이 이야기를 한다.


“정병장 나는 이런 말을 좀 하기가 뭐 하지만 우리 부대가 대리참전을 하였으니 일제 때 간도특설대가 떠오르데. 돈 받고 가는 용병 같기도 하고 말일세.”

“문병장이 또 위험한 발언을 하네. 우리는 미국과 우방이니 6.25 참전에 대한 보답으로 파병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좌빨이란 소리를 들을 만 하지.”

“그런데 미국이 왜 자작극을 하면서 까지 뛰어드나 말일세. 물론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는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베트남은 프랑스와 독립전쟁을 하고 있었단 말일세.”

“앞으로 그런 위험한 발언은 전우회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네. 잘못하면 큰 낭패를 당하고 쫓겨날지도 모르니까 말일세.”하고 둘이는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문병장은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전우회원들이 나이가 들어 귀가 거의 먹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말은 변절이었고 타락이었으며 자해행위이었으니 그가 노망이 들었는지 알수는 없었다. 어찌 대대수가 가는길을 가지 않고 엉뚱하고 어두운 길로 간다는 말이던가. 귀가 밝은 사람들을 안 만나고 노인들과의 대화를 삼가하고 가급적 벙어리처럼 지내는게 만수무강의 길이라고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이었다.


그날 작전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온 후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였다. 같은 내무반에서 두 명의 전우가 점호시간에 보이지 않았고, 모두들 망연자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던가. 소대장도 그에 대해 말문을 열지 않았고 전우들은 총기를 손질하거나 실없이 관물을 정돈하고 있었다. 문병장은 예전에도 전우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넘어갔는데 그날따라 마음이 무거웠다. 점호가 끝나고 취침나팔이 불자 모두는 잠자리에 들었고 불침번 만이 혼자서 깨어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내무반 어느 구석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잠잠해졌다. 자정을 넘어가자 갑자기 어느 누군가 발작적인 증세를 보이지를 않던가. 그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서 소총을 껴안고 부르르 떨며 입에서 거품을 토해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의무병을 부를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문병장은 다시 현재로 되돌아왔다.

“정병장, 내가 그날 저녁은 두려운 건지 분노하는 건지 부끄러운 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었제. 사람의 정신은 참으로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모양이랄까.”

“그러게 말일세. 나도 귀국 후에는 아무 일도 못하는 무력감에 빠져버렸고 직장을 잡았어도 금방 나와 버리곤 하였었지. 사람을 만나는 게 무척 두려웠다고나 할까.”

“나는 내 여동생 같은 베트남 소녀가 손에 바나나를 쥐고 울부짖고 뛰쳐나오던 기억이 정말 지워지지 않데.”

“나는 조준사격으로 도망가는 어린 베트콩을 사살한 게 꿈에 나타나고 그 죄책감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으니 말일세.”하고 서로는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 둘은 소위 외상 후 스트레스라고 하는 PTSD 증상을 보였던 게 맞다. 문병장의 내무반에서 어느 전우가 거품을 물고 부르르 떠는 증상은 아주 심각한 경우이고 대다수는 뇌리에 깊이 잠복되어 간간이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인간은 한없이 연약한 동물이자 한없이 잔인한 동물인가. 연약한 정신에 잔인한 기억을 남기는 것인가.


문병장은 직장 내에서도 자주 직원들과 크게 싸웠다. 또 동기회에서도 좌빨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퇴출되었을지 모른다. 자신은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하지만 말이 그렇지 쫓겨났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위축되지 않고 할 말은 다 하고 다녔다. 그러니 전우들은 다 도망가고 오직 정병장 정도만 남았다. 한 번씩 폭음을 하고 난 후에는 폭언을 하고 폭행을 하여 파출소에도 몇 번이나 잡혀갔다가 월남참전용사라고 방면되기도 하였다. 그가 어떻게 하여 소위 말하는 좌빨이 되어버렸는가. 그 새로운 사실들을 어디서 들었는지 스스로 발견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정병장은 문병장과는 달리 자기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고 안전운행하며 살아왔다. 배운 것도 없고 배경도 허술하여 오직 눈치껏 살아가야 하는 처지 때문이었다. 다수의 의견과 다른 이야기는 삼가하였고 오직 입무거움으로 자신을 보호하였다. 직장생활은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다. 불같은 성격의 문병장하고는 기질은 다르지만 마음이 서로 오가기에 자주 만났다. 마음이 선천적으로 여려서 그런지 전투의 충격적인 장면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것은 참전용사라는 훈장과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자신을 치유해 주는 것은 공감을 느끼고 있는 문병장과의 만남과 대화뿐이었다.

나는 슬며시 벤치에서 일어나면서 그 두 사람의 얼굴을 새겨두었다. 그들은 월남전에 대해 특별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라이 따이한에 대한 연민의 정과 책임감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인정하고 있지 않은 인식으로 주변으로 불순분자로 취급당하여 따돌림을 받거나 심하면 폭행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전우회 벤치의 총책임자이자 감독관은 박소령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문병장과 정병장과 같은 부대에서 소대장을 지낸 사람으로 말똥 하나를 달고 전역하였다. 육사출신이 아니면서도 어려운 소령으로 진급한 것은 순전히 월남참전의 공훈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전역 후에는 대학의 학도호국단 교관으로 오래 근무하여서 군의 혜택을 톡톡히 본 사람이기도 하였다. 또 나이가 들어서도 전우회 벤치의 좌장으로서 대우를 받고 또 군대처럼 지휘도 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전우회의 군기를 잡기도 하고 어려운 전우를 생계지원수당도 받게 해주었다.

나는 사각벤치에서 좋은 말로는 관찰자이기도 나쁜 말로서는 염탐꾼이기도 하였다. 다양한 부류의 노인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소견에 대해서도 알았다. 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갖고 있으며 이념과 주의에 얽매여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날따라 나 혼자서 사색하는 시간이 제법 길어졌고 그에 비례하여 햇살의 길이는 짧아지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아래 벤치 쪽에서 고함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무슨 실랑이가 벌어진 모양이어 그곳으로 급히 달려가보았다.

“이 새끼가 바로 빨갱이 새끼네. 니가 언제부터 그리 되었노. 월남전에 함께 참전하고도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 줄 모르겠더나. 앞으로 이곳 벤치로 오면 가만 안둘끼다. 변해도 올바르게 변해야지 어찌 빨갱이의 길로 가노. 그런 택도 없는 소리 하다간 뼈도 못 추리니 입조심 하거라이. 그래도 내가 추천하여 고엽제 수당까지도 챙겼으면서 말이지, 허이구.”

“내가 여기서 할 소리는 아닌지 몰라도 살아기기 힘든 전우들을 여러 곳에 줄을 대어서 고엽제 수당도 받게 해 주었고, 생계지원금도 받게 해 주었다는 걸 모른단 말인지 한심하기 그지없네요. 우리 파병 전우들이 밥을 먹고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월남전에 참전한 게 아니요들. 까딱 잘못하면 베트콩의 기습으로 명줄이 끊기고 시신도 이국땅에서 고국으로로 오지 못한다는 걸 어찌 모른단 말이요.”하고 해병전우회 모자를 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장교 계급장을 단 노인이 심하게 욕설을 하고 있었다.

“아이구, 여보시게들 어찌 생사를 같이 한 전우들에게 욕을 막 하고 그러시는가요. 우리 나이가 팔십을 바라보는데 새끼라는 말은 너무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젊은이들이 들으면 어찌 생각하겠는가요.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아니겠는가요. 만약 그대들이 자식뻘 되는 청년들로부터 보수꼴통들이라고 욕을 들으면 기분이 좋겠는가요.”하고 어느 노인이 말을 하는데 아까 월남전 이야기를 하던 정병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정병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문병장의 입바른 소리를 옆에서 듣고 발콱한 모양이었다. 아까 많이 염려스럽기는 하더니만 결국은 터지고야 만 모양이었다.


“또 옆에서 거들고 자빠졌네. 하여튼 숨어있는 빨갱이가 한두명이 아니라니까. 허이구.”

“누구는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안하는 줄 아나. 지 혼자 애국자인 것처럼 씨부리는데 막상 지 죽을 상황이 오면 비겁하게 피할 넘들이면서도 말이제.”

“앞으로 이곳 전우회 벤치에서 또 그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병전우회에서 자격을 박탈하고 연금지급도 취소하라고 건의할 셈이니 모두들 그리 아시오. 우리 전우들이 흘린 피가 얼마나 많으며 시신을 찾지도 못한 분들을 생각하면서 함부로 말을 삼가하도록 합시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산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오. 우리 전우들은 자나깨나 반공이요.”하고 소령 계급장을 단 전우회원이 엄숙하게 말을 한다. 모두 다 제대를 하였는데도 아직도 장교로서 지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인지 착각인지 그 시절의 완장은 아직도 해지지 않았고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박소령은 알다가도 모를 면이 있었다. 겉으로는 단순 무식하게 부하들을 억박지르고 제대 후에도 완장을 차고 군대놀이를 하고있지만, 속으로는 여러가지 애환을 삼키며 표시를 안하는 면도 있다.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한 상이용사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생활지원금도 받게 해주었다. 그 자신은 비록 소령까지 진급을 하였지만 중령 진급심사에서 동생때문에 탈락한 아픔도 있다. 그의 동생은 긴급조치 위반으로 형을 살았었다. 그래도 그는 군문에 들어선게 가정을 일으켜 세웠고 지금도 전우회에 완장을 차고 부하들을 다스리고 있다.

그는 부하들에게 항상 말조심하면서 살아가라고 입이 닳도록 훈계하였다. 군인은 오로지 전진이며 항상 반공이며 빨갱이를 몰아내고 모든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귀가 닿도록 훈시하였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고 꺼진 불도 다시 보고 숨은 간첩 찾아내고 반공의 깃발을 날리자 같은 유치하면서도 타당한 말이었다. 그는 단순하기도 깊이를 알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안전을 반공으로 보호하고 부하들도 그런길을 가도록 인도하고 있었다. 어차피 군인은 적이라는 대상이 있어야 존재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쩌면 문병장의 발언을 이해는 하지만 그의 안전을 위해서 야단을 쳤을수도 있겠다. 월남전에서는 전우의 생명을 몸으로 지켰지만 지금과 같은 반공의 시대에서는 입단속으로 지켜주고 있었다. 그에게는 칭찬이 독이 되고 욕설이 약이 되는 것처럼 미운 놈은 당연하고 고운 놈한테도 욕을 하고 있었다.

아까 두 명의 월남참전용사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진실이면서도 낭패를 당할 수 있는 내용을 들었었는데 어느 귀가 밝은 전우회원에게 들킨 모양이거나 누가 고자질한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박소령이 직접 들었다면 즉시 반응하는 게 맞는데 한 다리 건너간 모양이었다. 그것은 고자질이 될 수도 있고 밀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귀머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맞기에 청력이 그에 맞추어 떨어져야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몇 달 뒤에 다시 중앙공원을 찾았는데 예전처럼 벤치에는 그때 그 사람들이 모여 소일하고 있었다. 해병전우회 벤치에는 몇 달 전에 보았던 문병장과 정병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들 속닥이는 대화 대신 계급장이 높은 노인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조용히 귀담아들어보니 이번 현충일기념행사에 참석하여야 한다며 전우회에서 복장과 준비사항을 전달하는 훈시 아닌 훈시 같았다. 이제 사각벤치는 자유스러운 소신발언은 할 수가 없었고 그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앉게 되었다. 그 사각벤치는 사방을 본따서 각자가 그리는 방향으로 앉게 설계되었는데 같은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한 무리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자리 잡게 되어버렸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민주공원 정원을 거쳐 광복기념관 가는 길을 따라 중앙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받고 열람실로 들어갔는데 바로 건너편 좌석에 앞면이 있는 사람이 독서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해병전우회 벤치에서 유심히 보았던 바로 기골이 장대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던 그 얼굴이었다. 그는 왕돋보기 안경을 쓰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도서관 바깥에 있는 사각벤치에서는 해병대 군가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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