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가승의 출가사연과 그 인연을 찾아가는 이야기
어느 출가승의 비밀
산은 높으니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나는 거꾸로 물을 거스르고 산으로 간다. 혼자서 가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 산과 나무에게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다. 산은 생명을 살리니까 붙여진 이름일 텐데 산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세상에서 더 이상 받아주지 않고 살 수 없기에 돌아가는 곳이 산이던가. 산은 나누어 주지만 빼앗지는 않고, 험준하지만 그 속살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기 때문에 찾아가는 곳이던가.
“처사님들, 이 가파른 경사길을 타고 여기까지 오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약수 한 바가지 마시고 쉬었다가 한 십여분 오르면 운문산 정상이 나옵니다.”
“스님, 암자가 이렇게 높이 있는데 경치는 좋지마는 수행하시기에 많이 불편하시겠습니다. 절의 모습도 그냥 민가집처럼 지어 놓았지만 격식은 다 갖추었구만요. 생필품을 나르기가 힘들고 시주객도 많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허허, 저 같은 소승이 편한 것을 찾으면 안 되겠지요. 허나 부처님 전에 공양할 쌀이나 향촉이 필수적이어서 근근이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산이라 등산객들이 지나가다가 시주를 하곤 하지만, 식량과 필수품을 구하는 것은 좀 어렵네요. 한겨울에는 많은 적설로 등산객이 접근할 수 없으니 동안거라 생각하고 적게 먹고 간간이 마음을 보살피며 보냅니다.”
“그러시군요. 다음에 들를 때는 필수품을 가져오겠습니다. 무엇이 제일 필요하신가요.”
“아무래도 쌀이고, 그다음으로는 조명용 건전지와 부탄가스이겠지요.”하고 스님과의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일행들은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평바위에 펼쳐놓고 족발 안주에다 소주를 한잔씩 돌려 기분을 전환하였다. 청정한 도량에서 그러면 안 되는데 좀 떨어져서 파계행위를 하였으나, 스님도 눈감아 주시는 듯하였다. 그러는 중에 스님이 조심조심 다가오기에 얼른 족발이 든 도시락 뚜껑을 슬쩍 닫았다.
“하하, 처사님들이 식사를 맛있게 하시네요. 경치도 좋고 하니 천천히 곡차 한잔들 하시면서 쉬었다 가시면 됩니다. 이건 무슨 반찬통인지 잠겨있네.”하면서 반찬통을 슬쩍 열어보신다.
“스님, 그걸 열어보시면 좀 곤란합니다. 육식이다 보니 절에 안 좋은 냄새를 풍길까 걱정이 되고 해서 조심스럽게 먹고 있습니다.”하는 데, 스님의 손이 족발 도시락에 가서 한 점을 슬며시 집어시는 게 아닌가.
“하하, 이것 한 점 해도 되겠습니까. 불가에서는 육식을 금하는데 소승이 장작도 패고 이런저런 울력을 하다 보니 힘이 좀 부칩니다. 저의 큰 스님께서 꼭 필요할 때 고기를 먹는 것은 괜찮다고 하시더구만요. 단, 살을 조심해야 하더군요.”
“스님, 맞습니다. 힘든 일을 하시고 어찌 밥과 김치로서 영양 보충이 되겠습니까. 이 족발 남았으니 통째로 드릴게요. 그런데 살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것은 여자와 살을 섞지 말고, 살생을 하지 말라는 뜻이고요. 출가 중이 꼭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그 두 가지라고 하여, 다른 것은 너무 구애받지 말고 살아가라고 하셨지요.”
“참으로 지혜로운 가름침이십니다. 혹시 스님의 법명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소승의 법명은 성경이라고 합니다. 아마 큰 스님께서 거울처럼 마음을 밝게 살아라고 지어주신 것 같습니다.”하고 스님과의 비교적 긴 대화는 마무리된다.
스님은 호남 사투리를 간간이 쓰고 있었고, 선방을 오가는 수행승이라기보다 조용한 곳에서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두루 상운암을 찾아갔었는데 스님의 옷차림은 승복이 아닌 작업복에다가 겨울에는 두터운 패딩을 입고 있어서 머리만 안 깎았으면 일반인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한 번씩 말씀 중에 속가의 이야기도 얼핏 흘리고 말을 하다가 멈추곤 하는 모습에서 숨겨진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스님과의 인연은 무르익어 가고 우리들의 얼굴도 기억하기도 하는 등 승속을 떠나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그날 지리산 대성골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알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여순사건의 반란군이 백운산을 거쳐 조계산에서 잠깐 머무르다가 섬진강을 건넜다. 총알도 떨어지고 옷도 찢어지고 신발도 구멍이 나서 총만 들었지 여지없는 거지 형색들이었다. 연곡사를 털고 쌍계사도 털었지만 중들이 먹는 곡식으로는 배를 채울 수도 없었고 고기맛도 본 지는 언제이었던가.
그의 아버지는 구례에서 반란군에게 징집되어 곡식을 지게에 지고 산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는 하였지만 나올 수가 없었고 몇 명이 집으로 갔다가 국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빨치산이 되어버렸다. 피아골에서 다시 토끼봉을 넘어 대성골로 들어왔지만 그곳은 몰살의 장소였다. 이곳저곳 능선에는 엎어진 시신들이 고사목처럼 흩어져 있었고 그나마 바람에 날린 낙엽에 덮인 것은 행운이었다.
그간 객지생활로 산을 못 탔는데 부산으로 발령을 받아 주말에 등산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배낭에는 스님의 필수품을 사다 넣었다. 그간 못 뵌 스님의 얼굴을 그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선방문을 두드렸다. 그때 서서히 방문이 열리면서 낯선 얼굴의 젊은 스님이 비꼼 내다보는 것이 아닌가.
“성경스님을 뵈러 왔는데 안에 같이 계신가요. 몇 년간 못 뵈었는데 이제사 찾아왔습니다만.”
“일 년 전에 하산하셔서 다른 절로 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절은 소승과 도반 한분이 같이 지키며 수행하고 있지요.”
“아이구, 성경스님이 하산하여 다른 데로 가셨단 말입니까. 어느 곳에 있는 절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스님이 가신 절을 알 수가 없고 저희들처럼 종단에서 발령받은 분이 아니니까, 이곳을 조건 없이 내놓고 떠나셨습니다.”
“조계종에 승적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20여 년간 이곳 상운암을 지키고 불사를 하셨던 스님이신데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앞서 계신 스님이 그간 무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종단에 정식으로 신고도 않고 누가 지어준 법명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종단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았지요.”
“두 분 스님은 종단에서 발령을 받고 오셨다는 말씀이시네요. 본사가 어느 절이며, 법명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소승은 운문사를 본사로 두고 있는 상운암 주지 법고라고 합니다. 같이 있는 도반은 혜고라고 하옵지요.”
“이 높은 상운암에서 겨울을 나기가 힘드실 텐데 잘 지켜 나가시길 바랍니다. 이곳은 정말 신심이 굳건하지 못하면 견뎌내기가 힘든 암자입니다.”
“저희들 걱정을 해주시는데 좀 듣기가 민망하네요. 배낭 속에 갖고 오신 공양물이 있으면 시주하시고 산으로 오르시지요.”하고 두 스님하고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어느 해 눈 내리던 설날 연휴의 선방에서 일행들이 가져온 안주에다 곡차를 서너 잔 드시면서 질문에 마지못해 답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저는 공부하는 학승도 수행하는 선승도 아닙니다. 단지 부처님을 모시고 나의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 내가 마음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 큰 사찰이 아닌 이런 조그만 암자에서 새들과 벗하고 청설모와 겨울밤을 같이 자는 보잘 것 없는 소승이지요.”
“속가의 사연은 많으나 다 잊고 이름까지 버렸으니, 더 이상 묻고 답하는 게 의미가 없겠지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고 하신 은사 스님의 당부를 지키려고 합니다. 경전을 읽고 배운 적도 없고 오직 부처님의 자비를 본받아 축생을 포함한 중생들을 위하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축원하는 게 저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하던 진솔하고도 비장한 목소리가 생생히 되살아난다.
혹시 그 두 스님도 앞서간 성경스님처럼 무단으로 절에 입주하였는지도 모른다. 운문사 본사의 발령을 받고 왔다는 말로써 공식적인 인수인계 절차도 없이 강압에 의해 차지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관상에서 그런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기에 언젠가는 자초지종이 밝혀질 것이다.
상운암을 다녀온 후에 함께 산을 자주 다녔던 친구인 영태처사에게 연락을 해봤다. 상운암의 성경스님이 다른 데로 옮겨 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니,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벌써 알고 있었다.
“아니, 성경스님이 그 절에 안 계신 것을 어찌 알았단 말인가. 나는 그곳을 다녀와서 비로소 알았는데, 친구의 입이 무겁긴 무겁군.”
“몇 달 전 가을에 혼자 그곳을 다녀왔는데 안 계시더구만, 그래서 그 절에 있던 스님도 어디로 갔는지를 모르더라구. 내려오는 길에 석골사에 들러 어느 스님에게 사정사정하여 물으니 부산 문수사로 가신 걸로 안다고 하더군. 아마 본인의 의사와 달리 반강제적인 전출이 맞는 것 같더구만.”
“그랬었구만. 다음에 시간 내어 문수사로 한번 찾아가 보세나. 그 스님은 속세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을 듯 보이시던데 잘 살아가셔야 할 텐데 말일세.” 그렇게 해서 스님이 그곳을 떠난 걸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주말에 영태처사와 함께 문수사를 찾아갔다. 종무소에 들러 사정을 말하니, 스님께서는 한 달을 못 버티고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신세를 많이 지고 간다는 쪽지만 남기고 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종단에서 스님의 행선지를 모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 종단에 승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여기에 오셔서 많은 울력을 하셨지만 항상 오래 살았던 상운암을 그리워 하시더라구요. 세간 사람들을 만나기를 어려워하고 특히 여자 신도들이 보이면 숨고 하기에 좀 특이한 분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분의 출가한 사찰이 우리 종단하고 다른 태고종 본산인 승주의 선암사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겨우 설득하여 알아내었고 출가사유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시더군요.”하고 원주스님이 말씀해 주었다.
그런 말 못 할 출가사연이 있었던 것인가. 세간 사람들을 어려워하고 특히 여자 신도들을 경계하는 이유가 궁금하였지만 만나서 직접 듣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조계종이 아닌 태고종 스님으로서 종단이 다른 절에 머무르는 이유 또한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이제 만난다는 것은 인연이 닿지 않은 한 불가능에 가깝고, 만나서 세속의 사연을 알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디에선가 좋은 곳에서 잘 살아가기를 축원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무심하게 흘렀다. 나는 춘삼월 햇빛도 포근한 주말에 예전에도 자주 다녔던 송광사를 거쳐 굴목재를 넘어 선암사로 가는 산행일정을 잡았다. 대웅전에 들러 참배를 하고 곧장 중간 기착지인 굴목재로 향하였다. 이윽고 굴목재 보리밥집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잠깐 휴식을 취해 본다. 조계산 자락은 여기저기에 빨치산의 비트가 있었고 굴목재 또한 그 한 곳이다. 그곳에 가면 항상 무언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듯한 한스런 손길이 숲 속의 고사리손 같이 놓아주지를 않으니 오랫동안 앉아 있게 만든다. 저 남쪽으로 슬픈 사연을 안고 달려가는 능선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보았다.
다시 일어서서 완만한 경사길을 걸어서 선암사에 닿았다. 선암사는 태고종 총본산이며 일제강점기에는 대처승이 절을 운영하였다. 무지개다리를 넘으니 계곡에는 산수유와 매화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놓은 듯한 선경을 열어보였다. 부산 가는 버스의 시간표를 보니 한 시간 남짓하게 여유가 있었다. 인근에 있는 오래 됨직한 주점으로 들어가 막걸리와 파전안주를 시켰다. 몇 잔을 마시니 약간의 취기가 올라오고 지금껏 무심하였던 주인 할머니에게 시선이 갔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장사를 하셨는가요. 이곳 토박이 맞겠지요. 선암사가 정말 아늑한 절이네요.”
"지가 이곳에서 장사한 지가 50년이 다 되어가지요.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살아가기 위해서 술집을 차렸지요. 그 넘의 빨치산 때문에 서방을 잃었으니 살아가려면 이런 장사 아니고는 다른 수가 있겠능가요.“
“여기 조계산하고 백운산이 빨치산이 많이 활동했고 쫓겨서 구례나 하동 쪽 지리산 계곡으로 숨어 들어갔지요. 피아골이나 대성골에서 많이 죽었지요. 할머니의 남편분도 빨치산이었나요.”
"옳은 빨치산이 어디 있겠는가요. 어리 저리 끌려 다니다가 본의 아니게 빨치산이 되었고, 한번 산으로 들어가면 군인이나 경찰이 가만두지 않아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말로만 빨치산이 되었지요. 집으로 온다고 내려왔다간 여지없이 총살을 당하니, 죽으나 사나 산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기구한 신세가 되었지요. “하면서 할머니는 한숨을 두어 번 내쉰다.
괜히 조용히 안 있고 말을 건넨다는 게 오랫동안 숨어있던 할머니의 애환을 건드리고 말았다. 어찌하겠는가. 말 김에 나온 말이고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할머니 마음도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저씨는 어쩐 일로 선암사에 오셨능가요. 말씨를 들어보니 경상도분 같은데 등산한다고 오신 것 맞지요. 여기 선암사가 유명하여 전국 각지에서 매화와 산수유꽃 보려고 많이 온답니다.”
“그렇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예전에도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자주 넘어오곤 하였지요. 할머니! 막걸리가 참 맛있네요. 딱 한잔만 드릴게요. 아까 저가 마음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으니까 미안키도 해서요.”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세월이 50년이나 흘렀는데 그 서러움도 세월 따라 흘러가버렸지요. 아저씨는 절에 잘 다니시능가 보지요. 저는 선암사의 스님들을 다 기억하고 있지요. 아시는 스님이라도 계시능가요.”
“저는 혼자서 산을 타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히 절에도 들어가 보곤 합니다. 여기 아는 스님은 없습니다만 선암사에 잠깐 계셨다는 스님은 알고 있습니다. “
“그래요. 스님의 법명이 무어라고 하던가요. 나이는 얼마 정도 되고 말입니다.”
“스님의 법명은 성경이고, 나이는 한 60이 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위면서도 얼굴이 좀 길쭉하고 키는 중간 정도 되고, 고향이 호남이라고 하더라구요.”
“가만있자, 그러면 이 절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훌쩍 떠난 구례 출신 그 스님 같기도 한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늦게 출가했다고 안 하던가요. 세속에서 때를 묻히고 절에 왔다고는 안 하던가요.”
“아아,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 주지 스님이 법명을 지어주셨고 가정사정이나 세연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더라구요. 밀양의 높은 산에 있는 암자에서 만났는데, 인연이 다했는지 그곳을 떠나가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인연인지 우연히 들른 주점에서 성경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스님은 선암사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무고에 의해 억울하게 절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도 할머니의 남편처럼 짐을 좀 지고 가자고 하여 산으로 붙들려가 빨치산이 되었고 군경의 소탕작전에서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연이 비슷하기에 한 번씩 들러 곡차를 한두 잔 마시면서 서로를 위로하였다고 한다.
“그 스님은 아주 착실하고 열심히 절 살림을 이끌어 나갔었지요. 그런데 부목과 공양간 일을 맡아하다 보니 보살들과의 접촉이 많은 편이었지요. 두 명의 공양주보살이 있었는데 한 명은 얼굴이 예쁘고 부드러운 매향보살이고, 한 명은 얼굴이 각지고 거세고 시기심이 많은 월매보살이었지요. 무슨 삼각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스님과 매향보살 사이에 불륜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두 분 모두 쫓겨났지요.”
“그러면 두 분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당연한 조치일 테고, 무고에 의한 오해라면 억울하겠네요. 사람의 얼굴에 쓰여 있지 않으니까 남녀관계는 어떻게 발전할지 알 수도 없고요.”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그것이 오해였을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하기사 세속에서 남녀관계 사랑이야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만 절이니까 그렇지요.”하고 할머니도 그 스님이 결백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 스님은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총살당하자, 그 여파로 어머니도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하다가 돌아갔다. 그 길로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직업을 알아보았지만 그럴듯한 직장은 신원조회에 걸려서 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인생의 막장이라고 하는 탄광에 자리를 구해 힘들게 돈을 벌어나갔다. 탄광촌 술집에서 만난 예쁜 여인과 앞날을 기약하며 동거를 하였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탄광 작업반장과 눈이 맞아 그 여인은 도망을 가고 말았으니 세상이 살기 싫어 출가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세속에 때를 묻히고 여인과 살을 섞은 흠결 때문에 그를 받아 줄 곳은 오직 선암사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향 출신인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선암사를 찾아간 것이다.
큰 스님은 그에게 성경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모든 세속의 인연을 잊고 마음을 밝게 하여 부처님께 귀의하라고 당부한다. 세속의 번뇌를 끊고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밝히라는 의미에서 내린 아름다우면서도 의미 있는 법명인 것이다. 몇 년을 못 가서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큰 스님도 아무리 그를 믿는다고 하지만 보살과의 불륜이 있다는 소문을 내버려 두었다간 선암사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조용히 스님을 불러 타이른다.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구나. 나야 너의 심성을 잘 알고 있기에 결백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부대중이 다들 의심을 하니 억울하지만 이곳을 떠나거라. 태고종은 몇 개 안 되는 절에다가 그마저도 소문이 퍼져 머무를 수가 없으니, 타 종단으로 가거라. 승적에 이름을 올려주지도 않겠지만 그냥 중이다 생각하고 마음이 편한 곳에 머물거라.”
“비록 결백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보살의 질투심을 일으킬 정도로 한쪽에게만 관심과 정을 보낸 것도 보이지 않는 죄업이기도 하느니라. 그러니 모든 사람들 특히 보살들에게는 공평하게 대하는 게 맞는 것이니, 앞으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이점을 명심하거라.”
“보왕삼매론에 보면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지 않더냐. 그 유명한 경허대사께서도 사미승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삼수갑산으로 숨어 들어가 훈장 노릇을 하면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더냐. 후일 사미승을 죽인 범인이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지만서도......”하고 큰 스님은 다독이며 말한다.
“내가 운문사 주지로 계신 비구니 스님을 잘 아니 손 편지를 적어 줄 테니 갖고 가거라. 굳이 승적에 올려 달라고 하지 말거라. 혼자서 조용히 불사를 할 수 있는 폐사지를 맡겨주면 좋겠다 하였으니 그리 알고 가거라.”
그리하여 스님은 운문사 주지스님을 찾아가서 편지를 전하고 상운암을 한번 중창해 보라고 허락을 받는다.
잡초가 우거지고 아무것도 없는 절터에 통나무집을 마련하여 법당 겸 요사채로 쓰며 긴 세월에 걸쳐 오늘의 상운암을 이루었던 것이다. 성경스님은 비록 20여 년간 가꾼 상운암을 넘겨주었지만, 어느 높은 산에 있는 암자에서 상운암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
어느 날 영태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성경스님으로 보이는 분이 표충사의 산내암자에서 일하고 있다고 산악회 게시판에 올라와있다고 하였다. 아직도 환속을 안 하고 갈 곳이 없어 절을 떠나지 못하는구나 하고 안타까웠다. 나는 영태처사와 함께 절에 잘 다니는 재원처사를 함께 만나 그런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상황판단을 냉철하게 잘하는 재원처사가 한마디 한다.
“내가 쭉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운암을 차지하고 있는 두 스님이라는 사람들은 진짜 승려가 아닌 것 같아 보이네. 세민이가 그런 느낌을 처음 그들을 보았을 때 받았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보고 있네. 성경스님을 애처롭게 여기는 건 올바른 태도는 아니지만 진리를 찾듯이 진실을 밝혀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내가 통도사에 잘 아는 원주스님이 계시는데 표충사에 문의해 보도록 해볼까 하네. 아마 원주스님들끼리는 잘 통하니 알아볼 수가 있을 것 같네. 현재 상운암을 차지하고 있는 그 두스님이 진짜 운문사의 발령을 받고 왔느냐가 맞느냐이네.”
“맞아, 표충사에 계시는 스님이 성경스님이 맞느냐를 먼저 알아보고 맞다면 다음 단계로 운문사에 그 그 두스님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그런데 운문사는 비구니 스님이 수행하는 절인데 발이 닿기가 쉽지가 않으니 문제네.”하고 세민이가 말을 한다.
“그것은 우리 집 보살이 석남사와 내원사에 한 번씩 가니 운문사 하고 연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이네. 억울하게 성경스님이 절을 빼앗겼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아이구, 재원처사가 진짜로 자비심이 깊고 진리이기도 진실이기도 한 길을 잘 안내하는 구만. 나하고 영태는 그런 대책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고 내버려 두었었제.”
“그러면 운문사의 원주스님을 만나 상운암에 있는 두 스님을 발령한 사실이 있는가 확인해 보면 되겠네. 그 두스님의 법명을 나중에 적어 주게나.”
“내가 듣기로 법고하고 혜고라고 하던데 좀 이상한 낌새를 느꼈었지. 보통 불가에서 은사스님이 법명을 내릴 때는 앞자리를 같게 하지 뒷자리는 다르단 말일세. 그 점도 그렇고 그 두스님의 인상이니 말투며 겨울나기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걸 보고 의심을 하게 된 것일세.”이렇게 하여 성경스님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재원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세민아,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표충사에서 일하는 스님이 상운암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네. 이제는 운문사에 그 두스님의 승적을 확인하는 것만 남았네.”
“정말 수고가 많았네. 그리고 영태가 운문산 상운암 아래에 있는 석골사 주지를 한번 찾아가서 그 두스님의 정체를 알아봐 준다고 했으니 그 결과를 보고 자네 보살에게 운문사 원주스님에게 부탁해 보면 어떨까.”
“아,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이네. 영태가 석골사 주지하고 앞면이 있다고 하니 알아보고 맞으면 마지막 카드를 사용하세. 어쩐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드네.”하고 재원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영태로부터 연락이 왔다.
“세민처사, 내가 석골사를 찾아가서 알아보니까, 상운암에 있는 두 스님은 석골사 하고 교류도 없고 지나가다가도 들러지도 않고 수인사도 안 나누는 게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하더라. 출가승이면 지나가는 절에는 꼭 들러 예를 올리고 스님들 간에는 합장을 하는데 전혀 예법이 되어 있지를 않더라고 하더구만.”
“아이구, 영태처사가 큰일을 하셨네. 내가 보는 눈과 석골사 주지스님이 보는 눈이 맞는 것 같네. 설령 스님이 맞더래도 그런 행태를 보아면 오해를 받게 마련이니, 이제부터 부담 없이 진행토록 해보세.”하고 제민이와 영태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사실을 재원처사에게 말하니 자기 집 보살에게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재원이는 그의 보살과 함께 운문사 원주스님을 접견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상운암은 어느 스님이 20여 년간 스스로 불사를 하여 이룬 암자라고 아는데, 지금 그 스님 외에 다른 두 스님이 수행하신다는 말씀이시지요. 상운암은 신라 때 창건한 암자로 지금은 폐사지로 기록되어 있네요. 운문사에서 스님을 발령한 적도 없고 누가 살더라도 간섭을 할 입장이 못됩니다.”하고 운문사 원주스님이 말씀을 하신다.
“아이구, 저희들 예측과 바로 들어맞는군요. 당장 그 두스님을 내보내고 성경스님을 다시 불러들여야겠네요. 그 스님은 승주 선암사 태고종 출신으로 무슨 억울한 일이 있어 선암사 주지스님의 주선으로 상운암으로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오래되어서 그 당시 운문사의 주지스님은 아마 열반을 하셨겠구만요.”하고 재원처사가 쭉 설명을 한다. 그리고 성경스님의 가정사와 출가배경에 대해서도 말을 덧 붙였다.
이제는 상운암을 무단 점거한 두스님을 내보는 일이 남아있다.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가 남은 셈이다. 순순히 물러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폭력이 발생할지 모르니 누구를 내세워야 할지 난감하다. 세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집달관을 대동하여 퇴거명령을 집행하면 되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느 날 영태처사와 만나 그 문제를 상의하였다. 그가 처음 발견한 등산 동호회 게시판에 그런 사연을 올려보면 어떨까 제안을 한다. 그 이전에 자기가 잘 아는 후배 산악회원을 통해 상운암을 방문하여 그런 사실을 슬며시 발설하면 그들이 물러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였다.
“그렇지, 자네 후배 보고 한번 상운암을 찾아가서 슬며시 진실을 흘리고 은근히 압박을 하면 되겠고, 눈치 빠른 그들도 산악회 산사나이들의 정의감을 잘 알 테니 싸우지 않고 물러갈 것이라고 보이네. 최후의 수단은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고 말이제.”하고 세민이가 말을 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영태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느 산악회에 나가는 후배가 운문산 산행일정을 잡아 수십 명이 상운암에 들렀다데. 그리고 그 법고인가 하는 스님을 조용히 불러 아주 알아듣기 쉽게 말했더니 처음에는 완강히 버티다가 나중에는 그런 사실을 시인하더라는 것이야. 처음에 말이 안 통하니 수십 명 산악회 회원들을 가리키며 슬며시 겁을 주었다고 하데. 아마 지금은 속세로 내려갔을 것이야.”
“아이구, 영태 친구가 큰일을 하였네. 재원이가 실마리를 풀어나갔고 자네가 마무리를 하였네 그려. 언제 가을 단풍철에 상운암을 들러 성경스님을 보면 어떨까 하네만, 내가 허리가 안 좋아서 가파른 상운암을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하고 둘이는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나서 그는 우연히 상운암의 어느 스님에 대해 취재한 동영상을 발견하였다. 운문산 정상밑의 상운암에서 라면을 끓여주는 스님에 대한 내용이었고, 보는 순간 오래전에 만난 성경스님의 얼굴이 맞았다. 나이는 더 들어 늙어 보였지만 얼굴과 자태는 틀림없는 성경스님이었다. 그런데 소개하는 스님의 법명이 지수스님이라고 나오기에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법명을 바꾸었던지, 조계종에 정식으로 입문하여 받은 법명인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는 즉시 영태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태처사, 내가 오늘 유튜브에서 상운암에 대해 취재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지금 수행하고 계시는 스님이 성경스님이 맞는 것 같더군. 아마 빼앗긴 상운암을 되찾은 모양이더구만. 그런데 법명이 지수스님으로 나와서 궁금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마 성경스님이 제자리로 돌아온 모양이군. 우리들의 노력으로 빼앗긴 절을 되찾았고 운문사에서도 승적에 올려 법명도 새로 주고 하여 정식 발령을 낸 모양이네. 내가 아직은 허리가 괜찮으니까 올 가을에 상운암에 한번 다녀올께.”하고 영태처사와 이야기하고 곧바로 재원처사에게 연락을 하였다.
“재원처사, 우리들의 ‘절 도로 찾아주기 운동’이 성공하였네 그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기분이네. 다 자네와 영태처사의 공덕이 컸다고 생각하네.”
“아이구, 정말 잘 되었네. 광복을 맞은 기분이라는 자네의 말에 동의하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고 억울함도 풀어진다고 말일세. 그 성경스님의 출가사연을 듣고 무척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후련하네. 그 스님이 잘 살아가기를 빌어보네.”하고 재원이와의 대화를 끝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산은 항상 변함없이 만물을 키우고 우리들을 부르지만, 우리는 만물을 해치고 서로 싸우고 있으니 그것은 상생의 깊은 뜻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던가. 잃어버린 것은 누가 훔쳐간 게 아니라면 찾을 수가 있고 훔쳐갔더라도 언젠가는 찾을 수 있는 것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