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의 바보 같은 효자와 그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이야기
그는 바보가 아닌 온달이었다
여항산 자락에 있는 이수정 마을은 조씨 집성촌이기도 한편으로 타성들의 이주촌이기도 하였다. 잘 사는 집안도 간혹 있는가 하면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는 집안이 대다수이었다. 또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도 있어 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빈민이니 천민이니 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쳤는 데다가 동족상잔의 6.25마저 겪었으니 대다수는 생존이 문제이지 잘 사는 것은 언감생심이기도 하였다. 그날 하루하루 끼니를 굶지 않고 아프지 않고 예전과 같은 시절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대부분 집안이 못 살다 보니 가난하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사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험악한 시대를 거치다 보니 배운 것도 없어 오직 서로 말이 통한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판이었다. 글도 읽지 못하는 문맹이 정상적일 정도로 배움이라는 것은 오직 공자님이나 부처님 말씀에 대한 지식뿐이었다. 또 그 지식이 없다고 해도 스스로 타고난 지혜를 가지고 용감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개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고 소똥처럼 펑퍼짐하게 가라앉은 초가집들은 그래도 온기를 느끼고 정도 오가게 하였다.
어느 봄날 마을 뒤편 산성 쪽에서 큰 불이 났다. 그곳은 이웃동네 최씨집안의 선산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산소이었다. 불길이 퍼져 공동묘지 쪽으로 옮겨가고 바로 아래인 이수정 마을도 위험하게 생겼다.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고 소방대원들이 와서 산소가 다 타고 나서야 겨우 진화를 하였다. 이웃마을의 선산을 가진 최씨네 집안은 난리가 났다. 수백 년 동안 키워온 소나무가 다 타버리고 산소의 잔디도 다 타버렸으니 조상들 볼 면목이 없었다. 피해를 입은 산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문의 엄청난 재산이었기에 기어코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분주하였다.
최씨 집안은 선대에 참판 벼슬도 하였고 광정벌판과 한밭에 어마어마한 논을 가진 대지주였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것도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농토를 늘였다. 그런데 산소에 불을 지른 범인을 찾아낼 수가 없었기에 이런저런 소문과 추측으로 단서를 잡아내는 도리 밖에 없었다. 누가 어찌하여 위세 높은 집안의 선산에 불을 질렀단 말이던가.
이수정 마을 위쪽 비탈에는 개동댁이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예전에 낳아놓고 죽어버린 애들이 많아서 자식들 명이 길라고 하여 다른 집에 아들을 팔았으니 큰아들은 판돌이고 둘째는 판개이었다. 큰 아들은 말귀도 알아듣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런대로 살아가는데 둘째인 판개는 영 다르다. 덩치는 장군처럼 장대하고 얼굴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지만 말귀를 못 알아듣고 생각하는 게 특이하였다. 그는 혼기를 훌쩍 넘겼지만 장가갈 형편도 안되거니와 갈 생각조차 없었다. 오직 홀어머니와 작은 방에 자면서 그런 것이 인생살이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자기 형은 장가를 가서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꾸려가고 있지만 그는 가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직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는데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날이 뜨면 보리밥에 된장국에 김치를 반찬으로 하여 그냥 우다닥 먹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그는 먼산에서 해온 나무를 팔아서 집안에 다 보태고 자기의 것이라고는 계절 따라 입는 옷 몇 벌과 담뱃대가 유일한 재산이었다. 담배도 봉초를 사서 신문지에 말아 피우거나 집에서는 곰방대에 담아 호롱불에 불을 붙여 피우는 게 낙중의 낙이었다. 어느 날 구장인 해동양반이 개동댁집에 들러 나눈 이야기였다.
“개동댁, 판개가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장가를 보내야 안 되겠소. 배운 것은 없지만 힘이 세서 일도 잘하고 성질도 순한 편이니 처녀만 있으면 안 될게 뭐 있겠소.”
“아이구, 구장 어른. 저 아가 영 욕심이 없고 결혼이 뭔지 남녀관계가 어떤 건지를 모르니 우이 하면 좋겠능기요. 지가 가고 싶은 맴이 있어야 보내든 말든 할낀데 일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단 말이요.”
“판개가 각시를 만나면 욕심도 생길 테고 남녀관계도 자연히 알게 안 되겠소. 그아가 속이 깊어서 집안이 어려우니 그냥 바보처럼 행세하는 것 같아 보이요.”
“어이구, 지깐 놈이 무슨 속이 깊을 게 있겠능기요. 그냥 세상 물정을 모르는 등신이지 뭐 다른 게 있겠능기요.”
그 동네에는 판개와 친한 친구가 몽제하고, 나이가 많이 어리지만 평래와 점제가 있다. 몽제는 자기 집은 논밭도 있고 갓도 있어 살기가 넉넉한데도 자기 어머니의 뜻인지 형님의 욕심인지 모르지만 초등학교를 겨우 나오고 집안에서 머슴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차츰 들자 공부도 안 시키는 데다가 장가를 보내줄 생각을 안 하는 형님 내외에게 불만이 많았다. 어머니는 자기편을 드는지 마는지, 장남이 잘 돼야 한다는 소신 때문인지 그런 사정에 눈을 감아버렸다. 이러다가 판개처럼 장가를 못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이웃에 있는 사촌댁의 막내딸을 꼬셔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기 형이 나무라니 어찌어찌하다가 아이를 배어버렸다고 하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런 기민하고 영악하기도 한 몽제의 눈에는 판개가 참 바보스럽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몽제가 판개하고 나눈 대화가 있다.
“판개야, 이제 너그 형에게 그만 이용당하고 니 실속도 좀 차리라. 니 앞으로 만들어준 재산이 있기나 하나. 다 너그 형 좋은 일만 시키는기라. 내가 당해봐서 아는데 형제간이라도 지 욕심이 먼저이더라.” “야, 몽제야. 나는 돈이 아무 필요가 없다. 내가 술을 마시나 옷을 사 입나 어디 돈 쓸데가 있어야지. 그나마 피우는 담배는 봉초를 한 봉지 사놓으면 근 한 달이 가니 돈 같은 것은 간수하기도 그렇고 귀찮더라.”
“허이구, 이러니 바보소리를 듣지. 니도 니가 옴마가 돌아가고 나면 쫓겨날지도 모른다. 너그 형이 사람이 악한 것은 아닌데 형수라는 사람은 항상 넘이라고 생각해서 미리 단도리를 해야 한다. 다음번에 너그 형한테 보태준 돈이 얼마나 되고 언제 돌려 줄낀가 이야기해 봐라.”
“니가 걱정을 안 해도 내가 알아서 한다. 우리 옴마가 죽고 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고 지금은 우짜던지 불쌍한 우리 옴마를 잘 모셔야 하능기라.”
판개는 동네에서도 바보라고 취급을 받고 심지어 자기 어머니도 등신이라고 하는 걸 보니 사람은 순하고 성실한데 가정이라는 게 어떻고 남녀관계가 어떤 건지 아는지 모르는지 한마디로 관심 밖이었다. 그가 장가를 쉽게 들지 못하는 것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몰라 자기 이름도 못쓰는 까막눈인 데다가 상식적인 행동을 않는 특이한 성격도 한몫을 하였다. 거기에다가 집안 형편이 어럽다 보니 남의 집에 반머슴살이를 하는 것도 장가가는데 큰 장애가 됐다. 그의 길은 오직 일하는 것과 어머니와 한방에 같이 자면서 모자의 정을 나누는 게 최고의 낙이었다. 자기 어머니가 아무리 장가를 가야 한다고 떠들어도 말귀를 못 알아듣고 꼭 장가를 가야 하는가에 대해 궁금해하였다. 어느 날 몇 살 아래이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몽제가 그를 만나 나눈 이야기였다.
“야, 판개야. 죽도록 일해보았자 너그 형 좋은 일만 시키능기라. 내가 한번 다리 한번 놓아줄까.”
“허허, 고맙지만 나는 장가가 무엇인지를 모르는데 어찌 장가를 가겠노. 그냥 우리 옴마하고 사는 게 제일 편하고 좋다. 장가가면 뭐가 좋은데?”
“하하, 이 친구야. 우선 각시가 밥상도 척 채려 주고, 밤에는 껴안고 자니 기분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다. 그러다가 아를 낳기도 하고 말이제.”
“어이구, 내가 보니 우리 형님과 형수는 밤마다 싸우는지 한 번씩 형수가 훌쩍 거리더라고. 무슨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말이야. 좋으면 왜 우는데.”
“그러니 니가 바보소리를 듣지. 그게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우는 것인기라. 내 말 듣고 장가가보자. 내가 지금껏 니에게 거짓말한 적이 있더나.”하고 둘이서 농담처럼 들리는 진담을 나누었다. 그때 마당에서는 암캐와 수캐가 헐레붙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빙긋이 웃는 걸 보니 그의 진심을 알 수도 없었다.
이처럼 판개는 세상물정도 모르고 사람 사는 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그의 말이 일리가 없잖아 있어 보였다.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어찌 틀렸다고 나무랄 수가 있겠는가. 그가 한 번씩 봄날에 먼산에서 나무를 해올 때 나뭇짐 위에 진달래를 한 묶음씩 꺾어와서 처녀들이 사는 집 대문 앞에 슬쩍 놓고 가는 걸 보면 이해가 안 가기도 하였다. 바로 밑에 있는 신촌댁집의 큰딸인 말선이가 자기에게 잘해주다 보니 그런 것은 그냥 서로 고마움의 표시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도 하였다.
판개는 한 번씩 남이 못 알아들을 이상한 말을 하고 다녔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가르치고 삼강오륜이 어떠니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면서 차별을 하는 동네 훈장 보고 지나가다가 한마디 한 적이 있었다.
“어이구, 동네 애들한테 삼강인지 요강인지 하시던데 내가 보니 요강보다 삼강이 못하데요.”
“이넘으 자슥이 무신 헛소리를 하노. 공자님 말씸을 요강에다 빗대느냐. 그러니 바보라고 하지.”
“허이구, 이왕 가르치신다면 삼광이 오광보다 못하고 상놈이 양반보다 높다고 하시야지예. 나는 상놈이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지예.”하여 훈장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판개는 힘이 장사이지만 신촌댁의 큰아들인 만출이에게는 좀 달렸다. 만출이는 덩치는 판개와 비슷하지만 힘을 쓰는 요령이 있어 둘이서 한 번씩 씨름을 하면 승자는 만출이였다. 어느 해 추석날 읍내에서 벌어지는 씨름대회에 나갔는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상대편 장사하고 샅바를 잡고 겨루고 있다가 판개가 느닷없이 손가락으로 상대 선수의 겨드랑이를 건지르다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후다닥 넘겨버린 적도 있었고, 또 한 번은 그것도 모자라 상대의 불알을 잡아당기는 해괴한 짓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관중들은 배를 움켜잡고 웃는 바람에 장사씨름대회가 웃으면 복이와요의 코메디 극장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처럼 판개는 보통사람들이 하기 힘든 기이한 행동을 하였으나 사람들은 그를 순진하다고 여기며 호감을 가졌다.
판개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징용을 가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위로 몇 명의 아이들을 홍역으로 떠나보내고 지금 있는 판돌이와 판개를 보고 살아가는 쓸쓸한 사람이었다. 그 마을에서 징용이나 징병을 가서 못 돌아오고 6.25로 서방을 잃은 과부들이 넘쳐나서 그런대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뿐이었다. 판개는 왜 자기 아버지가 징용으로 가서 못 돌아오는지 이해를 못 하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괘씸하게 여겼다. 또 6.25로 동족을 서로 죽이는 짓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점은 남녀관계의 무지와 돈욕심이 없는 의식 수준에 비하면 아주 정상적인 사고가 맞는 것 같았다. 그가 군입대 영장을 받고 소집에 응하지 않으니 병무청으로부터 조사가 나왔다. 면사무소에서 기피자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실무자와 나눈 이야기였다.
“판개 군은 어찌하여 입대소집에 응하지 않았단 말이요. 병역법에 따르면 기피자로 분류되어 처벌을 받게 되어있다는 걸 모른단 말이요.”
“내가 왜 소집에 응해야 한단 말이요. 우리 아부지도 징용 갔다고 못 돌아 왔는데 내까지 군대 가서 또 죽으란 말이요. 우리 어머니가 알면 거꾸러질 것이요. 나는 이름도 못쓰는 일자 무식쟁이요.”
“허허, 모든 남자들은 군대에 가게 되어있소. 어머니가 어떻고 글자를 모르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요. 처벌을 받을 거요, 아니면 군대를 가겠소.”
“나는 총을 들면 아마 아무에게나 막 쏴버릴 것 같소. 국군이나 인민군이나 모두에게 갈겨버리고 싶단 말이요.”하고 판개가 주먹을 불끈 쥐고 내뱉는 말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징병관들이 조용히 모여 상의하더니만 징집 부적격자로 분류되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만약 군대에 가게 되면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훈련을 받을 수도 없고 훈련소에서는 차라리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것으로 여길게 뻔한 일이었다. 그의 말 중에서 섬뜩한 것은 아군이나 적군이나 모두에게 총을 갈겨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병무청에서 기피자를 억지로 군대로 보내어 총기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오롯이 져야 하니 상의하여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은 순리이기도 하였다. 또 판개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니 같은 동네에 있는 어느 아저씨는 군대에 안 가려고 작두로 자기 오른손 검지를 자르지 않았던가. 옆집에 사는 소쿠리쟁이가 군대에 가서 동상을 입고 발가락 모두를 잘라내어 몽당발이 되어서 짐을 질 수가 없는 모습을 보았지 않았던가.
또 군대 간 사이 어머니가 자기를 걱정하고 자기도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게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자기 아버지가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6.25 때 여항산 전투에서 동족끼리 서로 무슨 원한인지 죽이는 것을 보고 군대가 지옥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그는 총을 들어도 방아쇠를 당길수 없을 정도로 여린 성격이었다. 집에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보고도 그냥 쫓아버리고 잡아 죽이지도 못하였다. 그만큼 그는 마음이 여리니 어찌 험난한 세상살이를 해나갈 수가 있겠는가. 그런 사정을 지켜본 판개 어머니인 개동댁이 마을에서 지혜롭기로 이름난 광동할매를 찾아가 상의를 하였다.
“보이소, 광동할매요. 우리 판개가 나이를 들었는데 장개를 안갈라카네요. 에미로서 참으로 죄를 지은 것 같은데 우짜면 좋겠능기요. 여자에게 관심이 있어야 서로 달라붙고 할낀데 영 관심이 없능기라요.”
“이보게, 개동댁. 내가 보니 판개가 효자는 틀림이 없고 우리가 모르는 말 못 할 생각이 있는 것 같네. 저그 애비가 징용 가서 못 돌아오고 이 동네에도 저그 오매처럼 과부인 사람도 많고 해서 생각을 바꿔버린거 같네.”
“내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저그 에미 죽으면 우짤낀고. 내가 어렵더라도 소학교라도 보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서 사람 노릇을 못하는기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능기라요. 광동할매가 좋은 각시를 구해주던가 아니면 좋은 방도를 함 내주보이소.”
“내 생각에는 판개가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네. 이 동네에서도 여편네 하고 싸우면서 장독도 깨고 거울도 깨고 하면서 매일 아래 웃집에서 난장판을 보니까 장가 갈맘이 있건나. 또 여편네가 도망가기도 하고 서방 알기를 우습게 알고 하니 차라리 안가는게 낫다고 보았겠지. 나는 판개가 부처님상이라고 생각하네.”하고 광동할매와 개동댁이 나눈 대화이었다.
광동할매의 말마따나 판개가 동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꼴을 보고 장가갈 생각을 놓아 버린 게 맞는 것일 수도 있었다. 또 아이를 낳아도 저그 형들이 병이 들어 죽었듯이 그 슬픔을 감당하기도 힘들기도 하거니와 자기 성격에 남들처럼 각시에게 알콩달콩 잘해줄 수 있는 소질도 당최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쥐새끼 한 마리 잡아 죽이지 못하는 연약한 성격으로 어찌 남을 죽여야 살아갈 정도로 흉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도 염려가 되는 것이었다. 개동댁은 은근히 자기 큰아들인 판돌이가 괘씸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나쁜 성격은 아니지만 자기 동생의 앞날에 대해 적극적으로 챙겨주지 못하고 바보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당연히 손을 놓아버리는 게 그랬다. 혹시 아들이 남자구실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도 들었지만 다 큰 아들의 거시기를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어느 날 손아래 친구인 몽제와 평래, 점제가 함께 모여서 나눈 이야기이었다.
“야, 점제야 니는 판개가 장개를 안 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노. 혹시 그가 거시기가 안서는 고자가 아닌지 궁금하더라. 내가 훔쳐볼 기회가 없으니 알 수는 엄꼬 말이다.”
“내가 보니까 저그 옴마하고 사는 게 각시보다는 낫다고 보는 것 같더라. 저그 옴마가 고생하는 걸 보고 또 저그 형님 내외가 한 번씩 싸우는 걸 보니 만정이 떨어졌을수도 있고.”
“판개는 고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올봄에 먼산에 나무하고 오다가 더워서 냇가에서 목욕을 하는데 슬쩍 보이는 거시기가 아주 튼실하게 보이던데 말이야.”하고 조용히 듣고 있던 평래가 거들었다.
이처럼 동네에서는 자기 어머니는 물론이고 구장이나 광동할매까지 나서고, 친구들도 한몫하였지만 판개를 장가보내는 것은 어렵다 보고 다들 포기하고 말았다. 판개의 심성을 보면 다들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덥석 딸을 내놓겠다는 집안은 없었다. 사람 좋은 것하고 사위 삼는 것 하고는 별개의 문제였다. 거기에서 진리를 알면서도 그 길을 못 가는 중생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판개는 그 동네에서 착한 일을 다하였다. 만약에 부처 같은 보살이 있다면 자기 딸을 줄 수가 있을는지 사람의 속내는 헤아리기 힘든 것이었다.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어김없이 상여를 메는 상두꾼으로 나섰다. 먼산에서 나무를 한 짐 하고 올 때는 남는 체력을 이용하여 각시 베개만 하지만 조그만 나뭇단을 지게에 얹어와서 자기가 주고 싶은 집 앞에 놓아두고 가곤 하였다. 아들은 많지만 일할 줄을 모르는 낙골댁은 물론이고 몽당발로 걷기가 힘든 소쿠리쟁이 집에도 안겼다.
이제 판개의 장가를 보내는 이야기는 끝을 맺고 그의 기이한 행동이 동네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그는 자기를 바보라고 악의적으로 놀리고 자기 어머니를 흉보는 집안에 대해서 기막힌 방법으로 보복하였다. 마을에서 방앗간을 하는 집안의 둘째 아들이 아주 별난데, 판개를 못살게 굴고 무슨 종 다루듯 하였다. 방앗간 주인이 이장 선거에 나서서 많은 돈을 뿌렸는데도 아슬아슬하게 당선되자 표를 안 찍어준 걸로 의심되는 집안의 아들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판개의 집안은 윗동네에 있기 때문에 낙골양반에게 표를 준 게 틀림이 없었다. 낙골댁에 반머슴으로 일하면서 인간적으로 대우를 잘 받았기에 판개 어머니는 그쪽에 투표를 하였을 것이었다. 이런 점이 방앗간 둘째의 눈에 거슬려 정월대보름날에 콩을 볶아 먹는 숯다리미에 흙과 모래를 던지는 일이 있었다. 판개는 몸싸움을 하였으나 분이 풀리지 않아서 한이틀 씩씩거렸다. 어느 날 밤을 틈타 방앗간의 발동기에 모래를 흠뻑 뿌려 주인은 그것을 고치느라고 많은 돈과 시간을 버렸다. 그런데 야밤에 나타나서 모래를 뿌린 당사자가 누군지를 밝혀 낼 수가 없었으니 방앗간집은 괘씸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판개는 한 번씩 평소의 그 답지 않게 과감한 행동도 하고 한 번씩 몽니도 부렸다. 한 번은 자기 형수가 어머니하고 다투는데 자기 형이 형수 편을 들어 어머니가 우는 장면을 보았다. 그날부터 그는 일체의 일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방안은 너구리를 잡기 위해 연기를 피운 굴 안처럼 담배연기가 자욱하였고 한 번씩 캥캥거리는 판개의 기침소리는 아직도 못마땅한 뭐가 있는 듯하였다.
자기 어머니가 일하라고 타일러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아예 일을 손에 놓아버린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형한테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여 일을 하지 않으므로서 그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이윽고 형수가 어머니한테 빌고 형도 형수를 나무라는 것을 보고 조금은 마음을 돌렸지만 여전히 개어놓은 이불에 기대어 두 팔을 머리에 깍지 끼고 양발을 쭉 벌리고 피어올라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방구석만 지켰다.
이제는 집에 땔 나무도 동이 나고 판개는 움직이지 않으니 형님 내외가 어머니에게 불효를 했다고 빌고 동생에게도 다시 사과하였다. 그 후 며칠 뒤에 판개는 방을 나와서 나무를 하러 다녔으니 그의 심중의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판개는 어머니의 쓰라린 마음을 달래주기 위하여 가야장에 나무를 팔고 오는 길에 좋아하는 돼지고기 몇 근을 사서 지게에 실었다. 그 고기를 먹고 어머니의 마음이 다 풀렸는지는 알 수는 없었고 형님 내외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 같았다.
세월은 흘러 이제 판개는 나이가 쉰 줄에 들어섰고 어머니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여서 모자는 서로의 입장을 안타까워하였다. 어머니가 없는 판개의 미래는 어떤 것인지 그 시간은 곧 당도할 것처럼 보였다. 판개 어머니는 징용으로 못 돌아온 아버지를 안타까워하였고 일본을 엄청 미워하였다. 해방이 되고 난 후에도 일제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나라도 아예 관심도 없으니 어디에 가서 하소연을 한단 말이던가. 죽은 날짜도 몰라 제삿날도 정하지 못한 채 그냥 엉엉거리고 있으니 참으로 귀신까지 울고 있을지 모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판개는 그의 어머니의 가슴에 품은 한을 어찌하면 풀어줄까를 생각했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먼산에서 나무를 하러 갔다 오다가 마을 입구에 서있는 낙골댁 시아버지의 공덕비 앞에서 지게를 걸어놓고 잠깐 쉬었다. 비면에는 적힌 한글을 읽을 수는 없었기에 그냥 좋은 일을 하였는가 보다고 생각하며 쉬었다. 그때 함께 나무하런 간 점제가 그에게 한마디 하였다.
“판개야, 이 비석에 적혀있는 글씨를 못 알아보는데 뭐할라꼬 쳐다보노. 이 비석을 내가 천천히 읽어 줄 테니까 잘 들어라. 낙골댁 세민이의 친할아버지 공적인데 일본넘 들하고 싸운 이야기기 나오네. 그것도 일본 지주들과 한편이 되어 농민들의 소작료를 빼앗아 먹은 이 고을 지주들하고 싸운 이야기도 들어있네.”
“뭐시라꼬, 이 나뿐 넘들을 보았노. 같은 이웃들의 소작료를 등쳐먹었다는 말이가. 우리 아버지도 옛날 소작을 하였는데 많이 빼앗겼구만. 그래서 우리 옴마가 일본넘들은 쥑일넘들이라고 하였나 보네.”
“이제 뭐신지 감이 오나 보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있는넘 들한테 붙어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노. 그런넘들을 친일파라고 하제.”
“친일파라면 무슨 대파도 아니고 먹을 수 없는 파인가 보제. 그러고 보니 그 파는 더러버서 묵기도 더럽겠다.”하고 판개하고 점제하고 나눈 이야기이었다.
판개는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도 그런 부당한 것을 당한 것 같아 분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가 이웃동네에 반머슴으로 있을 때 비 오는 날에 일을 못했다느니 하면서 세경에서 제하는 게 꼭 소작료를 제대로 안 준 것 하고 같다고 여겼기에 그런 농민운동을 한 낙골댁의 시어버지이자 세민이의 할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판개는 무식하고 엉뚱했지만 남들이 갖지 못한 기질도 있었다. 잠자고 있는 분노의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내이었다. 남들은 좋은 게 좋다고 하지만 그는 좋은 것은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또 누군가가 부당하게 해를 끼치면 몇 배로 되갚아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껏 자기 어머니가 불쌍하게 되었고 자기가 머슴질을 하게 된 것도 모두 다 나쁜 놈들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다. 또 나라를 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하였던 집안에는 어김없이 나뭇짐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못되고 못살게 구는 집안에는 아주 지능적으로 앙갚음을 하였다.
최씨 문중의 선산에 산불이 나기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 있었다. 문중에는 집안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가 있다. 그래서 가뭄이 들어도 물걱정 없이 벼를 기를 수가 있었다. 최씨 집안은 좀처럼 논에 가둔 물을 아래쪽 논으로 흘러 보내지 않아 농민들의 원성이 컸다. 한 번씩 물꼬를 여는 문제로 서로 싸우기도 하여 보이지 않는 앙금도 있었다. 가뭄이 들면 들판에 있는 논들이 발갛게 타들어가도 최씨들은 눈도 깜박 안 하고 물꼬를 열어주지 않았다. 어느 날 누가 그랬는지 최씨 집안 논의 물꼬가 모조리 파헤쳐져서 물이 아랫논으로 다 흘러가고 말았다. 저수지에는 물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가뭄을 해결하려면 부족한 상태이었으니 문중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누가 앙심을 품고 한 것인지 벼가 타들어 가니 살기 위해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앞서 벌어진 성산산성 옆에 있는 최씨 집안은 산소에 당한 방화나 실화를 한 범인을 찾아내어 벌을 주고 배상을 받는 일을 위해 집안 회의를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네. 어찌 몇백 년 동안 불 한번 안 났는데 갑자기 산소가 다 타버린다 말인고. 어서 빨리 조상들에게 고유제라도 올려야겠네.”
“지금 고유제가 먼저가 아니고 범인을 잡아 내는 게 우선입니다. 도대체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를 다 태워버렸으니 분이 안 풀려 환장하겠습니다.”
“아마 우리 집안에 앙심을 품었거나 시기를 하는 놈이 저지른 것 같은데 요 근래에 흠잡힐 짓은 하지 않았는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일세. 경찰서에 일단 신고하여 잡아들이도록 하세나.”하고 집안사람들이 나눈 이야기였다.
그 집안은 경찰서에 신고를 하여 범인을 색출해 줄 것을 요청하였더니 곧장 마을로 순경들이 들이닥쳤다. 이리저리 탐문을 하였으나 자수한 사람도 없었기에 의심이 가는 판개에게 수사의 방향이 틀어졌다. 그런데 판개는 자기가 불을 지르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순경들은 그를 지서로 끌고 갔다. 거기에서 순경의 질문에 엉겁결에 답변하다 보니 혐의점을 일부 드러내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순경들은 그가 실토할 때까지 곤봉으로 마구 때리고 하니까 분을 못 참은 판개가 한마디를 하였다.
“내가 뒷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담배를 한대 피우고 내려오다 보니 불이 났던데 내가 불을 일부러 지런 것은 아닙니더. 우째서 내가 분명히 담뱃불을 끄고 내려왔는데 불이 번졌단 말인기요. 참말로 귀신이 놀랠 일이네요.”
“뭐시라꼬 이 천치바보야. 담뱃불을 끄고 내려와야지, 그냥 불구경할라꼬 보고 있은 게 맞제. 서장님 이놈을 철창에 가두고 심문조서를 받으십시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선산의 소나무를 몽땅 다 태웠으니 콩밥을 먹여도 한참을 먹여야 합니다.”하고 선산주인이 분을 못 참고 씩씩거리나 판개는 동문서답만 하고 실토를 하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은 마을 사람들의 중재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이수정 마을 구장인 해동양반이 급히 지서로 올라왔다.
“서장님, 여기에 있는 판개는 동네에서도 착한 일만 하고 나쁜 짓은 아예 한 적이 없는 바보처럼 순수한 청년입니다. 어찌 판개가 했다고 단정을 하시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그날 그 시간에 산성을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하는데 담배를 한대 피웠다고 그렇게 범인으로 몰고 간단 말인가요.”
“허허, 구장님도 많이 답답하십니다. 구경온 사람들은 양식이 있으니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아무래도 천지분간을 모르는 바보가 한 짓이 맞는 게 아닌가요.”
“최씨 어른, 그 말은 좀 지나치십니다. 지금껏 한 번도 불을 내본 적이 없는 판개가 무슨 앙심이 졌기에 그런 짓을 하였을 것 건가요. 그러면 조상 대대로 판개집안에 잘못이라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구장 어른, 말씀이 너무 앞서 갑니다. 조상들 잘못하고 산불하고 무슨 상관이라도 있겠는가요. 우리 문중은 대대로 이어온 명문 지주집안이 아니던가요.”하고 최씨 집안 종손하고 구장인 해동양반하고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이렇게 하여 판개는 물증도 없고 자백도 하지 않아 방면되었다. 분명히 정황상 판개가 불을 지른 건 맞는데 증거도 없고 또 일부러 지른 게 아니다는 해괴한 소리를 해대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령 판개가 실토한다고 한들 먹고 살기도 힘든 집에서 배상을 받을 수도 없으니 속이 쓰리지만 넘어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만약 처벌을 한다면 또 미친 척하고 자기들의 집에 불을 지를지도 모르는 불안감도 작용하였다. 산소를 다 태워 조상을 볼면목이 없는 최씨 집안만 낭패를 당한 셈이었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판개의 어머니인 개동댁도 병석에 눕게 되었다. 판개는 어머니가 없으면 살아갈 낙이 없으니 산에 가서 좋다는 약초를 캐서 달여드렸다. 그런 효심에도 불구하고 개동댁은 한 많은 삶을 마쳤다. 판개는 어머니를 산성 옆에 있는 밭 귀퉁이에다 묻고 매일마다 산소를 찾아갔다. 어머니가 돌아가고 난 후부터 부쩍 형수의 눈치가 보이기에 그는 아예 솥단지를 하나 들고 집을 나와 상엿집 귀퉁이에 조그만 방을 만들어 기거했다. 그곳은 어머니의 산소가 빤히 바라보이는 곳이라 마음이 편했다. 그가 일 년간을 시묘살이를 하고 난 어느 날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이수정 마을을 떠났다.
다음날 마을 어귀에 있는 세민이 할아버지 독립유공자 공덕비 앞에 진달래꽃 한 다발이 단정하게 놓여있는 게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