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머니의 노인병동 투병일기에 나타난 풍경화
마지막 어머니날
어느 날 그는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본가를 찾았다. 가까이에 있지만 직장 생활도 있고, 주말에는 등산도 가고 해서 자주 가지를 못하는 편이었다. 어머니는 연세는 드셨지만 본가에서 홀로 지내시는데, 바로 옆에 사는 누나가 매일 찾아 식사를 챙겨드리고 가사를 돌본다. 우리 형제는 생활비를 거두어 드리는 것으로 효도를 한다고 편안하게 생각한다. 그가 도착하니 어머니께서 반가워하면서도 아프다고 지나치게 엄살을 부리신다.
“야야, 내가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데다 밤에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자겠다. 온 김에 강의사한테 좀 데려다주라.”하고 어머니께서 하소연하듯 말씀하신다. 순간 그는 가음에 뭉클한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예, 어머니 그렇게 아프시면 진작 말씀하시지 예. 나는 강의사가 병원이전한 것도 몰랐고 누나가 모시고 가는 줄 알았지 예.”
“누나가 차가 없어서 멀어서 택시 타고 가기도 그렇고 해서, 아파도 그냥 참고 있는데 니가 왔으니까 그런 사정을 말한다. 강의사 병원에 데려다줄 수 있겠나. 부탁한다.”
“어머니,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부탁은 무슨 부탁입니까, 아들보고 말이지. 앞으로 그런 말씀하지 마이소.”
“오냐, 고맙다. 그래도 만만한 게 너라고 솔직히 말했는데, 그렇게 해주면 며칠간은 안 아프고 잠을 잘 잘 수가 있겠다.”하고 어머니가 안도하는 듯 밝은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그는 눈물이 핑 돌아 어머니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 순간 효심인지 자비심인지 모르지만 그를 순간적으로 울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당연한 부탁을 왜 그렇게 사정하면서 하는지 자식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보이소, 강의사님 내가 왔소. 뭐할라꼬 이리 먼데로 옮겨가서 나를 고생시키요. 오늘은 우리 둘째 아들이 차를 몰고 와서 편하게 왔소.” 병원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누구보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간호사들 들으라는 소리인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잘 알겠으니 좀 앉아서 기다려 주십시요. 오늘은 밀린 손님이 제법 되니까요.”
“내가 멀리서 왔는데 좀 먼저 봐주면 안 될까. 지금 온 전신이 아파서 죽것다.”하면서 은근히 순서를 앞당겨 진료를 받고 싶어 소위 새치기를 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의 어머니는 은근히 특별대우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하기사 하단에 강의원이 개업했을 때 용하다고 많은 노인들을 소개하고 강의사와 개인적으로도 친했다.
“할머니, 순서를 지키는 게 맞는데, 다른 손님들이 양해를 하셔서 지금 들어가셔도 됩니다. 다음번에는 순서를 꼭 지키셔야 합니다.”
“고맙소, 간호사 아가씨. 내 기억을 하제. 멀지만 않으면 자주 오고 싶던데 다리가 많이 불편해서 그러지를 못했소.”하고 어머니는 다소 겸연쩍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탁월한 언변으로 넘어간다.
“강의사님! 내가 다리가 밤이 되면 아파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데 주사 한 대 맞고 가면 며칠은 잘 자요. 강의사님이 참 용하고 그래서 이리 멀리까지 온다 아닌교.”하면서 진료를 마치고 주사를 한 대 맞고, 일주일치 약을 타고 나온다.
그의 어머니는 언변이 좋고 사교성이 탁월하여 매사를 잘 넘겨왔다. 오랫동안 하단에서 경로당 회장도 지냈고, 구청장과 행사에 사진도 찍고 하는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주변에 못살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구청장에게 직접 찾아가서 생계지원대상자로 만들어주어 선행도 많이 했다. 그래서 집안 옷장 위에는 보건사회부장관 표창장과 부산시장상이 여러 개 진열되어 있다.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특별대우를 받기를 바라는 우월의식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이기심이 있어서 그런지 관심을 받기를 바라는 심리인지 지켜 보야야겠다.
그는 어머니를 모셔드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일주일에 한 번만 시간을 내어 차를 몰고 가면 어머니가 편하실 것이라고 생각 들었다. 그는 직장을 객지로 발령받아 주말에 내려오니까 주중에는 병원으로 모시고 갈 수가 없었다. 일요일에는 친구들과 등산도 하여야 하니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다. 그는 주말에 등산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매주 어머니를 모시고 일요일에 문을 여는 강의원에게 모시고 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근력이 너무 떨어져 보행이 불가능하여 낙상의 위험도 있고 해서 인근의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제 병원에 입원하시게 돼서 편합니꺼. 아니면 집을 떠나 서운합니꺼. 그래도 병원에 계시는 게 자식들로 봐서는 안전하고 생각되는데 예.”
“어찌 보면 너 말대로 서운한 것도 있제. 그 동네 할매들과 못 보고, 내가 매일 빌고 하는 산신할매에게 물을 한 그릇 못 올리는 게 아쉽다.”하고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날 아들과 나눈 대화이다. 어머니는 매일 집안 시렁에다가 촛불을 켜고 쌀과 정화수를 올려 빌고 하였다. 그것을 못하니 의지처가 없어 허전해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다음 주에도 그는 어머니를 문병하였다. 처음 방문한 날은 갓 입원한 신참이니까 다소 조용하였는데, 두 번째 방문 때 보니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타고난 기질이며 오랜 경로당 회장을 지낸 관록에서 나오는 일종의 존재의식의 표현이요, 앞으로 병원생활에서 입지를 굳히려는 포석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야야, 오늘 뭐 좀 사 왔나. 그것 나 혼자 다 못 먹으니 이방에 있는 할매들에게 좀 나누어 주려무나. 나한테 잘하는 것도 좋지만 외로운 할매들한테도 잘하면 복 받는다.”
“여기 할매들 보이소. 우리 아들이 내가 입원했다고 마실 것을 사 와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하네요. 변변찮지만 잘 마시이소.”하고 어머니가 연기력을 발휘하신다. 자신의 생각을 아들이 한 것처럼 포장하여 할매들에게 부담감을 들어주고, 자신의 존재감을 은근히 드러내려고 한다. 앞으로 병원생활에서의 전개과정이 그의 눈에 영화필름이 돌아가듯이 훤히 그려지기도 한다. 혹시 아직도 경로당회장인줄 착각하여 특별대우를 바라거나, 너무 나아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의 어머니는 시골에 있을 적에 많은 고생을 하였었다. 부쳐먹을 논밭이 없어 양식을 마련하기 힘들기에 동생들은 추수철에 보리이삭이나 벼이삭을 주워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고, 월사금을 마련할 수 없어 교장선생을 만나 담판을 지어 면제받기도 하였다. 그런 환경이 어머니가 탁월한 외교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좋은 입담과 사교성으로 부잣집 자녀들의 중매를 하여 그 수입으로 가정에 크게 보태기도 하였다. 그때의 화술과 친화력이 밑거름이 되어 후일 부산으로 내려와서는 종신 경로당 회장직을 맡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는 돈을 아껴 쓸 줄 모르고 있는 족족 쓰기에 바빴다. 어렵던 시골시절에는 쓸 돈이 없으니 조용했지만, 형편이 나아진 부산시절에는 마음껏 소비의 즐거움을 구가하였다. 사치를 하여 쓰는 게 아니고, 자식들로부터 교묘하게 명분을 만들어 받아낸 돈으로 어려운 할매들에게 밥을 사주는 데 소비하였기에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자식들이 그 어려웠던 시골생활에서 못하던 소비를 마음껏 하도록 관망하는 것도 효도일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는 차츰 병원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병실 할매들과의 갈등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언젠가는 일어날지 모르는 어머니의 우월의식과 특별대우를 바라는 마음이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번에는 낮에 시간이 안 나서 저녁에 들렀다. 병실의 할매들도 식사를 마치고 TV를 보거나 눈을 감고 주무시는지 침대에서 좌우로 뒹굴고 있었다. 그리움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마음속의 그림을 그리면서 꿈을 꾸는 듯 몸을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 침대에서 어느 할머니의 참기 힘든 신음소리가 들린다. “아이구 아파라, 정말로 죽것네.”하고 고통스런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가 그분의 침대를 좀 올려 주라고 하길래 핸들을 들려 편안케 기대도록 해드렸다. 그 할매는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조금 지나니까 또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무슨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 틀림없이 보였다. 또 정신적으로 서러움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 할머니의 가족들이 자주 오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는 없지만 외롭게 보이는 건 틀림없었다. 이처럼 요양병원은 육체적 노화와 정신적 공허감으로 매일밤 각 병실에서는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다려도 오는 가족이 없는지 잊혀진 어머니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어버이날이어서 낮에 행사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들렀다. 병원 로비에는 할머니들이 예쁜 종이 모자를 쓰고 손에는 풍선 막대기를 들고 흔들며 좋아하고 있었다. 어머니날에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흘러간 옛 노래도 나온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보행이 어려워 휠체어에 앉아서 관람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도 휠체어에 의지하여 밝은 표정으로 참관하고 있었는데, 한 번씩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자식들이 오지 않았나 확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위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지른다. 아마 그 시간까지 다른 할매들의 가족들은 많이 왔는데, 그의 어머니의 가족들이 안 보여서 다소 기가 죽고 체면이 안 섰던 모양이었다.
“보이소, 우리 아들이 오늘 어머니날이라고 날 보러 왔네요. 아마 어미를 위해 노래도 한곡 할란가 모르겠고, 옛날에 ‘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를 참 잘 불렀는데, 우리 자식들은 모두 효자요.”하고 큰 소리로 말한다. 주변 할매들 중 귀가 잘 들리는 분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할머니들 앞에서 자식 자랑을 많이 하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날인데 오지 않으면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할 뻔하였는데, 그가 나타나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서서히 병원생활은 일 년을 넘어가고 바깥세상의 속도처럼 병실에서도 세월은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 다가오는데, 할매들은 그날이 언제인가를 아는지 모르는지만 곧 다가올 명절을 매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일지 내일 일지 북적거리는 방문객의 숫자를 보고 그날을 짐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가 자주 침대를 올려주고 내려주고 하는 어느 할머니가 그에게 말을 건넨다.
“이번 명절에 우리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하니 가슴이 너무 설레네요. 이번에는 꼭 온다고 했으니까 오겠지요. 어미가 보고 싶다고 얼마 전에는 저희 누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바꿔주고 목소리도 듣고 했는데요.”
"할머니 아드님이 이번 추석에는 꼭 올 것입니다. 편지도 오고 전화도 바꿔주고 했으니 틀림없이 오겠지요.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시면 곧 만나실 겁니다. “
“그렇지 예. 할매 아드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분명히 우리 아들이 이 어미 보러 온다고 했으니 틀림없이 오겠지요. 이 어미가 보고 싶어서 찾으러 오겠지요.”하고 그 할머니는 반복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믿고 그에게도 동의를 구하는 듯 하소연하듯 말한다. 그 할머니가 오랫동안 아들을 보지 못하고, 온다는 약속을 하고도 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는 그러한 사정을 유추하니 마음이 짠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감돈다. 이번 추석에는 또 한 번 실망을 안겨줄 것인지, 모처럼 해후를 하여 부둥켜안고 울 것인지, 추석 지나고 문병 왔을 때 그 할머니의 표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 때마다 자기 부인인 할매를 간병하기 위해 매일 살다시피 한 할아버지가 오늘도 안 보인다. 그 할아버지는 할매가 중풍에다 치매증상도 있고 수족을 거의 못쓰기 때문에, 끼니때마다 밥을 먹여드려야 하기에 매일 나오셨다. 자식들이 오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오직 자신만이 할머니를 간병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인 것 같았다. 무슨 근심이 많은지 수시로 현관 밖으로 나가 줄담배를 피우고 들어오곤 하셨다. 전번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분명히 계셔야 할 할아버지가 궁금하여 안면 있는 요양보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저 창문 옆에 계신 할머니를 간병하러 오시던 할아버지가 요 근래 몇 주간 안보이시네 예.”
“그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 할머니는 아직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답니다.”
“담배를 많이 피우시던데 폐암에 걸렸군요. 근심이 많은 듯 보였는데 말입니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그 할머니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문병하기 위해 예나 다름없이 병원에 들렀다. 그날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옆 병실에 있는 할매의 사위를 병원에서 한 번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장모 되는 할매가 지나가다가 사위에게 말을 건넨다.
“야이 오빠야, 여기서 뭐하노. 나하고 이야기 안 하고 다른 사람하고 놀고 있네. 내가 지금 심심한데 재미나는 이야기 좀 해주라.”
“장모님, 정신 차리이소. 사위 보고 오빠야라고 부르니 보기가 민망스럽습니다. 며칠간 멀쩡하더니 오늘따라 또 그러시네요.”
“오빠야니까 그렇게 부르지 안 그러면 뭐라고 부를꼬. 나는 오빠야가 좋은데 오빠야는 내가 싫은 모양이지. 정말로 서운하다. 그러지 말고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주라 응.”하고 그 할머니는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진정성 있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위는 허허 웃으면서 자기는 이해하는데 남들이 뭐라고 할까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허허, 우리 장모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남 보기가 안 됐지만 일면 이해를 해야겠지요. 병원에 오기 전에 사위인 나를 참 좋아하셨지요. 단지 표현이 민망스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이소.”
“어쩌겠습니까. 그런 증상 때문에 병원에 오셨는데, 장모님의 표정이 저가 보기에는 참 밝고 편하게 보이는데요. 자신은 그렇게 하는 게 즐겁고 편하다고 여기니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하고 그 사위하고 나눈 이야기였다.
노인병동에는 대부분 환자들이 누워있는데, 일부 걸어 다닐 수 있어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분은 치매증상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기억의 상실인가, 그리움의 환상인가, 무섭기도 애달프기도 한 치매의 두 모습이여.
어느 날 문병을 갔을 때 병실 앞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얼핏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분명 가족 간에 서로 싸우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어이구, 정말 효자 났네. 효자 났어. 그렇게 잘 모신다고 집이 아니고 병원으로 모셨다는 말이가.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심심하고 만약의 경우에 신속하게 대비하기 위해 그랬다는 말이제.”
“그래, 어머니가 아직은 조금 불편하시지만 걸어 다니시고, 자식들에게 욕도 안 하고 치매도 아닌데, 무슨 강제수용소에 감금하듯이 그란단 말이고. 아버지가 한 유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지.”
“형님, 그러시면 안됩니더. 형제간에 의논하여 병원에 모셔야 하는데, 전혀 상의도 않고 무작배기로 입원시킨다는 말인가요. 어머니를 고려장 시키는 것도 아니고 아직 칠십 대이면 한창나이인데 말입니다.”
“아니, 시동생이 말을 함부로 하네. 우리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외출도 하고 여행도 해야 하는 데, 어머니 때문에 그러지도 못해 그간 많이 불편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네.”
“야이, 이넘아 너그 형수가 얼마나 욕봤는데 무슨 망발이고. 우리 부부 인생은 안중에도 없나. 다시 한번 그런 말 하면 가만 안둘끼다.”
“어이구, 효자가 아니고 욕심쟁이 불효자가 났네. 불쌍한 건 우리 아버지, 어머니네. 아버지가 유산을 줄 때 어머니를 평생 호강시키면서 집에서 잘 모시겠다고 한말은 말짱 거짓말이었구나. 참말로 얼굴도 두껍기도 하네.”이렇게 가족 간의 말싸움은 주변 사람들이 있어도 부끄럼없이 하니 안타까운 풍경이었다. 혹시 그의 어머니도 그런 모습이 아닌지는 오직 어머니만이 알것이다.
이번에 들렀을 때는 그의 어머니께서 매우 표정이 안 좋게 보인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머니, 잘 지내셨는기요. 어찌 반갑게 대하지도 않고 돌아 누워있는기요. 혹시 이번에도 TV 리모컨 가지고 또 싸운 건 아닌지요.”
“그게 아니고, 내가 아끼던 손거울을 떨어뜨려 깨지고 말았다 아니가. 옆자리 할매 며느리가 침대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려서 떨어뜨린 건지, 내가 몸부림치다가 그랬는지, 눈을 떠보니 바닥에 깨져 있더라구.”
“그랬군요. 그러면 다시 사면되지 무얼 그렇게 걱정하고 계시는기요. 내가 좀 있다가 좋은 것 하나 사드릴테니 얼굴을 펴이소.”
“그 거울은 좀 오래되었지만 자그마하고 동그란 게 참 이쁘기도 하여, 매일 수건으로 닦고 얼굴을 비추어 보고 하여 정이 많이 들었는데 좀 불상타 아니가.”
“거울도 지 나름대로 수명이 있어 지 갈길로 떠났나 봅니다. 새 거울을 사 오면 다시 정이 들 테니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 보이소.”하고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즉시 인근의 백화점으로 갔다. 매장에 들어서서 화장품 코너로 찾아갔다.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거울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거울을 깨뜨려 새로 좋은 것 사드리려고 하는데 한번 추천해 주이소. 멋을 좀 내고 싶어 하는 타입입니다.”
“할머니께서 멋을 내시길 좋아하신다고 하니 테두리가 은으로 된 거울이 좋겠는데, 좀 비쌉니다만 요걸 추천합니다.”하고 주인은 조그맣고 동그란 모양에 은색의 문양이 들어간 거울을 들고 나온다.
“참 예쁘네요. 우리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좀 비싸지만 얼마 안 있으면 생신도 다가오니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드리면 좋겠네요.”하고 그는 그 거울을 사서 병원으로 돌아왔다.
“자, 어머니 손거울을 사 왔으니 마음에 들란가 모르겠네요. 백화점 주인한테 어머니가 멋을 내길 좋아한다고 하니, 이게 제일 어울린다고 하여 사왔습니다.”
“아, 좀 보자. 조그마한 게 손안에 딱 들어가고 은색테두리도 있고 하니 마음에 든다. 돈 좀 많이 들었겠네. 미안해서 우짜노.”
“내일모레 어머니 생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으시이소. 시간 나는 대로 고운 얼굴을 비추어 보면서 친하게 지내이소.”
“그래 알겠다. 안 떨어지도록 잘 보관해야 할 텐데, 조심해서 사용해야겠다. 이 비싼 것을 깨뜨리면 안 되니까 말이야.”
그는 어머니의 침대 머리맡에 고무줄로 손거울을 고정시켜 드렸다. 그리고 옆침대의 시어머니를 간병하는 며느리도 아주 예쁜 거울이라고 칭찬도 하여 어머니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갔다. 늙어가면 자기가 아끼던 거울이 깨어졌으니 집착도 있으려니만 얼마나 안타까왔을까 생각해 보면 노인들의 심리가 이해가 된다. 그리고 몸이 아파서 힘들어도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더 강렬하다고 보였다.
어느 날 병원을 방문하니 간호사분이 나를 부른다. 그것은 어머니가 보관하는 돈 때문에 의논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가족들이 명절이나 어버이날, 생신이 되면 돈 봉투를 드리고 했다. 그 돈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맡기도 그렇고 해서, 가족분이 오면 부를까 했는데 마침 그가 왔기에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 원무실에 갔다 왔는데 맡겨 논 돈이 제법 되어 찾아가라고 하길래 형제간에 의논해 보겠다고 했습니더. 어머니 생각은 어떤가요.”
“내야 이렇게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있는데 너그들이 병원비 댄다고 욕보는 걸 다 안다. 그 돈은 너그들이 의논해서 알아서 해라.”
“어쩐지 너그 누나가 마음에 걸린다. 입원하기 전에는 매일 밥을 챙겨주고 빨래해 주고, 병원이나 약국에도 데려주고 이만저만 고생한 게 아니다.”
“병원 입원하시기 전에 집에 찾아온 손님보고 누나를 간병인이라고 이야기하여, 누나가 기분이 엄청 상했었다면서요. 효녀 심청이 같은 딸한테 그러면 되는가요.”
“그래, 그때 간병인이라고 한말은 좀 심했다고 생각하고 있제. 그렇게 한 이유는 비록 아들네 집에 살지는 못하지만, 간병인을 둘 정도는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 무시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그랬는데.”
“너그 누나가 너그 자형도 먼저 떠나고 해서 어렵게 살더라만 내가 도와줄 방법도 없고 참 안 됐어.”하고 어머니는 심중의 뜻을 은근히 내비치면서 돌아눕는다. 그래서 형제들과 의논한 결과 누나에게 그 돈을 드리기로 하여 어머니의 마음도 편안하게 되었다.
어느 날 병문안을 갔는데 어머니가 시무룩 한 표정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야야, 내가 며칠 전에 옆방 할매한테 크게 수모를 당했다. 저그 방도 아닌데 와서 시비를 걸고 욕을 해버리데.”
“왜 욕을 하였는지 이유가 있을게 아닌가요. 보나마다 높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다가 그랬겠지요. 그걸 조심해야 하시는데.....”
“그래, 내가 우리 방에서 TV리모컨을 꽉 쥐고 있으니까 그 할매가 와서 싹 뺏어 가버리데. 지가 노인병동대장이니 옛날 경로당회장했다고 까불지 말라고 하데.”
“내가 ‘여자깡패가 지랄하고 있네.’해버리니까 내 얼굴을 싹 긁어버리데. 니가 가서 혼을 내주고 오이라. 그래야 분이 좀 풀리겠다.”하고 어머니가 서러운 듯이 하소연을 하였다.
드디어 염려하던 사건은 발생하였고 앞으로가 걱정이 되었다. 어찌 가해한 할매에게 혼을 내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 할매에게 찾아가서 한마디를 하여 어머니의 부탁을 해결해 드렸다.
“할머니는 힘이 철철 넘치시는데 이곳에 계실 필요가 없겠는데요. 요새 나이롱 입원환자가 많다고 하던데 자꾸 폭력을 하면 계속 있기가 힘드실 겁니다.”하고 말하니 그 할매는 움찔하며 놀래는 게 아니던가. 그는 조용히 그 할매 손에 음료수 한 병을 쥐어드렸다.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가족들을 긴급히 보자고 하여 급히 방문하였다. 어머니가 입원한 지도 5년이 넘었으니 연세도 어언 구십을 향해 나아가는 때였다. 불안한 마음을 갖고 병원 중환자실로 들어서니 휠체어에 어머니가 앉아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깜박거리는 눈동자에서 무슨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온 형님 내외분과 누나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의사분이 조용히 말을 한다. 아마 의견이 분분했던 것인지는 알 수는 없었고, 그가 오지 않더라도 당연히 조치를 하여야 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혹시나 이기회에 눈을 감아주었으면 하는 불효가 있을수도 있을까. 예전에 한번 어머니 면전에서 병원비 문제로 다툰 불효도 있었으니까.
“보호자분이 오셨는데, 할머니는 노환과 오랜 침대생활의 후유증 때문에 급성 폐렴이 왔습니다. 여기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달고 특별한 치료가 필요해서 의견을 듣고 싶어 모셨습니다.”
“아니, 병원에서 응급환자가 실려 오면 당연히 중환자실로 모시는데 여기 오래 계신 어머니를 처치를 안 하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참으로 이해가 안 가네.”
"초고령 환자들은 중환자실에서 치료하기 전에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의사표시가 없으면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지요. 병원비도 엄청 나가고 하니 말입니다.”
“여기 계시는 형님 내외분과 누나도 저와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렇게 아시고 특별한 치료를 당장 해주십시오.”하고 그는 의사와 간호사를 향하여 큰소리를 내질렀다. 옆에 있던 형님과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안도하는 듯 순간적으로 얼굴이 밝아졌다. 중환자실을 나오는데 누나가 얼굴을 펴면서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의견일치가 안되어 그의 의견을 듣자고 기다리던 쓸쓸한 풍경이 떠올랐다.
누나가 그를 꼭 불러서 중환자실로 모셔야 한다는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건의했을것이라 짐작해보았다. 내가 만약 멀리 있었다면 어머니의 운명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나가 항상 그보고 해외여행은 가지말라고 한뜻을 알것만 같았다. 사실 어머니를 그렇게 두고 해외에 나가는 사람은 강심장이거나 무심한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어머니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폐렴에서 회복되었다. 부모에게 최고의 기쁨은 자식들이 오래 살기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이며,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에도 어머니를 문병하러 찾아갔다. 병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창가 침대에 누워계시던 어머니의 시선과 마주쳤다. 올 때 마디 마주치는 건 올 것이라는 신통한 예감이 발동해서 그런 것인지, 항상 누가 오기를 기다려서 병실 입구만 응시하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어머니, 잘 지냈셨능기요. 얼굴이 많이 좋아 보이네요. 표정도 밝고 말입니더. 꼭 관세음보살을 보는 것 같습니더.”
“그래, 안 그래도 내가 얼마 전에 폐렴으로 죽다가 살아났다 아니가. 나는 이게 끝인가 생각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 것 같은데, 어떤 할매가 나타나서 내 손을 잡아주더라.”
“아, 그래요. 본가에 모시던 그 할매가 맞던가요. 손을 잡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거참 궁금하네예.”
“할매가 내손을 잡으면서, 너는 좀 더 살다가 좋은 일을 더하고 와야겠다. 경로당 회장 때처럼 불쌍한 사람들을 보살피라고 말씀하시더라니까.”
“그 정말로 신기하네요. 그날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을 때 나타나셔서 손을 잡아 주더라고요. 그 할매도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것 같습니더.”
“나도 그렇게 믿는다. 앞으로 내가 많이 아파도 다른 사람들도 좀 생각하면서 살아가야겠다.”하시는 어머니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입가에 미소가 그득 흐른다. 그는 그런 어머니의 자비스럽고 편안한 얼굴을 여태껏 본적이 없었다.
“내가 회복하여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병실로 들어오는데 같이 있던 할매들이 반가워서 손을 흔들고 좋아하더라. 그래서 같이 있는 할매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아니가.”
“아이구, 우리 어머니 인기가 참 좋았던 모양입니더. 한번 고비를 넘겨 회복되셨으니 많은 것을 깨달으신 것 같습니더.”하고 그는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것을 보고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제부터는 TV도 여기 할매들 보고 싶은데로 하라고 하고, 옛날처럼 이래라 저래도 일체 간섭을 안 한다. 그 할매들이 나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더라.”하고 어머니가 말씀을 하고 계신데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들어왔다.
“할머니, 아주 건강해 보이십니다. 그때 병세가 위급하였는데 천만다행으로 빠르게 회복하셨네요. 자녀분들이 꼭 살려야 한다고 말하길래 우리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이 병실에 계시는 할머니들의 표정도 밝고 해서, 할머니께서 무사히 회복하여 돌아온 것을 자신들의 일처럼 여기는 듯합니다.”하고 말을 끝내고 의사 선생님은 회진을 마치고 다른 병실로 이동하였다.
시간은 흘러 흘러 그의 어머니가 입원한 지도 8년이 다되어가는데 5월 8일이 되었다. 옛날에는 어머니날이라고 하다가 어버이날로 바뀐 지 제법 되었다. 이날은 아내와 오랜만에 아들을 데리고 문병을 갔다. 어머니는 이제 말씀도 잘 못하시고 간간이 한마디만 할 정도로 기력이 쇠잔한 상태이다. 꽃다발을 하나 사들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기다리고 계신 것이 틀림없이 보였다.
“어머니, 오늘은 손자도 같이 왔는데 한번 쳐다보이소. 오늘이 어버이날이라고 며느리가 꽃다발도 사갔고 왔네 예.”하니 어머니는 기력이 없는지 눈으로만 답하고 말씀을 안 하셨다. 어머니를 침대를 올려드려 등받이에 기대게 하고 좋아하시는 요플레를 스푼으로 천천히 떠먹여 드렸다. 아들이 떠먹여 주는 게 좋은지 한통을 다 잡수셨다.
“야야, 할머니 다리 아프신데 좀 주물러 드려라. 너가 어릴 때 세뱃돈도 많이 주시고 너를 귀여워하셨다 아니가.”하고 아들에게 말하니 뼈만 앙상한 다리는 주무를 곳도 찾기가 어려웠다. 감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살짝 웃으시고 눈시울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야야, 내가 바라는 게 있다. 너그 할매 잘 모시고, 너그 누나하고 막내가 잘 되어야 할낀데 그게 걱정이 된다.”하고 모기소리 만하게 말한다.
“예, 어머니. 할매는 혹시 출가하신 고령할매가 맞는지요. 몇 년 전에 거창 고견사를 한번 다녀왔습니더. 그 할매가 집에 모시는 그 할매이겠지예.”하니까 고개를 끄덕거리는지 마는지 하여 정답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문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 같기도, 모든 걸 달관한 듯한 굳건한 입다뭄의 주름살이 퍼져나간다. 착잡한 마음으로 병원문을 나서는 그의 눈가를 촉촉하면서도 뜨거운 기운이 감싼다. 매년 방문한 어버이날은 그날만큼은 어머니날이라고 불러본다. 그럴 것이라고 예감하고 아내와 아들과 다 함께 왔지만, 그날이 그에게는 마지막 어머니날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