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차 맞벌이, 20년 차 워킹맘 이야기
아이들을 낳은 후, 허우대도 멀쩡하고 공부도 잘하는 건실한 청년으로 키워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어른으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려면 엄마로서 챙겨야 할 게 많았죠.
아이를 낳기도 전, 아니 임신을 준비할 때부터 예비 엄마로 챙겨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결혼 후 임신을 계획 중이라면 똑똑한 아가를 만나기 위해 임신 3개월 전부터 엽산을 챙겨 먹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가의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풍진과 간염 항체가 있는지 확인하여 예방 접종을 맞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임신을 하지 못해 첫째 때는 엽산을 챙겨 먹지 못했지만, 결혼 후 자연스레 임신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풍진 예방접종을 맞아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임신을 하고 나서도 챙겨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때도, 둘째 때도 임신 초기 5개월 동안은 피가 비쳤던 터라 정기 검진 외에도 첫 아이 임신 중에는 거의 1~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첫째는 5개월 동안 피가 비치고 유산기가 있어 약을 먹어야 했고, 안정되었나 싶었던 8개월 즈음 양수가 새는 등 여러 일들이 있었거든요. 첫째 때 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더니 둘째를 임신하고 피가 비쳤을 때 제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자 간호사 선생님이 의아해하시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좋은 산후조리원은 빨리 자리가 차기 때문에 미리미리 산후조리원을 예약하고 낯선 출산 준비물을 챙기는 일은 그나마 수월한 축에 속했달까요.
아이를 낳은 후에는 먹거리에 신경 썼습니다. 맞벌이로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영양가 있는 식사를 챙기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죠. 제가 아이를 낳았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판 이유식이 대중화되기 전이어서 시중에 나온 이유식은 제가 어릴 때도 있었던 거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해서 주중에 먹을 이유식을 만들어 얼려두었습니다. 아가가 잘 먹으면 너무 기뻤지만, 아가가 잘 안 먹으면 뭐가 잘못되었나 노심초사 살펴보았죠. 그래도 저희 아이들은 잘 먹는 아가들이라 수월한 편이었습니다. 둘째와 같은 해에 태어난 조카는 예민하고 입이 짧아 조금만 입에 안 맞으면 토하는 아이 었던 터라 식사시간이면 동생이 아주 고생을 했던 게 떠오릅니다.
아이가 조금 크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선택하는 것도 험난합니다. 첫째가 4살이 되었을 때 계속 어린이집을 보낼지 유치원으로 보낼지 고민이 시작됩니다. 유명한 유치원은 대기도 많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가능하면 빨리 보내는 게 좋다고 하여 첫째는 5살부터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어린이집과 달리 낮잠시간이 없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첫째가 피곤해하며 저녁도 못 먹고 잠이 드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욕심 때문에 너무 일찍 유치원에 보낸 게 아닌가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둘째 때는 유치원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추첨을 해야만 했습니다. 운이 좋은 터라 다행히 추첨이 되어 원하던 유치원에 입학을 했지만, 같이 지원했던 친구 엄마는 추첨에서 탈락하고야 말았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후엔 챙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집니다. 유치원보다 더 짧은 시간을 보내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방과 후 학원을 세팅하고 녹색 어머니, 학부모 총회, 상담, 공개 수업에 참가하고, 준비물과 숙제를 챙기는 것은 모두 엄마의 몫입니다.
회사 일도 신경 쓰고 가정일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자주 지쳤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아이를 키웠는데 나에게 뭐가 남는 걸까 하는 생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고 바쁘니 도대체 아빠들은 어디로 간 거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시들어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우울해지는 저를 돌아보며 저는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을 조금씩 허물어갔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완벽한 아이로 키우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달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고 나니 슈퍼맘이 되고 싶다는 압박감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바꾼 후 아이들을 바라보니 생각지도 못한 어휘를 사용한다던가, 꼬물거리는 손으로 그리던 그림이 점점 형태가 보인다던가, 이렇게 조금씩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기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니 마음이 여유로워졌습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니 부담감도 적어졌습니다. 이렇게 아낀 에너지와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니 너무 힘들 때 스멀스멀 올라오던 보상심리도 사라지고 가족의 분위기도 좋아졌습니다.
결국, 부모로서의 역할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헌신이란 때로는 나 자신을 돌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나의 행복과 안정을 소홀히 하지 않게 맞춰가다보니, 헌신은 희생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을 위해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