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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의 허상, 완벽함을 향한 갈망과 좌절

22년 차 맞벌이, 20년 차 워킹맘

by 조여사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하겠다고 결심한 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습게도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저는,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우리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에게 언제나 맛있는 간식과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옆에서 서포트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이 아이들을 올바른 성인으로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키도 컸으면 좋겠고, 영어도 잘했으면 좋겠고, 좋은 대학에도 갔으면 좋겠고, 성격도 바르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욕심이 많았죠.


하지만 맞벌이 워킹맘의 삶은 제 바람대로 그렇게 흘러가지 않더군요. 아이가 어릴 때는 언제나 부랴부랴 퇴근을 해서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항상 6시 땡 하면 칼퇴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을 때면 언제나 저희 아이가 늘 마지막이거나 뒤에서 두 번째로 남아 있었죠. 저희 아이가 마지막일 때면 미안함에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둘 남은 아이 중 저희 아이만 데려가야 할 때, 엄마손을 잡고 가는 저의 아이를 바라보는 아이 친구의 슬픈 눈빛을 보면, 우리 아이도 저런 슬픈 눈으로 친구를 보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회사 일을 하고 숨쉴틈도 없이 퇴근해서 아이를 데려오면 또 다른 일터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집이죠.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아침을 챙겨 먹이고 출근한 흔적, 아이들이 놀다 던져놓은 장난감들, 쌓여있는 빨랫감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던져놓은 일감보다 더 급한 건 매일의 저녁 식사와 목욕이었죠. 이런 일정이니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습니다. 재빨리 저녁을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겨우 책 한 권씩 읽어 준 후 재우고 나면 지쳐버리기 마련입니다.


첫째가 6살, 둘째가 4살 때 이사를 하며 새로운 동네에 어린이집 자리를 마련하려 했지만, 어린이집에 TO가 안 나서 첫째는 예전에 다니는 유치원에, 둘째는 새로운 동네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출근해야 하는 엄마 때문에 아침마다 일찌감치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첫째는 차에 태워 예전 동네 유치원에 데려다줘야 했습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때면 일찍 온 아이들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잘 보여주지 않는 TV를 보고 있는 동생들을 보고 첫째는 자기도 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1년만 지나면 학교에 가야 하니 엄마 마음에는 학교 입학을 준비할 수 있는 유치원을 계속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아이는 TV 때문에 어린이집을 가고 싶다고 떼를 씁니다. 아이를 셋 키우며 경험이 많은 엄마에게 상의를 해보니, 어릴 때 교육은 별 소용없으니 아이가 원하는 데로 해주라고 조언해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를 포기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그 정신없는 저녁 시간을 쪼개서 공부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사교육을 불신하는 남편은 초등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는 걸 반대했고, 설득에 실패한 저는 결국 아이들의 공부를 직접 살펴야 했습니다. 학년에 맞는 문제집을 준비하고 싫어하는 아이들을 설득해 문제를 풀리고 아이들이 틀린 것들을 설명하는 일들은 신경 쓸 것도 많고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 때까지 직접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며 저는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것을 챙겨야 했기에 모든 것이 정해진 루틴대로 흘러가야 수월할 텐데, 인생이란 그럴 리가 없죠.


제가 너무 예민하니 남편은 완벽하려고 애쓰지 말고 포기할 건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 말이 더 화가 났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기로 했어?"라고 툭 던지며 정작 아이들 교육에 주변인처럼 있던 남편이 그런 말을 하니 더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완벽할 수 없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걸요. 이렇게 또 하나를 포기합니다.


이렇게 저는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욕심을 버렸습니다. 영어도 공부도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부모가 강요한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요. 그리고 엄마로서의 마지막 보루로 잘 먹고 잘 자고 바르게 자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매일 정성껏 저녁을 차려주고 주말이면 특별한 요리를 해주면서 말이죠. 이제 성인이 된 첫째는 178cm, 둘째는 165cm로 키가 작은 엄마에게서 이 정도의 아웃풋이 나온 것에 감사합니다. 엄마가 살뜰히 공부를 봐주지 못했지만, 첫째는 작년에 무사히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생인 둘째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둘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완벽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저에게 절망감을 종종 아니 자주 안겨주었습니다. 그 좌절 속에서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고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비록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이 정도면 잘 자라준 것 같아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아보면 아이들이 잘 자라준 건 제가 모든 것을 완벽히 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부족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식사시간, 잠들기 전 읽어줬던 책 한 권, 그런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아이들을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완벽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기보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채워지는 거라고요. 완벽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이루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부족한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하루를 살아보도록 해요. 부족한 데로, 때로는 실수하며 살아가도 우리 삶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의미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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