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차 맞벌이, 20년 차 워킹맘
2005년과 2007년 두 아이를 출산한 뒤, 제가 최초로 회사에 복직한 여직원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출산 후 복직은 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복직한 이후 회사 문화는 점차 변화했습니다. 육아휴직과 복직은 당연한 흐름이 되었고,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육아휴직 제도를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2018년 초, 회사에서 육아휴직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계약직 직원을 충원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원진으로부터 경력단절 여성을 채용해 보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몇 해 전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위한 경력단절 여성을 계약직으로 채용한 후 그분이 일을 꼼꼼히 잘하셔서 정직원으로 전환된 성공 사례를 떠올린 덕분이었죠. 임원진으로부터 다른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대졸신입 대신 경력단절 여성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의 문화도 정말 많이 바뀌고 있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경력단절 여성만 타게팅해서 채용 공고를 내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회사로 영업을 나왔던 지역고용센터의 대체인력 채용 센터가 생각이 났고 그곳에서 대체인력뱅크라는 곳을 소개받아 워크넷을 활용하여 채용 공고를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최저임금 수준의 계약직에도 정말 뛰어난 경력을 지닌 지원자분들이 지원하셨습니다. 고용센터와의 조율을 통해서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서류만 제출한 분들을 제외하고 정말 취업 의지가 있으신 분들에게 면접 제안 통화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면접 제안 전화를 드렸을 때, 지원자분들은 공통적으로 모두들 하나같이, "내가 정말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육아휴직 대체로 몇 개월 근무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크게 업무역량에 대해 기대하지 않고 공백을 메꿔줄 정도만 하시면 되니 너무 부담 같지 말라고 말씀드렸지만 모두들 오랫동안 쉰 후 다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시는 것 같았습니다. 긴 공백 기간이 만들어낸 불안감과 두려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듯했습니다. 이력서를 내기까지도 용기가 필요했겠지만,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에 올 용기를 내지 못하셨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사회로 다시 한번 한발 내딛으신 한분과 면접을 보고 채용을 하게 되면서 저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경력단절여성을 위해 무언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국가에서 새일센터를 론칭하기 위한 설문조사에 참여하게 되고 설문조사 결과 보고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경력단절 여성들의 사회도약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이 마련되더라도 실제로 용기 내어 마음먹지 않으면 그분들이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란 정말 어렵지 않을까 라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당시 10여 명의 엄마들과 나눈 대화는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대부분 저와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에, 그분들의 두려움이 결코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퇴사하고나면 사회로의 재진입에 대해 두려워하는 엄마일 테니까요.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곤 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일반 사무직으로 퇴사를 하면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퇴사 후에도 내가 가치를 느끼며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경력이 단절된 이후에도 나의 경험과 능력을 살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지...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와 전화통화에서 친구가 다시 직장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과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퍼뜩 깨달았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경력단절 여성들과 함께 했던 경험이 바로 제 커리어코칭의 시작점이었다는 사실을요.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처음 시작한 것도, 코칭을 배우기로 마음먹은 것도, 나아가 커리어코칭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도 모두 그때의 경험 때문이었는데, 한동안 그 원동력을 잊고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채용정보를 얻는 방법과 새일센터나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채용연계 교육, 그리고 친구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검토해 주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때는 막막했지만, 지금은 제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코치 자격증도 취득했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법에 대한 실질적인 노하우도 갖추었습니다. 커리어코칭을 위한 준비는 충분히 되었으니,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한걸음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경험했던 고민과 깨달음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작은 용기와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도전하고 성장하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