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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사 Nov 03. 2023

더이상 행복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맑은 가을 하늘의 햇살을 느끼며>

맞벌이하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기관에 어린 아이 둘을 맞기고 오롯이 부부가 함께 아이들을 키웠다. 아침이면 회사를 출근하고 퇴근하면 아둥바둥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래도 그저 집에서 아이들이 올망졸망 노는걸 바라보거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즐거워하는 걸 보면서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어 어느 정도 손이 덜 가게 되면서, "아, 이런 시간 무척 소중하다. 이런게 행복이라는 건가보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 남편이 퇴사를 결정했다. 나는 무척이나 반대했지만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고, 그렇게 외벌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외벌이의 삶이란 생각보다 압박감이 심했다. 남편보다는 적게 벌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리 적게 벌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찌저찌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생활의 규모를 줄일 생각은 없었던 듯 하다. 아니 머리로는 줄여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먹거리를 중요시하는 남편은 어느날 아이들이 먹을 간식이 떨어지자 이런 것까지 줄여야하는 것을 우울해했고 가끔 폭주하는 남편을 보면 그 마음은 어쩔까 싶어 그 소비를 용인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이런 생활을 지속한지 1년이 될 무렵, 집안에 사정에 생겨서 조카가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감당할 자신은 없었는데 울면서 부탁하는 남편을 외면하지 못했다. 이렇게 어설프게 착했던 나는 서서히 마음의 병을 얻었다. 그리고 어느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아도 더이상 행복감을 느낄 수 없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소소한 행복감을 다시는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신년의 목표를 "올해는 행복해지기!"로 삼고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쉽사리 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과 아이들이 시시덕거리는 농담을 하고, 다 큰 애들이 마루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을 보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한번 그 때의 그 소소한 행복감을 느꼈다. 40대가 되고 나서 부모님의 노후가 보이기 시작하니 나의 노후가 무섭게 현실로 다가오고,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니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하여 정신적으로 흔들리곤 하면서 한번 아픈 이후로 조그만 것에도 흔들리는 내가 스스로 불안했는데 그 조그만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나니 이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지금은 남편이 재취업을 하고 다시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중이다. 지금의 나는 남들이 보기엔 행복한 삶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 생각난다. 현재의 나는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행복을 느끼지는 못한다.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아마도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 지치고 힘들었던 당시가 떠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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