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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Apr 15. 2024

그때 그 강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릴 때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다. 엄아에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느 날 어디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너무 귀여운 강아지를 안고 오셨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똘똘하게 생긴 어린 강아지였다. 거실 한 곳에 강아지가 머물 공간을 마련해 놓긴 했지만 거의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강아지 이름은 '영미'라고 지었다. 영리하고 똑똑하게 자라길 바랐다. 학교에 가서도 '영미'가 보고 싶어 간식으로 받은 빵을 먹지 않고 가져와서 '영미'에게 주었다. 지금은 사료를 먹인다고 하는데 그때는 집에서 먹는 음식이나 남은 것들을 줄 때였다. 



'영미'는 우리의 사랑만큼 한 번도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영미와 춤을 추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왔고, 영미의 앞다리 두 개를 잡고 내 몸은 낮춘 채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쑥스러운 듯 어색한 표정으로 '영미'는 나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 아마 자신의 주인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자못 흐뭇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영미'가 임신을 했다. 그때는 시골이라서 그런지 풀어놓고 키울 때였는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눈이 맞은 짝이 있었나 보다. 그 후로 '영미'의 짝을 본 적은 없다.


영미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무거워진 몸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출산할 시기가 다가올 무렵에는 무척 예민해진 영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청 킁킁거리니, 엄마가 내 방 모퉁이에 천을 깔고 우리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으로 가려주었다. 엄마가 그렇게 자리를 만들어주자 자신의 자리인 줄 알았는지 얼른 그 자리로 들어가면서 고마운 듯 꼬리를 흔들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긴장한 듯 숨죽이고 '영미'의 상태에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작지만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난 그 소리를 들었다. 궁금해서 커튼을 젖히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를 말렸다. 자식을 낳은 어미는 아무리 주인이라도 불안해할 수 있으니 조금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했다. 시간이 흘렸고, 엄마는 '영미'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 왔다. 커튼을 쳤을 때 '영미'젖을 빨고 있는 다섯 마리의 강아지가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영미'가 어찌나 위대해 보였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새끼 강아지를 만지려고 했더니, 영미가 약간 성을 냈다. 


엄마는 '영미'에게 "아기 낳느라 수고했다. 밥 많이 먹어야지 젖이 잘 나오는 거야"라고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그만 영미 몸에 다섯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다는 것이 어찌나 신기한지 영미 몸이 회복되었을 때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아! 운명의 날이 왔다.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 강아지를 다 돌볼 수 없었다. 나처럼 강아지를 원하는 좋은 분에게 강아지를 보내야 했다. 결국 두 마리만 남기고 세 마리는 다른 곳으로 보냈다. '영미'에게 너무 미안해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지만, 더 좋은 주인에게 보냈다는 엄마의 말에 위안을 받았다. 남은 두 마리의 이름을 정했다. 남자애는 '영정'으로 여자애는 '영순'으로 정했다. '영'으로 돌림자를 쓰는 집안이 된 것이다.


이런 행복한 시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강아지였지만, 어느 날 세 마리의 강아지를 다 떠나보내야 했다. 오늘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다만 그때 이후로 난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이별을 겪고 싶지 않았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영미'를 추모하고 싶기도 하지만, 또 한 마리의 강아지를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그 당시 내가 몰고 다니던 차는 빨간 마티즈였다. 어느 날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고 있는데, 내 차 뒤쪽 공간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털이 북 실한 귀여운 강아지였는데, 바깥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상태가  많이 지저분해 보였다. 약속시간도 임박했고, 혹시 강아지가 다칠까 봐 다른 데로 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난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그 후로도 내차 뒤편에 자리 잡은 그 강아지를 보게 되었다. 이제는 나를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한다. "전에 키우던 주인이 빨간색 차량을 몰고 다닌 걸까?" 주차장에 있는 많은 차들 중에서 왜 내 차 뒤에서 머물고 있는 거지!  그러나 그 당시 난 누군가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유산과 수술로 몸이 좋지 않았고, 남편과 시댁은 애완견을 키우는 것을 반대했다.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강아지였고, 난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강아지를 키울 형편이 안되었다.


강아지에게 마음은 쓰였지만 가능한 마음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있는데 그 강아지가 나를 따라왔다.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고,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강아지가 타지 못하도록 도망치듯 문을 닫았다. 그다음 날 내가 머무는 6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자 그 안에 그 강아지가 있는 것이다. 나를 보더니 반가워하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내리는 층을 어떻게 알고 올라온 것일까?"    


끝까지 그 강아지를 품을 수 없었던 나는 그 상황에서도 강아지를 받아들였을 때 올 파장을 생각했다. 내가 키우지 못해도 다가와 말해주고 쓰다듬어 줄 수 있는데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다음 날 주차장을 내려갔더니 역시 강아지가 내 차 뒤편에 있었다. 내 차가 출발하자 그 강아지가 내 차를 따라왔다. 백밀러로 그 강아지를 보는데 갑자기 울음이 나왔다. "미안해" 그런데 그 이후로 난 그 강아지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강아지가 생각난다. "다른 주인을 찾아 떠난 걸까? 내가 그 강아지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바깥을 떠돌아다니다 죽었으면 어떡하지." 많은 생각들로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우리 집에 머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그렇게 냉정하게 강아지를 안 볼 이유는 없었는데….

"아마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났을 거야."라고 위로해 본다.


어릴 때 내게 전부였고 친구였던 '영미와 영정, 영순'이를 추모한다. 내게 사랑을 주었던 고마운 강아지. 잠시 나를 찾아와 주었던 이름 모를 강아지. 늘 그리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벚꽃은 날리고, 그 화사한 아름다움이 곧 저버릴 것 같아 두렵지만 벚꽃 연가에 담아 그들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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