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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tral Jun 15. 2024

그림책으로 밥 먹고 삽니다 8

맛있는 건 맛있다!

 

그림책 <맛있는 건 맛있어>는 아이가 다양한 맛으로 배우는 감정과 관계,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어린이‘나’는 가족과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단지 맛이 혀로 느끼는 것이 다가 아니라 눈으로, 코로, 소리로 느끼는 것임을 알아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맛에 대한 생각은 오감을 뛰어넘어 맛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공간과 함께하는 것, 시간이 담긴 것이라는 의미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맛을 알아가면서 훌쩍 자라나고 세상을 배우는 건 어린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때마다 새로운 맛으로 나를 깨우는 사람들 덕분에 나 역시 여전히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저 멀리 후배의 부산 집, 정확히는 후배의 시댁의 큰집에서 대저토마토가 오면 김장을 하듯이 라구 소스를 만든다. 라구는 계절 상관없이 만들던 것이지만, 후배의 선물을 받은 첫 해에 보관을 잘못해 물러진 것으로 라구를 해 먹은 뒤부터는 꼭 대저토마토로 나만의 봄 김장을 한다. 대저토마토는 생으로 먹어야 달콤 짭짤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라구로 만들어 얼려 두고 야금야금 꺼내 먹을 때마다 후배를 떠올리게 되니 제맛보다 더한 맛은 ‘고마운 맛’이다. 두 살 아래의 녀석은 나와 같은 일을 하고 또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그러니 그 바쁨과 허덕거림이 어떤 줄 뻔히 아는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봄이 되면 토마토를 보내온다.

초록과 빨강이 반쯤 섞인, 단맛과 짠맛이 반쯤 나는, 덜 익었을 때 더 맛난 대저토마토는 그와 닮았다. 까다롭고 센 듯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수더분하고 여리다. 고작 두 살 더 많다고 언니 행세하는 내 눈에 가끔 그의 덜 익은 면이 속상하다가도 그 또한 그의 매력이니 다 익지 말았으면 바라게 된다. 아이처럼 투덜대며 털어 놓는 고민이나 쏟아 내는 불평에 어쭙잖은 조언과 위로를 하지만, 가장 약한 부분은 아무에게나 내보일 수 없으니 정작 고마운 것은 내 쪽이다.

토마토를 받아온 지 벌써 다섯 해쯤 되었는데도 나는 말만 하고 아직 대저토마토로 만든 라구를 후배에게 한 번도 보내지 못했다. 내년 봄에는 꼭 그에게 고마운 맛을 선물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맛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는 서산에서 햇감자가 온다. 감자를 선물해 주는 이와는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우리는 SNS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책과 꽃과 밥과 술을 사랑하는 서로의 취향에 반해 친구가 되었다. 나와 그이의 딸이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서 더 가까워졌다.

우리는 가끔 메시지로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드라마 주인공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실제로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나는 책을, 그는 감자를. 그이가 보내 온 감자는 색도 모양도 냄새도 예쁘고 예뻐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그저 찌기만 해도 맛있지만 조금이라도 손을 더하는 것이 마음을 더하는 것일 듯해서 팔을 걷어부친다. 그래서 어느 해는 감자를 찌고 으깨고 빚고 데치고 구워서 감자뇨끼를, 또 어느 해에는 감자를 삶고 거르고 끓여서 감자수프를, 또 다른 해에는 감자를 썰고 볶고 포개고 구워서 감자명란그라탕을 만들어 먹었다.

조리 방법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지만 랜선 친구가 보내온 감자로 만든 음식에는 한결 같은 맛이 있다. ‘그리운 맛’!  비록 만난 적도 없고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메시지를 보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햇감자가 나는 계절에 나를 떠올려 주는 마음이 포슬포슬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리워할만하지 않은가. 버튼만 누르면 얼굴을 보면서 통화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리워하는 맛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럼에도 ‘그립다’의 뜻은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이니 어느 좋은 날 만나서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맛을 나눌 수 있을까.    

대저토마토와 서산감자로 만든 셰퍼드파이

 

추석이 가까워오면 가족 모두가 기다리는 과일이 있다. H 작가님의 복숭아다. 이 복숭아를 먹기 전까지 나는 이 과일을 딱히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 맛을 본 뒤로는 매년 초가을 작가님의 복숭아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비단 보자기를 끄를 때처럼 스르륵 매끄럽게 벗겨지는 껍질, 아기 볼 같이 보드랍고 여린 속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과육, 그 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과즙. 여느 복숭아가 이와 다르지 않겠지만, 온몸에 이야기를 품은 작가님이 직접 가꾸고 거둔 그 맛을 세상 어느 과일에 비할 수 있을까.

작가님의 어여쁜 복숭아를 주문하면 그보다 더 어여쁜 것이 함께 온다. 바로 복숭아 파치다. 파치는 열매가 익을 때 새나 벌레가 먹거나 수확하면서 생긴 흠집 때문에 상품으로 가치가 없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일 년을 꼬박 애써 가꾼 농부에게 파치는 실한 자식과 똑같이 대견한 자식이자 아픈 손가락일 테다. 장맛비와 태풍, 벌레와 새들에게 순순히 저를 내어준 파치 덕에 다른 열매들이 온전히 남았을 테니까. ‘조금 못생겨서 그렇지 맛은 더 있을 거예요.’ 하며 건네주는 작가님 부부의 눈길과 손길이 애틋하게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을까.

주문한 복숭아보다 훨씬 더 많은 파치를 받아들고 ‘이걸 어떻게 다 먹지.’ 망연자실 하다가 되살려 보기로 했다. 무르거나 벌레 먹은 부분은 잘라 내고 설탕과 함께 보글보글 끓이고 바글바글 졸여서 복숭아 조림과 청과 잼을 만들었다. 남편과 아이는 아플 때마다 이 복숭아 조림을 먹고 힘을 낸다. 나는 파치 복숭아를 되살리고, 파치 복숭아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되살린다. H 작가님의 복숭아에 담긴 맛은 ‘되살리는 맛’이다.

복숭아조림과 복숭아 주스



계절을 달리고 달려 어느새 겨울 한가운데에 다다르면 한 해 중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이 온다. 팥을 좋아하는 내게 이날 먹는 팥죽은 설날 떡국이나 추석 송편보다 중요하다. 늘 가던 단골 팥죽집에서 사다먹다가 몇 년 전 겨울부터는 팥죽을 직접 쑤어먹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파주 어느 마을의 ‘이장님’이 직접 거두신 팥을 받고부터다. 일흔을 넘긴 이장님은 바늘과 실로 그림을 그리는 그림책 작가이자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다. 때마다 철마다 파며 콩이며 배추며 노각이며 완두콩 같은 값진 작물들을 보내 주셨는데, 붉고 단단한 팥알이 소복이 들어 있는 베주머니를 여는 순간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한참 뜨거운 여름에 모종을 심고 포기를 솎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늦가을에 추수하기까지의 그 지난한 과정은 책으로 보기만 해도 노동의 강도를 알 만했다. 게다가 고운 팥만 하나 가득이니 꼬투리를 일일이 털어 썩거나 벌레 먹은 것은 골라냈을 그 손길에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손으로 젊은 시절에는 자식들을, 이제는 온갖 곡식과 채소를, 또 한편으로는 그림책 독자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이장님. 건너건너 내게까지 전해지는 이장님의 마음이 나를 든든하게 했다. 누군가를 보살피기만 하는 줄 알았던 내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구나.

그러니 이장님의 팥으로 쑤어 먹은 동지팥죽은 ‘보살피는 맛’이다. 긴긴 겨울밤, 마주앉아 팥죽을 먹으면서 나와 가족의 몸과 마음을 보살핀다. 마주앉지 못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팥죽을 전한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존재라는 것, 내가 받은 든든하고 다정한 보살피는 맛을 느끼도록.

이장님의 팥으로 쑨 팥죽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 동안 나는 또 어떤 맛을 배우고 자라고 나누게 될까.

음식과 사람이 있어서 인생은 맛있다.

맛있는 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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