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의 의미

방황의 가치31_20210719

by 오랜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특히 극본 쓰는 사람으로 “알다”라는 말은 섣불리 쓰기 어려운 것인 것 같다. 어떤 인물, 캐릭터를 안다는 것이 내게 그런 것인데. 극본 쓰는 사람에게 그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은 그가 할 말을 대신 쓸 수 있거나 그가 할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 때이다.





“주인공 직업을 사기꾼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3년 전 시나리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에서 내가 쓴 이야기를 읽고 해주신 한 작가님의 코멘트다. 언뜻 사기꾼으로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오히려 그런 류의 범죄자로 쓰는 것이 익숙하고 식상해서 그렇게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사기꾼이라면 조금은 신선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단번에 “좋은데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애초에 그런 결정을 한 이유는 내가 사기꾼을 잘 알고 있다는 예단에서였다. 그러나 나는 사기꾼의 말과 행동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사기꾼이 뭐지? 사기가 뭐지? 그런 방황은 근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그렇게 방황하고 방황하다가, 겨우 찾을 수 있었던 사기꾼의 정의는 “가짜 옷을 입는 사람”이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입고 있는 가짜 옷, 파일럿의 유니폼을 보면서 겨우 하나 건져낸 정의다. 그렇게 한 끝 찾아내고서도 몇 달을 사기꾼이라는 존재를 알아 나가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알다”의 정의가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했다.





요즘도 나는 여전히 안다는 것의 무거움을 느낀다. 그 인물의 역사에 대해 열 페이지 가까운 분량을 쓴 후에도 그가 할 말과 행동을 찾지 못할 때가 다수이다. 문득 오늘 이 에세이를 쓰기 전에 ‘알다’라는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 찾아보았다. 뜻이 열한 가지이다. (저작권 때문에 굳이 발췌해오지 않겠다. 열한 가지 뜻이 궁금한 사람은 직접 찾아보길.) 애초에 ‘알다’는 그리 만만한 단어가 아니었다. 또다시 새삼 이 말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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