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 교수님

방황의 가치24 _2020년 8월 27일

by 오랜

주기적으로 SNS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간혹 떠오를 때마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 팔로우로 연결된 이들의 근황을 살핀다. 사실 지인은 거의 없다. 지인은 안부를 물으면 되니 굳이 허세 가득한 SNS로 소통할 필요없다고 본다. 그러니 대부분 유명인들인데, 그 중 도서관 시민 강좌로 뵙게 된 홍세화 작가의 트위터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의 일부를 트위터 올려져 있었다. 그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내용이다. 문득 홍세화 작가께서 왜 문 대통령께 이런 꼬투리를 잡아 화를 내는지가 궁금해졌다. 이유를 찾기 위해 전체 트윗을 보는데 뜻밖의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한겨례 신문의 칼럼 '정찬의 세상의 저녁'. 홍세화 작가가 링크로 걸어둔 이 칼럼의 저자 소설가 정찬은 내 대학 은사님이시다. 소설 교수님이자 내가 처음 만난 소설가이다. 나의 글에 소설의 냄새가 난다면 오롯이 교수님의 영향이다.


교수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내겐 특별한 분이다. 2007년 3월. 문예창작과 편입 후 처음 들어간 수업이 소설창작론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그해 처음 부임해오셨다. 그날 나는 아침 일찍 학교로 가 텅빈 강의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낯선 강의실에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강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하나 둘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리가 채워질 때마다 점점 더 외로워졌다. 방학 동안의 안부를 묻는 이들 사이에서 나만 외따로이 홀로였으니까.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던 차에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새로 오시는 소설 교수님이 서울대 출신이라고. 문단에서 꽤 유명하셔서 상도 많이 받으셨다고. 나는 문창과 첫 수업의 담당 교수님께 호기심이 생겼다.


문예창작과를 다니는 내내 빼놓지 않고 소설 수업을 들었다. 첫 수업을 함께한 동지애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을 쓰며 읽게 된 본격 소설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있었단 말이야?’ 할 정도였다. 깊은 관심은 창작으로 이어져, 글쓰기가 빠른 속도로 늘었다. 내 첫 소설을 읽고 '중3 짜리가 쓴 것 같다'던 정찬 교수님께서 1년 후 '소재만 잘 잡으면 소설을 아주 잘 쓸 것 같다'고 격려할 정도였으니. 빠른 발전의 원동력엔 노력이 있었다. 학기 말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그 다음 학기에 쓸 소설을 구상했으니까. 그 시간과 달콤한 성과는 이후 오랫동안 내가 글을 쓰는 동력이 되었다.




칼럼 속의 소설가 박영한 또한 내가 다닌 대학 문예창작과의 교수님이셨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투병 중에도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애쓰셨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은 바 있다. 정찬 교수님과 박영한 교수님이 이렇게 각별한 사이셨다는 것은 칼럼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런 인연으로 박영한 교수님의 뒤를 이어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구나. 그 사실을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문학이 암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좋은 작업 공간을 찾기 위해서 부산이며 서울 근교를 돌아다닌 한 소설가의 이야기. <지상의 방 한 칸>이 박영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칼럼은 그 소설과 박영한 작가의 실화를 연결 짓고 있다. 끝내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 술을 끊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박영한 작가님의 아이러니. 돌아가시면 정말로 영영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인데...


소설을 쓸 수 있는 좋은 공간 방한 칸을 죽음 너머 어딘가에서 찾으셨을까?


눈 뜨자마자 문득 집어든 휴대폰으로 누워서 읽은 이 칼럼이 내게 와 닿은 이유가 비단 정찬 교수님의 칼럼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모전을 마무리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벌써 첫 번째 낙방 소식이 들려왔다. 10년간 떨어지다 보면 떨어짐에 무덤덤해질만도 하다 하겠지만 사실 반대다. 괜찮아, 내년에 잘되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이 점점 내게서 멀어져가기 때문이다. 응모한 공모전 중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 많다. 떨어진 공모에 낸 작품은 초고일 뿐, 많이 수정해서 다른 공모 여러 곳에 내놓았기 때문에 아직은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의연할 수 없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정말로 막장에 몰린 모양이다. 나 스스로 정한 기한 때문에 기회가 몇 번 남지 않았다. 이 사실은 내게 이젠 압박이다. 결국 어젯밤 태풍주의보가 내린 밤 부슬 부슬 내리는 비가 바람을 타고 세차게 몰아치는 거리로 나가 맥주 두 캔을 사서 들고 들어왔다. 들이붓듯 마시곤 잠이 들었다. 숙취인지, 피로인지 모를 것 때문에 지금도 조금 몽롱한 상태다.


칼럼을 읽고 숙연해졌다. 글쓰기라는 것을 저렇게 숭고하게 대한 적이 있었나. '나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 아침 내내 맴도는 질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잘 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찾았지만,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쓴다는 행위는 어느새 습관처럼, 관성처럼 내 곁에 있다.


왜 글을 쓰는지를 알게 되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내 글이 왜 긴 시간 세상에 나올 수 없었는지 알게 될까? 그 이유를 알게 되면 깨끗한 단념이든, 개선을 위한 다른 시작이든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을 고민해온 이 원점에 대한 답을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정찬의 세상의 저녁] 지상의 방 한 칸, 한겨례, 2020년 8월 25일 칼럼을 읽고

(칼럼 전문 링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92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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