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가치 22_2020년 11월 11일
10월 30일. 금요일이었던 나의 생일은 다음 날 있을 수업 준비로 분주했다. 눈뜨자마자 카카오톡이 그날 내 생일임을 알려주더니, 네이버 로그인을 하자 역시나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문구가 메인 페이지에 떴다. 메일함엔 생일을 맞이한 것을 축하한다며, 오래전 애용하던 인화싸이트에서 보낸 쿠폰이 담긴 메일이 있었다. 온종일 친구들부터 지인들까지,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생일을 축하해주었으나, 책 세 권을 완독해야하는 수업 준비에 별로 즐길 정신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을 하러 가는 길. 문득 언제부터 생일이 이토록 내게 무의미했는지를 고민하다가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말하자면 시나몬롤과 관련된 기억이다.
아마도 여섯 살 때쯤? 나는 파랑새 미술학원이라는 곳에 다니고 있었다. 미술을 특별히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유치원 교육을 겸하는 곳이라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서 한글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그림도 배웠다. 그날은 코카콜라 공장에 견학을 갔던 날이다. 그 후로도, 학창시절 내내 그랬지만 당시에도 나는 별로 사교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요즘 말로 '인싸'와는 거리가 먼 성격이랄까. 심지어 배우는 것도 느려서 당시를 떠올리면 모두가 놀고 있는 시간에도 글자 따라 쓰기 따위를 다하지 못해 혼자 남은 공부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런 성격이었으니 코카콜라 공장에 놀러 갔다고 한들, 별로 즐겁진 않았을 것이다. 교실에선 그나마 내 자리에 앉아서 글씨를 쓰면 되는데, 공장에선 따라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니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코카콜라 공장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지만, 으레 즐겁지 않은 일은 일찍 잊어버리는 편이니까. 다만 끝나고 콜라와 시나몬롤빵을 선물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바로 먹으라고 준 것 같은데...
왜 거기서 먹지 않았을까?
견학을 마치고 학원 버스는 집 앞에 나를 내려줬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대로변에서 바로 이어진 골목 안의 집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건넛집 대문턱에 앉아 누군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때 배가 고팠는지 시나몬롤빵을 먹었다. 돌돌 말려 있는 빵 사이에 시나몬 가루가 뿌려져 있고, 위에는 흰 설탕을 응고한 것이 묻어 있었다. 손으로 잡기만 해도 쩍쩍 들러붙던 그 빵을 씻지 않은 더러운 손으로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돌아왔다. 아니, 할아버지였던가?
한동안 잊고 있던 이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 건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였다. 스웨덴에 있는 일본 가정식 식당. 개업 후 한 달 내내 매상이 0이었던 그 식당은 커피와 시나몬롤을 함께 팔기 시작하면서 현지인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보고만 있어도 시나몬 향기가 나는 것 같은 장면을 통해 아주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 영화를 본 이후로 시나몬롤이라는 이름이 붙은 빵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게 됐다. 영화 때문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나는 어디에서도 인싸는 아니다. 일하는 관계는 자연스러우나, 놀자고 만난 관계는 종종 어색하다. 그나마 학원에서는 편했으나, 견학 간 상황이 더 어색했던 것처럼.
파랑새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이 몰려 있던 곳은 공주 그림을 잘 그리는 여자아이의 곁이었다. 머리를 동그랗게 올리고 목 라인이 네모나게 파진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그리는 아이. 그 아이의 곁에 나도 가고 싶었으나 멀리 내 자리에서 못다한 글씨 쓰기를 하면서 훔쳐만 봤다.
어린 시절과 다른 부분은 거기에 있다. 그땐 인사이드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소심해서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적절한 아웃사이드에 내 자리를 만든다.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고, 관여하면 피곤해질 것들을 멀리하면서. 그 시절보다 크게 발전하진 못했으나, 미묘하게 달라졌다.
달라짐을 느끼는 지점은 또 있다.
20대 초반에 쓴 내 에세이 중에 '커피'에 관한 것이 있다. 커피 이야기의 시작은 고등학생 때 한예종 애니메이션과를 잠깐 준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일 24장의 크로키를 과제로 해가야 하는 입시 과정이었다.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11시. 학교 등교 시간은 정확하진 않으나 7시? 그러니 24장의 크로키 과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쉬는 시간이면 무조건 크로키를 했다. 간혹 수업 시작할 무렵에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보고 재빨리 크로키하기도 했다. 때론 들켰으나, 다들 그냥 눈감아 주었다. 가끔 이게 뭐냐, 자세히 물으시곤 숙제 검사 받고 자신을 그린 것을 가져다 달라는 선생님도 있었다. 과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매일 수채화를 한 장 씩 그리는 것도 있었는데, 귀가 후 새벽까지 해야했다.
잠이 모자랐던 나는 커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단맛이 강한 레쓰비류의 캔커피를 사서 마시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루였다. 커피는 그 후로도 매일 나를 지탱해왔다.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흔하지 않던 시절부터 나는 대학 강의실을 내 일터였던 학원 강의실을 들어 갈 때도 늘, 언제나 커피와 함께였다. 지금도 커피 한 잔이 없으면 아침을 시작할 수 없다. 말하자면 극단적 의존이 상태다.
20대 초반에 쓴 에세이를 보면 꿈을 향한 열정의 도구로 커피를 써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커피에 의존하는 내 삶이 그저 버티는 삶이었음을 느낀다. 꿈을 위해서 건 다른 무엇을 위해서 건 늘 나는 버텨야만 했다. 좋지 않은 체력, 스트레스, 그리고 불면을 버티며 꾸준히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해 노력한 삶. 20세 이후로 나는 늘 두 가지 이상의 일을 잘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점점 더 진한 커피에 의존하게 되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나, 정작 삶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