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의 내 방에서

방황의 가치35_ 2021년 4월 10일

by 오랜

나의 첫 자취방이자 내가 현재 머무는 내 집은 서울의 위성도시 중 한 곳에 위치한 보증금 500에 월세 30인 원룸이다. 지어진지는 30여년쯤 된 방이다. 새 도배도 얻어내지 못했고, 살아보니 싱크대도 너무 오래된 구식이지만. 그래도 내게 필요한 많은 것들이 갖추어진 곳이다. 간혹 카페에 나가 작업하는 습관이 있고, 수시로 진한 커피가 필요한 내가 편히 들를 카페가 원룸 건물 바로 앞에 줄지어 세 개가 있다. 글쓰기와 뗄 수 없는 책이 가득한 도서관도 코앞에 있다. 도서관 옆에 공원이 있는데 초봄이면 좋아하는 목련꽃이 흐드러진다. 마트나 지하철역같은 웬만한 편의시설도 대부분 도보거리에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생각보다 복도의 소리가 안에까지 잘 들린다는 점과 알고보니 내 자취방 창문이 북쪽으로 나 있다는 점. 그래서 겨울엔 방이 너무 춥다는 점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놀러온 친구와 이 방이 북향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고간다던 친구를 위해 함께 잘 잠자리를 폈다. 친구가 어디가 북쪽이라고? 그렇게 물었다. 내가 늘 머리를 두고 자는 곳이었다. 친구는 시신을 매장할 때 머리를 북쪽으로 둔다며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자자고 했다. 처음 알았다. 내가 시신과 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잤구나.





2층에 한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어느 방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냥 오고 가는 길 할아버지가 드나드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2층에 사는 딱 한 사람이 신문을 구독했다.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신문이 있구나, 그러고 나는 내 방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어느 날 외출하다 들어오는데 2층의 어느 방 앞에 신문 4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4개의 신문이 있다는 말은 4일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대뜸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신문을 구독할 연세라면 그 분이 아닐까. 오래 전 책에서 읽었던 고독사에 대해서 떠올렸다. 원룸에 혼자 사는 노인이니 고독사나 무연사가 자연 연상되었다.


나는 자취방에 들어오자마자 고민을 했다. 112에 전화를 해야하나, 아니면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를 할까. 후자를 택했다. 비상용 열쇠를 갖고 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나의 연락에 관리인은 2층 할아버지께서 아프셔서 병원에 갔고, 퇴원 후 자식들이 모시기로 해서 방이 비어 있을거라고 했다. 자식이 있었구나. 그런데도 500에 30. 창문이 북향으로 난 방에서 지내셨구나.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시신 매장할 때 머리를 북쪽으로 둔다던. 그 분에게 이 방은 무엇이었을까?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무료한 곳, 어쩌면 생 매장 당한 관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기다리는 얼굴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 4개월 정도 요양병원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가끔씩 그런 얼굴을 보았다. 도서관에서 연결해주는 책 읽어주는 자원 봉사였는데, 책 읽어드릴까요? 하면서 다가가면 죽을 날 받아 놓고 여기 와 있는데 책은 무슨 책이냐며 푸념하시는 어른들이 꼭 계셨다. 요양의 사전적 의미는 '휴양하며 조리하며 병을 치료함'이다. 말하자면 죽음과는 반대의 의미. 그들의 요양은 왜 죽음과 만나는 길일까.

그 얼굴들과 드나들다 본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동안 겹쳐져 보였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의 집에서 비로소 요양하게 되셨을까.





나에게 북향의 이 방은 어떤 의미인가. 우선 작업실이다. 실제로 잠자는 곳이 가장 엉성한 곳에 있고, 작업하는 공간이 가장 안락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꿈이 있어서 시작한 작업을 매일 지속하는 공간. 이 역할이 가장 주요하다.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매일 매진하는 나만의 아지트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지속하는 데에 많이 지쳐버렸다.


나는 어느덧 기한을 정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시작한 지 10여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나는 더이상 이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적어도 공모전 당선이라도 되어야 계속할 이유가 생긴다. 그래야 마흔이 가까워져 가는 이 나이에 결혼도, 연애도, 적금통장도 뒷전인 이유에 설득력이 생긴다. 타인을, 어쩌면 나 스스로를 설득할 명분 같은 것들.


그렇게 끝을 정해두고 보니, 자꾸만 끝난 후를 상상하게 된다. 더 잘 살자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끝내려 하지만, 목표가 없는 삶을 살면서 행복할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패배자로 전락한 내가 끝까지 의연하게 생을 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작업이란 게 없으면 나는 남들보다 한참 뒤쳐진 사람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방이 관과 같아졌다. 끝을 향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관과 같은 방.





어제 오후 즈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최근 응모한 작기지원공모전을 주관했던 모 기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나는 그 공모에 탈락하고도, 또다시 거기서 하는 공모에 응모하기 위해 작품을 다듬고 있었다. 낮에 다른 지원 사업 관련 문의 사항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으나, 담당자와 통화가 되지 않아서 내 쪽에서 다시 걸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후였다. 그러나 다시 공고문을 찬찬히 보니 궁금증이 해결되어 다시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나는 혹시나 번호가 남아서 전화가 왔나 싶어서 받았다. 그런데 000작가님 되시냐며 상대편에서 나의 이름을 말한다. 이름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면서도, 맞다고 했더니 탈락된 줄 알았던 그 지원 공모에 당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미 당선된 사람 10명 중에 한 명이 포기를 했고, 그래서 예비 1번이던 내가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아서 여전히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있지만 어쨌든 (내 기억에) 어제 그런 전화를 받았다.


사실 방송사나 대형 영화사에서 하는 큰 공모전에 비하면 지원자가 1/10인 작은 공모 사업이다. 그러나 멘토링과 비즈매칭과 같은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제공되는, 사실상 큰 공모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회들이 제공된다. 공공기관이라 다시 기업에 작품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그렇다.


다 떠나서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이 지원 사업 최종 심사 공고문에 쓰인 한 심사위원의 글이 떠오른다. '가능성을 최대한 공정하게 심사했다. 곧 현장에서 만나뵙길 고대한다.' 비록 그 명단엔 내가 없지만 11등으로 뒤늦게 합류한 나 또한 그들이 기대하는 그 가능성의 안에 들어간 것일까?


사실 이 에세이는 몇주 전부터 쓸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이었다. 만약 하루만 일찍 마무리 되었어도 아마도 더 암울한 내용으로 글을 마쳤을 것이다. 다행히 다른 챕터가 시작된 오늘 글을 마친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진 않되, 주어지는 기회가 있다면 가보자, 새로운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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