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자격, 그리고 상태

방황의 가치49 _ 20220105

by 오랜

2021년 초, 내가 살고 있는 K시에서 하는 소설 창작 교실에 등록했다. 도서관과 공연장, 전시관 등을 운영하는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수업이다. 전부터 한번 들어볼까 했던 터라, 여유와 이유가 생긴 김에 마음을 먹었다.


합평 위주의 수업이라 소설로 쓸만한 이야기를 갖고 수업을 들었다. 오자마자 합평에 도전(?)하는 수강생이 드문 분위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수업이 시작된 지 한 달 남짓이 지나, 내 작품의 합평날이 다가왔다.


평소 나오지 않던 수강생들까지 나온 터라 교실이 북적였다. 개인적으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날 왜 그 사람들이 수업에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오자마자 합평에 도전하는 패기 만만한 신인을 보기 위해서였을까? 짤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한마디씩 소설에 대한 의견을 던졌다.


쓰면서도 느꼈지만 주인공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쓴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종종 글에 대한 그런 비판을 받기 위해서 합평 자리를 만들곤 했다.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의를 지키는 비판이라면.


“저는 이 작품이 그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내용을 갖다 쓴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망생이 흔히 하는 것처럼.”


수강생 중 몇 달 전에 소설로 등단한 작가가 한 말이었다. 평소 말의 행간에서 주부들이 모여서 글을 쓰고 심지어 등단 작가까지 배출한 이 소설 교실에 대한 프라이드와 그 중 작가가 된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자의식 같은 것이 많이 느껴졌던 사람이다.


순간 멈칫했지만, 그녀의 말에 대해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솔직히 같잖았다. 자기가 가진 작가라는 자격이 글쓰는 타인의 의도와 집필의 시간을 단순한 말로 정의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협함이.





몇 주 전 아주 인상적으로 보았던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다큐멘터리 PD 출신인데,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미국의 영화계를 다큐PD로서 취재한 적이 있다고 했다. 미국의 한 작가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작가는 자격으로 만들어집니까? 아니면 상태로 만들어집니까?”


청중을 둘러보며 잠시 의견을 구하던 그는 "답은 상태다." 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늘 쓰는 상태여야 작가라는 것이다. 공모전 당선이든 하다못해 브런치 작가의 자격이든, 어떤 자격을 얻기 위해서 일정기간 애써온 사람에겐 인정하기 어려운 견해일지 모르겠다. 나 또한 쉽게 받아들일 순 없었다. 십년 넘게 ‘자격’을 얻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가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제가 작가를 계속해야 할까요?’


2018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거의 사라진 상태로, 그럼에도 관성처럼 글을 쓰던 어느 날. 당시 수강하던 시나리오 강의 교수께 이런 질문을 했다. 기초 작법 수업을 더 들을 이유는 없었지만, 왜 여전히 작가로서의 자격을 얻지 못했나 생각해보다 깨닫게된 문제를 해결해기 위해서 선택하여 듣던 수업이다.


다른 누구보다 당시의 내 글을 잘 알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한 질문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것을 그가 답해 줄 수 있는가. 계속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서, 내가 계속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떠한 마음이겠는가? 그렇다고 계속하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는가.


그는 선택보단 위로에 가까운 답을 해주며, 만약 정말로 내가 글을 계속 쓰지 말아야할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솔직히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햇수로 3년. 나는 그의 제자로, 그의 팀원으로 함께했다.


약속은 그것뿐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억울했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으니까. 얼마 전 함께 그의 밑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랜만에 그를 부르는 우리들의 특별한 명칭, 스승 혹은 마스터라는 의미의 단어를 입 밖에 내었는데, 어색했다. 사실 그의 이름 뒤에 그 명칭을 붙일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게 불리기엔 너무나 무책임한 사람이니까.


결국 나는 그에게 긴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얼마나 그와의 책임을 다했는지, 그럼에도 그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조목조목 따지며 결국 그를 특별한 우리만의 명칭으로 부를 수 없음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새벽쯤 읽었다며 통화하자는 연락이 왔으나 난 더욱 매정하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사과한다’ 두 번, ‘미안하다’ 한 번이 담긴 메시지를 내게 전해왔다. 진심이라고도 덧붙이면서. 기어이 그를 밀어내고 사과를 받아냈다.


그에게 왜 그토록 의지했는가에 대해서 긴 시간 고민해 보았다. 그것은 그가 나를 인정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확신이 사라진, 말하자면 작가로서의 내가 완전히 작아져 버린 상태에서 누군가 해주는 그 작은 인정이 나를 숨쉬게 했던 것이다. 그의 치명적 단점에 눈을 감고서 인정에 기대 그렇게 3년을 곁에 있었다. 어리석게도, 바보 같이.


누군가의 인정, 그로 인해 얻어지는 자격. 그것이 내가 작가로 존재하는 필사의 이유였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병들게 했다는 것이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글 쓰는 자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과잉된 자의식은 어쩌면 내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소설 교실에서 느꼈던 그들의 오만함.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얕잡아 보는 듯한 태도에 은근 빈정이 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 교실을 듣는 동안 나에게도 작은 당선 소식이 들려왔다. 일부러 그녀에게 넌지시 알렸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순간 나는 쾌감을 느꼈다. 그녀와 나 중 누가 더 편협한 것일까. 이제와 생각하니 헛웃음이 난다.


10여 년을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 적어도 지난 8년간은 하루도 빼지 않고 거의 매일 글쓰는 데 매달렸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렇게 매일 써왔으니 나는 작가의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받으려 애써온 후 지금. 근 몇 달간, 나는 사실 한 자도 집중해서 쓸 수 없는 번아웃의 상태에 이른 것 같다. 꾸역꾸역 쓰지만, 그렇게 쥐어짜고 나면 다시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사실 11월과 12월 사이 다섯 군데, 아니 어쩌면 12월 안에 연락 주겠다던 곳에서도 아직 연락이 없으니 여섯 군데의 제작사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강연을 들은 후에도 여전히 자격에 태연할 수 없는 나는 애써 괜찮은 척하며, 결코 괜찮지 않은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상태를 유지하려 매일 쥐어짜며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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