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은하 Apr 13. 2024

아무도 우리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배윤재 개인전 서문: 《Blow out: 잠재적 경계》

1

무너진 건축물로 빼곡한 도시 속, 전자파가 쏟아지는 광고판과 스크린이 번쩍거린다.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린다. 머리 위로 높이 솟은 빌딩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광막한 폐허를 가로질러 우리는 강제로 걷고 있다. 독성 물질로 오염된 빗물에 흠뻑 젖은 폐허 사이를 헤치며. 가시 돋친 환상과 귀를 찌르는 금속 소리 속에서, 낡은 건물의 창턱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종말의 풍경 속에서 기이한 생명체들이 솟아오른다. 마치 핵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돌연변이 식물이 자라나듯, 기괴한 생명체들은 황폐해진 도시 풍경 속에서 피어난다. 이 도시에서 아무도 이들의 존재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동물적인 열정으로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처럼 살고자 한다.”[1] 



2

배윤재의 첫 개인전 《Blow out: 잠재적 경계》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실험실이자 양육장이다. 이 실험실에서 배윤재는 생명체와 도시의 버려진 건축물 사이의 인간 지각의 경계를 탐구하는 도구로 ‘아포페니아Apophenia (/ æpoʊˈfiːniə /)’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아포페니아’는 1958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클라우스 콘라드(Klaus Conrad)에 의해 처음 도입된 용어로 본질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물이나 사건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경향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작가는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 이러한 ‘아포페니아'적인 현상을 기반으로 도시 내 건축물 잔해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상상하고 이를 창조해 낸다. 전시 공간에서 실험되고 진화하는 이 생명체들은 점차 작가의 손을 떠나며 자신만의 생명력을 얻게 되는데, 이는 곧 배윤재가 도시 경관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진화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바닥과 천장에는 건축물의 잔해들이 늘어져 있고, 그 위를 기이한 (유사) 생명체들이 기어다닌다. 벽과 바닥에는 피부 조직을 연상시키는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마치 거대한 생물의 내장에 들어온 듯하다. 반투명한 우레탄 커튼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무균실험실에 들어선 듯하다. 이곳에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구현한 <Blow out: Post organism>(2024)가 설치되어 있다. 미지의 생명체는 스틸 그레이팅 사이로 가쁜 숨을 내쉬고, 무너진 기둥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른다. 깨진 창문 조각들은 날카로운 이빨처럼 튀어나와 있고, 철근은 뼈대가 되어 격렬하게 움직인다. 공중에는 피와 진액이 흐르는 듯한 붉은 전선과 튜브가 엉켜 있어, 생명체의 내장을 연상시킨다. 


커튼을 걷고 나서면, 실험실 벽과 바닥에 들러붙은 <~: ecdysis>(2023)가 눈에 띈다. 이 작품은 미지의 생명체의 피부 조직을 연상시키는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배윤재는 이 역동적이고 불안한 표면을 통해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탈피(ecdysis)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Pulse>(2024)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전깃줄과 함께 설치된 빔 프로젝터에서는 마치 뇌에서 일어나는 스파이크 같은 강렬한 펄스 에너지가 쏟아져 나온다. 이 빛의 파동은 물에 잠긴 철 구조물 안의 형광 피부에 닿고, 전선을 타고 벽면으로 흘러간다. 물속에서는 백색소음과 같은 진동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데, 이는 마치 미지의 생명체가 내는 생체 리듬 같다. 작가는 이를 통해 무생물과 유기체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건축 공간 자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신체로 변형시키고자 한다.


관람객들은 <Blow out: Post organism>에서 시작하여 전시의 마지막 작품인 <휘발성 점액체>를 거치며,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 안을 탐험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스틸 그레이팅 사이로 스며든 점액체는 건물의 깊은 곳으로 하강하며 흘러내리지만, 전시장 반대편의 <휘발성 점액체>에서는 그것이 다시 솟구쳐 오른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두 작품을 전시장의 양 끝에 배치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전시 공간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순환 구조로 인식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한,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 점액체의 주요 재료로 설탕을 사용했는데, 이는 전시 기간 서서히 녹아내리다 결국 사라진다. 작가는 이러한 소멸의 과정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 휘발성은 전시가 끝난 후에도 관람객과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또 다른 생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이렇듯 배윤재는 이 전시에서 도시 건축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도시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 생명의 틈새를 발견한다. 특히, 막과 표피, 벽면 등 투명하지만 유기적인 경계면과 그 내부의 생명 기능의 가능성에 집중하며 우리가 폐허로 여기던 공간에 숨겨진 재생과 진화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건축물에서 보이는 깨어진 ‘창’, 실내와 실외를 연결하며 배수나 필터링의 역할을 하는 ‘스틸 그레이팅',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전선' 등 이들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잠재적 경계'이다. 그것들을 숨을 쉬기도 하며, 연기를 내뿜기도 하며, 실내와 실외 사이를 연결하기도 하며 신호를 주고받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경계들에 주목하며, 그것들이 단순히 무생물의 조각이 아니라 생명체처럼 숨 쉬고, 소통하며,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탐구는 단순히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인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정치적 실천이기도 하다. 배윤재의 작품 속 인공 생명체들은 건축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폐허 속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새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들은 도시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그것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 경계의 틈새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 여기서 상상력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나들며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동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힘은 작가 개인의 창조성을 넘어, 전시를 경험하는 모든 이들의 집단적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관람객들은 배윤재의 작품을 통해 일상 속 경계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생명을 본다. 



3

관람객들은 생명체가 된 건축물 속으로 들어서며, 그들 자신도 실험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도시와 건축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이 잔혹한 도시는 진정으로 생명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악몽을 반영하는 무의미한 조각일 뿐일까? 《Blow out: 잠재적 경계》 속 폐허에서 피어난 인공 생명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여기 하나의 답이 있다. 자기충족적인 "환상은 허공 속에 흩어져 버리지만, 상상력은 그렇지 않다. 특히 상상력은 그것이 집단적일 경우 행위를 격발시키는 강력한 연료가 된다."[2] 여기서 우리, 관람객의 상상력은 강력한 연료가 된다. 이제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은 더 이상 도시의 억압으로부터 달아나는 도구가 아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는 수단이 된다. 




[1] 에이드리언 리치, 『문턱 너머 저편』,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1), 295.

[2] 아르준 아파두라이, 『고삐풀린 현대성』, (서울: 현실문화연구, 2004), 18-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