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넬리몰리 Sep 24. 2021

시댁 어른 불편하게 만들기

명절엔 전략이 있어야 한다!


 결혼 후 첫 명절이었던 추석이 무난히 흘러갔다.


 걱정했던 위화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마도 코로나라는 변수가 있어서겠지만. 본래도 그리 시집살이가 걱정되는 시댁은 아니다. 다만 첫 명절 인사랍시고 웃어른들을 릴레이로 찾아뵈며 싱그러운 미소를 선보이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 아득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내 안의 유교 본능은 그게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내 머리와 몸은 대단히 무례하게도 그 상상을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시댁 웃어른을 만나기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싫다'.


 싫은 게 당연함


 우리 시댁은 큰집이 아니어서 명절이면 큰집으로 간다. 그 과정에서 시댁에 행해지는 불필요한 노동 상납은 다행히도 없는 것 같다. 내 배우자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이 무의미한 노동에 계속 시달려왔고, 나이 들며 그 공허함을 깨달아 스스로 벗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들인 식구가 여자라는 이유로, 며느리라는 이유로 그 무임 노동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고. 물론 이런 문장으로 풀어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내가 느낀 바는 그랬다. 그건 굉장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가끔은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세대 간극의 선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녀는 대체적으로 현명하고 좋은 사람이다.


 다만 그녀가 내린 '벗어남'이라는 결론의 원인이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어야 맞다. 평생 나와 상관없이 살아온 어른들을 위해서 나는 왜 소중한 명절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가? 그들과 함께 노동해서 무언가 하나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인가? 아니, 그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 저들끼리 저들 친척간의 소식을 묻고 편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그 '친척들'과의 애틋한 유년시절의 추억이나 친밀한 관계도 무엇도 없는 다른 성씨의 여성들이 노동해 상차림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의 노동은, 그리고 내 '시어머니'의 노동은 요구되어선 안되며 우리 스스로에게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 그녀는 자신의 노동을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 궤도를 이탈했다. 결론적으로는 좋은 일이었지만 만일 큰집에서, 혹은 시댁의 중추를 이루는 친척들이 그녀의 노고를 치하하고 떠받들어줬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그 노동의 한가운데에 있었을까?


 싫은 게 당연하다. 불효도 아니고 도리를 벗어나는 일도 아니다. 내가 제사라는 명절 행사가 존재하는 배경에서 살아왔건 그렇지 않건, 그 배경과도 무관하다. 나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가족이 되었다며 그들을 챙겨야 하는 이 '도리'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니 기쁜 마음으로 행할 수도 없다.



 명절은 하나고 가족은 둘이라


 만약 시댁 식구 중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집에 좋은 일이 있어서 모임을 가진다면 나는 내 배우자의 가족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리라. 과일도 깎고, 방긋방긋 웃으며 환담에 참여하겠지.


 하지만 명절은 하나이고 나는 챙길 내 가족이 따로 있다. 이제는 '친정'이라고 불러야 하는, 30여 년간 내가 자라고 제사를 지내온, 내 가족이 말이다. 우리 집도 제사를 지낸다. 친척들과 모여 앉아 근황을 묻는다. 명절이면 내 자리는 거기에 있다. 인생 내내 그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주로 여성이 중심이 되어 가사 노동을 진행하는 불합리함은 여전하다. 어린 시절엔 너무나 당연히 생각했던 작은어머니들의 방문도 이제는 달리 보인다. 하지만 억울하더라도 내 가족이고, 내 가족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사다. 나는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매칭 할 수 있고 유년 시절의 애틋한 과거를 함께 추억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시댁은 큰집에 가지 않았다. 때문에 제사도 없었다. 나는 우리 시댁 가족들과만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명절 당일에는 우리 집(친정집)에서 제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특수라고 할 수 있다. 한데 겪고 보니 그 충만감은 어마어마했다. 내 배우자와 함께 우리 집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 나라는 돌기를 통해 뻗어나간 새 관계가 이 커다란 줄기에 녹아드는 것을 보는 일.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 밤늦게까지 마당에서 움직였음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걸 남자들이 독식했단 말이지? 빼앗기고 싶지 않을 만도 하다.


 나의 시선에서 이 '방문'은 많이 달라 보이긴 했다. 내 배우자는 우리 집에 찾아온 좋은 손님이었다. 그는 일손을 거들기도 하고, 함께 요리해 먹고, 이런저런 안부를 나눈다. 하나 내 배우자의 어머니가 시댁에 방문하면 그녀는 예비 노동자가 된다. 심지어 그녀가 해야 할 몫을 일부러 남겨두기도 한다. 전 부치기, 잡채 볶기 등등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불합리함이 기인하는 걸까? 나는 왜 명절이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내 배우자의 집에 방문해야 하는 걸까?



 돌파할 수 없다면 불편하게 만들자


 지금 내가 절충안으로 희망하고 있는 것은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을 1번씩 나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날엔 배우자의 제사에 먼저 참석한 뒤 우리 집에 가고, 추석엔 우리 집 제사에 먼저 참석하고 배우자네 집에 들르는 것. 지리적 요건 상 우리 집에 먼저 들르는 것이 힘들긴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내가 소중히 여겨지는 자리에 내가 참석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자리에 있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불합리한 '도리' 타령에 꺾이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내 배우자의 아버지가 내게 큰집 어른들에게 인사하러 가기 싫냐고 물었을 때 "좋아서 갈 일은 평생 없죠"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세대와 대거리하는 것은 칼로 물 베기다.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만일 웃어른이 강경하게 나온다면 나는 억지로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최소한 나는 그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당신의 불합리한 요청에 의해 내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억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인지할 수 있도록.


 '불편하게 만들기'. 말부터 굉장히 불편하다. 현실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것 또한 편한 길은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건, 그렇게 행위하는 나 스스로도 가시방석에 앉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소극적인 방법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당장 내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 내 핸드폰에 불을 낼 사람은 시댁 식구가 아니라 내 부모님이니까. 결혼 후 딸에게 주어지는 그 많은 불합리하고 불리한 요구들을 알면서도 그걸 강요하게 되는 것이 우리 부모 세대다. 딸이 과일을 잘 깎지 못해 시댁에 미움받을까 전전긍긍하고, 명절이면 '시부모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굳이 여기 오지 말아라'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돌파에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때문에 나는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길을 택했다. 지금의 현상이 유지되더라도, 내 의지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배우자와도 크고 작은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대체적으로 배우자는 나의 모든 사고를 이해하지만 평생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어른들과의 마찰을 원치 않는다. 대부분의 남성 배우자들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힘들 때마다 명심하려고 애쓴다. 배우자 또한 내가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주변인 중 하나다. 완벽하게 내 편이 되길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 내 안에 유교가 잠들어 있듯, 그들에게도 그렇다. 나는 불완전한 내 몸뚱이로 또 불완전한 존재를 사랑하는 인간이니까.





 이다음 명절에 내가 어떤 크고 작은 돌파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어떤 요구가 날아들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행동 지침이나 방향을 잃지 않도록 계속 상기하고 상기할 뿐.


 이런 때면 결혼한 것이 후회된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때도 또한 존재하니까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신혼 때부터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 스스로가 무게중심을 일관성 있게 잡아야 한다는 긴장감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이란, 나와 내 배우자가 행복하게 함께 살려는 그 의지가 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은 선택했지만, 딸려오는 것들은 선택하지 않았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