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기덕 May 13. 2022

<프랑켄슈타인> 누군가를 중오하는 사람에게

책처방 해드립니다

최초의 SF소설이라고 불리는 이 책의 저자는 메리 셸리라는 19세 소녀이다. 200년 전 당시는 산업혁명과 함께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여성들은 극심한 통제 속에 생활하던 시기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진보 정치인 아버지와 페미니즘의 가치를 최초로 내세운 어머니 사이에서 부유하게 태어났음에도 평탄치 않은 성장기를 보낸다.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한 어머니로 인해 ‘어머니를 죽인 아이’라는 낙인이 따라다녔고, 새로 맞이한 의붓어머니에게서는 냉대와 홀대를 받는다. 그녀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비난으로부터 도망치듯 유럽 대륙으 떠났고, 여름휴가로 떠난 제네바에서 나눈 무서운 괴담에서 이 이야기가 탄생한다.


이 책의 이야기는 북극에서 시작한다. 북극항로를 탐험하던 월튼은 얼음 위에서 탈진한 사나이를 구출하면서부터. 정신을 차린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라며 북극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손으로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그리고 수년간 시체를 연구한 끝에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자신의 피조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기겁하며 도망을 치고, 악마를 탄생시켰다는 죄책감에 모든 걸 내려놓고 귀향한다. 하지만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동생을 죽이고 앞에 나타나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간청한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나온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려준다.


괴물은 탄생 후 모든 일이 혼란스러웠다. 배고픔을 달래고자 길을 나다녔지만, 마주치는 사람마다 비명을 지르고 공격했다. 사람들을 피하려고 어느 오두막의 빈 돼지우리에 숨었다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게 된다.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안타까워서 장작을 몰래 구해주기도 하고, 온화한 사랑에 감동하여 자신도 가족이 되고 싶은 마음을 품는다. 그래서 수없이 자신을 소개하는 연습을 한 뒤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돌아오는 건 비명과 몽둥이세례였다. 괴물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충격에 휩싸여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할 창조자를 찾아다니다 만났고, 자신을 위한 반려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거절한다. 또다시 생명체를 만들게 되면 더 큰 악행이 초래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분노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을 파멸시킨 뒤 도망가고,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에게 복수하고자 북극까지 쫓아가게 된다. 하지만 배에서 건강이 악화된 그는 이야기를 월튼에게 전해주며 본인 대신에 복수해줄 것을 간청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 월튼은 죽은 창조자를 찾아온 괴물을 마주하게 되어 복수를 행하고자 하지만, 괴물은 타락한 천사는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라며 흉측하게 변한 자신의 모습에 이미 한탄하고 있었다. 그래서 월튼은 괴물을 놓아주고, 괴물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반려와 사랑이 없다면 내게 남은 건 오직 증오와 악행뿐. 하지만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다면 악행의 근원이 사라지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어. 나는 원치 않았던 고독으로 이렇게 악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괴물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괴물로 불렸다.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자에게 마저 끔찍한 외모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와 같이 괴물도 사랑을 단 한 번이라도 받았다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평범하게 살아가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저 사랑 받고자 했던 마음과 결국 받지 못했던 사랑으로 인해 그는 괴물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한 자신을 두고 행복한 일생을 보낸다는 이유로 창조자의 가정을 파괴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정말 괴물로 만들어버린 행동이 되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프랑켄슈타인도 마찬가지다. 결국 괴물을 쫓느라 자신의 일생을 파괴하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는 증오를 품고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준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던 눈이 파멸의 눈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나타난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그리고 괴물을 통해. 반면에 제3자 입장인 월튼은 유언에도 불구하고 괴물을 그냥 보내준다. 여기에는 저자가 어릴 때부터 겪었던 여성 편견과 수많은 혐오에도 자신은 절대 이 책의 프랑켄슈타인이나 괴물처럼 증오로 가득한 여생을 보내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녀는 월튼처럼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나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과학기술 발전의 경계와 함께 혐오 사회라고 불릴 현대를 마치 예견했다는 듯 이 이야기를 남겼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