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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덕 Nov 22. 2021

시장은 돌고 돌아서

주절주절

어릴 적 주말이면 부모님 따라 시장을 갔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생선 내장들과 비린내 때문에 구역질을 하며 따라다녔다. 그래도 시장에 꾸준히 따라 갔던 이유는 어묵바 때문이었다. 시장의 후문에 다다르면 어묵가게가 있었다. 아버지가 워낙 어묵 볶음을 좋아하셔서 꼭 들르곤 했다. 사장님은 어린 나를 보면 항상 얌전하다며 어묵바를 쥐여주셨다. 시장 냄새가 싫어서 어머니 옷자락에 코를 박고 있었지만, 어묵바만 손에 쥐면 용감해져서 혼자 시장 끝을 향해 가고는 했다. 당시에는 시장이 정말 싫었지만 성인이 되고는 시장이라 하면 좋았던 기억이 사뭇 떠오른다. 어머니 옷자락 때문인지, 다 커서 받지 못하는 어묵바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더는 시장을 가지 않는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대신 마트나 백화점에서 장을 본다. 한 곳에서 시간들이지 않으며 믿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자취를 하는 나에게 부모님은 한 번씩 과일을 들고 오신다. 내가 건강한 걸 챙겨 먹지 못한다는 걱정이 담겨있다. 여름엔 수박을 좋아하고, 겨울엔 딸기를 좋아하는 걸 아셔서 제철에 맞는 과일을 가져오신다. 어느 순간부터는 백화점에서 과일을 사오신다. 백화점에 파는 게 더 신선하시다면서 말이다. 시장에선 만 오천 원에 살 수 있는 딸기가 삼만 원으로 찍혀있다. 비싸봤자 먹어보면 거기서 거기라 그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과일을 사오시지 않도록 방법을 생각했다.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냉장고를 과일로 가득 채워 놓는 것이다. 잘 먹고 지낸다는 걸 보여 드려야 비싼 돈 들여 사오지 않으신다.


과일은 시장에서 산다.  번씩 덤터기를 당하기도 하고, 바구니 밑엔 상한 과일이 담겨 있기도 한다. 하지만 자취를   남짓하며 시장을 다니다 보니 지혜가 생겼다. 일부러 현금을 모자라게 들고가서  주머니를 보여 드린다. 그럼 혀를 차시며 싸게 넘기신다. 겉에 윤기가 흐르는 과일들은 밑을 한번 확인해본다. 알고 보니 오래된 과일이 함께 담긴 바구니가 있지만, 싱싱한 과일로 가득  바구니도 있다는  알게 됐다. 모르는 사람은 상한 과일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사가는 것이었다. 영악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에 순응하면서부터 시장을 자주 가게 됐다.  좋은 과일을 찾는 재미를 발견한 것이다. 마치 당첨과 꽝을 고르는 것과 같다. 고르고 고르다 당첨된 과일을 구매한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서비스로 과일을  얹어 주신다. 이상하게도 여기서 따뜻함을 느낀다.


부모님께서 시장을 가셨던 이유도 이런 재미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재미를 잃으신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재미를 발견했다. 갈아 먹을 아채와 과일을 구매하기도 하고, 반찬을 사러 가기도 한다. 자주 가다 보니 시장 아주머니와 친해지기도 했다. 뉴스 얘기를 하며 썰전을 벌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싸게 사려고 영악스러워진 나에게 그러지  말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신다. 과일 상자안에 숨어 있는 고양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부모님이 가지 않으시는 시장을 이젠 내가 간다. 나에게 가족이 생긴다면 주말마다 같이 시장을 가고 싶다. 자식이 있다면 옷자락에 숨어 있다가도 어묵바 하나 손에 쥐면 씩씩하게 시장을 나다닐 것만 같다. 시장  상품들이 돌고 도는 것처럼,  삶에서 시장도 돌고 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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