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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ug 06. 2021

홈카페 인터뷰 #2
커피 브루잉 클럽 주최자, 박찬빈

<집>, <커피>, <사람>을 사랑하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

올해 4월,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의 리추얼을 한 달 동안 한 적이 있다. 당시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 중이라 매일 같이 야근을 했고, 퇴근 후 쓰러져 잠만 자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마음껏 쉬질 못했다. 이맘때 알게 된 밑미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집을 기록하는 리추얼을 신청했다. 집을 돌보는 글을 쓰다 보면, 나를 돌보는 마음 또한 쓰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결과는 대만족. 


한 달 동안 리추얼 메이커로 이 모임을 운영한 분이 바로 오늘의 인터뷰이, 찬빈 님이다. 매일 아침, 정성껏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고, 집에 관한 기록을 사람들과 나누길 좋아하는 분. 홈 브루어 4년 차, 커피가 너무 좋아 커피 브루잉 클럽까지 직접 만든 찬빈 님의 Cafe-in 이야기.  <집>, <커피>, <사람>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찬빈네집에서 들어봤다.


인터뷰 시작하기에 앞서, 

원래 릴리라는 닉네임을 쓰지만 찬빈 님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본명인 수빈으로 표시했다. 

(인터뷰어 : 수빈 - 인터뷰이 : 찬빈)


#집


Q1.  안녕하세요, 찬빈 님. 찬빈네집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특한 느낌의 집이에요. 찬빈네집을 어떤 색깔로 꾸미게 되셨나요?


집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상적인 구조는 아닌데요. 특이하고 오래된 집인데, 마당이나 옥상 등 다른 집에 비해 저만이 누릴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이 점이 독특하고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세련되고 깔끔한 스타일은 아니라, 사람 때 묻은 걸 좋아해요.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고요. 튀는 것보다 제 나름의 기준에서 조화로운 것. 이런 것들로 집을 채워나갔어요.


Q2.  그렇군요. 그렇다면 찬빈네집에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공간은 어디일까요?


공을 많이 들인 공간. 사실 이 방이에요. 첫 번째로 이 방에 페인트를 칠했어요. 다른 곳은 벽지인데 여기는 하얀색 페인트거든요. 이 방에 잘 머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공을 들였다는 게 힘, 노고를 들였다는 거니까. 보시는 매트리스 플라스틱 프레임은 다 주워왔어요. 동네 골목길에 버려져있는 걸 주워와서. 저는 그게 오히려 너무 좋은 거예요. 매트리스가 제가 이사 오면서 가장 투자한 건데. 매트리스에 이렇게 돈을 투자해도 되나 했지만 굉장히 만족하면서 쓰고 있습니다(웃음). 책을 전시해둔 나무 선반은,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인데요. 합판을 사서 버려진 나무자루를 컷팅해서 붙였어요. 제가 매거진을 좋아하니까 잘 보이게 놔두면 근사하겠더라고요. 아르텍이라는 브랜드의 의자는 이곳에 안 어울리지만 우연히 선물 받았습니다.   

(수빈) 조화가 굉장히 신기해요. 모던한 감성도 있으면서 오래된 것들의 옛날 감성도 있고. 과거와 미래가 잘 조화를 이루는 현재의 공간 같은 느낌이 들어요.  

    ㄴ(찬빈) 그런가요? 하하


Q3.  그러면 이제 집에서 동네로 확장해볼게요. 지금 사는 동네는 어떤가요?

      동네랑 집의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은데. 동네도 각각의 간판들이 오랫동안 보존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처음 이 동네에 온건 대학교 졸업할 때예요. (가격이) 싸서 왔어요(웃음). 때마침 에어비앤비라는 첫 직장이 이태원에 있었거든요. 딱 2가지가 맞물린 거죠. 직장 가까운데 싸다. 최적이어서 보광동에 산 형이 추천해줬어요. 초입에 미용실 하나가 있는데 그 뒷건물이 서울에서의 제 첫 집이었어요. 300에 30. 그 당시에 저는 '주거는 잠만 자는 곳이지'라는 생각이었어요. 집을 꾸미고 나답게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완전 가성비 차원에서 집은 내가 돈을 아껴야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한 달 만에 후회가 되더라고요. 처참하고. 그때 딱 운 좋게도 LH 전세대출을 신청했는데 된 거예요. 우사단길 쪽에 투룸을 구했는데 아쉬운 게 지층이었어요. 1층 집. 그래서 창문을 못 열었어요.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저한테 결핍들이 서서히 보이더라고요. 싸서 갔다가 구조가 아쉽고. 전세도 갔는데 창문을 못 여는 게 너무(···) 그래서 그다음 집은 꼭 위로 올라가고 싶더라고요. 그다음 집이 이 집이에요. 이런 과정들로 집을 통해서 저만의 결핍들을 발견했어요. 살아보니 '이런 집은 나랑 안 맞네?', '다음 집은 이런 게 필요하겠다' 등. 여전히 애정 가는 집인 것 같아요. 이곳이. 오래된 것들이 보존되는 제 집처럼, 어르신들이 많은 이 동네가 살기 좋다고 느껴요.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 화단에 참새들도 엄청 많이 와요. 고요한 주변과 '자연'스러운 것들?  


Q4.  에어비앤비, 위워크, 맹그로브에서 근무를 하셨어요. <공유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보여요.

       어떻게 이곳들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에어비앤비는 개인의 수익 창출을 위해 공간을 '공유'하고, 위워크랑 맹그로브는 '공용' 공간을 만드는 곳이에요. 개인 공간은 줄어들지만 여백의 공간들을 같이 사용하면서 비용으로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3곳 모두 운영 쪽에 있었는데요. 여러 룰, 컨셉, 사용성을 정해가면서 많이 배웠어요.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수빈님이 집어주신 키워드랑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사람,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단순히 데스크 업무는 저랑 잘 안 맞더라고요. 액티브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서 오는 가치들을 믿어요. 새로워요. 동시에 익숙해졌어요. 제 최종 지향점은 저만의 공간을 만들어보는 것이에요.   

(수빈) 찬빈 님 만의 공간이라면 어떤 걸까요? 

    ㄴ(찬빈)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모아둔 곳인데요. 책, 커피, 영화.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스테이요. 훗날에는 이런 공간을 만들어보는 게 꿈이라면 꿈이네요(웃음).



#커피


Q5.  찬빈 님은 주로 언제 커피를 내려 마시나요?


아침에 밑미 모닝 리추얼을 하면서 마시고. 저녁에 퇴근하고서도 마셔요. 제가 일하는 곳 1층엔 카페가 있는데요. 카페에서 점심 먹고 마시고. 평소 하루에 3잔 정도 마셔요. 아침, 점심, 저녁.   

(수빈) 아침의 커피와 저녁의 커피의 다른 점이 있다면요? 

    ㄴ(찬빈) 아침은 환기 느낌이라면 저녁은 수고했어 느낌. 계절마다 커피를 즐기는 공간이 다른데요. 겨울에는 방에 들어가고. 추워서(웃음). 여름에는 거실 창문에 의자 깔고 밖을 보면서 마셔요. 마당에서도 밤에 친구들 오면 커피 내려마시고. 가을이나 봄에는 옥상, 테라스에서 많이 마시고요. '어디에서 내리냐'에 따라서도 커피 맛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에는. 분위기가 확실히 영향을 주고요. '누구랑 마시느냐'도.  


Q6.  커피를 내리시면서 보통 뭘 하세요?


음악을 틀고 커피 내리면서 주로 창밖을 보고(웃음). 사실 창문을 블라인드로 많이 가리고 있었어요. 얼마 안 되었는데, 올해 창을 확 연지.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왜 닫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옆집도 보이고 하니까. 최대한 블라인드를 닫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열어버리자 해서 열었어요. 시야도 트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커피 마실 때 요즘 듣는 노래는 'Kings of Convenience'의 Rocky Trail. 

(기타 선율이 흐르는 편안한 무드의) 노래들을 많이 틀어놔요.


Q7.  커피 드실 때 같이 곁들이는 음식이 있을까요?


저는 커피만 마시는 편이에요. 디저트 중에 케이크를 좋아해요. 치즈케이크, 당근 케이크 좋아합니다. 

밥이랑은 잘 안 먹고. 밥 먹고 커피 한 잔. 이렇게.


Q8.  찬빈 님이 좋아하시는 원두를 맛있게 내리는 꿀팁이나 레시피가 있을까요?


커피를 내리시는 게 어려운 분들에게는 끓는 물보다는 식힌 물을 추천해요. 커피포트가 끓으면 물을 붓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1~2분 정도 기다려요. 그래야 산미가 더 산다고 생각해서요. 끓는 물보다는 좀 식혀서, 원두는 좀 굵게 갈아보면서 시작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너무 싱거워, 가볍다면 좀 더 얇게 갈아보고. 온도를 좀 더 높여보고. 저는 그렇게 제 취향을 찾아간 것 같아요. 그라인더도 원두마다 굵기를 바꿔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항상 고정이에요. 분쇄도는 그대로, 원두만 바꿔서. 그럼 제 기준에는 실패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찾는 분쇄도를 맞춰두면 다른 원두로 바꿔도 내가 좋아하는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라고요.


Q9.  그럼 주로 어떤 커피 기구를 사용하세요?


진한 거 먹고 싶을 땐 모카포트, 라이트 한 거는 클레버로 많이 내려먹어요. 에스프레소/라떼, 특히 여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땡기시면 모카포트로 바로바로 내려 드시기 좋은 것 같아요. 브루잉은 생각보다 귀찮은 거라. 취향적으로 오히려 브루잉을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상대적으로 '맹하다'라는 느낌도 있고.


Q10.  커피를 맛있게 내리기 위해 찬빈 님이 하신 노력이 있을까요? (feat. 커피 추출 도구 추천)


일단 책을 사봤어요. 커피 브루잉 책. 여러 추출 도구도 사봤고요. 저도 커피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잘 몰랐거든요(웃음). 처음에 시도했던 건, 한 3년 전의 센터커피의 브루잉 클래스를 신청해봤어요. 처음으로 돈을 줘보고 제 손으로 직접 클래스를 신청했죠. 1시간은 스페셜티 커피가 무엇인지, 1시간은 4가지 추출 도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클레버를 알게 되었어요. '이런 도구가 있네, 너무 재밌다, 간편하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바리스타 분들이 '커피는 일관성이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하시는데 클레버가 딱 그런 도구인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로 도구를 하나씩 사보면서 시도를 해봤죠. 첫 시작은 칼리타(Kalita) 핸드드립. 가장 싼 걸로 샀는데 처음 느꼈던 건 '레시피대로 했는데 왜 나는 이 맛이 안 날까?' 였어요. 칼리타 도구 특성상 '좀 더 진하게 내려지는구나'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다음 하리오(HARIO)로 바꿨고. 북유럽 여행 때 본 <커피콜렉티브(덴마크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에서는 에어로프레스로 브루잉을 내려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에어로프레스 컵 대회도 보면서 추출 도구로서 굉장히 매력적이구나를 느꼈죠. 귀찮은 게 이슈였지만(웃음). 그다음 변화는 필터지가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패브릭, 면으로 된 커피필터를 제로 웨이스트 샵에서 샀어요. 맛은 나쁘지 않지만 추출에 있어서 깔끔한 게 없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그다음은 캠핑용 커피 드립 기구, 스탠리(Stanley). 이거는 종이 없이 커피를 내릴 수 있어요. 커피 그라인딩하고 원두 붓고 물 따르면, 잔여물이 조금 남긴 하지만 생각보다 맛은 나쁘지 않아요. 아, 커피 그라인더로는 윌파(Wilfa) 브랜드를 추천해요. 저는 트렌드가 한국도 점점 웨이스트 리스, 제로 웨이스트에 열려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코케도 포장지에서 친환경 가치를 강조하듯이. 전 그런 게 너무 좋았거든요. 배송하면서 버려지는 것들을 최소화한 게 좋았어요. 망원동에는 원두를 소분하면서 파는 가게도 점점 많아지고요. 이런 움직임이 점점 빨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수빈)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걸 좋아하시네요. 

    ㄴ(찬빈) 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제가 좋아서(웃음).


Q11.  요즘 친환경 커피 필터도 많이 보이는데요.

        스페셜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이나 공간도 추천해주실 만한 곳이 있을까요?


나중에 기회 되시면, <아토모스(Atomos)> 카페를 가보시길 추천해요. 저는 제로 웨이스트와 카페가 섞이기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하는데 아토모스는 밸런스를 잘 잡는 곳이더라고요. 한성대 쪽에 있는데, 커피 되게 진지하게 하세요. 이곳은 미국 파트너스 커피라는 카페에서 원두를 납품받는데, 그 카페 특징이 이런 뚜렷한 지향점이 없는 카페에는 절대 납품하지 않거든요. 해외 수입하는데도 가격을 최대한 맞춰주는 구조이고요. 아토모스는 재미있는 게 스페셜티 커피숍인데 리필 스테이션이 있는 곳이에요. 이곳의 기준은 내가 직접 쓰는 물품들만 리필 스테이션을 하는 거예요. 원두, 티, 세탁세제 등. 제로 웨이스트 구색에 맞춰 상품들이 즐비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이곳을 운영하는 분들이 직접 큐레이션한 것들만 팔아요. 정면만 보면 카페인데, 내부로 들어와야 보이는 스테이션이 있어요. 이곳의 지향점은 남편 분이 커피를 오래 하셨고, 아내 분은 시민운동을 하시다가 환경 쪽에 관심이 있어서 제로 웨이스트 & 리필 스테이션으로 두 분의 밸런스를 맞춘 거더라고요. 이 톤 앤 매너를 지키려면 카페에서도 쓰레기를 안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휴지도 안 주시고 다 손수건으로 하시고. 드리퍼도 다 패브릭으로 하고. 다 빨아서 하고. 원두도 다 말려서 재활용하세요. 원두를 샀으면 원두 패키징이 있잖아요. 제로 웨이스트를 하러 오시는데 용기가 없는 분들에게 그걸 줘요. 그분(=사장님)들이 만든 수제 초콜릿을 소분해서 다 그걸(=재활용 원두 패키징)로 담아가요. 엄청 고생하는데 서로 지향점을 맞추니까 너무 편하시다는 거예요. 버릴게 없이 일관되게 지키는 모습. 저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아토모스는 커피도 너무 맛있어요. 저는 거기 있는 내내 미국에 있는 줄 알았어요. 보통 사람들이 제로 웨이스트 하면 착해야 해.라고 생각하지만. 그분들은 첫째, 일단 커피가 맛있어야 해. 둘째, 내가 쓰지 않는 걸 팔 수 없다. 내가 집에서 직접 써봤을 때 좋은 것들을 큐레이션 해서 팔아요. 가서 사장님들과 이야기 나눠 보니까 거기 있는 동안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 공간들이 앞으로 한국에도 더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Q12.  찬빈 님은 어떤 기준으로 원두를 선택하시는지도 궁금한데요.


되게 단순한데요. 산미랑 과일향. '너 커피 좋아하지? 이 원두 한 번 먹어봐.' 하면서 주변에 선물로 많이 받는 편이에요. 오래 두고 먹어도, 저 나름대로 즐기니까. 방문한 로스터리 카페가 괜찮았으면 그 카페의 원두를 사기도 하고요. 제 취향에 맞는 테이스팅 노트를 보고 사거나, 카페 사장님들에게 추천을 해달라고 해요. 그때 사장님이랑 한 마디씩 더 해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여행 다닐 때 그 지역의 로스터리 원두 사는 걸 좋아해요.


Q13.  그럼 혹시 여행 다니시면서 기억에 남는 커피 한 잔이 있을까요?


호주 멜버른의 <패트리샤 커피 로스터스 (Patricia Coffee Roasters)> 카페가 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멜버른에서 TOP 로스터리 카페였던 것 같아요. 엄청 작은 커피 바인데 머신 앞에 바리스타가 5명이 붙어있었어요. 법원 근처 직장인들이 다 정장 입고 스탠딩커피를 마시고 있더라고요. 비집고 들어가서 주문하고 앉아있는데, 제가 느끼기엔 '아 나랑 여긴 안 어울리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저에게 바리스타가 필터 커피를 주는 거예요. '이 커피 마셔봐, 저 커피 마셔봐' 이러면서. 근데 저는 이게 '환대(Hospitality)'라고 느껴졌거든요. 이 환대가 기억에 남는 게, 바쁘고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도 한 손님에게 다양한 커피를 즐기도록 기회를 주시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한테는 잊지 못할 카페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요. 사실 제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큰 계기가 한남동의 <아러바우트>라는 카페에서 뵙게 된 '윤얼'이라는 바리스타 덕분이에요. 그분도 제게 똑같은 환대를 해주셨어요. '이거 마셔봐,  저거 마셔봐.' 단순히 커피를 공짜로 줬다는 개념보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 (=바리스타)이 커피 취향을 찾아가게끔 제게 가이드를 주는 것 같아 좋더라고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 환대가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네요.   

(수빈) 스시 집에서 주방장님이 오마카세를 주는 것 같네요(웃음). 여행 다닐 때 카페를 많이 가시는 편인가 봐요? 

     ㄴ(찬빈) 맞아요. 하하. 보통 여행 갈 때 하루에 카페를 4-5곳씩 가요. 저는 커피투어, 카페 여행이에요. 여행지를 갈 때 무조건 그 지역의 카페를 저장해놓고 근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그 카페에서만 할 수 있는 바리스타와의 스몰토크도 좋고요. 멜버른도 그렇고 코펜하겐도 그렇고 커피와 음식을 같이 파는 곳이 많아요. 우리나라는 커피만 파는데 반해, 거기는 음식도 너무 맛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그런 것도 참 재미있어요. 식문화의 차이. 커피랑 음식이랑 섞였을 때도 시너지가 나는구나. 우리나라는 아직 커피랑 음식을 같이 팔기는 어색하잖아요. 브런치는 요즘 파는 분위기긴 하지만.


Q14.  호주 멜버른에 이어서, 덴마크 코펜하겐 카페투어는 어떠셨어요?


덴마크 코펜하겐 여행했을 때가 제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인데요. 저를 나타내는 키워드, <집, 커피, 사람>과 맞닿아 있어요.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했어요. 마침 덴마크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바로 갔죠. 갔는데 집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조명도 예쁘고 가구도 예쁘고. 에어비앤비에 갔을 때 호스트들이 프렌치프레스를 많이 쓰던 게 신기했어요. 커피를 항상 내려놓고 가는데. 프렌치프레스로 즐기는 홈커피가 무척 자연스럽더라고요. 그때 우리나라도 커피 문화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직접 집에서 커피를) 내려봐야 (홈커피 문화가) 늘어나잖아요. '너 내일 뭐해?'라고 친구한테 물어보면, '친구네 집에서 홈 파티해, 홈 디너 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다 집에 친구들을 부르는 거예요. 집이라는 공간이 모이는 공간이 되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저만의 집, 찬빈네집에 관한 꿈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라는.



#사람


Q15.  그럼 Sunday Morning Coffee Cluv (@smccseoul) 모임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못하고 있는데요. 저랑 친한 친구 두 명이서 시작하게 된 브루잉 클럽이에요. 저희 셋의 공통점은 집에서 커피 내려 마시는 걸 좋아해요. 근데 문제는 원두가 저처럼 많이 쌓인다는 점(웃음). 그래서 한 번에 모아서 다양하게 마셔보자, 모르는 사람도 초대해보고.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장소도 매번 옮겨 다니면서 4~5번 정도 진행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커피하는 사장님이 저희에게 연락해서 '이거 재밌어 보이는데 같이 해보자.'라고 하시기도 했고요. 강남의 알베르 랩이라는 공간 운영하셨던 사장님인데, 그런 분이 브루잉 클럽 같이 운영해보자라고 해서 해보고. 그런 제안들도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내리면 맛있어요'의 취지보다는, 막상 모이면 커피 마시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거기서 맺어진 인연들도 너무 좋은 게, 위워크 일할 때 입주사 디자이너 분이랑 친해졌는데 커피 좋아하는 부부를 소개받고. 알고 보니 그분들이 그 타이밍에 신촌의 새로운 카페를 오픈하려고 했던 거예요. 오픈 전에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너무 친해지고. 카페 오픈할 때도 가고. 지금도 연락하면서 지내요. 커피가 그런 매개가 되는 것 같아요.  오늘도 수빈 님이랑 같이 TMI로 계속 이야기하는데(웃음). 그런 인연들의 가벼운 시작점이 커피인 것 같아요.


Q16.  하하 맞아요. smccseoul 운영하시면서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사람 간 우연한 연결이 재밌어요. 한 번은 <기록상점>이라는 공간에서 이 모임을 한 적도 있었는데요. 그때 서로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한 분이 <이미커피> 사장님, 한 분이 <파브>라고 하는 삼각지의 내추럴 와인 다이닝하는 곳에서 근무하시는 분, <카페꼼마>에서 바리스타 하시는 분, 가구 브랜드에서 일하시는 분, 춘천의 오월학교라는, 폐교를 카페 + 식당으로 만든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모인 거예요. 굉장히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그때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왜냐면 커피를 일로 하는 사람들이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가볍게 시작한 건데 결국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신기한 게 커피(를 직업으로)하는 분들이 더 가볍게 (커피를) 내리시는 것 같아요. 부담을 가질 법한데 부담을 더 안 가지려 하시고.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니까 커피 이야기를 안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여행 이야기도 하고. 순간의 느낌을 공유하기도 하고.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그렇게 대화의 주제가 뻗어나가는 게 기억에 남아요.


Q17.  '사람으로부터 오는 가치를 믿는다'는 찬빈 님의 말씀처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네요.

찬빈 님 인스타그램에서 '거리 두는 시대에 거리감을 좁히는 일을 하는 게 고충보다는 고통에 가깝다'는 글을 봤어요.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사람 간 거리가 멀어지는 이때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일터와 집은 뗄레야 뗄 수 없는데, 항상 있어야 되는 공간이잖아요. 일터는 점점 집으로 많이 변해가고. 일터에서의 안전을 고민하는 게 필수가 되는 것 같고. 집은 혼자 살아도 괜찮은데, 제가 일하는 맹그로브는 공용 공간이 있다 보니까. 이런 공간들을 어떻게 운영해야 될지가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같이 사용하도록 짜인 공간들을 계속 쪼개고, 분리해야 하고, 모이지 않게 끔 해야 되는 게 역설적이죠. 이 공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도 들고. '어떻게 안전해야 하지'가 정답이 되다 보니.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정답을 찾기가 어려워요. 사례도 없고, 아무도 해보지 않았으니까. 다른 케이스에 많이 흔들리고요. 이 시기에 가치 판단이 어려운 것 같아요. 끝이 보일 줄 알았는데 이제 시작인 것 같고. 저희가 기존에 짜 놨던 기획들이 무너지고 처음부터 새롭게 해야 하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너무나 치명적이고.



마지막으로, 찬빈 님을 하나의 키워드로 표현한다면요?


자연스러움. 
나다운 건 뭘까? 라고 했을 때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일, 일상, 집에서도 그렇고. 제 커리어,
관계에서도. 모든 것에서. 


코케가 찬빈 님에게 추천한 원두 : 에티오피아 모모라 내추럴 구지 G1 (by 커피가게 동경)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커피였어요. 과일 향이 나고 상큼한 맛이 있고.
딱 이 스타일을 좋아해요. 깔끔한 맛.
어느 날은 다크 한 게 땡기는 날도 있지만, 주로 집에선 가볍게 마시는 걸 좋아하거든요.


자연스러움. 찬빈네집 창문으로 보이는 맑은 하늘, 커피를 마시면서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 다양한 사람들과의 어울림. 돌이켜보니 찬빈 님을 둘러싼 곳곳에 자연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제 취향을 찾아가는 사람, 박찬빈 님을 만나보았다.



본 인터뷰는 <집으로 카페를 들인 Cafe-in 이야기>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Original Content by koke 

원두 맞춤 구독 서비스, 코케 (https://www.kok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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