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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09. 2021

Since 1932, 서울에 하나 남은 서울식 추어탕

서울 중구 무교동 용금옥


지금이야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을 구분하지만, 이 식당이 개업한 1930년대의 서울은 조선시대 법궁이었던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사대문이 주요 생활권이자 핵심 상권이었으며  구획 구분의 기준선은 바로 <청계천>이었다. 대한제국 시절 생긴 노면전차의 운행 노선 중 본선 구간이 청계천을 따라 세종로-동대문-청량리였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영화 산업과 인쇄업의 발달로 사람과 돈이 모여들었던 장소 역시 청계천변의 을지로이다.


무교동 용금옥 입구

당시 내로라하는 언론사와 금융기관 역시 청계천변 무교동과 다동, 광화문 등지에 밀집해있었는데 당대의 쟁쟁한 기자와 관료들이 단골집으로 삼았던 전설적인 식당이 바로 3대째 대물림하여 내려오고 있는 <용금옥>이다.


용금옥 출입 통로에 걸어놓은 JTBC 손석희 기자의 앵커 브리핑

워낙 전설적인 역사를 지닌 식당인지라 남북회담에 북측 통역사로 나온 이가 “용금옥이 아직 무교동에 있는가?”라며 안부를 물어봤던 일화나 항일유격대 출신인 독립투사이자 시인인 이용상님이 용금옥에서의 비사를 엮은 <용금옥시대>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인 <추탕>의 유래 역시 청계천과 연관 있다. 당시 청계천 다리 밑에서 살던 거지들이 미꾸라지와 버섯, 두부 등을 넣고 고춧가루 양념으로 끓여먹던 것이 바로 <서울식 추탕>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용금옥의 서울식 추탕은 소곱창 육수를 베이스로 하되 갈지 않은 통추어와 버섯, 두부 등이 들어가고 양념은 고춧가루로 하여 먹다 보면 육개장의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맛과 닿아있다는 느낌이다.


특별히 맛있게 먹는 방법은 따로 없다. 내 경우엔 토핑에 따라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하여 초반엔 산초와 파를 넣고 국수를 말아내 먹다가 나중엔 반찬으로 나온 숙주나물을 넣고 밥을 말았는데 <어떻게 먹어도 다 맛있고,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단골이었던 이만섭 국회의장과의 추억 사진

노포의 생명력은 온고지신할 수도 있고, 전통을 고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기본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철학만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용금옥의 철학은 문득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 입점이나 프랜차이즈를 통해 더 큰돈을 벌 법도 한데 다동의 채 서른 평도 아니 되는 작은 한옥에서 묵묵히 주인장이 직접 끓여내는 국밥 한 그릇! 이젠 손님의 90% 이상이 갈탕이라지만 세월을 함께한 오랜 단골들을 위해 여전히 통추어탕 메뉴를 고수하는 점! 국물의 시원한 맛을 위해 파뿌리 흰 부분만 사용하는 세심함 등이 바로 변하지 않는 용금옥의 생명력이 아닐까 싶다.




# 추가잡설 1

이젠 도심의 전문 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추어탕은 대부분 된장으로 끓여낸 남도식이다. 농업 중심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서민이 가을 끝물에 보양을 위해 가장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식재료가 바로 추수가 끝난 논두렁의 미꾸라지였다. 미꾸라지를 뜻하는 추를 파자로 풀어보면 물고기(어)와 가을(추)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쉽게 조달 가능했던 미꾸라지 탕국은 지역색에 따라 각기 다른 조리 방법으로 발달했다.


# 추가잡설 2

내가 이 식당을 처음 만났던 것이 십수 년 전인 삼십 대 초반이다. 회사 선배들을 따라 해장으로 먹었었는데, 당시만 해도 고춧가루로 끓인 빨간색 추어탕이 어색했던 데다 유부와 느타리버섯 등 해장국 재료로는 뜬금없는 재료로 인해 음식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먹었던 당시의 느낌은 “뭐지?!”에 가까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작 서울 하늘 아래 남아있는 <서울식 추탕> 식당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평창동 소재 노포였던 형제추탕은 2017년 즈음해서 문을 닫았고, 형제추탕에서 기술을 배워 분가한 곰보추탕 역시 후계자가 없어 폐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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