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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Apr 30. 2024

Since 1981, 11시 37분에 문을 여는 중국집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신성각」

산업화 시대 일꾼들의 전투 식량이라 불렸던 배달 음식의 대명사, 짜장면은 그래서 천대받는 음식이다. 유럽에서 이백여 년만에 이뤄낸 산업화의 과정을 수십 년 만에 따라잡으려다 보니 우리에게는 음식조차도 '속도'의 개념으로 다가왔다.

인천의 찌징면박물관

짜장면은 몇 분만에 면을 삶아낼 수 있고, 이미 끓여놓은 짜장을 부으면 모든 조리 과정이 완성되는 음식이다. 빠르게 만들어 빠르게 배달되었던 짜장면은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특성과 천생연분 궁합 음식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더랬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젊은 해외 유학파 출신의 일식과 양식 셰프가 대거 외식 시장에 진출하며 외식 메뉴의 저변이 넓어진 데다 짜장면과 탕수육이 동네 식당에서 배달시켜 먹는 저렴한 고열량 이미지가 덧씌워지며 중식은 기나긴 암흑기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더불어 획일화된 공장제 춘장과 입맛을 돌게 하는 조미료의 과다한 사용은 짜장면의 지위를 스스로 격하시키는 트리거가 되었다.


서울 마포 효창공원 인근 소재한 신성각

그래서 획일화되어 버린 짜장면은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식 마니아의 구미를 확 끌어당기게 되었는데, 서울 하늘 아래 가장 독창적인 짜장면을 낸다고 알려진 곳이 바로 공덕에 소재한 「신성각」이다.


「신성각」은 1957년생 이문길 사부가 1981년 개업하여 홀로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작은 업장이다. 이곳의 짜장면은 마치 평양냉면의 슴슴함과도 비견될만한 슴슴함을 갖고 있는데, 강화제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밀가루와 물로만 반죽하여 새하얀 색을 띠는 데다 1인 업장임에도 불구하고 노사부가 직접 수타로 면을 뽑아낸다.

신성각 이문길 사부가 88년 당시 다짐을 적어놓은 글

가게 곳곳에는 주인장의 비범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영업 시작 시간은 특이하게도 '11시 37분'이고, 출입문에는 88년 10월 이문길 사부가 당시 적어 놓은 "본인 음식을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줄 음식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고 싶다"는 다짐이 적혀 있다.


혈기 왕성한 소싯적 부리는 것이 '객기'라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객기 어린 다짐이 지켜지고 있다면 그것은 「철학」으로 승화되었다고 봄이 마땅하다.


신성각의 업력만 따져도 무려 43년이니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버텼다 해도 무려 5천 번이나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하는 장고의 시간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 반죽으로 뽑아낸 신성각의 하얀 수타면

냉정하게 보자면 우리가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짜장면과는 결이 많이 다르기에 쫄깃함이 배제되어 힘이 없는 면발과 단 맛이 실종된 소스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대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집의 짜장면이 품고 있는 독창성이 시중의 그것과 완전히 차별성을 갖고 있기에  짜장면 마니아들은 이 집의 음식에 환호성을 지를 만하다.

하얀 색 소스의 옛날 탕수육

의외로 짜장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음식이 바로 「신성각」의 탕수육이다. 이 집의 탕수육은 서울에서는 만나기 힘든 하얀색 빛이 도는 투명한 소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내 유년 시절 기억에도 탕수육 소스는 단 맛보다는 신 맛이 강조된 다소 밋밋한 투명한 형태에서 88 올림픽 게임 등을 앞두고 서양의 토마토케첩이 가미된 형태로 변화했다.

탕수육에 들어간 포슬한 감자튀김

아마도 「신성각」의 이문길 老사부는 20대 시절 배운 중식 레시피 그대로를 사용하는지 70년대생이 기억하는 추억의 탕수육 원형 그대로를 만들어낸다. 탕수육의 화룡점정은 두껍게 썰어낸 감자 2조각이다. 아마도 기름 온도를 체크하기 위해 집어넣으신 것 같은데, 포슬하게 튀겨낸 감자가 고기 튀김과는 다른 굉장한 만족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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