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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pr 26. 2024

6화. 브루나이 공항(空港)의 황금

공항이야기 / 에세이

  겨울이 다가오면서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따뜻한 곳을 찾다가 가까운 ‘브루나이’로 피한(避寒)을 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보르네오섬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브루나이 등 3개국이 있다. 두 나라는 회사 일로 여러 번 가봤지만, 작은 나라인 브루나이는 비지네스가 별로 없어서 처음 방문이었다. 이미 경험했던 기후, 인종, 음식과 이슬람 문화 등에 대해서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비행기, 호텔 및 골프장 예약을 하면서 특이했던 것은 앞에 ‘Royal’이라는 말이 붙었다. 왕이 상징적으로 있는 국가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 영국, 태국 등 여러 나라는 왕이 존재하지만, 상징적이지 통치는 하지 않는다. 브루나이는 정부형태로 술탄제를 유지하고 있어, 술탄이 몇 개의 부처의 장관을 겸임하는 국가 원수이자 국왕이다. 프랑스의 영광을 이룬 절대군주 ‘루이 14세’를 능가하는 이슬람 왕정 국가이다.     

  처음 ‘Royal’이 들어가는 비행기를 탄 것은 KLM(Royal Dutch Airlines)이었다. 좌석부터 고급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중동을 다니면서 왕정 국가들이 많아서인지 대부분 항공사 이름 앞에 ‘Royal’이 들어갔다. Royal이 들어가는 항공사의 비행기들은 내부 좌석이 넓었고, 기내 음식이나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최상이었다. 이번 Royal Brunei Airline은 그동안 타 본 비행기 중에 최고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지 도착이 늦은 시간이어서 공항은 한산했다. 입국심사 등 전반적으로 관광 국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한국의 공항이 생각날 정도로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친절하고, 깨끗했다. 인상적인 것은 비행기부터 익숙해진 황금빛 옷을 입은 국왕의 사진이 자주 보였다. 멋있는 인상이었지만,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국가를 직접 통치하는, 재위 기간 50년을 바라보는 국왕의 위엄이 느껴졌다.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 50여 년의 장기 통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버지인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의 절대 왕정 국가의 기반을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가입을 위해서 반말레이시아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학살에 가까운 숙청을 했으나 오히려 말레이시아 가입을 철회한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석유였다. 산유국으로 절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석유 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국왕은 인구 50만 명이 되지 않는 소국이지만, 절대 왕권을 유지하며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 전체 노동 인구의 25%가 공무원이며, 교육, 주택, 의료혜택 (치료비 1달러) 등이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 최대의 복지국가이다. 경제는 1인당 GDP 35,813불(2024년 기준)로 세계 28위이고, 영연방 54개국에 속해 있는 국가로 외교적 위상도 석유 부국 이상으로 무시할 수가 없다.      


  방문 기간에 술탄의 공주 결혼식이 있었다. 이들의 결혼식은 1,700개의 방이 딸린 휘황찬란한 브루나이 왕궁에서 호화롭게 열렸다. 연일 신문에는 공주 결혼식에 대한 광고로 도배되었다. 3일 동안 국가 행사로 치러지는 결혼식에 외국의 많은 인사가 초청을 받았다. 7성급 리조트 호텔인 브루나이 더 엠파이어 호텔(The Empire Brunei Hotel)에는 그들이 탈 차량과 경호차들로 도로를 메웠다. 

  시내 관광 일정 중, 국립박물관에 들어서자, 네팔 구르카 용병 전시실에서는 사진기는 지참할 수 없고,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으라는 안내원의 말을 들었다. 국왕의 아버지가 반란을 일으킨 정적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잔인하게 학살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전시실 앞에는 군인과 보안요원이 관람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치욕적인 역사를 전시하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으나, 남의 역사 같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나 마주치는 브루나이인들은 밝은 표정과 여유로움으로 외국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누군가 와서 어설픈 한국어로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말을 건넸다.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한국 드라마라고 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의 위상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경기도의 절반 정도의 면적과 도시의 인구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 브루나이에서 며칠을 머무르면서 겪어 보지 못했던 왕정 국가의 절대적인 통치의 자취를 보았다. 앞으로 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어, 국민이 가난 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어 보인다. 엄격한 이슬람법에 익숙해진 그들은 하루에 5번 기도를 하며 영생(永生)을 바랄 것이다.          


  지상의 낙원인 브루나이에서 바라본 그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밝은 모습과는 달리 통제된 이슬람 왕정 국가에서 삶이 행복할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며칠 잠시 들려서 본 그들의 이중적인 생활이 외국 관광객의 기우(杞憂)일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50년간 풍족하게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브루나이인들을 생각하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엄격한 이슬람법도 행복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100여 년 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그들도 언젠가는 겪게 될 미래의 변화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다. 입국 때와 달라 보이지 않는 공항은 여전히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황금색으로 치장된 브루나이 더 엠파이어 호텔의 내부에서 며칠간 지내며, 그 환상으로 다시 Royal Brunei Airline에 올랐다. 바다는 황금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착시(錯視)가 아니길 바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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