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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May 03. 2024

7화. 올랜도 공항(空港)의 하늘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잠시 시계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문득 올랜도의 맑은 하늘과 낮게 깔린 구름이 보고 싶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있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바깥출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상황에서 밖으로의 탈출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지금 이런 시국에 어딜 가냐는 친구들의 애정 어린 비웃음을 나는 무시했다.

  기나긴 코로나 터널을 끝내 참지 못하고, 올랜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조금만 더'라는 말을 수 없이 외치다 내린 결정이었다. 여행 가방을 챙기면서도 괜한 짓 하는 것 아닌지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가방의 끈을 더욱 단단하게 묶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그렇게 많았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잘못 온 것 아닌가 할 정도로 텅 비어 있는 공항 안은 음산했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로 동병상련을 느꼈다.

  코로나 음성확인서를 받기 위해서 검사소를 향했다. 간호사가 솜이 묻어 있는 긴 막대기를 콧속 깊은 곳으로 넣자, 머리가 띵해졌다. 만약 '양성'이 나오면 비행기 탑승이 불가능해 친구들의 비웃음이 현실로 될 것 같았다. 텅 비어 있는 공항에 있는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자가 떴다. 2시간 만에 속으로만 외쳐 댔던 '음성'이라는 단어를 허공에 날려 보내며, 몸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코로나 상황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 탑승객이 거의 없어 전세를 낸 비행기로 착각했다. 비행기를 많이 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한산한 기내를 왔다 갔다 하는 승무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승객과 승무원 수가 비슷했다. 자리에 여유가 있어서 편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왠지 불편했다. 다행히 저녁 비행기라 대부분 승객은 가운데 4개의 좌석을 침대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가끔 음료수를 제공하는 승무원들은 많지 않은 승객으로 여유로움을 보였다. 

  비행 일정은 여러 번 변경되었다. 미국에서 환승하는 비행기가 승객 부족으로 비행 일정이 취소되었고, 흔하지 않은 비행기 기술 문제로 출발 일정이 지연되면서 결국 경유지인 L.A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런 어려움을 감내한 덕분에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호텔에서 멋있는 저녁으로 호사를 부렸고, 다음 비행기 좌석의 편의까지 받는 특혜를 누렸다. 출국 전 제시했던 코로나 음성확인서와 예방접종 확인서는 이미 짐꾸러미 어디엔가 처박혀있었다. 꿈속에서 올랜도의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다.      

  새벽에 L.A에서 탄 비행기는 5시간이 지나자, 올랜도 상공에 접근하고 있었다. 기내 창밖으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넓은 평원에 수많은 크고 작은 호수들이 점점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집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땅에 묻혀 있는 듯 보이던 주택들이 비행기의 고도가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났다. 공항 활주로에 미끄러지면서 랜딩 하는 비행기 착륙의 충격이 출국부터 가슴 졸이게 했던 마음을 깔끔하게 사라지게 했다. ‘Orlando International Airport’가 점점 다가왔다. 

  비행기에서 보딩 브리지를 밝으며, 기나긴 비행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공항 터미널로 들어서자, 높은 천장의 유리창으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입국장에는 디즈니월드의 행렬이 보이지 않아 거대한 축구장을 연상케 했다.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공항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짐들이 쉴 틈도 없이 돌고 있었다. 저 게이트를 나서면 올랜도의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이 펼쳐져 있겠지. 어렵게 여행한 고생을 떨쳐버리고, 짐을 실은 캐리어를 힘차게 밀고 나갔다.     

  나는 지금 올랜도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보려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몇 년 전 처음 왔을 때, 올란도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광경에 몇 시간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낮게 깔려 손을 올리면 닿을 것 같다. 

  소리 없이 조금씩 흘러가는 구름은 포근했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처음 올란도의 하늘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변화 없이 쭉 이어졌던 것처럼 하늘을 봤다. 그 하늘 속으로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잊혀 가는 사람들, 어렴풋이 생각나는 여인들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낯익은 친구들이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저 멀리서 가족도 구름 속에 흘러오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하늘이 저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가슴이 설렌다. 

  미래의 파란 하늘에 내 마음을 싣고 싶다.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 속에서 미래의 세상을 보고 싶다. 가보지 못한 곳, 살짝 보고만 싶은 곳,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그곳에 구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수줍음을 감추고 얼굴만 내밀면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다.      

  지난 시간을 다시 돌려,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올랜도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시간이 기다려진다. 집에서 보는 푸른 하늘이 왜 올랜도와 다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가고 싶어지는 것 같다. 한산했던 올랜도 공항 터미널 천장의 유리창을 통해서 보았던 파란 하늘이 보고 싶다. 올랜도 하늘이 많이 변해있을까 궁금해진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면서 다가올 미래의 하늘에 키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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