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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May 17. 2024

9화. 아스마라 공항(空港)의 새우

공항 이야기 / 에세이

  홍해 연안에 있는 유명한 새우 양식장이 있어서 방문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겠냐는 걱정을 했다.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단순한 걱정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에리트레아의 국가정보를 보면서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에리트레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독재국가로 명성이 알려져 있다. 정치범들은 물론이고, 종교적인 박해는 극에 달하고 있어서 개신교도들을 열악한 곳에 감금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최근에는 역사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는 에티오피아와 무력 충돌로 여행하기에 위험한 나라로 권고되어 있다.

  사업으로 알게 된 영국 친구가 현지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어, 그의 제안이 없었으면 포기했을 것이다. 그 영국 친구로부터 에리트레아가 영국 식민지였기에 많은 영국인이 거주하고 있어서 안전하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새우 양식장도 영국 회사가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에리트레아 여행을 추진한 이유는 좋아하는 새우를 양식장에서 직접 먹을 수 있기도 했지만, 동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 전쟁으로 독립하면서 홍해를 낀 영토를 확보해, 풍부한 어장에서 참치, 정어리, 새우, 게, 굴 등의 고가의 어물을 어획하고 있다. 

  두바이에서 비행기에 탑승하자, 에리트레아 항공의 승무원들이 친절하게 맞이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어두운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주로 이탈리아, 영국인들인 여행객들의 들떠 있는 분위기는 에리트레아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에리트레아 상황으로 여행의 두려웠던 마음이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사라졌다.

  아스마라 공항에 착륙해서 비행기 문이 열리자, 2,000m가 넘는 고원(高原) 도시라 여름인데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를 타고 입국장으로 들어서면 잠시 멈칫했다. 대형 나무 조형물들이 천장을 뚫을 듯한 깨끗한 현대식 공항으로 웅장함을 느꼈다. 아스마라 공항의 입국 검사는 보안 요원들의 눈초리 외에는 여느 공항과 같았다.

  영국 친구가 반갑게 맞이하며, SUV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조금 지나자 한국에서 볼 수 있는 5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한국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라는 그의 설명을 듣고, 한국의 상품뿐 아니라 건설회사가 낙후된 나라에도 진출하였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스마라에서 마사와 홍해 쪽으로 내려가는 차는 구불구불한 가파른 낭떠러지로 아슬아슬하게 달렸다. 도로에 안전시설도 없고, 도로 폭이 좁아서 안전 운행을 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운전하는 친구는 긴장하는 표정을 힐끗 쳐다보면서 ‘take it easy’를 수도 없이 외쳤다. 그때마다 그냥 눈을 감았다.

  마사와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얼마 후 홍해가 옆으로 같이 달리면서 또 다른 나라로 온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포근해지는 날씨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친구가 창문을 활짝 열어줬다. 짠내가 코로 들어오면서 긴장했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홍해에서 새우가 춤추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마사와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대형 왕새우 양식장이 여러 개 보였다. 에리트레아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였다. 이곳에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해서인지 리조트 시설이 잘되어있었다. 양식장은 에리트레아 정부와 영국 회사 합작으로 설립되어 영국 친구가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왕새우 양식장은 커다란 원형 수조로 만들어져 중간에 기포발생기가 물을 뿌리고 있었다. 여러 개의 수조마다 크기가 다른 새우들이 유영했다. 축구장 크기의 양식장은 유럽에서 들여온 기계들로 현대화되어 의외로 적은 인원으로 관리가 되었다. 친구의 안내로 양식부터 수출까지의 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양식된 왕새우는 전량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어 에리트레아의 주요 수입원으로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영국 회사는 판매를 담당하여 지분참여 비율대로 이익을 영국 회사로 송금했다. 불안정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외국 회사를 앞세워 외화를 벌어들여 통치 자금을 만들었다.             

  홍해가 빨간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친구가 게스트하우스로 초대했다. 직원이 양식장에서 갓 잡아 온 왕새우를 불판에 올렸다. 옅은 회색빛의 껍질이 빨갛게 변해갔다. 오랜만에 ‘글렌스코시아 15년’ 위스키를 마시면서, 옛날 영국 장사하던 추억과 함께 에리트레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에리트레아에서는 물고기 소비량이 아주 낮았다. 에리트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육류를 즐겨 먹기 때문이었다. 원래 유목민으로 살았고, 목축과 농사로 살아가고 있는 에리트레아 사람들은 먹기에 간편하고 단조로운 음식 메뉴를 좋아했다. 그들은 생선을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에리트레아 해역의 홍해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다른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들보다 생존 위협이 훨씬 적어 수명이 길었다. 바다에 그물을 쳐 자기들을 잡아가는 어부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30년 이상 계속된 에티오피아와의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 기간이 이 해역의 물고기들에게는 최상의 태평천국이었을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은 끝났지만, 내부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에리트레아 국민이 그 전쟁의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나라를 떠나 바다에 표류하고 있다. 대형 양식장의 왕새우처럼 유럽으로 떠나고 있다. 위정자들은 왕새우의 판매에만 관심을 가지며, 내부의 전쟁이 최상의 태평천국이라 생각할 것이다. 아스마라 공항을 탈출한 새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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