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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May 24. 2024

10화. 클루지나포카 공항(空港)의 공포

공항 이야기 / 에세이

  부쿠레슈티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들었는지 소금 광산에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소금 광산에 대한 정보와 일정 등을 정리하다 엘리베이터로 지하 120m를 내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생각에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이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이런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일상적으로 해외 출장을 위해서 비행기를 타면서 일어났다. 게이트가 닫히고 이륙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승무원이 위스키 한잔을 가져다주면서 단숨에 마시라고 했다. 다행히 깊은 잠에 빠진 채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때는 일시적 상황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일을 잊었다. 

  얼마 후, 정기 신체검사를 위해서 CT 촬영을 하는데, 누워있는 베드가 좁은 공간으로 움직이면서 얼마 전 비행기에서 느꼈던 상황이 벌어졌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여러 번 시도 끝에 검사를 마쳤다. 그날, 그런 현상이 폐소 공포증(claustrophobia)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좁은 공간이나 밀폐된 공간을 피했다. 이번 여행도 조금은 걱정되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이 눈에 밟혔다.      

  투르다 소금 광산을 차로 가려고 했으나, 6시간 이상 걸려 아이들의 멀미 때문에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부쿠레슈티에서 비행기로 클루지나포카 공항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되고, 그곳에서 투르다는 멀지 않았다. 국내라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폐소 공포증이 몰려와, 미리 준비한 약을 먹었다. 비행기는 카르파티아산맥을 가로질러 북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아직도 산에는 눈이 덮여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평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비행기가 하강했다. 클루지나포카 공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산에 둘러싸인 공항은 설렘보다는 산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으로 편안함을 주었다. 

  연휴 기간이라 많은 사람이 작은 공항 청사에 붐볐다. 클루지나포카는 로마 제국 시절부터 유서 깊은 역사적인 도시라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후 루마니아의 영토가 되었기에, 독일인과 헝가리인이 많이 살았다.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문화 중심지로서 1872년에 창립된 루마니아 최고(最古)의 종합대학을 비롯하여, 국립극장, 식물원 등이 있고, 14세기에 건립된 고딕 건축물인 미하일 교회 등 명승·고적이 많다. 투르다 관광을 끝내고, 하루를 클루지나포카에서 지내기로 한 이유이다.      


  투르다 소금 광산은 중세시대부터 소금을 채굴하던, 광산이 밀집해 있는 광부들의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1932년까지 양질의 소금을 채굴하였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치즈 저장소 또는 대피소로 사용되었다. 폐광되었던 이곳을 지금은 스포츠 경기장, 원형 극장, 지하 호수 등 관광객들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테마파크로 개발하였다.

  이런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을 관광지로 개발한 이유는 사람들이 소금 광산이었던 이곳에 들어서면 건강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중 섭씨 12~15도로 유지되는 온도와 80% 정도의 습도에서는 박테리아가 서식할 수 없어서 유럽 전역에서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의 소금 순도는 80%에 달해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몸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살리나 투르다’로 들어가는 지상 입구는 지하철역 입구를 연상케 했다. 조금 지나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수직 120m 아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모험이 시작된다. 그런데 발걸음이 무거워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혹시나 해서 약을 미리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안감은 계속 밀려왔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눈을 감았다. 약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직으로 내려간다는 속도감을 느낄 수 없이 평온해지면서 옆에 같이 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신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지하에는 소금 캐던 장소가 아름답게 빛나는 거대한 지하 궁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중세시대의 소금 광산이라는 환경이 신비로움으로 변신한 테마파크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지면서 이곳이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보며,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졌다. 지상에서 맡을 수 없는 소금에서 품어내는 공기를 만끽했다. 몸이 공중 부양하며 떠다니는 편안함이 소금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폐소 공포증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행 처음부터 즐거움과 설렘보다 불안감이 앞섰던, 투르다 소금 광산을 여행하면서 클루지나포카 공항은 비행기와 지하 광산에서 공포를 유발했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어찌 생각하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공항이지만, 아이들과 즐거웠던 여행을 생각하면 다시 들르고 싶은 공항이었다. 신비로운 지하 세계와 대자연 속의 산으로 둘러싸인 포근함, 지상에서 영원으로 갈 수 있는 클루지나포카 공항을 떠나며, 나는 클루지나포카 땅에 머리 숙여 감사의 키스를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를 추억의 여행을 기대하면서…. 아이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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