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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n 07. 2024

12화. 브뤼셀 공항(空港)의 전투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여름휴가의 목적은 힘들었던 일을 뒤로하고, 그동안 챙기지 못한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내며 리프레쉬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해외 주재원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많았다. 여행 경비 지원과 본사보다 많은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고민 끝에 벨기에서 사는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형이 사는 집이 넓어서 가족이 있기에 충분했다. 비행기로 브뤼셀 공항에 내려서 형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미리 렌트한 차를 몰고 주변 국가를 다니면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은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을 목표로 했다. 작은 애가 어려서 일정을 여유 있게 만들었다. 베네룩스 3국은 나라가 크지 않아 별문제가 없었고, 프랑스는 휴가 일정 관계로 파리를 경유해서 시원한 북프랑스만 돌기로 했다. 다행히 주재국에서 브뤼셀까지 직항이 있어 이동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의 짐이 많아서 현지에서 버릴 물건과 살 것들을 고려해 최소화했다. 아이들도 백팩을 하나씩 만들어주면서 가족 여행단의 면모를 갖추었다.      

  브뤼셀 공항에 내리면서 보안요원들의 수많은 눈동자가 움직이던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의 상황이 떠올랐다. 공항 밖에는 선글라스를 쓴 군인이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승객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고, 내부에 들어오면서 경찰견들과 순찰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 공항에서 얼마 전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테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국제기구본부가 많이 있고, 무슬림 이민자들의 언어 문제로 인한 낮은 교육으로 실업률이 매우 높아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휴가 첫날부터 전쟁터로 뛰어든 느낌이 들었다.

  엄격한 보안 검색을 거쳐 공항 밖으로 나가자, 감옥에서 석방된 기분이 들었다. 예약한 렌터카를 타고 형이 알려 준 집 주소로 향했다. 전형적인 유럽풍의 집들이 녹색정원에 둘러싸인 풍광을 보면서 공항에서 느꼈던 전투 상황은 사라졌다. 형이 공항 검색이 심했을 텐데 괜찮았는지 물었지만, 지금의 평온한 상태를 깨기 싫어서 ‘No problem’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형이 저녁 먹을 식당 근처에 있는, 나폴레옹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워털루를 방문하자고 했다. 집에서 차로 10여 분 지나자, 멀리 커다란 동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워털루는 벨기에서 부유한 지역으로 주택과 넓은 농지가 있는 평탄한 곳이었다. 일반 공원에 높은 동산만 있어, 처음에는 입구 정도로 생각했다. 일반적인 전투는 평지나 고지 쟁탈을 위해서 벌어지는데, 크지 않는 언덕에 사방이 확 틔어 있는 동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상했다. 사자의 언덕은 워털루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올린 인공 언덕이라는 설명에 이해되었다. 동산 꼭대기에 있는 사자의 동상을 보면서 이곳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제 나폴레옹의 몰락을 생각했다.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는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대프랑스 동맹의 주요 2개국 군대에 패배를 당했다. 이 전투로 인해 나폴레옹 전쟁은 완전히 종결된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의 결정적 전투였다. 4일 후 나폴레옹은 폐위되었고, 7월 7일 연합군은 파리에 입성했다. 워털루 전투 패배는 나폴레옹의 통치를 끝냈고, 그의 백일천하도 이 전투로 끝났으며, 프랑스 제1 제국이 붕괴하였다. 나폴레옹은 완전히 실각하여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그의 생애를 마감한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벽에 걸어 준 나폴레옹 사진을 보면서 자랐다. 가끔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던 나폴레옹은 역사적으로 가장 비범했고,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꿈을 키워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폴레옹에 대한 인식은 ‘일그러진 영웅’으로 바뀌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이 성공하면서 권력을 장악하며 황제로 승격하였다. 그는 혁명의 기초 원칙인 민주주의와 평등의 실현을 언론 장악과 그의 반대 세력을 억압하면서 독재자, 프랑스혁명의 배신자로 변신하였다. 그는 통치 기간 유럽 전역에 많은 전쟁을 일으키며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의 선동자가 되었다. 

  나폴레옹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는 프랑스의 교육, 법률, 그리고 행정 체계를 현대화하였고, 학교와 대학을 설립하고, 나폴레옹 법전을 도입함으로써 프랑스의 법률 체계를 개혁하면서 문화와 교육의 옹호자가 되었다. 그의 통치 아래 프랑스는 최고조의 국력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의 군사적 업적은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여겨졌고,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공과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국력이 최우선적인 요즈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나폴레옹이 ‘위대한 영웅’이라고 했던 말에 공감하게 된다. 강력한 국가가 민주주의와 평등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 들렸던 워털루는 나폴레옹을 통해서 다시 한번 국가와 지도자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에도 역사적으로 그런 영웅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이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많은 전투가 일그러진 영웅인지 위대한 영웅인지 모르지만, 그런 전쟁의 선동자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곳곳에 있는 나폴레옹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브뤼셀 공항의 보안요원들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는 전투로 인해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나폴레옹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워털루의 사자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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