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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n 21. 2024

14화. 스나이 공항(空港)의 아침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조호르바루로 가기 위해 기다리던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많은 공항의 다양한 건축과 내부 디자인을 보았지만, 이 공항은 초현대식의 현대적인 선과 공간 그리고 빛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말레이시아 통신회사 본사에서 기술 회의의 피곤함도 잊은 채, 공항 내부를 돌며, 아름다움에 빠졌다. ‘조호르바루행 비행기에 탑승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게이트로 향했다.

  비행기 창가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면서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조호르바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사뿐히 착륙하면서 동시에 큰 굉음을 냈다. 스나이 공항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여행객들이 많아서인지 깨끗했다. 공항 직원들이 상냥하게 ‘좋은 여행 되십시오.’라는 인사를 했다. 공항 터미널을 나서자, 바다 냄새가 불어왔다. 기다리고 있던 말레이시아 통신회사 직원이 손을 흔들었다.

  이곳은 말레이반도의 최남단 지역에 있는 말레이시아 제2의 도시로 조호르주의 주도다. 좁은 해협을 두고 바로 남쪽은 싱가포르가 있다. 이 지역은 싱가포르를 포함해서 말레이시아 영토였으나 1965년에 싱가포르 지역만 독립했으며, 오늘날에도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다. 싱가포르인들이 말레이시아에 진출할 때 주로 거주하는 곳이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을 포함한 말레이시아인이 싱가포르로 출퇴근하기 위해 이곳에 거주한다.      


  말레이시아에서 통신 사업을 하게 된 배경은 한국의 통신 장비를 수출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를 물색하던 중, 동남아 국가 중에는 싱가포르에 이어 가장 선진화되어가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동남아 국가의 대부분이 화교들이 상권을 잡고 있었고, 그들을 통해서 무역을 해왔기에 말레이시아 통신회사와 관련 있는 인사를 소개받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현지 대형 사업을 위해서는 정·관계 등 유력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인물을 중개인(Agent)으로 선정해 계약한다. 

  통신 사업은 대부분 국책 사업으로 현지국의 통신 인프라를 upgrade(통신 장비를 최신 버전으로 교체하는 과정) 시켜주고, A/S를 해주는 일을 한다. 고도로 업무와 기술에 숙련된 고위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최종 목적은 그들이 발주한 물량에 대해서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 완벽한 통신 장비를 공급해야겠지만, 국제 입찰에 낙찰(落札)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정부 통신회사에서 제시한 기술적 스펙, 가격, 공급 조건 등에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야 선정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일을 현지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입찰 준비를 한다.

  몇 년간 공들인 말레이시아 통신 사업은 궤도에 올라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공급된 통신 장비가 전국적으로 설치되어 가던 중, 조호르바루에서 통신 에러가 발생한다는 연락이 왔다. 계속 사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불량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현지에 파견 근무 중인 기술직원과 통화를 했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본사에서 

필요한 장비와 함께 기술 인력 파견을 요청했다. 공장의 기술자들과 원인분석을 해봤지만, 장비에는 문제가 없어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 통신회사 본사가 있는 쿠알라룸푸르에서 기술적인 미팅 후, 조호르바루 현지로 가기로 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문제가 된 지역을 현지 기술자들과 통신 점검을 위해서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천둥, 번개가 동반하면서 하늘이 어두워지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현지 직원이 스콜(squall)이라고 했다. 조금 지나자, 어두워진 하늘은 사라지고 햇볕이 나타났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는데,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도로가 물바다가 되면서 그 위력은 대단했다. 현지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처음 스콜을 겪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천둥소리는 귀청을 찢었고, 빤작이는 번개는 지옥의 천사처럼 느껴졌다. 

  통신 장비를 탑재한 자동차로 스콜로 잠시 중단했던 통신 신호 감지 조사를 조호르바루 시내를 돌아다녔다. 신고된 일부 지역의 일시적인 통신 마비 지역을 돌면서 신호를 계속 감지했다. 그때 다시 스콜이 내렸다. 그 순간 시내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에서 통신 신호가 마비되었다. 일본에 설치했던 통신 장비가 떠올랐다. 외부 자극 자동 취소 시스템(external stimulus signal automatic cancellation system)은 도심에 많은 통신 신호가 한 곳으로 몰리면서 통신 마비 상태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비이다. 

  스콜 현상이 발생할 때, 번개가 치면서 통신 중계기에 부화가 걸려 일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어 무선 통신을 사용하는 곳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에는 많은 중계기가 설치되어 있고, 고층 건물이 많아 이런 시스템을 제대로 설치했다. 조호르바루에는 시내에만 설치해서 시 외곽 지대에서 통신 마비 사태가 온 것이다. 다행히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아니라 말레이시아 통신회사에 통신 마비 지역에 추가로 특수 장비를 설치해 주겠다고 유선 전화로 보고를 했다.      


  그날 저녁, 출장팀과 이곳에서 유명한 타이거 맥주를, 현지 기술자들은 이슬람교도라 대신 주스를 마시며, 기술 문제를 찾기 위해서 몇 개월을 고생한 노고를 풀었다. 그들과 몇 년 동안 통신 사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늦은 밤까지 함께했다. 

  쿠알라룸푸르 본사에 보고를 위해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거리에 어둠이 사라지며, 저 멀리 바다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공항이 저 멀리 다가오면서, 스나이 공항이 아침 햇살로 유리에 반사되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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