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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n 28. 2024

15화. 룩소르 공항(空港)의 향기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새벽에 카이로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정도 날라서 도착한 룩소르 공항에는 비행기의 문이 열리자, 태양이 떠오르면서 묘한 향기가 기내로 들어왔다. 땅에서 나오는 흙냄새와 짙은 안개가 공기가 뜨거워지면서 나는 상큼한 냄새가 어우러진 이집트 문명의 향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오묘함에 이끌려 공항 내부로 들어가니, 해외에서 직항으로 들어온 많은 관광객이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곳에서는 세계의 향기가 흐르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어둠이 사라지고, 뜨거운 태양이 기다리고 있었다.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 버스들이 도로를 메꾸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팻말을 든 사람들이 눈동자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느 유명한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지금부터는 관광객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긴장했다. 가족과 여름휴가를 이곳으로 정한 후의 설렘은 잠시 잊기로 했다. 룩소르 공항에서 맡은 향기는 이제 또 다른 향기로 변하고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은 이집트’라는 말이 있다.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는 피라미드가 아니더라도 고대 유적지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이집트 여행은 역사의 여행이자, 사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집트 남부 나일강 서쪽 편에 있는 거대한 무덤군, 작은 구덩이부터 거대한 대무덤까지 총 65개의 무덤이 이 계곡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이 '서부 테베 파라오의 위대하고 장엄한 묘지, 수백만 년의 삶으로 부르던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이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 보면 왜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렇게 불렀고, 이집트가 인생의 마지막 여행지라는 의미를 알 수 있다. 

  가족과 여름휴가를 룩소르로 결정했을 때, 아이들의 설렘이 떠오른다. 여행의 목적은 힐링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역사 교육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기회이기도 하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지를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과 같이 사는 동안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독립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어릴 적 그들과의 여행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다행히 이집트에 근무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오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이기도 했다.    

  유적지가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를 고민한다. 아이들과 어릴 적 방문했던 그리스에서는 새해 첫날 크루즈 선상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봤다.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꼭 가고 싶었던, ’ 에게해’에서 빨간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 순간을 같이했지만, 공유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아이들에게 이집트 여행을 제안했을 때, 이제는 그들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안내자가 되어 줬다. 

  룩소르에 방문하면 가장 처음 마주치는 룩소르 신전(Temple of Luxor)은 아문 신의 남쪽 궁전이라 불린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아문 신은 무트 신과 결혼했다. 그 결혼을 기념하고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가 오페트 축제인데,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집트 유적지에서 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행사는 이집트를 배경으로 만든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카이로의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에서 하는 공연이다. 

  룩소르 신전에서 유명한 높이 25m의 오벨리스크 두 개가 있었으나, 현재 하나만 남아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 광장에서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신전을 돌면서 즐거워했던 것은 그곳에 있는 개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색깔이 신전의 황토색과 비슷하고, 마치 왕처럼 느긋한 자태를 보이면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그들을 보면서 고대 이집트 왕들이 환생(還生) 한 것 같았다. 

  여러 유적지를 돌고, 오후 늦게 마지막으로 이집트 남부 아스완에 있는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했다. 이곳은 람세스 2세의 지어진 웅장한 석조 신전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20m의 좌상들과 암벽을 60m 깊이로 파서 만든 석굴사원이다. 특이한 것은 2년에 한 번씩 햇살이 신전 깊숙한 곳까지 비치도록 만들어졌다. 1960년대 초반 아스완 하이 댐이 건설되고 있을 무렵, 아부 심벨의 신전들이 나세르 호수의 물에 잠기지 않도록 원위치에서 서쪽으로 63m 높은 지점에 옮겨졌다.     

  룩소르의 밤은 호텔에서 룩소르 신전의 야경을 보면서 깊어갔다. 아이들은 옆 방에서 아직도 자지 않고, 새벽부터 유적을 돌면서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세월이 지나 그 사진들을 보면서 인생의 한 부분을 부모와 함께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집트 여행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닌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룩소르에서 맡았던 짙은 고대의 향기를 생각하면서, 그들도 영원히 잊지 못할 에게해의 추억처럼 되길 바랐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나일강으로 향했다. 문명의 시작과 끝은 강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나일강의 물줄기를 보면서 역사는 그렇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룩소르 공항을 떠나며 ‘나일강의 물은 먹으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라는 말을 생각했다. 사후에 룩소르 공항의 향기를 다시 만끽하길 기대하며, 비행기 창가에 멀리 보이는 룩소르 신전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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