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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pr 19. 2024

5화. 하라레 공항(空港)의 혼돈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아프리카 국가의 공항들을 많이 다녀봤지만, 하라레 공항은 보기 드물게 공항 시설이나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은 버스 등을 이용해서 게이트로 들어가는데, 이 공항은 로딩브리지를 통해서 입국 심사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는 세련된 입국 심사원들이 밝은 미소로 맞이했다. 영국식 영어가 조금은 낯설기는 했지만, 여권 검사도 엄격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현지 국영 광물회사 직원이 VIP 통로를 통해서 입국을 도와줬다. 멀리서 여기까지 온 한국 방문단을 위한 최대의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익숙한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마인드가 보였다. 절제된 행동 속에서도 뚜렷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방문 전 들려온 현지의 혼란한 국내정세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공항 밖의 모습은 평온했다.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광물자원의 개발 및 투자를 위한 사전 답사를 위해서였다. 광물 전문가들과 현지 실사 및 주요 광산의 투자 가능성에 대한 1차 조사였다. 짐바브웨는 오랜 기간 영국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한때 크게 번성하였다. 세계 최대의 백금 광산이 있으며,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 등 다양한 보석 자원도 보유하고 있어 ‘아프리카의 보석’으로 불리고 있다. 

  유럽인들은 짐바브웨를 ‘아프리카의 진주’ 또는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나라다. 1인당 GDP는 1,000달러에 못 미치는 가난한 나라지만, 광활한 경작지와 우수한 토양 조건으로 ‘아프리카의 식량 창고’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bread basket)’라고 불릴 만큼 미래의 희망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 나라는 전국이 사바나로 덮여 있어, '동물의 왕국'이기도 하다.      


  공항에서 하라레 시내로 향하는 길은 평온했다. 푸른 하늘과 드넓은 초원만을 본다면, 천상(天上)의 자연 풍광이었다. 지나가던 차들이 조금은 낡아 보였지만, 고풍스러워 보였고, 짐을 머리에 이은 채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낙네는 힘들 것 같은데도 지나가는 차를 보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시내 중심으로 진입하면서 차 속으로 매연이 들어왔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했고,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호텔은 유럽 못지않은 5성급이었다. 현지 직원이 숙박료 할인을 받았다는 말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서, 호텔 창은 빨간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고도에 있는 하라레는 저녁이 되면서 여름인데도 추위를 느꼈다. 광물회사 사장의 저녁 초대로 인근 전통 식당으로 향했다. 전통의상을 입고 서빙하는 종업원들의 분주하지만, 상냥한 모습이 음식의 맛을 돋웠다.     


  국영 광물회사 직원의 안내로 며칠간 투자 유망 광산들을 방문했다. 도로는 의외로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힘들지 않았다. 1980년 이후 경제 악화로 폐광된 광산들을 중국 회사들이 투자해서 진출해 광물 채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주요 광물 광산은 중국이 장악했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진출을 추진하고 있으나, 중국의 방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최근 짐바브웨 정부가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적, 경제적 환경 개선에 주력하고 있고, 투자, 기술 이전, 시장 개방으로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 있어, 향후 좋은 기회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 준 광산들은 지역적인 운송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샘플을 검사해 봐야 하겠지만, 경제성도 불투명해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 국내의 혼란이었다.      


  짐바브웨의 혼란은 몇 년 전 무가베 정권이 강제적으로 토지개혁을 시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최근 현 정권의 국정 과제인 토지 재분배 문제로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했다. 이미 1980년대부터 토지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으나, 여전히 전체 인구의 0.6%인 백인과 대주주가 짐바브웨 전체 농지의 70%를 차지하였고, 이들이 사실상 짐바브웨 경제를 장악하고 있었다. 

  자유 매입, 자유 분배의 원칙에 따라 유상분배 형식으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졌고, 일정량의 토지가 흑인들에게 재분배되었으나, 무계획적으로 농지를 분배하다 보니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분배가 되었다. 무상원조 중단과 경제 제재로 비료나 농기구 등이 부족하여, 결국 국가 경제의 근간이었던 농업이 파탄이 났다. ‘아프리카의 식량 창고’가 졸지에 최악의 식량 부족국가가 되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사람이 시위하면서 격렬하게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경찰이 페퍼포그를 앞세우고 그들을 쫓기 시작하자, 시위대는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나 급격한 개혁과 장기집권은 국민의 저항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한국의 봄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의 보석’ 짐바브웨는 큰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그 출구는 알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진주처럼 빛나길 바랐다.

  하라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출국장의 상황을 보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입국 때와는 전혀 다른 난장판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뒤엉켜 있었고, 거의 통제가 불가능해 보였다.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 소문이 돌면서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이 공항으로 몰렸기 때문이었다. 국영 광물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VIP 통로를 통해서 간신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비행기는 1시간 연착된 후 활주로로 향했다.      

 * 짐바브웨의 혼돈(混沌)은 30여 년 전 방문했을 때보다 더 가중되고 있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의 밝은 모습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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