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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pr 05. 2024

3화. 사라예보 공항(空港)의 침묵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새벽에 비엔나에서 사라예보로 가는 비행기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보딩 티켓을 발급받으면서 항공사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사라예보가 새벽에 안개가 많이 끼고, 알프스산맥에서 급강하해서 착륙하는 지역이라 회항(回航)률이 높다고 했다. 가장 리스크 한 것은 사라예보 공항은 수동 착륙 유도장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기장의 안내방송이 시작되면서 승객들은 누구랄 것 없이 안전띠를 꽉 조여 매고 눈을 감고 있었다. 기내에는 적막감과 공포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항공사 직원의 말대로 사라예보에 접근하자, 비행기가 수직 강하하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동안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랜딩기어 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커다란 엔진 음과 함께 기체가 지상과 충돌하였다. 정신을 차리자, 기내에서는 환호와 박수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장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행운의 승객임을 알려드립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긴장했던 몸이 갑자기 맥이 풀려 힘이 빠지면서 땀이 흘렀다.      

  3년간의 보스니아 내전은 사라예보를 수동적인 중세도시로 만들어 놨다. 승객을 맞이하는 공항 직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정부 직원들이 제일 먼저 한 말은 여기서는 절대 웃지 말라(never smile)고 하였다. 차를 타고 공항을 나서자, 그 직원의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눈이 내린 것처럼 수많은 하얀 십자가들이 끝없이 들판을 덮고 있었다. 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시커먼 연기로 얼룩져 있었고, 반 조각이 났거나 지붕이 없는 건물들이 거리에 즐비했다.


  사라예보를 방문한 이유는 유고 내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스니아의 경제부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전후 복구사업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그에게 현지 조사를 통해 지원 가능성 및 분야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폐허가 된 국가의 재건을 위해서 여러 나라를 다니며 지원 호소를 하는, 그의 눈에 절실함이 가득 찬 모습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알프스산맥이 아드리아해로 뻗어가면서, 그 끝자락, 해발 500m 평원에 조용한 도시 사라예보(Sarajevo)가 있다. 도시를 흐르는 밀랴츠카 강(Miljacka)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고, 그중에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어 역사적으로 유명한 프린치프 다리(Principov most)가 시내 중심에 놓여있다. 이 다리의 이름은 유고 내전이 끝나면서, 현재의 이름인 라틴교(Latinska ćuprija)로 바뀌었다.

  도시를 돌면서 유고 내전 중에 참혹한 모습들 연상케 하는 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보였다. 부서진 건물 벽에는 총탄 자국들이 수없이 많았고, 거리에 빨간색으로 혈흔을 상징하는 ‘사라예보의 로즈’가 그 당시의 상황을 연상할 수 있었다. 공원묘지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비석들이 파란 하늘에 덮여 있었고, 집단 학살자들을 위한 임시로 만든 추모 조형물들이 묵묵히 그날을 생각하며 서 있었다.      


  통역 담당 안내로 도시 중심가에 있는 100여 년간 무슬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터키인, 유대인들, 또 다른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했던 흔적인, 다양한 건축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오래된 이슬람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내전에도 사원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가장 큰 아픔을 겪은 무슬림들의 영혼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 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한 여직원의 얼굴에는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녀는 전쟁이 나자, 해외에서 공부를 중단하고, 사라예보로 돌아와 가족과 고통스러운 3년을 보냈다. 아버지는 경찰로 근무하다, 세르비아군이 점령 시 처형당했고, 어머니는 2년 전 세르비아 저격수(sniper)의 총에 맞아 지금도 의식불명 상태라고 했다. 지난 3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는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경제기획부에서 근무하는 그녀의 걱정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전후 복구사업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불안감이었다. 세르비아군의 만행으로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하거나 해외로 떠나서 인구의 절반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가장 시급한 것은 파괴된 사회적 간접자본의 복구라고 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강인해 보였지만, 가끔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국을 돌면서 보았던 전쟁의 참상과 흔적을 보았다. 아름다운 도시, 사라예보가 일그러져 있었다. 가는 곳곳마다 파괴된 다리 옆에 가교를 설치해서 지키고 있는 UN군의 날카로운 눈초리, 부서진 공장에서 일거리가 없어서 넋을 잃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 16세기에 지어진 모스타르의 스타리 모스트(석교)의 파괴된 모습은 평생 뇌리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며칠간 동고동락했던 그녀의 환하지만, 어두워 보이는 미소를 뒤로 하고 공항에 들어서자,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처음 입국 시 공항에서 느꼈던, 웃을 수 없는 상황이 여기저기 보였다. 전쟁이 끝나고 들어오는 친지를 배웅 나온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표정에는 지난 3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아직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공항을 보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수직으로 상승하면서 비행고도를 잡아갔다. 창가에 보이는 사라예보를 보면서, 그녀가 했던 말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녀로부터 가족을 갈라놓은 것은 인간들이 파 놓은 무덤이었고, 죽고 죽이는 전쟁 속에 남는 것은 결국 그들의 상처뿐이었다. 뿌리 깊은 무의미한 전쟁은 그들의 나라를 송두리째 뺏어가,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영혼뿐이었다. 그들의 침묵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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