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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Mar 29. 2024

2화. 은질리 공항(空港)의 석양

공항이야기 / 에세이

  처음 방문하는 나라는 설렘이 앞선다. 사전에 많은 현지 정보를 습득해서 공부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의외로 다른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파리를 경유해 은질리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킨샤사는 우거진 숲 속의 집들이 간혹 보였다. 처음 방문한 곳이라 낯설기도 하지만, 얼마 전 쿠데타로 정국이 혼란한 상황이라 많은 걱정이 되었다.

  트랙을 내려오면서 공항 주변에서 불어오는 흙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어릴 적 고향에서 맡은 향기 같았다.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키스를 했다. 이곳의 신에게 새로운 세계에서 무탈하게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고,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빌었다. 명색이 국제공항이지만, 다른 나라 중소도시 규모 공항이었다. 안내판은 불어로만 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서면서, 입국 절차를 밟는 긴 줄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입국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줄에 서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옆에 서 있던 사람에게 공항이 원래 이런 지 물어보았다. 그는 대통령인 로랑 카빌라(Laurent Kabila)가 쿠데타 1주년 기념행사를 위해서 주변 국가의 대통령들을 초대해서 한가했던 공항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고 했다.

   킨샤사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차량이 많이 흔들렸다. 중간중간에 군인을 실은 트럭들이 자주 보였다. 그들은 무표정하고 피곤한 모습으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지나가는 차량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시민들이 보였지만, 군인들의 숫자보다 많지는 않았다. 소총을 들고 무장한 군인들 속에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병사들도 간혹 있었다. 그들은 키가 작아서 소총을 들지 못하고, 간신히 끌다시피 매고 다녔다.

  숙박했던 호텔의 이름은 세계적이었지만, 내부 시설은 오래되어서 초라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시내 전경은 회색 도시였으나, 멀리 보이는 주택가들은 유럽풍의 저택들로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의 빈부 차이가 느껴질 정도면, 그 실상은 더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주변에는 군인들이 삼엄한 검문을 하고 있었다.     


  이번 방문 목적은 신정부와의 대규모 사업을 위한 사전 조사를 위해서였다. 관련 부처들의 장관들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실무에 밝지 않은 듯 옆에 앉은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간혹 한마디를 했다. 결국 상담은 그 직원들과 했고, 장관들은 끝나고 난 후, 악수하면서 같이 웃어 주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직 사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현지 상공회의소 회장을 방문하기 위해서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 지역은 호텔에서 보았던 호화 주택가였다. 당연히 흑인이라 생각했는데, 백인이었다. 이곳은 벨기에가 지배했던 식민지였다. 다이아몬드 등 수많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아직도 많은 벨기에인이 이곳 지하자원의 개발 등을 영국 식민지에서 흘러들어 온 인도인들과 함께 경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 실세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시내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바로 옆에서 벌어진 상황이라 고개를 숙였다. 차에 같이 동승한 불어 통역사가 안심을 시키려는 듯, 현지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준비해 준 태극기가 달린 차량은 방탄차라 괜찮다고 했다. 조금 전 상황은 어린 병사가 환전소를 터는 총기 난사였다. 이런 일들은 지방에서도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어제 어린 병사가 긴 총을 끌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방문지를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군인을 실은 트럭으로 길이 막혔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하고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가끔 그들 틈에 끼어 있는 어린 병사들이 보였다. 몇 년 전 『나는 어린이 병사』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병사가 되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어린 병사의 끔찍한 실태를 고발한 책이다.

  어리석은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동원되어, 즐거워야 할 어린 시절을 희생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국이 불안하고,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이 누구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어린이들이 타의에 의해서 총을 들어야 하는, 더 이상의 어린이 병사들이 정치적 전쟁에 내몰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기념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승객들로 터미널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어를 사용하는 이곳에 영어안내판이나 안내방송이 없어 이착륙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영어 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다. 비행기가 나타나면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서 어디 가는 비행기인지 물어봤다. 2시간여 그런 혼란을 겪으면서 간신히 다음 행선지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처음 가본 은질리 공항에는 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만, 혼란스러운 공항에는  많은 승객이 오고 가고 할 뿐,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기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종족이 모여 사는 그곳에는 빈번한 쿠데타로 아직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은질리 공항의 아름다운 석양이 내리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뜨거운 태양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 로랑 카빌라(Laurent Kabila)는 3년 후 측근에 의해 살해되면서, 아들 조제프 카빌    라(Joseph Kabila)가 지금까지 콩고 민주공화국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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