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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Mar 22. 2024

1화. 에필로그

공항 이야기 / 에세이

 입사하자 회사에서 제일 먼저 제공한 것이 사원증, 명함, 여권, 법인카드였다. 한 번도 해외에 나간 본 적이 없어서 여권을 받고 당장 해외 출장이라도 갈 듯 며칠 동안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봤다. 그 당시 여권은 발급도 어려웠지만, 신분 보장이라는 확실한 증명서이기도 했다. 가끔 바이어 마중하러 김포공항을 가면 출국도 하지 않으면서 여권을 들고나갔다.

  첫 출장은 담당 지역이 유럽이라 2주간 6개국 출장을 가게 되었다. 비행기 일정은 미국 주재원 생활을 하고 얼마 전 귀임한 차장이 직접 잡아주었다. 첫 목적지는 스톡홀름이었다. 비행기 일정을 보자 조금 이상했다. 스톡홀름은 직항이 없어 일반적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환승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환승은 나리타공항, 유럽에서 가장 환승이 복잡하고 어려운 히드로 공항이었다. 지옥 같았던 공항 환승 훈련이 기억난다.     


  가장 인상에 남는 공항이 두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 있는 은질리 공항(N'djili Airport)이다. 현 대통령인 조세프 카빌라의 아버지인 로랑 카빌라가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방산물자를 팔기 위해서 방문했다. 거리는 아직 군인들로 가득 차 있었고, 공항도 군에 의해서 통제되었다. 정부 고위 인사들과 면담이 되어 있어서 보안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공항에서의 혼란은 대탈주극을 연상케 했다. 

  혁명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변 국가 대통령들을 초청해 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어를 사용하는 이곳에 영어안내판이나 안내방송이 없어서 이착륙에 대한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영어 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다. 비행기가 나타나면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서 어디 가는 비행기인지 물어봤다. 2시간여 그런 혼란을 겪으면서 간신히 우간다로 향하는 아프리카 횡단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두 번째 인상적인 공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국제공항이다. 보스니아 내전 직후, 경제부총리의 전쟁 복구사업 요청으로 급하게 출장을 가게 되었다. 비엔나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비행기로 사라예보로 출발했다. 비엔나지사 주재원이 사라예보 운항 회항률이 70%가 넘는다는 말에 졸리던 눈을 떴다. 알프스산맥 중턱에 있어 새벽에는 안개 때문에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은 비행기가 급강하하는 지역이고, 이착륙 통제시스템이 전쟁으로 공항이 파괴되어 수동으로 작동했다. 그의 말대로 사라예보에 접근하자, 비행기가 수직강하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온몸에 힘을 주었다. 조금 있다 정신을 차리자,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장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행운의 승객임을 알려드립니다. 좋은 여행이 되십시오.’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땀이 흘렀다.      

              

  공항은 전 세계 사람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직항인 경우에는 입국 수속 및 짐가방을 찾아야 하므로 정신이 없지만, 환승할 때에는 공항 내 이동 및 대기 시간 등으로 수많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느 국가인지 구별은 언어, 생김새, 복장 그리고 특유의 제스처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환승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공항은 한정된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 정해진 이동시간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즐겨야 한다. 이런 여유 시간을 가진 사람마다 그들의 루틴이 있다. 면세점 쇼핑을 즐기거나 바에서 누군가와 술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 또는 가져온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영화를 본다, 게임에 빠져서 혹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공항은 인생의 항로를 생각할 수 있는 장소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항공기의 이착륙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이 신기해서 보는 일도 있지만, 뭔가 깊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여행을 하는지 모르지만, 얼굴에는 평온함, 고독감 또는 비장함이 흐른다. 그들의 인생이 항로 이탈 없이 멋있는 여행이 되길 바란다.     


  이제 서서히 여행을 줄이고 있다. 움직이는 여행이 아니라, 마음의 여행을 떠난다. 스쳐 지나가듯 밟았던 수많은 공항만큼이나 앞으로 더 많은 미지의 공항을 향해서 떠날 것이다. 지구상에 있는 가보지 못한 공항을 방문하는 날에는 마지막 여행을 위해서 짐을 챙길 것이다. 그동안 다녔던 공항들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신비하고, 오묘했던 감정처럼 마지막 공항도 그렇게 반겨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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