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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Sep 16. 2024

14화. 넥타이

이별 이야기 / 콩트

  저녁 늦게 들어선 집에는 침묵이 흘렀다. 직장 동료들과 마신 술기운으로 몸이 휘청거렸다. 현관에 들어서는 내 몸을 아내가 잡아줬다.

  “얼마나 마셨기에 몸도 못 가누는 거예요?”

  아내는 나의 축축해진 눈을 보았는지 잔소리를 하려다 눈치를 살폈다.

  “술 취한 것 한두 번 봤어. 신경 쓰지 마!”

  내 표정이 바뀌었는지 아내가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당신!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당신이 힘든 사회 생활하는 남자들의 세계를 어찌 알겠어!”

  아내의 눈을 피하면서 한마디 툭 던지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항상 그랬듯이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풀었다. 천장이 뱅뱅 돌고 있었다. 어느덧 넥타이를 맨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오늘 첫 출근인데 늦겠다!”

  내가 늦을까 봐 노심초사 밖에서 기다리던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첫날부터 넥타이가 꼬이네요!”

  어머니는 나에게 넥타이 매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성격이 급한 내게는 어울리지 않겠다 싶었던지 어머니는 약식으로 매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머니가 사주신 남색 바탕에 빨간색의 스트라이프 넥타이는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출근 첫날은 그렇게 허둥대며 아침 식사도 거른 채로 집을 나와야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선배들은 사진기 렌즈를 통해서 움직이는 피사체를 보며 셔터를 누르는 사진사가 되어 있었다. 나를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신입사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회사에서 업무를 가르쳐줄 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유머를 섞어가며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나를 소개해준 선배 넥타이는 ‘윈저노트’(windsor knot) 스타일로 단정하면서도 중압감을 느끼게 했다. 처음 본 그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아침 출근과 동시에 사무실 내 다양한 넥타이를 맨 직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날의 일과가 전투장으로 변해갔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고성이 귀에서 가슴으로 전달되었고, 전화기를 붙잡고 큰 소리로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퇴근 후에는 홀가분하게 긴장감을 풀면서 스트레스를 술잔 속으로 날려 보냈다. 그런 일상생활이 반복되면서 넥타이는 내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하나가 되어 갔다. 

  “넥타이가 이제는 잘 어울리네.”

  선배가 술자리에서 하는 소리가 낯설지 않다.

  나는 중견 사원이 되어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넥타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넥타이는 루이 14세에게 용병부대가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가슴에 맨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의 병사들이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두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병사가 된 기분으로 넥타이를 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 스카프는 무사 귀환의 염원을 담아 병사들의 아내나 연인이 감아준 일종의 부적이었고, 그것을 감아준 여인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했지요.”

  넥타이는 내가 회사생활에서 견뎌내는 힘이었으며,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내 방으로 잠깐 들러요.”

 아침부터 전화기로 들려온 사장의 목소리는 일상적이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와서 사장과 같이한 세월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목소리를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사장실로 들어서면서 왜 나를 불렀는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와 일하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

 사장이 내 눈을 제대로 보지 않고 말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넥타이가 바뀌었네. 지난번 내가 해외 출장 다녀오면서 선물한 건가?”

 사장이 내 표정에서 긴장감을 느꼈는지 화제를 갑자기 바꿨다. 

 “제가 사장님과 일하면서 처음 받은 선물이라 아끼려고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매어봤습니다.”

 사장은 내 말에 멈칫 놀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사장은 나와의 지난날들을 반추하고 있는 듯했다. 사장의 손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인사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네가 후배를 위해서 결단을 내려줘야겠는데…….”

 사장은 나보다 더 긴장한 듯 넥타이를 만지고 있었다. 헛기침하면서 애매한 분위기를 탈출하려고 했다. 나도 넥타이를 만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예상했던 일이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방을 나왔다.      

  아침에 눈을 뜨자, 창밖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밤 일들이 떠올랐다. 넥타이를 푼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걸 잊고 싶었을 것이다. 주변의 정적이 갑자기 몸속으로 들이닥쳤다. 혹한의 겨울이 몰려오고 있다가, 갑자기 뜨거운 사막에 홀로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멀리서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속에 묻혀 가고 있었다.

  태양이 벌써 중천에 떠 있는데,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침마다 일어나라고 아우성을 치던 아내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내 모습이 거울에 반사되었다. 늦은 아침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이제 내가 힘들 때 시련을 극복하고 견디게 해 줬던 넥타이를 더는 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30여 년간 함께 했던 수많은 동료 얼굴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선배들이 하나씩 떠날 때마다 슬픈 이별을 했다. 언젠가는 나도 남아 있는 후배들과 똑같은 이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현실이 눈앞에 서 있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에 가족, 친구들, 사랑했던 연인들과 많은 이별을 했다. 앞으로도 어떤 이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나와의 마지막 이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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