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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Sep 09. 2024

13화. 해후(邂逅)

이별 이야기 / 콩트

  내가 P를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어느 카페에서였다.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면서, 음악에 심취해 있었던 그는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곳은 그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떤 날은 몇 사람만이 그의 노래를 듣고 있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카페에 들어서면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눈인사를 했다. 나는 그의 노래를 즐겨 듣는 팬으로 가까워지면서 그의 음악 세계로 빠져들었다. 

  나는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오랫동안 P를 볼 수 없었다. 본사 귀임 후, 들린 그 카페에서 그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카페 주인에게 그의 연락처를 물어봤으나 알 수 없었다. P는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어느 날,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P로부터 직장으로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그는 삼십 중반의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다. 청첩장에 있는 신부의 이름을 보면서 잠시 멈칫했다.


  “신랑 입장!”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식장으로 들어오던 P는 시선을 한 곳으로 멈췄다. 단상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의 눈과 마주쳤다. 야회에서 열리는 식장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인지, 그의 눈빛은 조금 찌푸려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짙은 검은 구름이 저만치 흘러가고 있었다. 태연하게 단상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가 노래 부르는 카페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여기 앉아도 되나요?”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와 다소곳이 물어봤다.

  그날은 자리가 모자라 그녀와 합석하게 되었다. 단정하고 조용한 모습의 그녀는 P의 노래에 푹 빠져 있었고,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의 그런 모습을 가끔 훔쳐보았다. 그녀의 손놀림과 표정을 보느라 P의 노랫소리는 내 귓가에서 윙윙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P의 노래가 끝나자 나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무엇에 홀린 듯이 그녀를 쫓아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했다. 계획했던 인생을 순식간에 변경하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P가 노래 부르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던 Q는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회사는 재미있어요?"

  그녀는 항상 내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녀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기획 업무를 맡으면서 사장 업무를 보좌하는 일이라 일은 많이 배우는데, 주말에도 출근해서 조금 피곤하네. “

  Q와는 직장생활로 지쳐갈 때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일이 바빠서 정신이 없는데도, 가끔 외로움을 느껴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잠시 혼란을 느꼈다. 그녀의 외로움이 무엇이며, 왜 생기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가끔 일상 탈출을 해서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이 지친 몸을 누구에겐가 맡기고 싶은 그런 일탈 행위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Q가 말없이 술잔을 자주 부딪쳤다. 나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내가 그녀에게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다정한 모습만 보여줬지, 따뜻한 애정으로 다가간 적이 없었다. 그녀와 만남이 벌써 3년째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기간이 그녀가 나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줬던 시간이었다. 집안이 어려워 힘들어할 때도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나를 감싸주었다.       

  나는 무너지고 있는 그녀를 보며, 살포시 앉아줬다. 그녀는 술기운이 도는지 나를 꽉 껴안으며 뭐라고 하는데,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내게 말하지 못하고 쌓였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감정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나와 함께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내 가슴에 안겨서 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진실한 사랑을 충분히 느꼈던 밤이었다.     


  ”신부 입장! “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가끔 멈칫하면서 앞만 보고 걸어가는 Q의 모습이 과거의 기억과 오버랩되었다. 그녀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P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맞이할 P 자리에 내가 서 있어야 했다. 

  P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유창한 불어로 불렀다. 마지막 가사 ’Dieu réunit ceux qui s'aiment’(신이 우리를 하나로 이어 줄 거예요)가 끝나면서 나는 뭔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Q도 환하게 웃던 모습이 사라지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내가 흘린 눈물과 그녀의 눈가의 이슬이 같은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P가 하객들에게 그녀와 같이 인사를 하다 내 눈과 마주쳤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P를 보는 척하면서 신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P의 얼굴만 바라보며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카메라의 줌이 댕겨지면서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내 앞으로 나타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혹시 그녀의 행복한 모습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신랑, 신부 행진!”

  주변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나는 그들이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Q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직도 저를 사랑하세요?”

  그날도 오늘처럼 찌푸린 하늘에 짙은 검은 구름이 저만치 흘러가고 있었다. Q와의 아픈 이별은 회한(悔恨)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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