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 콩트
M을 처음 만난 것은 하르툼 국제공항이었다. 하얀 도포(갈라비아)를 입고 머리에 터번을 둘러쓴, 그의 모습은 영국과 수단 부족들과 전쟁에서 족장이 나오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문뜩 떠올랐다. 얼굴색은 초콜릿색을 띠고 있었지만, 모습은 중동사람이었다. 콧수염을 길러서인지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살라마리쿰!”
처음에는 생소한 언어였지만,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생산법인에 근무하는 M입니다. 수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현지 합작 생산법인 사장으로 발령받아 온 나를 배웅 나온 것이다. 그가 입은 하얀 도포와 얼굴색이 대조를 이루었다. 저음의 굵직한 목소리와 차분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에 걸맞았다. 그를 처음 본 인상이었다.
공항은 하르툼 시내에 있어서 숙소까지는 멀지 않았다. 영국 식민 시대의 고색창연한 집들은 밖에서 잘 보이지 않게 야자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집들의 겉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나, 지붕의 기와는 검은색이었다. M이 멀리 보이는 아담한 2층의 영국식 가옥을 손으로 가리켰다. 숙소는 백나일강이 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경비원이 커다란 철문을 열며 경례를 했다.
집 정원 옆에 커다란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보였다. 백나일강이 흐르는 뒤뜰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많은 나무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업무 보고서 책상에 올려놓겠습니다.”
M은 피곤해 보이는 나에게 인사한 후 돌아갔다. 나일강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모든 풍경이 내게는 초자연의 사막도시인 하르툼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초대하겠습니다. 누추하지만, 꼭 방문해 주십시오,”
M의 초대는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나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는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이 합류하는 지역인 옴두르만에 살았다. M의 집은 2층의 하얀 양옥집으로 내부로 들어가니 넓은 응접실이 있었다. 젊은 남자가 차와 다과를 가져왔다. 이슬람문화에서 여자들은 손님이 오면 나타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의 집 마당에는 큰 상 위에 음식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가 ‘라마단 브랙퍼스트’에 초대한 많은 사람이 왔다. 그가 나를 초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이슬람 행사를 접하면서 설렘으로 다가왔다. M과 일로 부대끼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을 때였다. 그에 대한 첫인상만큼이나 믿음을 가지면서, 이슬람문화에 대해서 빠져가고 있었다.
무스타파와 일한 지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그가 결혼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의 아이 결혼인 줄 알았다. 그의 세 번째 결혼으로 이제 부인이 세 명이 되는 것이다. 이슬람의 문화충격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축하한다며,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직원에게 그의 결혼에 관해서 개인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수와 결혼한다고 합니다.”
그 여직원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이슬람에서는 남의 사생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조금 전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인륜을 거론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다시 잘못 들었나 해서 내가 조금 의아해하자, 그 여직원은 코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코란에는 ‘만일 너희들이 고아에게 공정하게 하지 못할 것같이 생각되면 누군가 마음에 드는 두 명, 세 명,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하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여직원은 이슬람 여성으로서 코란에 명시된, 일부다처제를 옹호한다고 했다.
“전쟁 중에 많은 남자가 죽어서 생겨난 과부와 그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그 여직원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형수는 결혼하면서 세 번째 부인이 되지만, 그 아이들은 자식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고구려 시대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가 떠올랐다. 전쟁으로 인해 생긴 풍속이 경전에 의해서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다. 무스타파의 큰 형님이 병으로 사망하자, 가족회의를 열어 전통적인 방식대로 둘째인 무스타파에게 그 가족을 맡기기로 했다.
나는 처음 공장 방문하던 날이 기억났다. 차를 타고 백나일강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사막이 나타났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무엇이지?”
M은 ‘신기루’를 처음 보는 내가 신기한 듯했다. 바다로 보였던 그곳이 가까이 가면서 사라지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공장 순시를 하는데, 마지막 공정인 검사실을 막 돌고 있을 때였다. 한 남자 직원이 나를 향해 뛰어왔다.
“저에게 새끼 양 10마리를 사주시면, 정성껏 길러서 한 달에 한 번 직원들과 양고기 파티를 하겠습니다.”
그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는 구매를 담당하고 있는 M에게 공장 공터에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 주라고 했다. 나는 몇 개월 후, 직원들과 양고기 파티를 위해서 M과 함께 공장으로 갔다. 멀리 보이는 신기루에서 그 직원의 맑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 M을 만났을 때, 하얀 도포, 터반, 그의 콧수염과 저음의 카리스마가 있는 목소리 때문인지 모르지만,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내가 업무 문제로 다그칠 때, 그는 ‘인샬라’(신의 가호가 있기를)라고 하면서 어깨를 으쓱이며 겸연쩍게 웃던 생각이 난다. 차분하면서 영국식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그였다. 그를 보면 낯설었던 곳에서 정을 주었던 모스크바의 A 교수가 그리워진다. 공항에서 작별 인사하면서 보았던, M의 진한 눈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얀 도포를 입은 M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