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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ug 19. 2024

11화. 학(鶴)

이별 이야기 / 콩트

  침대 옆 탁자에 있던 핸드폰이 떨리면서, 요양원의 전화번호가 떴다. 스탠드를 켜자, 벽에 있는 시계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새벽 4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죠?” 

  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다급한 소리로 물어봤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상태가 안 좋으셔서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요양원을 가는 길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차는 제자리에 있었다.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어두웠던 주위가 하나둘씩 양파처럼 벗겨지고 있었다. 요양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면서 갑갑함이 몰려왔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머니는 아침에 두 개의 가방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하나는 도시락이 든 보온병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주머니였다. 

  “차 조심해라.”

  어머니는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꾸중을 들은 것은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집에 들어갔을 때였다. 

  “어디 있었니! 집에 전화도 없이 늦게 오면 어떻게 해!”

  어머니가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혹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걱정을 했지만, 나는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6·25 전쟁 때 네 형이 죽었지. 등에 업혀서 피난을 가던 중에 젖을 먹이려고 하는데 꼼작도 안 하더라. 그때는 병원도 갈 수 없었지. 약도 구할 수가 없었지. 어쩌면 좋지, 하면서·····”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고 말했지만,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내가 군대 가는 것이 또 자식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잘 다녀와라. 항상 조심하고.” 

  부모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물을 그때 처음 보았다. 

    

  군대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으로 많은 사람이 들이닥쳤다. 여러 곳에 빨간딱지를 붙이고는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들어온 것이다. 부모님은 잠시 여행 다녀온다고 했으나, 이런 상황에 대해서 말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잘 정리가 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너희들 밥도 못 해주고 미안하다.”

  집이 빚으로 파산하면서 월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는 며칠간 식사도 안 하고 울기만 했다.

  “어머니! 제가 앞으로 돈 벌겠습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학교 다니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낮에 공부하고, 저녁에는 일하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어머니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내가 결혼을 하면서 독립하자, 어머니가 처음 집에 들른 것은 첫애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의 불화가 있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애 낳느라 고생 많았구나.”

  아내는 아무 소리 없이 아이만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손녀를 아내에게 받아서 안아보면서, 핸드백에서 꺼낸 하얀 봉투를 주었다. 

  “어머니는 왜 자주 오시는지 모르겠어.”

  옆에 사는 장모가 어머니 오는 게 불편해하면서 사돈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고민 끝에 나는 회사에 해외주재원 신청을 했고, 어머니에게 곧 해외로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고 나지막이 말했다.

  “잘 다녀와라.”

     

  병원에서 입원 후, 요양원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던 어머니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빠빠빠·····”

  낯선 소리에 나는 갑자기 누가 내 머리를 내리친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오른손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말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다. 의사도 언어장애가 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밖으로 나왔다. 개나리가 하얗게 피어 있는 요양원의 정원이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곧 눈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그런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빠빠빠’라고 하면, 신경 쓸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머니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계속해서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내 귀에는 같은 소리로만 들렸다. 어머니의 낭랑했던 목소리는 이제는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가끔 불러줬던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어머니는 점점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서면, 환하게 웃던 어머니의 표정은 어느새 누군가를 곰곰이 기억하는 듯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내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수십 년간 어머니의 머릿속에 선명했던 내 존재가 이제는 몇 점의 자국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도 어머니에게 갔다. 항상 다니던 길은 변함이 없었다.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 보였던 길인데, 이제는 무감각해졌다. 요양원 정문을 올라가는 길도 그랬다. 뒷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만 유일하게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면서 한참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에 익숙해졌지만, 나를 인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머니와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지워지지 않을 어머니의 모습이 멀어져 가고 있다.

  “애야! 잘 있거라. “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하얀 학이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고이 간직하던 하얀 진주 반지를 끼고 있던, 아내가 내 옆을 떠났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영원한 이별은 이제 내게 오지 않았으면 한다. 나와의 이별이 이제 시작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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